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도서관 문제의 핵심은 ‘사람’
시간을 건너뛰어야 하겠습니다. 2017년 9월 14일, 국회의원회관 2층 제2세미나실에서 전국학교도서관사서협회가 개최한 토론회가 있었습니다. ‘학교도서관의 역할과 사서의 위상 정립 ― 학교사서 정규직화, 어떻게 할 것인가?’가 주제였습니다. 저는 이날 토론자로 참석했습니다. 참으로 만감이 오고가는 자리였습니다. 왜냐면 지난 십여 년 동안 학교도서관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거듭해서 똑같은 주장을 반복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여느 때처럼 저의 토론은 일관되게, 학교도서관의 전문 인력 배치는 교육 현장의 숙원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토론 요지는 이러합니다.
교육부당시 교육인적자원부가 학교도서관 활성화 사업의 준비 단계에서 2002년에 실시한 현장의 요구 분석에 따르면, 단위 학교 현장에서 학교도서관 활성화 저해 요인으로 가장 많이 지적된 것이 바로 전문 인력 부족47.7%이었습니다. 우리나라 학교도서관의 설치율이 거의 100%가 육박한다고 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교육통계에서 전국 학교도서관 현황을 도서관 수와 직원 수를 나누어 표시하는 것은 통계 착시일 뿐입니다. 전문 인력이 없는 도서관은 도서관이 아닙니다. 도서관=공간시설+장서+사람전문 인력입니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학교도서관은 36.8%4,316곳만 설치되어 있는 것입니다. 교육부가 제공한 ‘학교도서관 전담인력 조사’를 보면 4월 현재 전국 초·중·고교 1만 1,700여 곳 중 정규직 사서교사가 배치된 곳은 6.3%736곳뿐입니다. 기간제 사서교사와 공무직 사서 등 관련 인력을 다 합해도 학교 중 36.8%4,316곳에만 전문 인력이 있습니다. 이마저도 초·중학교에 비해 고교 사서 배치율은 더 낮습니다. 학교도서관진흥법상 시·도교육청별로 학생 1,500명당 사서 1명을 고용하게 돼 있는데 고용된 인력을 초·중학교 위주로 배치하기 때문입니다.(고1부터 ‘입시 모드’… 책도 사서도 없는 고교도서관, 서울신문 2017년 7월 30일 참고) 대한민국 국회는 〈학교도서관진흥법〉시행 2016년 12월 20일, 법률 제14401호을 하루빨리 개정해야 합니다. 〈학교도서관진흥법〉법률 제8677호은 2007년 12월 14일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제정되어 2008년 6월 15일부터 시행되었습니다. 제정 당시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만, 〈학교도서관진흥법〉은 학교도서관을 진흥하는 법이 아니라, 학교도서관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2003년부터 전개된 ‘학교도서관 활성화 사업2003~2007’을 통해 전국의 학교는 빠르게 학교도서관의 공간과 시설과 장비와 장서를 갖추었습니다. 〈학교도서관진흥법〉의 제정은 ‘학교도서관 활성화 사업’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법적 규율을 통해서 사람전문 인력을 확충할 수 있도록 뒷받침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잘 아시다시피 〈학교도서관진흥법〉 제12조②항은 “학교도서관에는 사서교사·실기교사나 사서이하 “사서교사 등”이라 한다를 둘 수 있다.”고 전문 인력 배치를 의무 조항이 아니라 임의 조항으로 규정하였습니다. 〈학교도서관진흥법시행령〉은 제7조①항은 “법 제12조②항에 따라 학교에 두는 사서교사·실기교사나 사서이하 “사서교사 등”이라 한다의 총정원은 학생 1,500명마다 1명을 기준으로 산정한다.”고 하여, 학교도서관 전문 인력의 배치 기준을 최대 기준이 아니라 최소 기준으로 정했습니다. 다시 말해, 학교도서관의 공간과 시설과 장비와 장서는 갖추었으나, 사람전문 인력은 배치하지 않아도 되도록 함으로써, 사실상 학교도서관을 방치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지난 9년 동안 각 시·도교육청이 기형적으로 학교도서관의 전문 인력을 배치하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대한민국 국회는 하루빨리 〈학교도서관진흥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학교도서관에서 좋은 책을 마음껏 읽고 싶다는, 전국의 학생, 교사, 학부모의 목소리에 대한민국 국회는 응답해야 합니다.
결국 〈학교도서관진흥법〉은 지난 20대 국회 끝자락인 2018년 2월 21일 일부 개정시행 2018년 8월 22일되어 제12조 2항이 임의조항에서 의무조항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많은 분들이 애쓴 결과라고 할 것입니다.
여러 자리가 기억에 남습니다. 2004년 10월 학교도서관 전문 인력에 대한 논의가 한창 뜨거웠을 때 ‘도메리’ 등에서 여러 사람의 논의를 펼쳤던 것을 일일이 프린트해서 읽어보았던 자료가 지금도 저의 서류 캐비넷에 남아 있습니다. 그 무렵 교육부당시 교육인적자원부의 책임자와 함께 학교도서관 전문 인력 배치와 소요되는 교육재정을 계산한 표를 놓고 논의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학교도서관에 관심 있는 분들과 더욱 힘을 모아 실효성 있게 전문 인력 배치 문제를 해결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못했기에 학교도서관 전문 인력 문제는 더딘 해결 과정을 겪어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5년 9월 30일의 일이던가요? 그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습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사서교사를 438명 증원하겠다고 하였지만 행정자치부가 예산상의 이유로 전원 삭감한 데 대하여 관련 단체들이 연합하여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저도 잠깐 마이크를 잡을 기회가 있어서 일본의 학교도서관 이야기를 했습니다. 일본 학교도서관이 겪었던 ‘어리석음’을 우리가 겪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에서 〈학교도서관법学校図書館法〉이 제정된 것은 1953년 8월 8일법률 제185호의 일이었습니다. 이 법 제5조에서는 “학교는 학교도서관의 전문적 직무를 담당하기 위해 사서 교사를 두어야 한다学校には、学校図書館の専門的職務を掌らせるため、司書教諭を置かなければならない.”고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그들이 말하는 ‘패전’ 이후여서 교육재정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부칙 조항에 “당분간 제5조1항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사서교사를 두지 아니할 수 있다当分の間、第五条第一項の規定にかかわらず、司書教諭を置かないことができる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법에서는 학교도서관의 전문 인력 배치 의무 조항을 두고서도 부칙에서 이 의무를 회피할 수 있도록 해 놓았던 것입니다. 학교도서관 업무를 담당하는 사무직원은 법 성립 시에도 이미 수천 명이 현장에 존재하고 있었고, 〈학교도서관법〉이 성립된 이후에도 담임 등의 업무를 가진 사서교사가 학교도서관의 직무를 완수하는 것은 어려운 현실이었기에 사무직원이 학교사서로서 실질적으로 학교도서관 업무를 담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과연 학교도서관을 누가 감당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 일본에서도 사서교사와 그것을 보조하는 학교사서, 2가지 직종 제도를 주장하는 그룹과 사서교사와 학교사서가 대등한 교육직이라고 주장하는 그룹이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법안 제출을 시도하였지만, 법 개정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학교도서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은 계속되어 1980년대부터 집회활동과 간행물 등을 통해 학교도서관의 현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학교도서관문제연구회’약칭 학도연, 学校図書館問題研究会와 함께 일본 전국 각지에서 학교도서관을 생각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분출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문부과학성도 1993년 〈학교도서관 도서 정비 5개년 계획〉 등 국가 차원의 학교도서관 관련 시책을 펼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1997년 〈학교도서관법〉 개정을 통해 부칙의 사서 교사의 배치 유예 규정을 고쳐서 12학급 이상의 학교는 2003년 3월 말까지 전문 인력을 배치하도록 하였습니다. 법 조항 하나 때문에 무려 50년 동안1953년~2003년 일본의 학교도서관은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9·30시위는 이후 학교도서관 정상화를 위한 집회와 시위의 하나의 전형이 된 듯합니다. 2007년 10월 29일 ‘학교도서관 정상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학교도서관 정상화를 위한 투쟁 집회’나 2011년 9월 8일 전국학교도서관모임 회원과 사서교사를 희망하는 대학생들이 ‘학교도서관 정상화 및 사서교사 배치 촉구 집회’ 등을 펼쳤을 때가 기억납니다.
학교도서관 문제 해결에 교사, 학생, 학부모, 시민단체가 힘을 모아야
이 지면에 지난 20년간 펼쳐졌던, 학교도서관을 학교도서관답게 만들고자 했던 숱한 노력을 일일이 다 기록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학교도서관의 발전을 위해 교사, 학생, 학부모, 시민단체가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학교도서관이 적지 않게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도 학교도서관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전문 인력이 배치되지 않은 학교가 있을뿐더러, 전문 인력이 배치되어 있더라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또한 각 시도 교육청에 따라 다른 고용정책과 재원정책으로 정책의 변화에 따른 부침이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1999년에 발표된, 〈IFLA/유네스코 학교도서관 선언〉은 ‘교육 및 학습을 위한 만인의 학교도서관’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학교도서관은 가르침과 배움의 중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정보와 지식을 활용할 능력을 기르게 할 것인가, 어떻게 자기 스스로 질문을 구성하고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울 것인가, 어떻게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배우고, 그 배움을 바탕으로 창의력과 문제해결력, 사고력을 키워낼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이런 질문은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책읽기의 즐거움을 누리면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성찰하는 능력을 갖춘 민주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학교도서관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도서관의 발전에 작게나마 힘을 보탤 기회를 주신 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앞으로도 힘껏 학교도서관 문제 해결에 애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0.07.10.)
★ 이 글은 『학교도서관을 사랑한 사람들』(전국학교도서관모임 지음, 단비, 2021)에 수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