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해방선언’을 발표한 지 101년이 되는 해이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 방정환 선생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의 인격체인 ‘어린 이’들을 존중하기 위하여 ‘어린이’라는 새 말을 만들고, 1923년 5월 1일에는 어린이들이 과거의 낡은 윤리적 압박과 경제적 압박 등에서 해방되어야 함을 주장하는 어린이해방선언을 발표했다. 어린이해방선언은 어른 중심의 구조와 생활에서 벗어나 어린이를 동등한 인격으로 존중해야 하고 공경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어린이를 공경한다는 것은 어린이를 사랑한다고 말하기 전에 어린이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어린이를 억압하는 구조를 바꿔내고자 하는 힘이다. 그럼으로 인해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가치관과 어른들의 정서로부터 해방되어 자기 스스로 시간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어린이해방을 선언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어린이들의 삶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사랑과 보호라는 이름하에 여전히 어린이를 통제하려 하고 존중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미성숙하고 완전하지 못한 존재로 여기며 개별적인 존재로 인정하지 않고, 어린이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해 미숙한 이들을 ‘~린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어린이를 어떻게 여기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또한 어린이가 어떤 책을 읽고 읽지 않아야 하는지 경계하고 통제해, 어린이책에 쉽게 금서를 만드는 것도 우리 사회가 어린이를 불안하고 위험한 존재로 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린이는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시민이다. 누구에 의해 통제되고 관리 받아도 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동료이다. 어른이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현실을 어린이도 보고 느끼고 경험하며 자신의 삶을 감당하고 견뎌내며, 자신의 삶을 구성한다.
어린이책시민연대는 어린이책을 읽고 어린이책에 그려진 어린이 모습을 살피고 토론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어린이책은 현재 어린이의 삶을 보여주며, 사회가 어린이를 대하는 기준일 수 있다. 어린이책에서 어른들의 문화와 규범에 맞는 익숙한 어린이만 주인공으로 하거나 착한 어린이로 그리는 것은 그만큼 어린이를 억압하게 된다. 어린이책 속 인물들이 어른들의 문화나 규범과 갈등하며 자신의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 갈 때 현실에서 어려움을 겪는 어린이도 문학적 상상력을 경험하고 가능성을 갖게 될 것이다. 어린이책에서 어린이를 오늘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그 경험을 갱신하는 존재로, 자신의 삶을 감당하고 견디며 삶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존재로 그릴 때, 어린이는 존중받고 해방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 어린이책에서 동료시민인 어린이를 만나보고자 한다.
자신의 상황을 직시하고 내 안의 힘을 믿는 어린이
전미화의 작품에서는 그림책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어린이를 만날 수 있다. 《달 밝은 밤》창비, 2020은 알코올 중독인 아빠와 그로 인해 갈등을 겪다 집을 떠난 엄마에게, 아빠가 술을 끊거나 엄마가 데리러 올 것이라는 기대를 더 이상 하지 않는 어린이가 나온다. 행복한 시절을 상징하는 가족사진을 찢으며 엄마 아빠가 아닌 ‘나는 나를 믿는다’고 이야기한다. 아빠가 술을 마시고, 엄마가 일을 늦게 돌아올 때부터 달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을 어린이는, 엄마 아빠라는 헛된 희망에 끌려가기보다는, 앞으로의 삶이 녹록치는 않겠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고자 한다.
조금 다른 모습이긴 하지만 전미화의 《다음 달에는》사계절, 2022에는 어린이와 아빠가 등장한다. 아빠가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지만, 야반도주를 해서는 봉고차에서 생활을 하고 학교도 가지 못하는 어린이가 나온다. 어린이와 어른으로 보이기보다는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 서로를 배려하고 토닥이며 서로를 보듬는 모습이다. 어른인 아빠가 지금의 현실을 겪는 것처럼, 어린이도 지금의 현실을 겪으며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한다. 자주 우는 아빠를 토닥이고, 먹기 싫어도 밥과 반찬이 섞인 밥을 아빠 얼굴 보고 참고 먹고, 다음 달에는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아빠의 약속이 어긋나도 재촉하지 않고, 아빠가 일하러 간 낮 시간을 어떻게 보낼 지도 찾고, 아빠를 불쌍히 여길 줄도 안다. 어려서 모른다고 하지만, 어려서 모르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어린이가 알 수 없는 것이다. 어린이도 어른이 겪는 상황을 함께 겪고 감당한다.
‘정상가족’의 틀을 벗어나도 당당한 어린이
김다노의 《비밀소원》책다움, 2020에는 할머니와 비혼주의자인 이모와 살고 있는 미래와 부모가 별거중인 이랑이 나온다. 이랑은 부모가 별거중이라 마음이 무겁고, 한부모 가정 아이들이 학교에서 말썽이라는 어른들의 편견에 자신도 그럴까봐 걱정하는 아이다. 이에 미래는 ‘그럼 엄마 아빠 둘 다 없는 나는, 나는 크면 조폭 되겠네? 다른 사람들이랑도 함께 사는데 그게 그렇게 중요’하냐고 반문한다. 정상가족의 틀을 벗어나도 상관없다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사는 게 중요하다고 당당히 이야기하는 미래다. 이랑도 미래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그 과정은 오롯이 드러나 있지 않지만, 이랑은 부모의 결합만이 가족의 행복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하기를 소원한다.
그리고 미래는 ‘꼭 남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야 행복한 건 아니’라는 이모의 말을 듣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조금 눈물이 날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이모가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를 받고 미래도 이모의 비혼주의자의 삶을 응원하다.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 더불어 사는 모습이다.
내 안의 목소리를 듣고 행동하는 어린이
김다노의 다른 책 《최악의 최애》다산어린이, 2024는 6학년 1반 아이들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준다. 주변의 시선이나 편견에 고민하고 힘들어하다가도 자기 안의 목소리에 집중하며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어린이들을 만나게 된다.
《최악의 최애》 속 진아는 아이돌그룹 팬 사인회에서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그것은 장애를 가진 진아를 이용해 실추되었던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한 것으로, 진아는 고민 끝에 나 자신은 없고 아이돌을 빛내기 위한 사람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에 싫다고 거절한다. 그리고 대한이의 부탁으로 졸업식에 온 아이돌과의 만남에서도 안아주겠다는 말에, 진아는 ‘휠체어에 손잡이를 두 손바닥으로 꾹 누르며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나 자신이 안아주겠다며 두 팔을 내민다.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서 안아주는 것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할 것임을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한다.
〈눈인사를 건넬 시간〉에 등장하는 수민이는 같은 반 민덕형으로부터 좋아한다는 의미로 문자와 선물공세를 받는다. 자기 때문에 누군가 마음이 상하는 게 걱정이었던 수민은 옆집 할머니 도움으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고, 민덕형에게 문자도 전화도 선물 보내는 것도 싫다며 이야기한다.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거라는 덕형이의 말에 ‘난 아니야’라며 자신의 생각을 꿋꿋이 밀고나간다. 상대방의 호의는 받아야 하는 거라는 통념과 나로 인해 누군가 마음을 상하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 속에서도 내가 무얼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행동하는 수민이다.
〈최악의 최애〉 주인공들은 장애를 갖고 있어서, 키가 큰 여자아이라서, 키가 작은 남자아이라서, 나이가 많거나 적어서, 매번 2등을 하는 것에 구애받지 않고, 그들 각자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타인의 시선보다는 내 안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것, 나를 들여다보고 나를 알아가는 것은 중요하다. 이 작품에서 이성애 커플들의 사랑만 다루고 있는 것이 좀 아쉽긴 하다.
차별과 폭력에 저항하는 어린이
김다노의 《비밀숙제》책다움, 2022는 《비밀소원》의 연작으로 아빠와 미국으로 이민 간 이랑이 이야기가 중심이다. 이랑이는 친구들과 쇼핑몰에 갔다가 백인 점원으로부터 인종차별적 발언을 듣고, 나름 응대하지만 뭔가 개운치 않음을 느낀다. ‘분노에 가까운 슬픈 감정’에 자신이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더듬어본다. 친구들과 함께 사과를 할 것을 요구하러 다시 찾아가나, 사과는커녕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 그때도 가만히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며, 자신이 원하는 게 자신이 당한 것처럼 점원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이랑이들을 함부로 대한 점원이 자신의 행동에 불편함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고는 피켓팅을 한다. 원하는 바대로 성과를 거두진 못했지만, 맞닥뜨린 현실 앞에서 뭔가 석연치 않을 때, 거기서 멈춰 이런 감정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무얼 원하는지,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시도하고, 다시 재구성하는 이랑이다.
열악한 노동환경을 폭로하고 연대하는 어린이
조우리의 《사과의 사생활》위즈덤하우스, 2023 중 〈에바 어게인〉은 특성화고등학교의 현장실습에 관한 이야기이다. VR센터에 인턴으로 실습을 나온 세라는, 8년 전 현장실습을 나간 공장에서 목숨을 잃은 우현의 엄마 진영을 만나게 된다. 우현의 사고는 학교와 회사의 책임 떠넘기기, 매뉴얼과 관리자의 부재, 부실수사, 사건의 축소와 은폐 문제 등 총체적 문제 덩어리였지만 결국 개인의 부주의로 결론이 난다. 진영은 우현도 만나고, 사고 당일 아침도 못 먹고 간 우현에게 밥 한 끼라도 챙겨 먹이고 싶은 마음에 가상현실의 힘을 빌리고자 한 것이다. 우현이 현관문을 나가면서 프로그램이 마무리가 되어야 하는데, 문을 나선 이후부터 사고 모습이 CCTV 화면처럼 계속 이어진다. 이 사건을 무마하려고 파일은 삭제되지만, 그 파일을 다운받아온 세라는 편집해 ‘사고가 아닌 살인, VR에 다녀온 영혼’이라는 영상을 올린다.
IT관련학과를 나오고, 인턴으로 일한 지 세 달이 되어가는 데도 관련 일에 대해서는 물어보지도 않는 현실, 인턴을 정직원으로 채용한 사례도 없는 회사, 현장실습 나온 학생들을 값싼 노동력으로만 생각하고, 사고가 생겨도 별다른 대안도 마련하지 않는 사회를 생각하며, 세라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사회에 통쾌하게 한 방 먹인다.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고민을 하는지, 현장실습장에서는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더 많이 더 다양하고 폭넓게 그리는 어린이책을 만나고 싶다.
성적인 존재로서 나를 찾아가는 어린이
조우리의 《사과의 사생활》 중 표제작 〈사과의 사생활〉은 사과의 성적인 존재로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인터넷에 ‘여성, 자위’를 검색해 보기도 하고, 내 몸을 만지는 등 자위도 시도해 보지만, ‘기분이 좋아지기보다는 어색한 기분’이 드는데, 그 이유가 ‘죄책감’과 ‘잘못하다간 처녀막이 파열된다는 말’ 등 ‘사회적 금기가 지배’하고 있음을 안다. 성교육 시간에도 ‘남자애들한테는 건강하게 자위하는 방법과 적절한 횟수, 운동으로 푸는 방법 등’을 알려주지만, 여자애들은 왜 ‘성욕도 없는 것처럼 취급당’해야 하는지 짜증내며, 궁금하고 해보고 싶어, 자위 도구를 사서 자신의 몸을 탐구한다.
그 시기 같은 반 영후와 연애 중, 진도를 더 나갈려는 영후에게 자신이 원하는 건 키스까지라는 걸 사과는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그날 사과가 화장실 간 사이 사라진 영후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 이 무슨 예의 없는 이별인가. 개학 후 이유를 묻는 사과에게 영후는 ‘너 맨날 자위한다며. 자위 기구 리뷰도 쓰고. 여자애들이 그러는 건 상상도 못했’다며 ‘개변태’라서 찬다고 이야기한다. 영후는 그날 사과가 화장실 간 사이 사과가 핸드폰에 기록해 놓은 것들을 갭쳐해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올리기까지 한 것이다. 사과는 범죄행위를 하고도 떳떳한 영후를 보며, 바로 그 자리에서 112에 신고한다. 그럼에도 반성하는 기색 없이 ‘무슨 여자애가 부끄러움이 없냐’는 말에 사과는 ‘내가 뭘 부끄러워해야 하는데? 자위? 그래, 내가 했다. 그래서? 그게 뭐 더러운 거야?’하고 응수하고는 ‘뭐가 됐든 이 싸움에서 절대 이기겠다’고 다짐한다.
어린이책에서 여자어린이/청소년이 성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것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남성의 자위는 당연시 여기면서도 여성은 성욕이 없는 듯 자위는 뭔가 부끄러운 것이라는 통념이 있다. 인간에게는 ‘식욕, 수면욕, 성욕’이 기본 욕구임에도 불구하고, 성욕은 남성에게만 주어진 특권처럼 여겨진다. 〈사과의 사생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자위는 사생활이지, 누군가가 간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과가 사회가 금기시 해온 대로 부끄러워하거나 주눅들지 않고, 당당히 맞서고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어린이책에서도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
성적 지향을 드러내는 어린이
조우리의 《오, 사랑》사계절, 2020은 동성애커플인 사랑이와 솔이가 주인공이다.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만나던 그들은, 사랑이가 페북에 올린 사진을 누군가가 각종 커뮤니티에 ‘여고생 레즈비언 커플’로 올림으로, 신상도 털리고 엄청난 댓글 공격을 받는다. 그리고 학교에서의 왕따도 심해져, 둘은 함께 떠나기로 한다. 그러던 중 사랑이 친아빠 정체를 알게 되고, 친아빠를 찾으러 영국으로 향한다. 영국에서 친아빠 가족을 만나 둘은 커플이고 결혼할 거라는 말을 하지만 아무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10대 커플이 임신과 출산을 해도, 40대 아저씨가 일본 애니의 캐릭터 티셔츠를 입고 고양이귀 헤드폰을 하고 열손가락에 매니큐어를 발라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는 나라, 그게 너무 당연한 세상을 경험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동성애, 학생의 임신과 출산, 내 고유한 취향 등이 어떤 사회의 편견이고 통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사랑이와 솔이는 정체성으로 위축되지 않게 된다.
지금 한국에 있는 사랑이와 영국에 있는 솔이는 순간의 기쁨, 슬픔, 아픔 등을 겪어내고 고민하고 시도하고 풀어내면서 지금의 내가 됐다고 이야기한다. 어린이든 어른이든 순간순간 겪어낸 모든 일은 지금의 내가 되게 하는 것이다. 지금의 삶이 중요한 것은 어린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이고, 그건 남자를 사랑하든 여자를 사랑하든 마찬가지다.
8명의 작가가 엮은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지》돌베개, 2021는 퀴어로맨스를 표방한 책이다. 박서련의 〈고백루프〉에서는 서로가 끌리면서도 상대의 고백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현지가, 지현의 고백 예고날로 되돌아가는 걸 무수히 반복하고서야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고 지현의 고백을 받아들인다. 최진영의 〈나의 미래〉에서는 특별한 비밀 친구로 수없이 편지를 주고받고, 그런 존재가 다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상대를 잃게 될까봐 고백하지 못한다.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고백하지 못하다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서로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특정 누군가의 마음은 통제되는 사회에서는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숨기게 되고, 자신의 마음을 속여야 한다.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든,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든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고, 상대에게 내 마음을 보이고, 내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건 지극한 사랑의 감정이다.
조우리 작가의 《어쨌거나 스무 살은 되고 싶지 않아》에서는 임신과 출산 이후 자신의 아이를 동생으로 숨기며 살아야 하는 것에 갈등하고 고민하며 언젠가는 당당히 드러내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하연이, 아버지가 실종된 뒤 아버지를 찾다 스스로 그 사건을 마무리하는 현준이, 부모의 방치와 이혼에 방황하다 부모의 삶의 방식을 인정하며 자신의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보라가 나온다.
더 다양한 동료어린이시민을 어린이책에서 만나고 싶다
어린이책의 독자는 1차적으로 어린이이다. 모든 어린이는 어린이책에서 모든 어린이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나와 비슷한 등장인물을 비롯한 다양한 타자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책 속 이야기에 누군가 소외되고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삶도 책 속 이야기로 만나질 수 있어야 한다. 어린이책은 어린이가 맞닥뜨린 현실을 담아야 하고, 어린이를 대변해야 한다.
어린이책 작가들은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보여주고 가르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어린이들의 세계 즉 그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그 상황에서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그 상황들을 경험하고 견디고 희망하며 삶을 구성하고 있는지, 그들의 마음에 더 예민하게 반응해서 작품에 담아야 한다. 기존 틀에 갇힌 규범적인 어린이가 아니라 편견과 정상규범에 맞서 자기를 드러내며 감당하고 살아가는 어린이를 그려내야 하고, 어린이가 맞닥뜨린 현실을 확대해서 보여주어야 한다. 어린이를 가르쳐야 하고 보호라는 이름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큰 사회에서 어린이는 모욕감과 좌절을 느낄 때가 많다. 어린이가 겪는 고통, 슬픔 등을 개별적인 어린이들이 자신의 상황과 맥락, 성향 등에 따라 밀도 있게 그려내 위로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어린이책은 현실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현실적으로 그려 보여주고, 누구나 그 가능성을 꿈꿀 수 있게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어른들도 어린이책을 많이 읽기를 희망한다. 어린이책을 통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료어린이시민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동료어린이시민이 어떤 세상을 원하는지, 동료어린이시민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린이해방선언에서 어린이를 공경한다는 것은 어린이를 사랑한다고 말하기 전에 어린이를 억압하는 구조를 먼저 바꿔야 하는 것이라고 한 것처럼, 그들의 삶을 알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보이지 않는 어린이의 목소리가 더 힘을 얻고 어린이책의 세계에 더 다양하게 등장하기를, 그래서 어린이책에서 더 다양한 동료어린이시민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2024년 9월 2일 포항에서 열린 ‘2024 어린이 책의 해 콘퍼런스’의 발제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