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청소년 책의 해’입니다. ‘2018 책의 해’를 평가하면서, 몇 가지 반성과 제안이 있었어요. ‘이벤트성 프로그램보다 지속성이 높은 몇 가지 프로젝트에 집중하자. 캠페인의 타깃 세대를 명확하게 잡고 그들을 위한, 그들과 함께 만드는 캠페인을 만들자’고요. 첫 번째 타깃을 청소년으로 잡은 것은 ‘2018 책의 해’의 독자개발 연구보고서인 〈읽는 사람, 읽지 않는 사람〉의 결과, 읽기 도, 읽기 태도가 급락해서 다시 회복되지 않는 시기가 청소년기임이 드러났기 때문이었지요.
‘2020 청소년 책의 해’는 이런 고민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저도 그렇게 듣고 준비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답니다. 청소년과 함께 책을 읽어온 20여 명의 실천가들이 2019년부터 1년 동안 매달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회의실에서 만나 공부하고 서로의 실천을 나누었습니다.
숙의의 결과로 몇 가지 원칙들을 세웠습니다. 아이들을 동원해서 사진 찍기 좋은 일회성 행사는 하지 말자. 청소년이 가장 원하는 것을 주자. 책을 잘 읽고 글을 잘 쓰는 청소년이 상 받을 만한 대회는 다른 곳에서도 많이 하니 열지 말자. 해가 지나도 쓰임이 있고 남을만한 온라인의 집과 시스템을 만들자. 디자인은 청소년에게 묻고 물어, 가능한 그들의 손과 의견이 닿게 해서 만들자.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 아니라 인간 청소년으로 그들과 함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2020년 1년 동안 일할 사람들이 2020청소년책의해네트워크 상임위원회로 꾸려지고, 아래와 같은 7가지 프로젝트를 추리고 추렸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북틴넷, 2020청소년책의해 사업안내에서 진행상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2020 청소년 책의 해 사업안
① ㅊㅊㅊ (청소년책추천사이트 북틴넷 bookteen.net)
② 청문상 (청소년들이 직접 선정하는 청소년문학상)
③ 청소년 북 페스티벌 (청소년모임이 꾸리는 오프라인 책 파티, 코로나로 취소)
④ 북톡북튭 (청소년들이 책을 소재로 만드는 유튜브 영상 공모전)
⑤ 2020청소년책의해 공익 캠페인, 담임샘의 사랑법 (담임샘이 신청하고, 아이들이 북틴넷에서 자기가 원하는 책을 골라 선물로 받는 프로젝트)
⑥ 책읽는 소년원 (소년원에 아름다운 도서관을 만들어주고, 아이들이 독서동아리를 꾸릴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
⑦ 청소년 독서문화 조사 연구 및 청소년 책 포럼 (읽는 청소년, 읽지 않는 청소년의 특성에 대한 연구와 청소년 책 읽기에 대한 포럼)
저는 청소년책 추천 사이트 북틴넷의 책임을 맡았습니다. 청소년책 추천 사이트를 만들게 된 배경에는 2016년에 수행한 연구, 〈학교 교육과정과 연계한 실천 중심의 독서교육 활성화 방안〉이 근거가 되었습니다. 3천명의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독서교육을 물어본 결과, 가장 많은 응답은 “내 관심과 나의 읽기 수준에 맞는 책을 소개받고 싶다”였습니다. 두 번째로 많은 응답은 “재미도 있고 유익하기도 한 책을 소개받고 싶다”였어요. 특히 읽기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들일수록 이 두 가지에 대한 응답률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이들은 학교에서 이 두 가지를 가장 받고 있지 못하다고 답했습니다.
저는 뒤통수를 세게 맞는 느낌이었어요. 책읽기와 관련해서 청소년이 가장 원하는 것을 우리의 학교가 우리의 사회가 가장 주지 못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요. 아이들이 가장 필요로 한 건, 청소년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도서, 혹은 어떤 청소년이라도 읽으면 좋은 추천도서가 아니었어요. 여러 단체들이 노력한 결과, 이제 좋은 추천도서 목록은 구하기 어렵지 않아요. 아이들은 “나의 관심사”를 “나의 독해 수준”으로 풀어놓은 책을 소개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었어요. 개별적인 요구에 대한 서비스에 목말라 있는 거죠. 이를 도서관학에서는 독자상담서비스readers’ advisory service라고 하는데, 이 서비스를 받고 싶다는 거죠.
연구 결과를 분석하고는 전국 방방곡곡의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통계적 진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어요. 거의 매주 중·고등학교를 찾아갔었는데, 갈 때마다 아이들에게 관심 있는 삶의 주제, 읽고 싶은 주제를 적어달라고 했어요. 아이들이 한바탕 적어놓은 마인드맵을 보면서, 정말 미안했어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저 스스로도 청소년을 개개인이 아닌 하나의 덩어리로 바라본 건 아니었나, 청소년을 과연 학생 이외의 다양한 관심사와 정체성을 가진 인간으로 보고 있었나 반성했어요. 아이들이 적어놓은 주제들은 추천도서목록에서 거의 다루지 않은 것들이 많았어요. 우울증, 캠핑, 무기와 전쟁사, 코딩, 자동차, 디저트, 실컷 웃고 싶은 책, 15분이면 읽을 수 있는 책, 공포물, 야구 데이터, 항공기계, 창업, 학습법, 베트남 문화, 스포츠, LGBT 등 너무도 다양했어요. 한 번은 메이크업과 헤어를 진로로 삼는 마이스터고등학교 아이들이 자기네들을 다룬 청소년 책은 없다며, 자기도 유튜브 말고 책을 읽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었어요. 북틴넷이 온라인 서비스다 보니, 검색어를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데요. 아이들이 요청하는 다양한 관심사에 놀랄 때가 많아요. 언젠가 다른 지면이나 포럼에서 이에 대해서 자세히 발표할 기회가 있을 듯해요.
북틴넷에선 아이들이 요청하는 주제나 장르로 4~6권의 책을 큐레이션 해서 안내해요. 책 표지와 내지를 보여주고, 간단한 소개를 덧붙여요. 해시태그를 달아서, 책에 대한 힌트와 검색이 가능하도록 만들었어요. 청소년에게 말하듯이 소개해요. 그리고 모든 썸네일과 이미지는 청소년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해요.
현재 8명의 큐레이터들이 청소년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책을 소개하고 있어요. 이들은 중학교 교사, 고등학교 교사, 청소년 전문사서, 청소년 문학 작가, 청소년 비문학 작가, 청소년 출판 편집자, 장르소설 비평가, 독서연구자에요. 오랫동안 청소년 독자를 만나 일한 분들이에요. 청소년 책에 대한 전문성 못지않게, 책에 대한 청소년의 반응을 잘 아는 사람들로 꾸렸어요. 북틴넷을 열기 직전에 청소년들에게 피드백을 받을 때, 큐레이터들을 캐릭터로 표현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몇 권씩의 책을 펴낸 유명 저자들이지만,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그냥 로애, 차도남, 흥신소, 인생오탈자, 라이(더)GO!, 책보드레, 하리, 텍스트릿이라는 닉네임으로 글을 씁니다.
청소년들도 투고해서 책을 소개할 수 있어요. 특별히 ‘청소년 큐레이터’ 마크를 달고 소개되지요. 현재까지 10가지 청소년 큐레이션이 올려졌어요. 종국에는 아이들의 큐레이션이 반이상이 되는 사이트를 만들고 싶어요. 기존의 큐레이터들이 다루지 못하는 전문 주제들을 요청받을 때는 게스트 큐레이터들을 섭외해서 글을 받아요. 요리사로는 박찬일 셰프, 만화는 《까대기》의 이종철 작가, 심리학자 이남석 작가, 이외에도 기관사, 항공승무원, 로맨스 전문비평가, 수학교사, 밀리터리 덕후, 천문학자, 영화촬영감독 등으로부터 책을 소개받았어요.
몇십 권의 책을 놓고 충분한 토론을 거쳐 합의된 도서목록을 매년 제공하는 여타 단체와는 달리, 북틴넷은 개인 큐레이터가 자신의 큐레이션에 책임을 지고 책을 선택하고 카톡방에 원고를 미리 공유해요. 반드시 읽어본 책일 것, 읽기수준을 초3부터 고2까지로 넓게 잡을 것, 예전에 나온 책과 신간을 골고루 소개할 것, 청소년 독자의 반응에 유의하며 추천할 것 등 큰 기준이 있지만, 선택은 글쓴이의 책임이에요. 청소년책의 경우, 각 분야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기도 하고, 오프라인과는 달리,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서비스라 계속 수정이 가능하거든요. 하루에 하나의 큐레이션이 올라가는데, 매일 모두가 4~6권씩 읽어낼 수도 없고요. ‘모든’ 청소년이 읽으면 좋은 책의 목록이 아니라, ‘어떤’ 청소년이 요청하는 주제의 책을 괜찮은 걸로 추려서 신속하게 소개해준다는 게 목표거든요. 답변의 신속성을 높이기 위해서, 유튜브 라이브방송으로 ‘찾아가는 ㅊㅊㅊ’도 엽니다.
현재 140개의 큐레이션이 소개되었고, 연말까지 200가지 주제의 큐레이션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아이들의 요청이 쏟아지는데, 모두 다루려면 아직도 멀었어요. 평일에는 매일 400~600명의 방문자가 들어오고, 재방문율도 높아지고 있어서 7개월 동안 방문횟수 10만회, 페이지뷰는 40만회가 넘어가요. 코로나로 책을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 서점을 이용하기 어려워서 더 유용하게 쓰이는 듯해요. 청소년들이 읽을 책을 찾지 못했을 때, 네이버 지식인을 헤매지 말고, 북틴넷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북틴넷의 심부름꾼들 덕분에 자신의 마음을 흔드는 책 한 권 찾을 수 있게 된다면, 고요하면서도 떠들썩하면서도 신나는 책 한 권 만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어요.
★ 이 글은 「동화 읽는 어른」 319호(2020.10)에 수록되었으며,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