사회적 독서Social Reading란?
‘독서’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떤가? 대부분은 조용한 공간에서 책을 읽으며 혼자 사색에 잠겨 있는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 등 많은 매체에서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말수가 적고, 타인과의 교류가 적은 것처럼 묘사되곤 한다. 그만큼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인식되곤 한다.
그러나 ‘사회적 독서’로 대표되는 독서의 트렌드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사회적 독서’는 다른 말로 하면 ‘함께 읽기’다. 혼자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모여 책을 함께 읽으며 서로의 취향과 의견을 나누고, 나아가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사회적 독서의 대표적인 형태는 독서동아리로 나타난다. 독서동아리는 여러 사람이 모여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는 모임인데, 책모임, 독서모임, 독서커뮤니티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많은 독서동아리가 5~10인의 작은 규모로 활동하지만 지역사회 전체가 하나의 독서동아리가 되는 경우도 있다. 1998년 미국 시애틀에서 시작되어 국내에서는 서산시에서 첫선을 보인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운동은 국내에서 꾸준히 확산되어 2021년까지 57개 지자체에서 ‘한 책 한 도시’ 캠페인을 진행하였다.1)
‘사회적 독서’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제3차 독서문화진흥기본계획(2019~2023)〉부터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독서문화진흥법에 근거하여 매 5년마다 국민 독서문화진흥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는데, 해당 계획에서는 5대 정책기조의 첫 번째로 ‘사회적 독서 활성화’를 제시하였다.2) 기존의 개인적 독서에서 나아가 독서동아리를 중심으로 한 토론문화를 활성화하고, 사회 전반에 책 읽는 문화를 확산하자는 것이다.
민간에서도 사회적 독서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졌다. 도서관을 기반으로 한 독서공동체뿐만 아니라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트레바리’ 등의 유료 독서모임 문화가 부상했다. 이들은 책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것뿐만 아니라 책을 매개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는 데에 집중한다.
사회적 고립, 공동체의 붕괴, 혐오 및 양극화가 주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사회적 독서’는 공동체 회복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독서’는 중장년층을 비롯한 시니어를 중심으로 지속되고 있다.
왜 사회적 독서인가?
사실 지금의 시니어, 혹은 예비 시니어에게 ‘사회적 독서’는 그리 낯선 개념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사회적 독서’의 주역이 바로 지금의 시니어 세대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시계를 돌려 1990년대로 가 보자. 1993년 ‘책의 해’가 선포되면서 독서진흥은 국가적인 의제 중 하나가 되었다. 기존 도서관법을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으로 개정하여 독서진흥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읍·면·동 단위의 행정기관에 공공문고 설치를 의무화하였다. 이 과정에서 도서관이 지역 문화공동체의 사랑방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설문대어린이도서관, 늘푸른어린이도서관, 초롱이네도서관 등이 대표적이 예다.
이러한 분위기의 중심에 있던 것은 바로 ‘어린이책’이다. 학부모들이 중심이 되어 어떤 책을 어떤 식으로 읽어야 할지에 대해 토론하고, 서로에게 좋은 책을 추천하는 크고 작은 모임이 생겨났다. 이들은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정기적으로 모여 서로의 의견을 나눴다. 학부모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독서단체에 소속되어 활발히 활동하였는데, 대표적인 단체로 어린이도서연구회가 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소속 활동가들은 작은도서관과 학교도서관 등에서 어린이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추천도서목록을 배포하였다.
어린이책에 대한 관심은 2000년대에도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독서 전반에 대한 열풍이 일었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끈 MBC 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프로그램을 계기로 시작된 ‘기적의도서관 프로젝트’ 등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 작은도서관이 확충되면서 ‘사회적 독서’ 활동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20~30년이 지난 지금. 1990년대~2000년대에 아이를 키운 학부모들은 이제 시니어거나 시니어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사회적 독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전국 독서동아리 중 44%가 40~50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이들에게 ‘사회적 독서’란 낯설지 않다.3) 이들은 독서동아리를 통해 사회적 유대감을 찾고, 나아가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집중하거나, 자신의 경험을 살려 타인에게 기여할 방안을 찾는다.
시니어 독서로서의 사회적 독서
시니어 독서를 대하는 기존의 시선은 주로 개인의 건강 유지, 그 중에서도 치매 예방 효과에 집중되었다. 책을 읽으면 인지 보유고Cognitive Reserve가 커지는데, 이렇게 강화된 인지기능이 치매를 예방하는 밑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중앙치매센터의 ‘3·3·3 치매예방수칙’의 하나로 독서가 권장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책을 혼자 읽는다는 것은 꽤나 쉽지 않은 일이다. 시력이 떨어지는 시니어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더군다나 독서는 능동적인 사고를 요하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사회적 독서’는 이런 상황에서의 대안으로도 꼽힌다. 다시 말해, 함께 읽는 것이 좀 더 읽기 쉽다는 것이다. 시니어 시기의 독서는 인지기능 강화뿐만 아니라 사회적 고립감을 해소하고, 주체적인 활동의 계기가 되며, 노년기 삶의 방향성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함께 읽는 시니어 독서동아리
독서동아리를 만들고 함께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사회적 교류를 통해 자기효능감을 향상시킬 수 있다. 모임에 참여함으로써 회원들과의 관계가 형성되고 유대감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가치관을 공유하며 새로운 사고로 나아갈 수 있으며, 노년기의 인생을 설계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60대 이상의 연령층에서 유난히 철학‧사상‧종교 분야의 책을 선호하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은 현상일 것이다. 또한 책을 함께 읽는 과정에서 서로 북돋우며 독서에 대한 의욕을 높일 수 있으며, 이는 독서량 증가로 이어진다.
60대 이상으로만 이루어진 시니어 독서동아리는 전국적으로 보면 아직 많지 않은 편이지만, 시니어 인구의 증가 등 사회적 수요와 맞물려 점차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시니어 독서동아리 활성화를 위해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군포시에서는 2024년 55세 이상 시니어들이 독서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시니어 북클럽 양성과정’을 운영했다. 독서동아리에서 토론을 어떻게 진행하는지, 모임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는지 등 실제로 독서동아리 운영에 필요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아름다운 인생학교의 백만기 교장은 시니어 독서동아리를 잘 운영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7가지 원칙을 제시했다.4)
1. 비슷한 또래끼리 구성할 것
2. 구성원들이 좋아하는 주제를 선택할 것
3. 토의 과정 자체를 즐길 것
4. 기분 나쁘지 않게 비판하는 방법을 연구할 것
5. 유머 감각을 유지할 것
6. 동료에게 배운다는 자세를 가질 것
7. 할 말은 반드시 할 것
시니어의 사회적 교류를 위한 독서 프로그램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독서동아리에 참여하기 어려운 시니어를 위해 공공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영국의 대표적인 독서 시민단체인 리딩에이전시Reading Agency에서는 ‘리딩프렌즈Reading Friends’라는 사회적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17년 처음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독거노인, 고립청년 등 취약계층에게 책을 통한 소통과 사회적 유대감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프로그램 참여 대상은 외로움을 느끼거나, 친구들과 교류가 부족한 등 사회적 교류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다. 모집된 자원봉사자는 교육을 받고 프로그램 참여자를 방문하여 안부를 묻고 책 관련 대화를 한다. 1대1로 대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수가 참여하는 그룹 토론도 병행하기도 하며 참여자들이 지역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2022년부터 2023년까지 4,800명 이상이 참여하였고 35,600회 이상의 사회적 만남이 이루어졌다.5)
국내에서도 시니어의 사회적 고립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전국의 도서관에서는 고령층 대상 아웃리치 서비스Outreach Service의 일환으로 큰글자책 방문 대출, 책 낭독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도서관에 방문하기 어려운 고령층을 위해 지역의 경로당이나 마을회관, 혹은 자택으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이다. 지난 2021년에는 책 관련 단체의 연대 조직인 ‘책의 해 추진단’과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추진한 ‘60+ 책의 해’ 사업의 일환으로 고령층 대상 전화 책 낭독 사업과 같은 시범 프로그램이 운영되기도 하였다.
시니어가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독서 관련 사업
이러한 과정에서 시니어들은 단순 수혜자에 머무르지 않고 주체적으로 책 관련 활동을 하기도 한다. 은퇴한 시니어들이 자신의 경험을 살려 책을 읽어주거나 책을 소재로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공공 영역에서 비교적 큰 규모로 진행하는 사업으로는 ‘책 읽어주는 문화봉사단’과 ‘경기은빛독서나눔이’ 등이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최하는 ‘책 읽어주는 문화봉사단’은 2024년 기준으로 11년차를 맞이한 사업으로, 만 50세 이상 시니어가 문화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책 읽어주기 활동을 지원한다. 활동가로 참여하는 시니어는 교육을 받고 2인 1조로 장애인‧다문화‧어린이 기관 등에 방문해 책을 낭독한다. 2024년에는 예산규모가 줄어 약 160명이 8개 지역에서 활동하지만, 시니어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는 만큼 다시 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2010년부터 경기도에서 추진해온 ‘경기은빛독서나눔이’ 사업에서는 만 56~76세 독서활동가 두 명이 짝을 이뤄 장애인 및 어린이 기관 등에 방문한다. 역시 2인 1조로 매주 1~2회 가량 방문해 어린이와 지식정보취약계층에게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나눈다. 2024년에는 200명의 시니어 독서활동가가 지역아동센터 및 장애인복지시설 등 250개 기관에 방문한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시니어들은 자기계발은 물론이고 세대를 뛰어넘은 소통을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자신의 경험을 살려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과정에서 자기효능감을 향상시킬 수 있다.
마치며
여러 가지 이유로 적극적인 활동을 하기 어려운 시니어의 경우 소위 말하는 ‘제 3의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건 덤이다. 무엇보다 사회적 교류의 계기가 생긴다는 점이 중요하다. 실제로 60대 이상으로 구성된 독서동아리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주로 도서관공공도서관 및 작은도서관에서 모임을 갖는 경우가 많으며, 도서관에서 직접 시니어 독서동아리를 운영하기도 한다.
사회적 독서는 시니어의 공동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개인의 파편화가 가속화되며 사회적 고립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 독서는 긍정적인 소통 문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함께 책을 읽으며 저마다 서로 다른 가치관을 공유하고 공통의 문제에 함께 접근함으로써 더 나은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앉아 TV만 보는 것이 아닌, 보다 활력적인 시니어 시기를 보내고 싶다면 독서동아리의 문을 두드려보는 것은 어떨까.
1) 윤정옥(2021), 『한 책, 한 도시 그리고 우리 도서관』, 경기도도서관총서 27
2) 이전 계획에도 독서동아리 확산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으나, 사회적 독서 활성화를 핵심 추진전략으로 삼은 것은 3차 계획이 처음이다.
3) 문화체육관광부(2018), 『전국 독서동아리 현황 조사설계 연구』
4) 2021 60+책의해추진단, 2021 60+책의해‘ 제4차 포럼 〈함께 누리는 시니어 독서동아리〉
5) 리딩에이전시 홈페이지, https://readingagency.org.uk
★ 이 글은 『시니어 트렌드 2025』(시대인, 2024)에 실린 글을 필자의 동의 하에 게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