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국제상’을 받으며 한국문학에 단비가 내렸다. 이번 수상에는 교보생명이 설립한 대산문화재단의 꾸준한 해외 번역출판 지원이 밑거름 구실을 했다. 한국 소설이 세계에 통할 수 있다는 문단의 자신감도 커졌다. 이번 주 일요일까지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에 초대된 ‘자생적 한국문학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의 사례를 들어 수준 높은 원어민 번역의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한국문학이 국내 독자들에게조차 외면받을 정도로 빈사 상태에 빠진 현실을 먼저 중시해야 한다. 번역만 잘되면 얼마든지 해외에서도 한국 소설이 통할 것이라는 호언은 희망 사항이거나 본말이 바뀐 것이다. 국내 시장의 성과 없이 해외에서 성공하기는 어렵다. 문학이 독자와 소통하는 수단인 책과 출판시장 추이를 냉정히 살펴야 한다.
한국문학 위기론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7년 당시 국내 소설시장에서 외국소설의 판매량 점유율은 70.4%까지 치솟았다. 연간 베스트셀러 소설 100위권 기준으로는 일본 소설 39종, 기타 소설(영미 소설 등) 35종, 한국 소설 26종 순이었다. 현재는 어떤가. 베스트셀러 소설 30위권에서 한국 소설은 지난해엔 6종, 한강의 수상 효과가 기여한 올해 상반기엔 8종으로 침체 분위기가 여전하다. 반면, 한국에서 승승장구하는 일본 문학의 발행 종수는 지난해 1천종을 처음으로 돌파할 만큼 비대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2월 제정된 문학진흥법의 시행(8월4일)을 눈앞에 둔 문학정책 동향을 보면 ‘진흥’의 지읒자도 못 쓰고 있는 듯하다. 문학진흥법의 목적이 ‘문학 창작 및 향유 활동 증진’에 있음에도 정책 방안에 대한 깊은 고민보다는 잿밥에만 관심이 넘친다. 지방자치단체들의 과당 경쟁과 지역 갈등까지 부르며 국립한국문학관을 왜 속전속결로 전쟁 치르듯 건립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국내 문학 진흥 업무를 담당할 상설 조직은 부재한 채로 한국문학의 해외 소개를 전담하는 한국문학번역원만 덩그러니 둔 법정기관 설치(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서 이관)도 기이하다. 장차 번역원을 한국문학진흥원으로 바꾸어 국내 문학 진흥과 해외 소개를 두루 챙길 일이다. 무엇보다 문학 독자층 확대와 문학출판 생태계의 지속 발전에 중심을 두고 시민들의 일상에 스며드는 문학 진흥 정책이 강구되길 기대한다.
아울러 문학 출판사들이 저작권 수출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출판계약 관행도 개선돼야 한다. 예를 들어 『엄마를 부탁해』는 밀리언셀러에 오르며 30여개 나라에 저작권이 수출되었고, 그 후광 효과로 국내 판매량이 추가로 대폭 늘긴 했지만 출판사의 해외 로열티(저작권료) 수입은 전무했다. 유력 작가들은 파트너인 출판사에 동기 부여를 해줘야 합당하다.
★ 본 기고글은 한겨레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서, 필자의 동의 아래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