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국내에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였다. 이후 확진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우리의 일상은 갑작스레 코로나19 중심으로 바뀌었다.
전 세대의 ‘사람’, 그러니까 한 살 아기부터 여든 살 어르신까지 함께 ‘어울림’을 나누던 도서관은 한순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싸우며 무기한 휴관과 부분 개관, 폐가식 운영 등을 반복하게 되었다. ‘사람이 함께 어울리는 도서관’을 지향해 온 우리 도서관은 재빠르게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했다. 함께 어울리는 것 자체가 위험해진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서로 간의 거리두기는 고려하되, 이용자를 배려하며 새로운 도서관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제천기적의도서관은 코로나19에 취약한 어린이들이 주 이용자이다. 다중이용공간인 도서관이 어린이들에게 위험한 공간일 수 있는 것이다. 학교가 문을 닫고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한 그즈음, 우리 역시 어린이들이 도서관이 아닌 집에서 책을 만나고 읽는 온라인 서비스를 기획하고 운영하기로 했다.
온택트 도서관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 이유
2003년 개관 이후 제천기적의도서관은 늘 아이들과 북적이며 함께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휴관으로 아이들이 없는 도서관은 적막만 흐르는 낯선 공간이 되어 버렸다. 가끔 “도서관 언제 문 열어요?” “지금 도서관 앞인데 물만 먹으면 안 돼요?” “아무도 없으니 살짝 들어갔다 바로 나올게요” 등 도서관에 들어오고 싶어 떼를 쓰는 아이들 목소리는 메마른 사막에 단비와 같은 위로와 활력을 주곤 하였다. 이런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끝 모르는 휴관 기간 내내 도서관을 멈춰 세워놓을 순 없었다.
우리 도서관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으로 동화작가 임정자 선생님이 상주하고 있다. 우리는 평소 작가님과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이 책을 즐겁게 만날 수 있을까에 대해 긴밀히 의논하고 협력해왔다. 그러다 보면 늘 새로운 방법이 찾아지곤 했다. 우리는 작가님과 함께 텅 빈 열람실에 서서 평소 같으면 북적이다 못해 귀찮게까지 했던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휴관 기간이 주는 여러 가지 불안들을 털어놓던 중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새로운 방법, 콘텐츠 발굴에 대해 머리를 맞대었다. 그리고 찾은 해답은 ‘온라인’. 바로 온택트Ontact 도서관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아이들의 책 소개 「책 있다, 읽다, 잇다」 챌린지
온라인상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또 다른 참여를 끌어내는 것, 나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가장 먼저 용기를 낸 건 임정자 작가님이었다. 영상이라 하더라도 오랜만에 아이들 이름을 불러보는 까닭인가? 태블릿pc 앞에 앉은 작가님은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전하며 당신의 책과 동화 속 인물 이야기를 간략하게 소개했다. 그리고 영상 말미에서 한 아이를 지목하여 책 소개를 이어 달라고 청하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 번째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한 뒤에 작가님이 지목한 아이에게 영상물을 메일로 보냈고 도서관 SNS에도 영상 파일을 올렸다. 그렇게 제천기적의도서관 「책 있다, 읽다, 잇다」 영상챌린지를 시작하였다.
「책 있다, 읽다, 잇다」는 초등학생 어린이들의 책 소개 챌린지이다. 어린이가 자신이 재미있게 읽은 책, 좋아하는 책 중 소개하고 싶은 책 한 권을 선정하여 그 선정의 변을 태블릿이나 휴대폰으로 촬영하되 영상 말미에는 다음 소개자챌린저를 지목하여 책 소개를 이어가는 형식이다. 즉, 어린이들이 만들어가는 책 소개 영상 프로젝트로 촬영한 영상은 SNS상 릴레이로 게재, 현재 16회까지 이어졌다.
우리의 기획 의도는 그저 만남의 공백 없이 온라인에서라도 아이들과 소통하고 또 아이들이 ‘책에 대해 한마디만 해도 좋겠다!’ ‘이 활동 참여로 아이들이 책, 도서관에 대해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는 아주 소소한 것이었다. 그런데 첫 번째 어린이 챌린저의 영상을 받고 우리 생각에 착오가 있음을 깨달았다. 첫 번째 챌린저는 늘 씩씩하고 엉뚱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인데 우리에게 보낸 챌린지 영상 속 아이는 딱딱하게 경직된 모습으로, 미리 준비한 원고를 기계처럼 읽어 가고 있지 않은가! 가슴이 철렁했다. 우리가 아이에게, 부모님에게 책 소개라는 다소 무거운 숙제를 준 꼴이 되었구나 싶었다. 바로 방법을 바꾸었다. 챌린저가 도서관에 와서 자연스레 책을 이야기하고, 심리적으로 편안한 환경 속에서 아이가 원하는 방법으로 책을 소개할 수 있게 하였다. 때론 수다스럽게 놀기도 하고, 때론 책을 함께 골라서 챌린저의 책 선정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영상 앞에 서겠다고 할 때 비로소 우리는 촬영을 시작하였다.
아이들은 정말 다양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어떤 아이의 경우 촬영 영상을 몇 번 확인하고 마음에 안 든 장면은 절대 송출되면 안 된다고 굳은 약속을 받아내기도 하고, 챌린저가 되었다는 부담에 많은 고민을 하며 몇 번을 상담하는 아이도 있었다. 최근엔 촬영하러 온 챌린저가 지목 예정인 친구를 데리고 와 함께 촬영 현장에 임하기도 하였다. 점점 아이들이 챌린지를 함께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며 만들어가는 「책 있다, 읽다, 잇다」 챌린지는 자연스레 아이들의 개인적 독서를 사회적 독서로 전환하고 나누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과 도서관, 아이들과 사서와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음이 분명했다.
사서가 보여주는 책 소개 「동동이와 꽉꽉이의 책 '있'수다」
7월 3일, 두 명의 사서는 ‘동동이와 꽉꽉이’라는 다소 촌스럽지만 친근한 이름을 달고 신인 도서관 방송인으로 데뷔하였다. 또 정면을 응시하는 태블릿pc 한 대와 왼편, 오른편에 각각 설치하고 휴대폰 앞에 앉아 이들을 데뷔시키는 영상 촬영 및 편집 기사는 도서관 상주 임정자 작가님이다.
아이들과 재미난 소통의 방법을 찾던 두 명의 사서가 아이들에게 친근한 인상을 주기 위해 고양이와 오리 분장 옷을 입고 온라인 ‘책 수다’에 나선 것이다. 이름하여 「동동이와 꽉꽉이의 책 ‘있’수다!」
최초의 주제는 코로나19 때문에 외출조차 쉽지 않은 아이들에게 ‘놀이’를 주제로 한 책들을 소개하고, 집 안에서 간단하게 놀 수 있는 방법 등을 직접 몸으로 시범 보이며 제안하는 영상을 촬영하였다. TV 속 VJ처럼 통통 튈 순 없지만, 신중하게 고른 책들을 한 권이라도 제대로 보여 주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목소리와 행동으로 촬영에 임하였다. 그리고 다음 시리즈에 대한 힌트를 살짝 주며 기대와 호기심을 유발하였다. 2회 ‘쉼’, 3회 ‘쓰담쓰담’, 4회 ‘니멋대로 내멋대로’, 5회 ‘겨울이어도 좋아’ 등을 주제로 한 도서들을 연이어 동동이와 꽉꽉이가 스토리를 담아 다양한 방법으로 소개하고 있다. 처음엔 굳이 대본이 필요 없다고, 아이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책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는데 점점 욕심이 나서일까? 이젠 장면의 콘티까지 계획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끝내지 않고 온라인상에서 소개한 주제도서 전시코너를 도서관에 따로 마련하였다. 오브제 전시 형태로 놀이 주제도서의 경우 놀잇감 등을 함께 전시하여 책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높이고, 소개한 책마다 질문을 던져 아이들이 책을 읽으며 질문의 답을 찾아보는 재미요소도 가미하였다. 언제든 도서관이 개관되었을 때 아이들이 온라인에서 소개받았던 그 책을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함께 구성하는 것이다. 영상을 본 아이들은 두 명의 사서를 동동이 선생님, 꽉꽉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친근감을 표시한다. 사실 영상에 참여하는 두 명의 사서는 영상 장면이 생각나 쑥스러워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며 따르는 모습에 살짝 으쓱해지기도 한다는 후문이다.
「도서관책장」 시리즈 서비스
코로나19로 인한 갑작스러운 임시휴관 기간에 도서관들은 발 빠르게 비대면 대출 서비스 ‘드라이브스루’ 등을 자관에 맞춰 시행하기 시작하였고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책을 빌려 가는 이용자들에게 드라이브스루 대출은 직접 책을 보고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 또는 학교 추천도서 등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휴관 기간에도 도서관은 끊임없이 발간되는 신간을 구입하고 언제든 아이들이 이 책들을 만나 자유로이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제공한다. 그중 아이들의 흥미를 끌고 요구에 적합한 책을 제공하며 다양한 독서로 확장할 수 있는 책 전시, 북큐레이션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도서관 곳곳에 크게 또는 작은 형태의 다양한 북큐레이션이 운영되고 우리는 이 전시 목록을 매달 아이들에게 시각적인 효과를 더해 인쇄물로 제작하여 우편으로 발송하였다. 바로 「도서관책장」서비스이다. 드라이브스루의 최대의 효과를 위해서라도 사서추천 및 도서전시목록제공서비스는 매우 중요해졌다.
먼저 집에서 도서관 추천 도서목록을 받고, 이를 꾸준히 제공 받기를 원하면 도서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팔로우하거나 QR코드로 메일링 서비스를 신청하도록 했다. 부모님들의 호응이 큰 서비스 중 하나였다.
한편 「도서관책장」 목록 제 공서비스는 분명 책을 읽고 싶은 욕구는 자극할 수 있지만 도서관이 휴관하거나 도서관 나들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독서에 대한 갈증만 더욱 야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도서관책장」에서 한 단계 확장된 서비스로 「(너를 위해 준비했어) 도서관책장 For You」를 기획·운영하였다.
「도서관책장 For You」는 도서관 내에 전시 주제 및 일반 주제 10개를 선정한 뒤, 이중에서 이용자가 보고 싶은 주제를 선택하여 대출을 신청하면 사서가 신청자의 연령에 맞춰 요청 주제도서 꾸러미10권를 집으로 발송해 주는 소위 ‘개인 맞춤형 택배 대출 서비스’이다. 도서관홈페이지에서 QR코드를 통해 네이버 폼 신청서로 이동하여 신청할 수 있다. 환경 변화에 따라 도서관 방문이 쉽지 않은 아이들에게 개인별로 관심 있는 도서를 집으로 배달해 줌으로써 아이들의 편리하고 꾸준한 독서생활이 가능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해 주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도서관책장 For You」가 개인맞춤형 대출 서비스라면, 서비스 대상자를 영유아 교육기관으로 확대하여 영유아 누리과정을 반영한 ‘기관 맞춤형 도서 대출 서비스’가 있다. 바로 「책장을 열면」 서비스인데, 우선적으로 2020년 10개 기관에 시범 운영 중이다. 관내 영유아교육기관을 대상으로 선착순 접수였는데 하루 만에 마감되었다. 영유아교육기관이 필요로 하는, 꼭 필요한 전문 도서제공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충족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향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책, 제천기적의도서관
제천기적의도서관은 언제나 어린이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이해를 바탕으로, 기꺼이 지역사회 내에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도서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열정을 품고 있다. 하지만 올해 맞닥뜨린 현실은 안타깝게도 아이들과 도서관의 관계에 작은 담을 만들었다. 오고 싶어도 도서관에 아이들이 올 수 없고 도서관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에 아이들을 마음껏 부르지 못하는 것이다. 책을 만나는 공간이 꼭 도서관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도서관일 수도 있고, 집일 수도 있다. 다만 어떠한 환경에서도 아이들을 책의 세계로 잘 안내하고 책 읽기의 즐거움에 흠뻑 빠져들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데 도서관이, 사서가 중요한 길잡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10월 13일 이후 도서관은 서비스 인원을 제한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조심스레 개관하고 있다. ‘온택트 시대, 도서관과 함께 책 읽기의 새로운 방식’이라는 제목처럼 2020년 한 해 새로운 용어와 새로운 서비스 방식이 많이 생겨났다. 그렇지만 도서관이 아이들에게 책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들이 꿈을 찾아가고 건강하고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기본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렇기에 오늘도 제천기적의도서관은 다양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아이들과 소통해가는 ‘세상에서 가장 큰 책’이길 꿈꾸어 본다.
★ 이 글은 「도서관 이야기」 142호(2020.12)에 수록되었으며,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