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최근 언론에서 한 특정 단체가 사실 왜곡과 좌편향적 내용이 담겨 있다고 비판하며 거론한 책 중의 하나이다. 이 책이 실제로 사실을 왜곡하지 않았음은 인터넷 포털 검색만 해 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이 책은 역사를 단순한 암기과목으로 치부했던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현재의 삶에 끊임없이 되돌이표가 되고 있는 ‘한국 전쟁’을 더 이상 박제가 아닌 살아 있는 인간의 아픔으로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
- 김대경(성수고등학교 교사)
우리 민족이 5000여 년의 역사를 어떻게 이어왔는지 ‘역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늘 승리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선택과 판단으로 돌이킬 수 없는 부끄럽고 얼룩진 역사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과정에서 우리 민족이 어떤 힘으로 오늘에까지 이르게 했는지 보여준다. 우리 역사에 대한 궁금증을 질문과 답을 통해 풀어내고 있어 역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 배현영(어린이도서연구회 목록위원)
운율이 살아있는 전래동요 풍 글에 맞추어 콜라주에 의한 조형성과 색감 뛰어난 동물들이 차례차례 등장하는 이 유아 그림책은 그야말로 유아가 동물 이름과 형상을 익히기에 더없이 좋다. 1967년에 출간되어 수많은 아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 그림책이 2010년 1월 텍사스 교육위원회에 의해 느닷없이 금서로 지정된 이유는 글 작가 빌 마틴 주니어William Ivan Martin, Jr.(March 20, 1916 – August 11, 2004)의 이름이 좌파 철학자 빌 마틴(1956- , 데리다, 사르트르, 마르크스주의 연구자)과 같기 때문이었다. 이 교육위원회의 누구도 이들이 동명이인이라는 것을 확인하지 않았다.
- 이상희(시인, 그림책작가)
1992년 ‘국내최초 무삭제 완역’이라는 완장을 두른 따끈한 책을 손에 들고 흥분하던 기억이 있다. 〈걸리버 여행기〉가 우리나라에서 금서였던 적은 없다. 완역되지 않았을 뿐. 동화의 형식을 빌어 작품을 부분만 출간해 온 것은 문학과 독자에 대한 기망이었다. 〈걸리버 여행기〉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불온한 문학이다.
- 오혜자(초롱이네도서관 관장)
늑대 분장을 한 채 포크로 강아지를 위협하고 벽에다 함부로 못을 박으며 노는 개구쟁이 맥스가 엄마에게 ‘괴물딱지 같은 녀석’이라고 꾸지람을 듣자 ‘(내가 괴물딱지라면)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 거야!’라고 대든다. 벌로 자기 방에 갇히지만,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멀리 멀리 떠나 신나게 놀고는 왕으로 추앙받는 상상을 즐기다 엄마가 차려놓은 따뜻한 저녁밥 앞으로 돌아온다. 1963년 출간 당시 미국의 교육학자들은 이 책이 ‘예쁘장하고 귀염성 있는 주인공과 자상한 엄마가 등장하는 그림책의 전형을 훼손했다’며 금서로 지정했다. 이후 전 세계 여러 나라에 19만 권(2009년 기준) 이상 판매된 ‘현대 그림책의 고전’으로서, 1964년 칼데콧상을 수상하고, 2012년 미국 〈스쿨라이브러리 저널〉의 설문조사 결과 ‘어린이를 위한 최고의 그림책’으로 선정되었다.
- 이상희(시인, 그림책작가)
조태일(1941~1999) 시인의 시집 『국토』는 유신시대의 금서였다. 조태일은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계엄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투옥되기도 했었는데, 5공 시절에도 그의 시집은 당연히(!) 금서 목록에서 풀리지 않았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에는, 당시 금서로 묶인 조태일의 『국토』를 비롯한 시집들이 국문학도들에게 은밀히 복사되어 읽혀지기도 했다. 독재정권에 의해 ‘금서禁書’로 지정되었으나, 오히려 국문학도들에게는 ‘금서金書/錦書’로 취급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나의 서가에는 당시 복사하여 책으로 만들었던 시집 『국토』가 꽂혀있다. 이 시집에 실린 ‘국토’ 연작은 “삶의 뿌리를 박고 사는 내 국토의 역사와 현실을 꿰뚫어보며 시대정신”을 절절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김용찬(순천대학교 교수)
독일 그림형제가 민담을 수집해서 묶은 그림동화책은 너무 잔혹하고, 독일에 맞지 않다는 비판도 받았다. 주인공 여성들 성격이 너무 순종과 침묵형이라는 비판도 있다. 남성 중심이긴 하지만 봉건군주 눈으로 볼 때는 시민성도 엿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림형제가 독일 지폐에 들어갈 정도가 되었고, 170여 개 나라에서 번역하여 많은 어린이들이 꾸준히 읽는 동화가 되었다.
- 이주영(어린이문화연대 대표)
아기 미키는 잠들려다 말고 쿵쿵거리는 소리에 깨어나 아침에 먹을 빵을 굽느라 분주한 빵집 아저씨들의 반죽 그릇으로 떨어져 내린다. 미키가 들어가 있는 반죽을 오븐에 넣으려는 참에 미키가 모습을 드러내곤 자기는 ‘밀크’가 아닌 ‘미키’라며 반죽으로 비행기를 만들어 타고 달아난다. 조리사 아저씨들은 밀크가 필요하다고 쫓아오고, 미키는 미키웨이-밀키웨이(은하수)에 가서 정말 밀크를 구해 온다. 마침내 빵이 구워지고, 아저씨들은 기분이 좋아서 노래하고, 미키는 제 침대로 돌아간다. 이 그림책 또한 1970년 출간되자마자 격렬한 논쟁에 휩싸였다. 주인공 사내 아기가 나체로 등장한 것이 문제가 되어 금서 목록에 오른 것은 물론, 도서관 사서들이 검은 사인펜으로 기저귀를 그려 덮거나 테이프를 붙였고, 심지어 불태우기도 했다. 1971년 칼데콧 아 상 수상 이후 주목할 만한 어린이책상, 최고의 어린이책 그림 원화상 등 수많은 상찬을 받았다.
- 이상희(시인, 그림책작가)
모리스 샌닥의 〈깊은 밤 부엌에서〉에는 어린 소년 Mickey가 "발가벗은 채" 커다란 밀가루 반죽 그릇이나 우유병 속에 미끄러져 들어가는 환상적인 장면이 들어 있다. 이 책은 바로 이 장면 때문에 논란거리가 되었고 전미국도서관협회나 초등학교 도서관의 금서 목록에 빈번하게 올랐다. 그러나 많은 어린이들이 자유로운 환상의 날개를 품은 이 책의 가치를 알아보고 사랑해 줌으로써 세계적인 그림책 고전이 되었다.
- 조은숙(어린이책비평가)
남파 간첩으로 체포되어 비전향 장기수로 36년을 감옥에서 살았던 허영철의 회고록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가 원작이다. 만화가 박건웅의 선 굵은 그림은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한 인간의 굴곡진 삶을 잘 드러낸다. 허영철은 자신이 겪은 전쟁과 분단, 사상에 대한 신념을 담담히 들려준다. 책을 통해 분단전쟁 전, 후, 현재까지 남과 북의 인식차이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다양한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함을 알게 된다.
- 김라영(어린이도서연구회 목록위원장)
귀국 직후인 2002년이었던가, 강연차 부산대에 갔는데 뒤풀이 자리에서 한 청년이 군 복무 중에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때문에 영창에 끌려갔었다는 사연을 말해 놀란 적이 있다. 한 사병이 휴가에서 돌아오면서 그 책을 가져왔는데 반입금지라고 윽박지른 상급자에게 문제를 제기한 게 명령불복종이 되어 영창에 가게 됐다는 것이다. 문민정부라는 김영삼 정권 때의 일이었는데 그 뒤 이명박 정권의 국방부는 아예 불온도서라며 군대 내 반입금지를 지시하기도 했다. 그들에게 불온도서로 지목된 책 중에는 한홍구 교수의 『대한민국사』, 현기영의 『순이 삼촌』, 장하진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포함되어 있다. 가히 엽기적인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더 심각한 일은 한국의 사법부가 군부대의 특수성을 이유로 국방부의 편을 들어주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몰상식이 판치는 사회에서 불온이 오히려 상식이 되고 나아가 교양이 된다는 점을 21세기 한국이 가르쳐주고 있다.
- 홍세화(장발장은행 대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