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말
주최 측에서 저에게 부탁하신 오늘 주제는 ‘어린이를 위한 독서환경, 이대로 좋은가?’입니다. 현 상황이 좋다면 이런 주제를 부탁하셨겠습니까? 이 귀한 자리에 각자 소중한 시간을 내서 모이신 분들도 이대로 좋다고 생각했다면 여기에 오셨겠습니까? 저 역시 어린이를 위한 독서환경은 물론 대한민국 독서환경이 이대로 가면 정말 큰일 나겠다 싶은 생각 때문에 달려왔습니다. 사실 어른들을 위한 독서환경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오늘은 어린이를 위한 독서환경에 대한 논의를 하는 자리니 ‘어린이 독서환경 이대로 가면 큰일 나겠구나’라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독서 운동을 시작한 첫 걸음이 언제부터지? 하고 돌아보니 꽤 되었습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시작은 1976년 강원도 춘천 강원대학교 정문 앞에 ‘큰걸음서점’이라는 헌책방을 맡아서 운영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서점은 강원지역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던 거멀못나무 기둥이나 판자가 양쪽으로 갈라지려고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해 박는 쇠못, 전신주를 올라갈 때 손잡이와 발을 딛을 수 있게 꽂는 쇠못이라는 단체에서 돈을 모아서 만든 헌책방인데, 서울에서 출간하는 새 책이나 판매금지 도서를 배포 전에 사다가 회원들에게 배포하기 위해 만든 것이지요. 당시에는 새 책방을 내려면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쉽지가 않아서 고물상 허가를 받아서 헌책방을 하면서 새 책도 다루었던 것입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독서운동은 1978년 서울양서협동조합에 가입해서 양서 읽기 운동을 하면서입니다. 양협에서 1979년부터 어린이를 위한 양서좋은 책 읽기 운동을 담당하는 이사를 맡았습니다. 양협 회원 중에서 독서교육에 관심이 있는 유초중등 교사들을 모아 독서교육 연구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이 소모임이 바탕이 되어 1980년 서울양서협동조합 산하 어린이도서연구회를 창립하였습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는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44년 동안 어린이를 위한 좋은 독서환경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일을 하고 있고 저는 현재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양협 운동은 시련을 많이 겪었습니다. 1979년 부산양서협동조합이 부마항쟁 주도단체라고 많은 회원이 구속되면서 강제해산을 당하고, 1980년 광주양서협동조합이 광주민주항쟁 중에 조합 사무실이 쑥대밭이 되면서 조합원이 사망하고 다수가 구속되면서 해체되었습니다. 서울양서협동조합도 정보기관의 감시와 방해공작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1983년 총회에서 어린이도서연구회에 인적 물적 자산을 물려주고 해산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제가 50여 년 동안 독서 운동 경력을 이야기하는 까닭은 본론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어린이도서연구회와 어린이문화연대 활동을 50여 년 동안 하면서 경험한 독서환경 문제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활동을 바탕으로 독서환경이 급변하는 21세기 오늘, 우리 시대 독서환경, 특히 어린이를 위한 독서환경이 처한 위기를 짚어보고, 내일로 가는 개선방향을 제안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를 위한 독서환경은
50년 사이에 어떻게 변화했는가?
우리 어린이 독서환경을 1970년대부터 되짚어 보면 엄청난 변화, 그야말로 상전벽해입니다. 1980년대 전후에는 어린이들이 가정과 학교에서 책을 만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어린이 대상 책 출판과 유통이 전집과 방문판매 시장이었고, 단행본과 서점을 통한 판매는 거의 없었습니다. 국내 창작물은 동화책이건 지식정보책이건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학교도서관은 책을 쌓아놓은 창고 수준이었고, 그나마 없는 학교가 태반이었습니다. 공공도서관도 몇 곳 빼고는 아예 어린이 책은 소장하지도 않았고, 국립중앙도서관조차 1990년대 초까지도 18세 미만 어린이는 도서관 출입 자체가 금지였습니다. 반면에 국립어린이도서관, 시립이나 구립도서관에 어린이실에 청년이나 어른은 출입 금지였습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문제 하나 해결하는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습니다. 참 옛날이야기입니다.
작가 세계에서는 동화나 동시는 소설이나 시보다 유치하고 열등한 문학이라는 이상한 안식이 지배하고 있었고, 어린이 책을 쓰는 작가들 가운데서도 스스로 이런 도그마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작가 의식이 어린이 문학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서는 『시정신과 유희정신』이오덕, 창작과비평사, 1977에서 자세히 짚어 놓았습니다. 저는 『시정신과 유희정신』을 읽고 충격을 받았고, 이오덕 선생님 권유에 따라 서울양서협동조합에서 어린이독서연구 소모임을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 어린이도서연구회 독서운동은 ‘어린이들에게 독서를 강요하기 전에 먼저 어른이 어린이 책을 읽어보자’였습니다. 어른들이 독서하는 먼저 모습을 보여야 하고, 부모와 교사와 어린이가 같은 책을 읽을 때 독서를 통한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몸을 살리는 밥은 같이 먹듯이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살리는 책문학예술도 같이 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동화 읽는 어른’ 운동이지요. 그 목적과 방향은 『어린이 책을 읽는 어른』이주영, 웅진, 1994에서 대강 짚어 놓았습니다. 이 책만 읽고 스스로 동화 읽는 모임이나 또 다른 어린이 독서 운동 단체를 만들거나, 집과 마을에 책 사랑방이나 어린이도서관을 만들거나, 어린이책전문서점을 만든 사례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어린이 책을 읽은 어른들이 스스로 단행본과 국내 창작도서 읽기, 서점에서 단행본을 정가로 사서 읽기, 자녀와 함께 공공도서관 이용하기, 가정도서실이나 마을어린이도서관 만들기, 어린이책전문서점 만들기, 학급문고 설치하기, 학교도서관 살리기, 빛그림으로 그림책 보기, 동화를 연극으로 공연하기, 책 읽어주기를 비롯한 수십 가지가 넘는 다양한 독서활동을 만들어 냈습니다. 2000년대 초에 어린이도서연구회를 비롯해 다양한 어린이를 위한 독서 운동 단체 회원으로 참여해서 활동하는 어른들이 어느 정도 될까 대강 추산해 본 적이 있습니다. 최소 5만 명은 넘겠다고 추산했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될까요? 여러 가지 문제로 주요 단체 회원들은 상당히 줄었습니다. 다만 주요 단체에 소속하지 않거나 어른을 위한 독서문화 운동과 병행하는 작은 모임들이 많아서 추산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당시보다 더 늘어나지 않은 것은 확실하고 구심력이 상당히 약화되었다는 건 확실합니다.
1980년대 초에서 2024년 현재를 보면 어린이 책 작가의 의식과 위상, 어린이를 위한 책 출판 현황, 학교도서관, 공공도서관, 마을 곳곳에 있는 작은 도서관이 아직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엄청난 발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다른 위험에 빠져 있고,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였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이 『시정신과 유희정신』에서 제기했던 ‘열등의식의 극복’ 문제는 겉으로는 상당히 극복했으나 어린이 문학이 ‘어린이와 겨레와 인류가 참되게 살아가는 길을 보여주는 문학’이 되어야 한다는 기본 정신은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실은 퇴보하고 있는 조짐도 보입니다. 제가 『어린이 책을 읽는 어른』을 통해 제안했던 어린이를 위한 독서문화 역시 겉모습은 상전벽해처럼 변화했고, 가장 기본이 되는 ‘어린이 책을 읽는 어른이 되자’에 대한 공감도 상당히 확장되었지만 아직 여러 가지로 내실이 부실하고 실천하는 어른들이 부족합니다.
곧 50년 동안에 어린이를 위한 독서문화는 그 양과 겉모습은 상전벽해를 이루었는데 내실은 부족하고 기본 동력이 되는 어린이 책을 읽는 어른과 어린이문화운동가들이 사회 곳곳에 더 많아져야 합니다.
어린이를 위한 독서문화의
문제와 개선방향
─ 가정 독서문화 문제와 개선방향
50년 전에는 집에 교과서 빼고는 어린이들이 볼 책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습니다. 가난했기 때문이고, 전집 가격이 만만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단행본은 거의 출판하지 않았고, 서점을 통한 유통 자체가 학습지 외 동화책은 없었기 때문에 살 수도 없었습니다. 1990년대를 넘어서면서 어린이 책 출판 전성시대라고 할 정도로 단행본 출판과 유통이 활성화되었으니까요.
그런데 2010년대가 넘어서면서 다시 집안 거실이나 어린이 방에 책꽂이에서 어린이 책을 보기 어려운 집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책을 사는 문화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책은 사 보는 게 아니라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문화로 바뀌고 있으니까요. 도서관이 많아지고 활용도가 높아지는 건 독서문화 발전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집과 어린이 방 책꽂이에 책이 없어지는 것은 독서문화의 또 다른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이 없는 집은 독서문화가 없는 집이고, 책을 사지 않는 사람은 독서문화를 진심으로 누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전자책이나 영상매체와 SNS 확장과는 별도로 독서문화에 대한 인식의 약화나 퇴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 전후에는 단순히 경제 사정이 나빠서 집에서 책을 못 샀다거나 1990년 에후에는 경제 사정이 좋아서 어린이 책 시장이 폭발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도서관에서 빌려보기 때문에 안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조건은 필요조건은 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봅니다. 독서문화에 대한 인식과 습관이 견고하다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았다 하더라도 정말 그 책이 좋으면 사서 곁에 두고 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도서관이 없거나 잘 활용하지 않는 학교는 영혼이 없는 학교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저는 이제 책이 없는 집도 영혼이 없는 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집에 책이 있는 문화, 집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어린이 책을 읽는 문화, 서로 읽어주고 들어주는 문화, 그런 가정독서문화에 더 관심을 갖고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 학교 독서문화 문제와 개선방향
1980년대 초등학교에는 도서관이 대부분 없었고, 어쩌다 있어도 1960년대나 그 이전에 만들었던 도서관 책을 쌓아두는 창고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학급문고 만들기’ 운동에 앞장서고, 학급교육과정으로 학급문고 운영이 중요하다고 권유하면서 다닌 까닭입니다. 그 실천사례가 『책으로 행복한 교실 이야기』이주영, 아침독서, 2014입니다.
여러 시민단체에서 학교도서관 살리기 운동을 하면서 2000년 전후부터 학교도서관이 급속히 늘어나고 좋아졌습니다. 1999년부터인가? 학교예산 중 5%를 도서구입 목적비로 책정하면서 장서보유량도 빠른 속도로 늘었습니다. 좋아졌다는 뜻은 학교도서관이 학교마다 살아나기도 했지만 도서실 구조와 운영 또한 상당히 발전했다는 뜻입니다. 사서와 사서교사 제도가 생겼고, 학교 독서문화 확산과 교육과정 참여에 기여했습니다. ‘한 학기 한 책 읽기’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사서교사는 2000년대 초기에 배치하다 중지되었습니다. 이후로는 더 이상 충원하지 않고 자연소멸만 기다립니다. 도서구입비도 목적비에서 해제되면서 새 책 구입이 줄었습니다. 책을 더 구입해도 도서관에 넣을 장소가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학교도서관이 늘어나면서 학급문고를 운영하는 사례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저는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이 많아서 이용하기 좋아도 기본적으로 내 책, 우리 집 책, 학급문고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학기 한 책 읽기’가 지난번 교육과정 개정 때 없어질 뻔했다가 이에 대한 반대 여론이 많아서 다시 살아났다고 합니다. 교대 국어과 젊은 교수가 ‘한 학기 한 책 읽기’로 교사들이 너무 힘들어 하거나 책 선정이나 교육을 목적에 맞게 제대로 하지 못해서 문제가 많다면서 교육과정에서 빼야 한다고 말하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학교 독서교육 운동 역사와 교육방법론에서 ‘온 책 읽기’가 차지하는 의미와 가치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부에서는 2025년부터는 교과서도 전자책이나 영상자료로 대체하겠다고 합니다. 그만큼 학교 현장에서 ‘온 책 읽기’는 더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알고 실천해야 합니다. 목적에 맞게 제대로 못 해서 문제가 된다면 그건 교사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대, 사대, 교육부에서 교사 교육을 제대로 해야 하는 것이지 교육과정에서 빼자고 하는 건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무책임한 짓입니다.
저는 전자책이나 영상매체로 종이 교과서를 대체한다면 그 단점을 보완하고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한 학기 한 책 읽기’를 넘어서 각 교과교육과정으로 한 학기 한 책이 아니라 한 학기에도 여러 가지 ‘온 책 읽기’로 확장시켜야 합니다.
교사들이 한 학기에 겨우 책 한 권 같이 읽는 걸 어려워하고, 책을 제대로 선정하지 못하는 가장 큰 까닭은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하지 못하고, 교대와 사대 과정에서 임용 교시 준비하느라 교사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주요 덕목인 폭넓은 독서경험은 물론 초중등교육과정에서 다루어야 할 어린이청소년 책을 깊이 있게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사가 되어서도 자신이 평생 함께 살아가야 하는 어린이청소년이 읽는 책을 읽기 위한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교사가 얼마나 될까요? 어린이도서연구회에 참여하는 교사 회원 비율과 교사들로 운영되고 있는 자잘한 모임 회원들을 다 더해도 5%가 안 될 겁니다. 교육청 지원으로 운영하는 교사 독서모임에서 선정하는 책을 보면 대부분 교육학이나 방법론에 관한 책입니다. 일반 교양도서나 문학류도 있는데, 심지어는 처세이나 경제 수익 관련 도서도 있습니다. 이런 책을 교사가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게 아니라 교사 독서모임이라면 어린이청소년 대상 도서도 병행해야 마땅하고, 일반 교양도서나 경제 수익 관련 도서는 개인 돈으로 사 봐야 됩니다. 몇 푼이나 된다고 그러냐고 할지 모르지만 평생 교사로 살아온 제 소견으로는 최소한 교사가 지켜야 할 교양이고 품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초중고 교사들이 어린이청소년 대상 책을 읽는 독서습관을 길러야 하고, 혼자는 힘드니 그런 독서모임에 참여해서 꾸준히 읽어야 하고, 교육부나 교육청은 이런 독서모임에 더 신경을 써서 지원해야 합니다. 학생 수가 준다고 교사 수를 줄이지 말고 오히려 교원 총원을 더 늘려서라도 학교 도서관마다 사서교사를 배치해야 합니다. 사서교사들이 도서관 책을 잘 분석하고 분류해서 빼내도 되는 낡은 책은 빼면서 새 책으로 순환시켜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예산에서 도서구입비를 다시 목적비로 책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현재 국어과 ‘한 학기 한 책 읽기’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고, 각 과목으로 확장하는 바탕을 만들 수 있습니다.
‘낡은 책’을 빼내야 한다는 걸 구간은 무조건 빼고 신간으로 바꿔야 한다고 오해하는 사서나 교장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책은 구간이라도 중요한 책은 낡은 책을 폐기하고 새 책으로 다시 사서 꼭 비치해야 하는 게 있으니까요. 국어교과서 편찬자들이 어린이 삶에 맞는 작품을 실어야 한다면서 무조건 예전 작예를 들면 방정환이 1924년에 쓴 「토끼의 재판」이나 권정생이 1990년대 전후에 쓴 작품들을 빼면서 최근 동화로 바꾸는 것도 잘못입니다. 이는 어린이를 역사적 관점에서 보지 않고 현재적 관점으로만 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 어린이 책 출판과 유통 문제에 대한 개선방향
50년 전과 견주어 보면 우리나라 어린이 책 출판문화는 그 양과 질에서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편집 능력, 인쇄 기술, 유통 시장이 이를 뒷받침했습니다. 특히 창작동화와 그림책 출판 수준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런데 2010년대 전후를 기점으로 어린이 책 출판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고, 이대로 가면 몇 년 안으로 더 많은 출판사들이 문을 닫아야 할 게 불을 보듯 뻔합니다. 아무리 좋은 어린이 책을 읽고 싶어도 1970년대처럼 좋은 어린이 책 출판이 부족해진다면 독서문화가 황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렇게까지 퇴보하지는 않겠지만 현재보다 한걸음이라도 발전해야지 요즘처럼 한걸음이라도 퇴보하는 걸 방치하거나 심지어 조장하는 국가정책과 예산 배정을 보는 건 너무 슬픈 일입니다.
이 문제는 어린이 책을 사는 독자들이 늘어나야 해결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 출판을 지원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제가 가정에서 책을 사야 한다는 건 어린이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사서 가까이에 두고 보는 친근성 강화를 위한 제언이지 출판시장 활성화를 위한 목적이 아니지만 그래도 어린이 책 작가와 출판사를 격려하는 의미에서라도 책을 사는 문화를 지켜나갔으면 합니다. 어린이가 1년에 100만이 태어나던 시대에서 1년에 30만이 태어나고, 그나마 점점 줄어드는 시대에 출판을 자유 시장에만 맡긴다는 건 문화국가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출판 장려와 지원을 위한 국가정책을 되살려야 하고 더 촘촘하고 단단하게 확장시켜야 합니다.
또 학교도서관에서 구간을 통으로 폐품 처리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는데, 구간을 무조건 폐기하지 말고 헌책을 모아야 합니다. 현재 어린이 대상 헌책을 모아 놓은 곳이 없습니다. 100년 동안 출판한 어린이 책에 대한 보관이 체계적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현재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어린이 책을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1900년대 전후부터 1970년까지만 조사해서 장서목록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00년 동안 출판한 어린이 책은 물론 1970년 이후 50년 동안 출판된 수많은 어린이 책들도 제대로 조사 연구를 거친 정리와 보관 절차 없이 무작위로 파쇄되고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국립으로 책 박물관이나 헌책저장소를 만들어 역사적으로 필요한 어린이 책은 연구용으로 확보하고, 나머지 헌책들은 헌책 마을을 만들어서 재판매나 교환이 가능하도록 해야 합니다. 출판과 책예술 문화를 발전시키고 도서관 장서를 원활하게 순환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유통시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정가제를 흔드는 여론과 인터넷 서점 확대로 일반 서점이 대량 소멸하면서 어린이와 부모들이 어린이 책 실물을 직접 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문제입니다. 1980년대 전후 어린이 책 유통구조는 전집 방문판매 중심, 서점 설립과 유통에 대한 통제, 작가들의 잘못된 인식으로 어린이를 위한 문학의 퇴보 같은 여러 요인 때문에 단행본 유통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독서운동가들은 손가락 마디가 새파랗게 멍이 들면서도 몇백 권씩 싸들고 행사장을 찾아다니면서 어린이 책 단행본 전시판매나 우편판매를 했습니다. 1987년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딱 그만큼 어린이책전문서점이 늘어났고, 교보문고를 비롯한 대형 서점에서도 어린이 책 서가가 좋은 자리를 차지했고, 일반 서점에서도 학습지가 아닌 어린이 동화책을 유통하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인터넷 서점이 확장되면서 일반 서점이 타격을 받았습니다. 인터넷 서점은 사고팔기가 편리하고 보관이나 운영비를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은 큽니다. 반면에 직접 실물을 살펴보면서 살 수는 없기 때문에 독자가 미리 알고 있는 정보에 의존해서 사거나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서 구매해야 합니다. 곧 유명작가나 입소문을 탄 책한테는 유리하지만 신진 작가 진입이나 입소문을 타기 어려운 여건에 있는 책은 솟아날 구멍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문제는 결국 어린이 책 분야에서도 빈익빈 부익부와 양극화 현상을 가속시킬 것이고, 어린이 책의 다양성과 질적 수준을 퇴보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독서를 점점 더 편식을 하게 될 것이고, 이런 편식은 정서적 지적 편협성을 조장할 것입니다. 건전하고 폭넓은 감성과 이성을 바탕으로 성찰하는 삶을 살 수 있는 품성을 두루 갖춘 ‘한 사람’의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커다란 장애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미 자기가 아는 지식과 상식만이 절대 지식이고 상식이라는 편협성에 기초하는 국민 의식 현상이 늘어나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2000년 초 10,000여 개에 달하던 일반 서점이 2010년 무렵에는 2,000개로 소멸되었다는 문제가 사회 이슈로 된 적이 있습니다. 그 여론에 자극받은 독서운동가들 중심으로 동네책방 만들기가 다시 일어났고, 도시와 농어촌에 새로운 형태의 작은 책방이 늘어났습니다. 해방 후 지역 서점 만들기, 1980년 대 전후 사회과학 서점 만들기, 1990년대 어린이전문서점 만들기를 이어가는 제4의 책방 만들기 물결입니다. 이번에는 어린이 책을 포함한 지역 주민을 특성을 고려하는 책방, 책방 주인이 좋아하는 특정 분야 책만 다루는 책방, 숙소와 도서관과 책방을 결합하거나 나아가 건강과 융합하는 책방…. 다양하고 창의적인 동네책방이 생겼다 없어지고 없어졌다가 생겨납니다. 제4의 책방 만들기 물결은 1,2,3차와는 좀 다릅니다. 더 포괄적이고 더 책과 주민을 중심에 놓고 지역 문화예술 진흥에 앞장서려는 복합 문화 공간 성격을 가진 물결로 보입니다.
이에 대한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는 정책이 없다면 결국 동네책방 운동에 참여하는 개인의 노력과 희생으로 끝날 것입니다. 부산교대 앞에 「책과 아이들」이라는 어린이 책방이 있습니다. 도서관, 시청각, 전시실, 공연까지 할 수 있는 어린이 복합 문화 공간입니다. 강정아 대표 부부가 30년 동안 정말 모범적으로 운영했는데, 작년 겨울에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몇 가지 요인으로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몰려 있습니다.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렇듯 소중한 독서문화 운동을 개인의 열정과 희생이 아니라 국가에서 적극 지원하는 정책사업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동네책방이나 책방이나 도서관을 중심으로 만든 어린이를 복합 문화 공간을 개인 영리사업이 아니라 공익을 위한 공공사업으로 전환시켜서 그에 걸맞게 지원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동네책방이 부담해야 하는 임대료와 기본 활동비를 지원해야 합니다. 「책과 아이들」 정도면 문체부가 김민기가 운영하던 「학전」을 김민기가 사후 소멸하지 많도록 지원해서 민간단체가 운영할 수 있도록 했듯이 문체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이런 어린이 독서 복합 문화 공간을 민간단체에 맡아서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동네책방이 가장 어려운 점이 건물 유지비와 인건비, 출판사나 도매점에서 책을 받는 일, 공공기관에 납품하거나 지원사업에 참여할 때 서류작성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책방을 개인사업이 아니라 도서관처럼 공익사업으로 인식을 전환한다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책방 임대료를 지원하거나 건물을 구입하거나 개조해서 책방으로 무상임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별로 도서물류센터 설립을 지원하면 동네책방들이 모든 책을 쉽고 빠르게 공급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터넷서점과 지역서점에서 똑같이 정가제를 지킬 수 있도록 하면 어린이와 부모들이 손잡고 지역 서점에 와서 책을 살펴보고 살 수 있을 때 독서문화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책 판매사업에 대한 인식을 개인사업이 아니라 공익사업으로 바꾸면 현재 공공도서관에서도 책 판매대를 설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도서관 로비나 입구 공간에 새 책을 전시하고 판매까지 가능한 시설을 만들고, 도서관에 오는 독자들이 책을 살펴보고 들어가서 빌려다 볼 수도 있고, 보고 나서 너무 좋으면 사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린이를 위한 독서문화가 발전하려면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어린이전문서점이나 2010년 이후 새롭게 태어나는 동네책방과 같은 유통사업도 공익사업으로 전환해서 국가 정책사업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봅니다. ‘작은도서관 진흥법’처럼 어린이전문 책방·동네책방 진흥법을 제정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동네책방 진흥법으로 하고 그 안에 어린이전문서점도 포함한다는 조항을 넣어도 되겠지요.
─ 어린이 책 작가에 대한 문제와 개선방향
작가들은 작품 한 권을 쓰기 위해 많은 시간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 그 작품이 책으로 출판될 수 있는 기회도 어려운데, 출판을 해도 독자한테 선을 보일 수 있는 기회도 지금과 같은 유통과 도서관 운영 방식에서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독자들은 학교나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읽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새 책을 살 수 있는 종수와 부수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또 도서관으로 입고된다고 해도 학교와 공사립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는 책에 대한 저작료나 이용료를 작가는 한 푼도 받지 못합니다. 음악 작곡가들은 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러도 저작료를 받습니다. 작품이 교과서에 실린 작가는 실린 값을 받고, 후광 혜택까지 봅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사는 한 권에 대한 인세만 출판사로터 받는 것이지 도서관에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빌려다 읽어도 그에 대한 저작료를 작가는 받지 못합니다. 명백한 저작권 침해입니다.
국가에서는 국민 독서 문화 진흥을 위해서 도서관 책을 무료로 읽게 한다고 합니다. 국민 독서 문화 진흥을 위해서 국가정책으로 시행하는 것이라면 국가에서 부담해야지 작가 개인이 감수하는 구조로 가면 안 됩니다. 몇 년 전에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를 중심으로 몇몇 어린이 문학 단체들이 공공대출권 보상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문체부 저작권 담당자들과 협의 자리를 두 번 가졌습니다. 당시 공공대출 1회에 권당 10원이라도 국가 예산으로 작가한테 저작권료 개념으로 공공대출 이용료는 지급해 달라고 했습니다. 개인한테 지급하기 어렵다면 작가들이 소속한 단체에라도 이에 준하는 예산을 배당해서 작가들을 위해 쓸 수 있도록 해야지요. 이런 공공대출권 저작권료는 이미 60개 정도에서 많건 적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저작권 담당 공무원들도 공감은 한다고 했습니다. 추진 중에 코로나 때문에 집회가 금지되면서 추진 동력이 흐지부지해졌고, 문체부에서도 묻혀버렸습니다. 국민 독서 문화 진흥에 대한 작가들의 기여도를 고려해서 공공대출권이나 국민 이용료 개념으로 어린이 책 작가 저작권과 사회적 위상을 지켜주는 일은 좋은 어린이 책 원고가 지속적으로 생산될 수 있는 바탕이 됩니다.
아울러 어린이 책 작가들도 우리나라 어린이 문학 100년 역사를 돌아보면서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도록 성찰하면서 전진해야 합니다. 100년 전 1920년대 방정환을 선두로 어린이 문학이 시작될 때는 성인문학과 차별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시대정신에 더 앞선 선각자로 존중받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1960년대 전후로 반공문학이나 상업적 시류에 휩쓸리면서 문학예술로서 갖춰야 할 질적 수준이 곤두박질치면서 문학계에서 유치한 문학으로 무시받고 홀대받았습니다. 우리 어린이 문학 역사로 보면 1935년부터 1945년 어린이운동이 일제 탄압을 혹독하게 받아서 쓰거나 발표 자체가 어려울 때가 있었고, 1970년대 전후 20년 정도 어린이 문학이 독재정치와 상업화 시류에 휩쓸리면서 열등의식에 빠질 정도로 천대받았던 원인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1980년대 전후 이오덕이 앞장섰던 어린이 문학계에 대한 혹독한 자기반성과 비평정신, 이를 계기로 권정생을 비롯한 새로운 우수한 작가들이 어린이 문학 동네 진출과 분투, 어린이 대상 독서운동가들의 협력에 동력을 받아 1990년대 어린이 문학과 책 작가들이 활발하게 성장하는 길이 열렸고, 2000년대 전성기를 거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는 2000년대 관성과 2010년대 작가와 출판과 도서관을 지원하는 몇 가지 문화정책으로 유지는 하고 있지만 시대를 개척하는 작가 정신이 퇴화되거나 시류에 편승하는 상업주의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어린이 책 작가들이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거나 오히려 퇴행한다면 어린이 문학은 어린이와 사회로부터 다시 버림받거나 소외받으면서 어린이를 위한 독서환경 발전의 근본을 침해하는 독소가 될 것입니다.
─ 어린이를 위한 문화예술 문제와 개선방향
어린이를 위한 문화예술은 놀이, 노래, 무용, 그림, 전시, 문학, 연극, 영화. 건축…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독서문화가 풍성하게 발전하고 삶 속에 뿌리를 내리려면 이러한 각 예술분야로 확장하면서 교류나 융합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린이」 같은 옛 문헌이나 창작동화 속에서 놀이 관련 내용을 찾아서 직접 놀아보기도 하고, 책에 나오는 화전이나 떡이나 빵 같은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등장인물을 인형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이미 1990년 어린이도서연구회 동화읽는어른들이 곳곳에서 창의성을 살려서 많은 책을 놀이와 결합시켜 왔습니다. 백창우와 굴렁쇠를 비롯한 어린이와 함께하는 노래 운동가들은 어린이가 쓴 글, 어린이 문학 작가들이 쓴 동시와 동화를 가사로 노래를 만들어 왔습니다. 1990년 전후에 시작한 그림과 글이 만나는 우리나라 그림책은 국내는 물론 세계로 뻗어나갈 정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문화연대와 아시테지국제어린이청소년연극협회 한국본부가 2013년 처음으로 어린이 책 10권을 선정해서 1인극으로 만들어 발표하였고, 이후 국립어린이청소년연극연구소에서 그림책 작가를 모아 1인극 워크샵을 하면서 어린이 책과 연극의 융합예술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2023년부터는 아시테지에서 문체부 지원을 받아 방정환 동화를 비롯한 한국창작동화를 각색해서 연극으로 공연하는 사업을 해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어린이청소년 문학을 각색해서 영화로 만들어서 성공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 같은 경우지요. 책사회에서 주관하는 순천 기적의도서관을 비롯한 기적의도서관은 건축예술과 만나 새로운 도서관 건축 개념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 책과 다른 예술이 만나는 사례는 음악, 미술, 연극, 건축도 계속 더 보급해야 하지만 무용과 영화는 너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각종 영화제가 200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어린이 책이나 독서문화와 관련한 영화제는 한 곳도 없습니다. 비키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에서도 간혹 한 꼭지로 시도했던 정도입니다. 영화진흥원 예산에서도 어린이 삶과 창작동화와 어린이 책을 바탕으로 만드는 영화 제작비를 일정비율로 할당해서 집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어린이 책 영화제 하나 정도는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 해리책마을에서 사비로 소규모 책 영화제를 몇 년째 해온다고 하는데, 이런 책 영화제를 문체부나 문화예술위나 영화진흥원에서 지원해서 어린이 책을 포괄하는 책 영화제로 발전시키는 것도 한 방법일 것입니다.
어린이 문학예술과 어린이 책예술을 바탕으로 이렇게 다양한 예술과 교류하고 융합하는 것은 어린이를 위한 독서문화 발전은 물론 어린이들이 다양한 문화예술을 행복하게 누릴 수 있도록 삶을 풍요롭게 하는 소중한 일입니다. 이에 동의하는 어린이 교육·문화예술단체와 활동가들이 2010년 어린이문화연대를 결성하면서 좋은 어린이 책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예술 활동이 꾸준하게 늘어나면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이 이제는 시민단체 노력을 넘어서 국가에서 더 적극적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지속해서 지원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처럼 일부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정부 주무부처 담당자 감각으로 지원했다 끊어졌다 하면 질적인 발전과 양적인 확대를 통해 생활문화로 자리를 잡기가 어렵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어린이문화예술 분야 예산을 국가 총 예산에서 일정 비율로 고정 지출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2023년 5월 한 달 동안 어린이문학과 책을 바탕으로 다양한 어린이문화예술과 융합해서 어린이와 만나는 행사를 제주에서 휴전선까지 40곳에서 실시했는데, 상당한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어린이 책을 바탕으로 하는 어린이문화예술 사업을 5월 한 달을 정해서 전국 단위로 정기적으로 지속적으로 펼쳐나가도록 한다면 큰 효과를 볼 것입니다.
어린이를 위한 독서문화 관련법
문제와 개선방향
어린이를 위한 독서환경을 포함하는 문화예술 진흥과 관련해서 아동복지법, 문화진흥법, 도서관법에서 몇 가지 우선 개정해야 할 조항들이 있습니다.
─ 아동복지법 개정안
“아동복지법 제6조어린이날 및 어린이 주간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보호의 정신을 높임으로써 이들을 옳고 아름답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나도록 하기 위하여 매년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하며, 5월 1일부터 5월 7일까지를 어린이 주간으로 한다.”입니다. 국가와 사회는 당연히 1년 365일 어린이를 사랑하고 보호해야지 1주일만 어린이 주간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주간은 ‘어린이 주간’이 아니라 ‘어린이날 주간’으로 바꿔야 합니다. 또 아동복지법이라고 사랑과 보호라는 개념만 넣었는데, 모든 복지의 기본정신은 국가와 사회가 ‘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 보장’을 기본으로 한 다음에 그 권리를 지켜주어야 하는 약자를 위한 ‘사랑과 보호’를 해야 하고, 안전을 확보해 주어야 합니다. 1923년 방정환과 어린이 해방 운동가들이 어린이날에 선포한 ‘어린이 해방 선언’에서 분명하게 제시한 정신입니다.
당시 어린이 운동가들은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선포하였고, 1927년까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5월 1일 어린이날 행사를 했습니다. 어린이 해방을 요구하며 선전하는 깃대 행진하면서 어린이 만세를 불렀고, 그 뜻을 널리 알렸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소년회가 주관해서 놀이, 동화, 동요, 구연, 연극, 체육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했고, 소년운동협회에서는 소년회 지도자들을 대상 이런 활동을 위한 강습회를 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날 행사가 급속히 확산하는 걸 두려워 한 일제 총독부가 일본 ‘아동애호의 날’인 5월 5일 행사를 조선에서도 화려하고 크게 하면서 5월 1일 어린이날 행사를 음양으로 탄압하고 방해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어린이날을 5월 1일 못하고, 5월 첫 주 일요일에 소규모로 했습니다. 그나마 일제 탄압이 심해지면서 1937년부터 1945년 해방이 되기까지는 어린이날 행사를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해방하고 처음 맞이하는 1946년 5월 첫 주 일요일이 공교롭게도 5월 5일이어서 그날 어린이날 행사를 되살렸습니다. 이런 역사를 볼 때 5월 1일부터 7일까지 일주일을 어린이날 주간으로 정하고, 문화예술을 꼭 넣어야 원래 취지를 살릴 수 있습니다. 국가 지정 공휴일은 7일 가운데서 해마다 가장 좋은 날을 하루 정하면 됩니다. 개정안을 다음과 같이 만들어 보았습니다.
제6조(어린이날 주간과 공휴일 지정) 어린이들이 문화예술을 마음껏 누리며 아름답고 슬기롭고 씩씩하게 스스로 자랄 수 있도록 가정과 사회의 어린이에 대한 권리 보장, 사랑과 보호, 안전 의식을 살펴서 높이기 위해 5월 1일부터 5월 7일까지를 어린이날 주간으로 한다. 대통령은 해마다 이 가운데 하루를 국가 공휴일로 지정한다.
─ 독서문화진흥법 개정안
독서문화진흥법은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민의 균등한 독서 문화 활동 기회를 보장하여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5조독서 문화 진흥 기본 계획에서 문화체육부장관은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독서 문화 진흥을 위한 기본 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여기 오신 분들은 어린이 독서문화 진흥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은 분들일 것입니다. 여러분 중 5년마다 문체부에서 독서 문화 진흥을 위한 기본 계획 수립을 살펴보셨는지요? 또는 계획서를 쓰면서 그에 대한 자문이나 의견수렴 요청을 문체부나 관계 중앙행정기관으로부터 받아보신 분이 계시는지요? 저는 50년 동안 단 한 번도 그런 요청을 받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상당히 두껍게 나오는데 혹시 살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시기별 특성조차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비슷한 걸 잡다하게 되풀이하고 있을 뿐입니다. 단 한조각 영혼도 담겨 있지 않습니다. 이런 문서를 죽은 문서나 장롱 문서라고하지요. 어린이는 연령이나 상황에 따라 접근 방법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데, 그런 배려가 전혀 없습니다. 진정으로 국민의 균등한 독서 문화 활동 기회를 보장하려면 제5조를 다음과 같이 개정해야 합니다.
제5조(독서 문화 진흥 기본 계획)①문화체육부장관은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독서 문화 진흥을 위한 기본 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하여야 한다. 수립과정에서 0세부터 18세 미만 국민이 소외받지 않도록 해야 하며, 특히 어린이 대표와 어린이 독서 전문가 또는 어린이 독서문화 현장 활동가들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
②기본 계획에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이 포함되어야 한다. <개정 2016. 12. 20., 2022. 1. 18., 2023. 10. 31.>
1. 독서 문화 진흥 정책의 기본 방향과 목표
2. 도서관 등 독서 문화 진흥을 위한 시설의 개선과 독서 자료의 확보
3. 독서소외인의 독서 문화 활동 기회 보장 및 소외지역의 독서 환경 개선에 관한 사항
4. 독서 활동 권장·보호 및 육성과 이에 필요한 재원 조달에 관한 사항
5. 독서 문화 진흥에 필요한 독서 자료의 생산과 유통 진흥에 관한 사항
6. 독서 문화 진흥을 위한 조사·연구
7. 도서관 등 독서 문화 진흥을 위한 시설의 감염병 등에 대한 안전·위생·방역 관리에 관한 사항
8. 그 밖에 독서 문화 진흥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항
이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② 각 호의 사항에도 ‘9. 위 각 호의 계획을 수립할 때는 어린이 관련 내용을 별도 작성해야 하며, 각 활동과 예산 배정 때 어린이 관련 활동과 예산을 30% 이상 확보하도록 명시해야 한다.’ 를 더 넣어야 합니다. 국민을 성장 특성에 따라 ’어린이, 젊은이, 늙은이‘로 나눈다면, 국민이 균등하게 누려야 할 최소 1/3은 어린이 몫입니다. 당연히 어른들이 이를 염두에 두고 계획을 세우고 시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 법으로라도 못을 박아 놓아야 하는 형편이 된 것입니다. 이런 법이 없어도 모든 활동과 예산에서 1/3을 어린이에게 배려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어른들이 운영하는 나라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③기본 계획의 수립·시행과 관련하여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요청이 있을 때에는 관련 기관이나 단체 등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에 협조하여야 한다.’ 도 ‘③기본 계획의 수립·시행과 관련하여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요청이 있을 때에는 관련 기관이나 단체 등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에 협조하여야 한다.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는 그 내용을 즉각 서면으로 문체부 장관에게 보내서 양해를 받아야 한다.’ 로 개정해야 합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협조해야 한다고 하니까 제대로 시행하지 않으면서 자체 어려움이 있다고 발뺌하는 것입니다.
─ 도서관법 개정안
도서관법에서도 자잘하게 손 볼 구석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선 한 가지 개정안을 꼽는다면 제12조입니다.
제12조(국가도서관위원회의 구성) ① 국가도서관위원회는 위원장 1명과 부위원장 1명을 포함한 30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② 위원장은 도서관과 국민의 지식정보 증진에 관한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중에서 대통령이 위촉하고, 부위원장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된다.
③ 위원은 다음 각 호의 사람이 된다.
1.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
2. 도서관 또는 국민의 지식정보 증진에 관한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중 위원장이 위촉하는 사람
④ 위원장은 회의를 소집·주재한다.
⑤ 위원장은 필요한 경우에 부위원장으로 하여금 직무를 대행하게 할 수 있다.
⑥ 위원장 및 제3항제2호에 따른 위원의 임기는 2년으로 하되, 한 차례만 연임할 수 있다.
⑦ 위원이 사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거나 궐위된 때에는 지체 없이 새로운 위원을 위촉하여야 한다. 이 경우 보임된 위원의 임기는 전임위원의 잔여기간으로 한다.
⑧ 그 밖에 국가도서관위원회의 운영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국가도서관위원회는 대통령 자문기관으로 우리나라 도서관에 대한 최고 자문기관으로 30명이 위원입니다. 현재 위원회가 8기인데, 어린이 독서 문화 진흥 관련 전문가나 현장 활동가들이 몇 명이나 들어가 있을까요? 일단 제가 국가도서관위원회 누리집에 들어가서 1기부터 8기 위원회 명부를 찾아서 확인해 보려고 했는데 찾지 못했습니다. 대통령 자문 국가도서관위원회에도 위원 중 1/3은 어린이 대표와 어린이를 대변할 수 있는 기관이나 현장 활동가로 위촉하도록 규정해야 합니다. 어린이 대표를 어떻게 어른들 회의에 참여하도록 하느냐고 하는데 이는 어린이를 유치하다고 생각해서 무시하는 말이고 어린이를 잘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제가 어른들이 하는 여러 회의에 어린이 대표들을 참여하도록 해서 함께해 보았는데, 어디에서도 어린이들은 당당하고 솔직하게 자기 의견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좀 어려운 전문 분야라면 어린이가 지정한 전문분야 후견인과 같이 참석하도록 하면 됩니다. 그런 경우에도 어린이가 주체가 되고 후견인은 전문 지식을 제공하거나 회의장에서 어린이가 무시당하지 않도록 권리를 지켜주는 역할만 해야 합니다.
제12조(국가도서관위원회의 구성) ①………………………………………………………
②……………………………………………………………………………………………………
③ 위원은 다음 각 호의 사람이 된다.
1.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
2. 도서관 또는 국민의 지식정보 증진에 관한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중에서 위원장이 위촉하는 사람으로 하되 어린이 대표와 어린이 도서관과 독서 문화 진흥에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나 현장 활동가를 1/3 이상 위촉해야 함.
─ 작은도서관법 개정안
’제9조(국유·공유 재산의 무상 대부 등)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도서관법」 제36조제1항에 따라 등록한 사립 작은도서관의 조성 및 운영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국유재산법」 또는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 등의 관계 규정에도 불구하고 국유·공유 재산을 무상으로 사용하게 하거나 대부할 수 있다. <개정 2021. 12. 7.>
제10조(작은도서관에 대한 후원 등) 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작은도서관의 설치 및 운영 활성화를 위한 민·관 협력활동을 지원하여야 한다.‘ 는 그 실효성을 위해서 다음과 같이 개정해야 한다.
제9조(국유·공유 재산의 무상 대부 등)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도서관법」 제36조제1항에 따라 등록한 사립 작은도서관의 조성 및 운영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국유재산법」 또는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 등의 관계 규정에도 불구하고 국유·공유 재산을 무상으로 사용하게 하거나 대부한다.(할 수 있다는 마음대로 해석하지 못하도록 –한다로 개정) 그러지 아니한 작은도서관에는 이에 준해서 시설 임대료(전세보증금)를 실제 운영 기간 동안은 지원한다.
제10조(작은도서관에 대한 후원 등) 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작은도서관의 설치 및 운영 활성화를 위한 민·관 협력활동을 지원하여야 하며, 1인 기본 인건비와 어린이를 포함하는 주민 독서 문화 진흥 활동비를 연간 500만원 이상 지원해야 한다.
닫는 말
어린이는 이 넓은 우주 속 지구별 중에서도 한반도 우리나라를 찾아온 귀하고 귀한 새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 어른들보다 훨씬 더 새로운 사람으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면서 새롭게 살아갈 앞선 사람들입니다. 나아가 겨레의 희망이요 인류의 미래입니다.
이 소중한 사람들이 100년 전 3·1혁명으로 태어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서 제정한 임시헌장제1조에서 규정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 현행 10호 헌법까지 계승하고 있는 민주공화국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려면 독서는 기본 조건이고, 책과 독서를 바탕으로 하는 문화예술을 누구보다 평등하고 풍요롭게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100년 역사를 살펴보면, 그리고 제가 경험한 50년을 돌아보면 우리 사회 독서운동은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창조해 왔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독서문화 운동 역시 1920년대부터 방정환과 수백 수천의 어린이 운동가들이 소년회를 조직과 활동을 지원하면서 문학을 바탕으로 하면서 놀이, 여행, 노래, 춤율동, 잡지, 동화구연, 웅변, 연극, 체육, 출판…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와 교류와 융합하면서 발전시켜 왔습니다.
1980년대부터는 어린이 독서 운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운동을 지향하는 시민단체들이 새롭게 태어나 서로 교류하면서 발전해 왔습니다.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라는 고개를 굽이굽이 넘으면서 그때마다 새로운 동력을 만들고 시대정신에 맞는 방향을 설정하면서 변화·발전해 왔습니다.
2020년대는 코로나와 문화예술 정책에 무지한 일부 정치인과 상업주의 확장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새로운 위기를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위기입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응 역시 잘 살펴서 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민간단체가 더 확장되어야 하고,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민·관·학 협력 체제가 확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2024년 9월 2일 포항에서 열린 ‘2024 어린이 책의 해 콘퍼런스’의 발제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