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넘게 놀이와 놀이터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사실 내게 가장 소중한 놀이와 놀이터 생각을 만들어 준 것은 동네 아이들과 우리 집 앞마당이다. 동네 아이들이 와서 망치질, 톱질, 소꿉놀이 등을 하다가 좀 지루해지면 마당 한쪽에 있는 만화방에 들어가 배 깔고 만화를 보고 그러다 또 시들해지면 마당으로 나와 논다. 동네 아이들이 정말 재미있어하는 놀이를 나는 모른다. 아이들은 동네 구석구석과 친구 집들을 돌아다니면서 노는데, 무엇을 하는지 내가 다 지켜보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놀이는 그 언저리 어딘가에서 어른들이 지켜보지 않을 때 아이들은 진정한 놀이의 세계로 들어선다는 것을 짐작할 뿐이다.
아시아를 넘어 중동을 지나 유럽까지 여러 나라의 놀이터를 보러 다녔다. 그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있었다. 아시아와 중동에는 자연에 가까운 놀이터가 아직 많이 남아 있었고, 유럽은 놀이터에 그런 요소와 기능을 충분히 녹여내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사람들을 만나 놀이의 원형에 관해 이야기했고 더러 나라 밖 놀이터 이야기도 했다. 그러나 그곳은 그곳이고 우리의 문제는 여기서 풀어야 했다. 내가 다른 나라 놀이터 이야기를 하니까 사람들은 그런 놀이터와 놀이기구를 들여오자는 것이냐 오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글에선, 나의 놀이터가 돌고 돌아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이야기하고 싶다.
올해 또 하나의 공해가 시작되었다. 이른바 ‘놀 권리’ 공해이다. 정부 각 부처와 기관마다 ‘놀 권리’ 토론과 연구용역이 뿌려지고 있다. 아마 OECD 국가 중 아이들의 행복도가 꼴찌라는 불명예를 씻자고 하는 무엇이 아닌가 싶다. 위기에 대응하는 한국적인 방식이다. 작년부터 남발되기 시작한 ‘놀 권리’라는 단어는 벌써 본래의 의미를 잃고 낡은 낱말이 되어가는 것 같다. 놀 권리가 아래서부터 아이들로부터 부모와 교사와 학교와 사회와 제도로 옮겨와야 하는데 거꾸로 내리꽂으니 정처 없다. 마침내 아이들을 이런 행사에 꼭두각시로 동원하는 것을 보면 나는 그만 질린다. 영문도 모르고 ‘놀 권리’ 코스프레를 해야 하는 아이들을 생각해보라. 어린이를 이용한 이런 ‘놀 권리’ 이미지 홍보와 마케팅을 멈추길 바란다. 왜 이런 일이 밝은 대낮에 벌어지는지 생각해본다. 아이를 자유를 갈망하는 독립된 삶의 주체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심지어 ‘놀 권리’에서 조차도 말이다. 나아가 아이들은 스스로 놀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놀 권리’를 외치는 말잔치에는 그만 가고 내가 사는 마을의 아이들과 지내려 한다. 일상이 놀이인데 그것을 제도화, 계량화, 의무화, 교재화하려는 집단이나 개인과 아이들 놀이를 어디까지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놀이의 상업화보다 오히려 못한 길로 들어서는 것 같다. ‘놀이의 상업화’는 구체적인 무엇을 내놓기는 하지 않는가. 놀이의 가치는 철저히 비제도적이고 비상업적이고 비형식적인 것에 있음을 되새기고 자기 사는 곳에서 나지막한 첫걸음을 떼는 것이 절실하다. 놀이는 자유이다. 도시에 사는 분들한테 시골에 사는 우리 동네 아이들 이야기가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다. 널리 펴기에는 어려운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그러나 하나 덧붙이자면 현재 한국의 어떤 곳도 자본의 자장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도시와 농촌이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나는 왜 그 많은 세상의 놀이와 놀이터를 지나 내가 사는 집 앞마당에서 놀이와 놀이터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지금 사는 곳으로 귀촌한 지 12년이 되었다. 지붕도 꺼지고 구들도 꺼지고 담도 무너진 집에 총각 때 홀로 들어왔다. 여기서 신접살림을 차렸고 딸도 낳고 아들도 낳았다. 시작은 엄밀히 말해 생계형 귀촌이었다. 그 당시 형편으로는 여기밖에 깃들 곳이 없었다. 내가 사는 마을은 눈에 띄는 것이 없는 여느 시골 마을과 같다. 어른들도 좋고 특히 할머니들이 정이 있다. 시골이 아이들 키우기 좋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현재 시골은 한국 사회가 오래도록 젖혀둔 문제의 총합이라고 할 정도로 상처가 깊다. 고령화된 이곳엔 아이들이 없고, 있어도 도시 아이들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점은 더 열악하기도 하다. 학원 차가 골짜기마다 들어오고, 놀 거리는 스마트폰과 컴퓨터밖에 없기도 마찬가지이다. 조부모와 사는 아이들이 부쩍 늘고 있는 것을 보면 앞으로 시골이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모르겠다. 나는 오히려 시골에서 세상의 변화를 예민하게 느끼고 있다.
우리 마을이 다른 시골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그나마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딸내미는 아침나절에 나가 저녁때쯤 들어왔다. 동네 아이들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가 싶더니 마당에서 놀다가 어느새 만화방으로 들어가더니 곧 사라졌다. 동네 아이들 얼굴을 떠올리며 손가락을 꼽아보니 열이 조금 안 된다. 아이들끼리 놀기에 모자람이 없는 숫자다. 집집을 돌아가며 놀기도 하고 집과 집 사이 어딘가를 몰려다니며 논다. 마을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이 허용적인 편이고 동네 어른들이 오가며 봐서 그런지 아이들이 안정적이다. 연령대도 유아와 초등이 섞여 있어 형, 누나, 오빠, 언니 하며 지낸다.
뜬금없지만 우리 동네에 시에서 만든 놀이터가 하나 있다. 처음에 이 놀이터를 보고 구석진 시골에 어떻게 이런 놀이터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싶었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는 아이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놀이터가 따로 있다. 동네 교회 건너편 작은 공터에 철공 솜씨가 좋은 어떤 분이 오래전에 만든 놀이기구가 몇 개 있는데 바로 이곳이다. 이 철공소 놀이기구가 오늘도 성성하게 기능을 잃지 않고 아이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걸 보면 기분이 좋다. 이 놀이터에는 놀이터와 놀이기구를 오래 보아온 내가 보기에도 국보급 그네가 하나 있는데 매년 동네 분들이 페인트칠해서 튼튼하다. 이런 것을 보면서 나는 놀이터의 안전과 관리가 오롯이 공동체 구성원에서 나오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본다.
놀이터가 동네에서 가장 좋은 목에 자리 잡고 있는 것도 그렇다. 다른 곳에서 동네에 놀러 온 아이들도 길 건너 큰 놀이터보다 이 놀이터에서 놀려고 동네 아이들과 신경전을 벌이는 것을 보면 이 오래되고 좁은 놀이터의 매력이 무엇인지 짐작할 만하다. 동네 아이들과 외지의 아이들이 동네에 함께 와 있을 때는 정말 이 좁은 놀이터가 바글바글하다. 놀이터로 아이들을 부르는 것은 멋진 놀이기구가 아니라 친구이기 때문이다. 누가 처음에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정부의 공식적인 놀이터 통계에도 잡히지 않을 이 어설픈 놀이터를 아이들은 정말 좋아한다. 이곳은 내 놀이터 공부의 바탕 구실을 톡톡히 한다.
작년 초에 아내와 상의해서 흙으로 지은 바깥채를 동네 아이들 만화방으로 만들었다. 간판도 없고 이름도 없는 구들방 만화방이다. 나무 다루는 일을 잘하는 사람 좋은 친구에게 부탁해 책꽂이를 짜 넣었다. 이곳 또한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 가운데 하나다. 집사람이 만화 그리는 걸 좋아해 더 잘되었다. 겨울이면 불을 때고 배를 깔고 엎드려 만화를 보는 것은 상상만 해도 기분 좋다. 놀이가 뭐 별건가. 만화책을 옆에 쌓아놓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는 것이 놀이 아닌가. 한가한 것, 늘어져 있는 것, 할 일이 딱히 없는 것, 심심한 것, 멍하니 있는 것, 이런 것이 놀이의 꽃이다. 아이들이 만화방에서 뒹굴며 이 세계를 만나기 바라는 마음으로 여윳돈이 조금 생기면 만화를 구해 채워 넣고 있다. 놀다가 심심하면 만화 보고 만화 보다 심심하면 놀고, 이게 놀이이다. 움직이다 머물고, 머물다 움직이는 이런 리듬의 변화가 놀이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딸내미가 좋아하는 놀이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보련다. 여덟 살 딸아이는 뭐니뭐니 해도 높은 데 올라가는 걸 가장 좋아한다. 그리고 이어서 그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미끄러지는 걸 좋아한다. 어제는 농구 골대에 기어 올라갔다. 새로 만든 도로 옆 옹벽을 암벽 등반하듯 오르는 것도 좋아한다. 다리를 지나갈 때도 기어코 난간 바깥쪽으로 걷겠다고 해 아빠가 어른들 눈치를 보게 만든다. 결국, 동네 어른에게 아빠와 딸이 함께 꾸중을 듣고 요즘은 사람들 눈에 안 띄는 뒷산 나무 오르기로 옮겨가서 한 시름 놓은 상태다. 나무는 아마 인류 최초의 놀이기구일 것이다. 뒷산에 아이들이 오르는 전용 나무가 있다. 산비탈에 밧줄을 늘어뜨려 주기도 했다. 최근에는 엄마 자전거를 타고 동네 도로를 미끄러져 가며, 그 모습을 보는 내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는 중이다.
이렇게 동네 아이들과 몇 년을 함께 놀다 보니 동네 분들한테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날, 동네에 사는 어떤 분이 본격적으로 놀이체험마을 같은 것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셨다. 시에 이야기하면 어려운 일이 아니라 했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싫다고 하면 앞으로 아이들과 동네에서 이렇게 내키는 대로 노는 것이 어려워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걱정이 제일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만약 그분들의 의견을 따라 소위 ‘농촌체험놀이마을’ 같은 것을 하게 되었을 때 벌어질 일이 끔찍했다. 물론, 할 리도 없지만 말이다.
생각해보라. 그런 사업을 받으면 예산을 짜고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시간표를 짜서 아이들을 그것에 맞추어야 한다. 동네 아이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 우리 마을을 찾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도 헤아려야 한다. 평일 오후나 주말 온종일 아이들끼리 만나 자기들이 의논해서 결정한 대로 마음껏 놀던 아이들인데 이런 인위적인 것이 끼어든다고 생각해보라. 지원이나 프로그램은 이런 독을 품고 있다. 물론 필요한 곳도 있다. 그 경우는 주는 곳이나 받는 곳이나 모두 준비가 되어 있는 곳이고 철학을 공유할 수 있을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어렵겠다고 했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결정과 시간을 간섭하면 할수록 아이들 놀이는 심각하게 위협받는다. 나는 지금의 상태가 가장 좋은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도와야 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와 시간과 몸짓과 이야기를 ‘허용’하는 일이다. 우리가 노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놀아야 한다.
우리 집에 이래저래 찾아오는 분들이 있다. 그리고 함께 오는 아이들이 있다. 놀이공부를 한 십몇 년 했으니 어떤 분은 내가 그 아이들과 함께 놀기를 기대하고 오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집에 십 년 넘게 살면서 여러 아이를 만났지만 그렇게 놀았던 기억은 몇 번 없다. 아이들이 우리 집에 놀러 와도 나는 주로 하던 일상적인 일을 그냥 한다. 옛날 집이라 불을 때야 한다. 그러니까 나무가 필요하다. 내가 집에서 하는 일 중에 꾸준한 것이 산에 가서 나무하는 일이다. 산에 나무하러 가서는 지고 간 지게에 나무를 지고 내려오면, 산에 따라 올라온 아이들은 열이면 열, 근처에서 자기가 끌 만한 나무를 찾아서는 질질 끌고 내려온다.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봤을 때 산에서 나무하는 것은 우리 집에서 아이들이 두 번째로 좋아하는 놀이다.
아이들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아무것도 아이들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아이들은 일을 좋아한다. 톱으로 나무를 자르는 것도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즐긴다. 망치로 못 박는 것은 또 얼마나 쾌감이 있는지 안 해본 아이는 모른다. 나아가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들이 해보겠다고 주장한다. 진짜 문제는 일은 어른들이 하는 것이고 놀이는 아이들의 것이라는 잘못된 전제가 아닐까. 독일의 놀이터 디자이너 귄터 벨치히Günter Beltzig는 이런 말을 했다. “재미없는 놀이는 일이고 재미있는 일은 놀이다.”
그럼, 이쯤에서 아이들이 첫 번째로 좋아하는 놀이를 이야기하며 마쳐야겠다. 열 반찬이 필요 없다는 말이 있다. 맛있는 반찬 한 가지만 있으면 밥을 뚝딱 먹는다는 뜻이다. 같은 식으로 말한다면 열 놀이가 필요 없는 놀이가 있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아이들한테 꼭 해보게 하는 놀이인데, 그건 바로 ‘불놀이’다. 일상 속에서 하기도 어렵고, 조건이 되더라도 어른들이 절대 허용하지 않는 대표적인 행위가 ‘불을 가지고 노는 것’이다.
불놀이할 때 아이들 눈에는 불이 켜진다. 그래서 나는 라이터도 켜보고 싶다면 켜보라고 하고, 나무에 불을 붙여 보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고 한다. 불을 붙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고, 불이 꺼지고 있을 때 어떻게 살려내는지 아이들은 스스로 해보고 싶어 한다. 그리고 숯검정이 묻은 나뭇가지로 흙벽에다 그림도 마음껏 그린다. 그렇게 한바탕 놀고 난 아이들이 돌아가면 집은 엉망이 된다. 아내가 뭐라 하지 않아 다행이다. 어질러진 마당과 아궁이를 치우며 속으로 웃는다. 나는 이 힘으로 산다. 아참! 아이들이 우리 집에 와서 불놀이만큼 좋아하는 놀이가 하나 더 있다. 지금은 큰 개가 된 ‘산’이와 노는 거다. 아이들과 개가 만나면 놀이는 그걸로 끝이다.
저마다 사는 사정은 다르지만 먼 곳을 찾아 헤매는 것을 멈추고 저마다 사는 곳을 놀이터로 가꾸는 일이 먼저라는 말을 하고 싶다. 내가 지금 사는 집과 가정이 아이들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궁극의 놀이터이기 때문이다. 나의 아이와 그의 친구들이 만나는 일상이 놀이이고, 아이들이 노는 곳 어디든 놀이터다. 문제는 어른들이 아이가 인생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과 가정을 아이들의 놀이터로 생각하고 있느냐이다.
작년에 놀이터 이야기를 한참 하고 다녔다. 또 한 해 전에는 세상의 놀이터를 보러 다녔다. 그런데 그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베를린, 코펜하겐, 도쿄…. 여러 도시의 어린이 놀이터를 둘러보고 다시 우리나라 놀이터를 보니 ‘가지 말 걸’ 하는 생각이 나를 때렸다. 그곳은 너무나 다른 세계였다. 같은 어린이 놀이터인데 만드는 과정과 만들어진 후의 관리가 달랐다. 무엇보다 그쪽 아이들은 놀이터에 올 수 있었다. 먼저 그 규모와 꼼꼼함의 차이가 너무 힘들었다. ‘아이들을 중심에 놓고’ 출발하는가 아닌가 바로 그 차이였다. 그것은 놀이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어쩌랴. 나와 우리 아이와 동네 아이들은 여기에 살고 있고, 어떻게든 여기서 놀아야 하지 않은가. 그 헛헛함을 달래면서 시골집에 돌아와 집 짓고 남은 재료로 뚝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적정 놀이터’라 부르기로 했다. 여러 나라를 돌고 돌아 내 집 앞 놀이터를 가꾸는 일을 하는 과정을 글로 담았다.
벌써 2년 전이다. 동네 아이들이 우리 집 앞마당으로 모여들었다. 비가 좀 흩뿌리는 날씨였다. 아이들은 집 한쪽에 만들어놓은 만화방과 마당을 오가며 왁자하게 뛰놀다가 누가 먼저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아지트’를 만들기로 했나 보다. 집을 손보면서 벽면 작업을 하려고 썼던 삼각지지대가 마당 한가운데 뒹굴고 있었다. 아이들이 그것을 마당 한가운데로 가져오더니 한쪽에 기대놓은 판자 조각을 가져와 그 위에 길게 올렸다. 그렇게 올려놓으니 양쪽 끝이 아래로 쳐졌다. 아이들은 마당을 돌아다니다가 쌓아놓은 장작더미에서 소나무 둥치를 가져와 양쪽에 세웠다. 이 대목에서 아이들은 ‘연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망치를 찾더니 못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판자와 소나무를 연결해 못을 박았다.
그렇게 삼각지지대를 경계로 양쪽이 나뉘었다. 자연스럽게 한쪽은 여자아이들, 다른 한쪽은 남자아이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양쪽에 서로 마주 보고 앉아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더니 무언가 허전했나 보다. 뭘 좀 덮을 게 없느냐고 했다. 그래서 창고 안에 들어가 공연 때 썼던 걸개그림 현수막을 꺼내줬다. 그 옆에 있던 보자기도 몇 장 달라고 했다. 한번 그렇게 가져가고는 테이프 달라, 끈 달라, 칼 달라 하더니 아이들은 마침내 아지트를 완성했다. 종이상자를 가져와 바닥에 깔고는, 자기 방인 듯 편히 앉아 밖에 흩뿌리는 비를 느꼈다.
나중에 다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왜 우리 동네 아이들은 첫 번째로 놀이기구가 아닌 아지트를 만들었을까? 깊이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안정’과 관계있는 것 같았다. 먼저 집을 만들어 편안한 마음의 상태를 가꾸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아이들은 날이 저물어 집으로 돌아가면서 계속 같은 말을 했다. 절대 허물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아이들과 놀다 보면 참 곤란한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하필 아지트를 마당으로 들어오는 통로 쪽에 지어놓아 드나드는 우리를 옴짝달싹 못 하게 해놓았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시간이 흐르면서 아지트는 짓는 과정과 역순으로 서서히 허물어져 갔다. 물론 아이들은 그사이에도 끊임없이 와서 놀았다. 그렇게 아이들은 두 번째 놀이기구를 만드는 길로 들어선다.
첫 번째로 만든 아지트가 풍화작용 속에서 빛이 바랠 때쯤 나는 아이들에게 이걸 다른 곳으로 옮기자는 제안을 했다. 아이들은 흔쾌히 동의했고, 소나무 장작을 쌓아놓은 앞으로 구조물을 옮겼다. 걸개그림 현수막은 다 날아가고 보자기도 다 떨어졌지만, 아이들은 구조물 자체는 그대로 옮겨지길 바랐다. 그래서 아이들과 우리 내외가 양쪽을 들어 옮겼다. 그런데 그렇게 옮긴 다음에 신세계를 만들어냈다. 처음 아지트를 만들 때 바람막이로 쓰였던 기다란 널빤지가 여기에 턱 하니 걸쳐지면서 미끄럼틀이 생겼다. 이 널빤지는 뒤집어 보면 ‘한양미술학원’이라 적혀 있는 오래된 간판이다. 어떻게 우리 집 마당까지 흘러들어왔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인 이 널빤지는 최근에 만든 복합놀이기구에 이르기까지 빠지지 않고 제대로 한몫을 하고 있다. 때로는 마당에서 식탁으로, 때로는 널뛰기용으로도 쓰인다. 참 쓰임이 만능인 ‘한양미술학원’이다.
튼튼한 구조에 덧댄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올라서면 항상 낭창거렸다. 안전의 관점에서 보면 빵점인 놀이기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단단하지 않고 제대로 고정되어 있지 않은 이런 것이 아이들의 놀이욕구를 자극한다. 아이들은 움직이는 미끄럼틀을 단박에 뛰어올랐다 뛰어내리는 일을 되풀이했다. 소리를 지르며. 20개월 된 막내는 이 미끄럼틀을 맨발로 기어 올라갔다가 되돌아 타고 내려오는 재미를 알았다. 동네 누나 형들이 끌어주고 안아주며 올렸는데 어느새 무리 없이 혼자 탔다. 고정되어 있지도 않고 올라가면 흔들리는 판자 위에서 아이들은 새로운 몸의 감각을 느꼈을 것이다. 단단한 구조 속에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편안함과는 다른, 내가 중심을 잡아야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몸을 제대로 느꼈을 것이다. 이런 불완전함이 주는 즐거움이 ‘적정 놀이터’의 가치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실 너무 단단하고 질서정연하다. 놀이는 그것을 파괴하는 것이다. 부수고 망가뜨리고 흔들리는 것이 놀이의 본령임을 아이들은 알고 있다. 우리는 그런 아이들을 지지해야 마땅하다.
놀이터와 놀이기구라면 비싼 장난감처럼 튼튼하고 좋고 화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정작 아이들이 그것을 원하는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원하는 것과 어른들이 주고 싶은 것은 자주 어긋나기 때문이다. 저 어설퍼 보이는 놀이기구를 아이들은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구르고 뛰어내리다 보니 판자는 더 휘어지고 모서리는 닳아갔다. 널빤지 놀이기구가 운명을 다해가고 있었고 날은 더워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마당에 모여들었고 저들끼리 아무것도 없이 잘만 놀았다. 아이들 일고여덟이 모였으니 무슨 놀이기구가 따로 필요하겠는가. 그런데 날씨가 더워도 너무 더웠다. 뛰어놀다가 누군가 땡볕을 피해 쉴 수 있는 바깥 쉼터를 만들자고 했다.
2호 작은 미끄럼틀은 한쪽에 그대로 두고 여름을 시원하게 마당에서 보낼 수 있는 천막 만들기를 시작했다. 무얼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가 답은 역시 ‘적정 놀이터’로 결론이 났다. 적정 놀이터, 이름은 거창하지만 사실 ‘있는 걸 가지고 어떻게든 뚝딱거려보는 놀이터’란 뜻이다. 우리 집은 뒷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아궁이에 불을 때 난방을 하는데 집 뒷산에 있는 나무는 모두 소나무이다. 소나무는 태울 때 그을음이 많이 나고 안동에서 쓰는 말로 ‘불깡’, 다시 말해 화력이 약하다. 그래서 시내 제재소에서 둥그런 참나무를 네모기둥으로 잘라내고 남은 나무를 묶어 파는 것을 한 해 두 단 정도 사다가 말려서 땐다. 트럭에 한 단을 꽉 실으면 10만 원이다. 이 두 단과 쉬엄쉬엄 산에 가서 소나무를 하면 일 년을 뜨듯하게 지낼 수 있다.
마당 한쪽에 그렇게 쓰다 남은 기다란 참나무가 있었다. 이걸 연결해 상호 지지할 수 있게 하고 그 위에 뭘 덮으면 되지 않을까 궁리하면서 아이들과 뚝딱거리기 시작했다. 기초를 다지고 양쪽에 기둥을 박고 위에 보를 얹어 서까래를 길게 땅까지 빼서 텐트처럼 만들었다. 아이들은 기둥을 잡아주면서 다음에 어떤 나무를 쓸지 생각했다. 그렇게 뼈대가 완성되었다. 다음은 무엇으로 지붕을 덮을까 궁리했다. 현수막 천은 비도 새고 햇빛을 오래 보면 삭을 것 같아 다른 것을 찾다가 비 올 때 장작을 덮는 방수 천막을 발견했다. 그걸 아이들과 함께 서까래에 고추 끈으로 묶어 모양을 만들어갔다.
이 텐트 아지트는 그 뒤로 여름 한 철 태양을 피하는 아이들의 아지트이자 만화방이자 낮잠 그리고 밥과 간식을 먹는 자리로 너무나도 기막히게 쓰였다. 무엇보다 함께 만들었다는 것이 아이들을 설레게 했고 그것이 나중에는 큰 애정으로 이어졌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거나 시내로 갈 때 큰길을 지나가는데 거기서 이 아지트가 보였다. 아이들은 고개를 빼고 아지트를 봤고 나에게 치우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이것이 제품화된 놀이기구와 만든 놀이기구의 차이일 것이다. 아이들은 하고 싶다. 때로는 하고 싶지 않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마음, 나는 그것을 놀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니까 동기가 ‘놀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동기가 없는,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하도록 밖에서 권유나 강요되는 것은 아무리 놀이의 이름을 앞에 내세운다 해도 그것이 놀이일 수 없는 까닭이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올해 땔 참나무도 두 단 실어와야 할 때가 되었다. 트럭이 마당 한가운데까지 들어와야 하는데 텐트 아지트가 길을 막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다. 내년 여름에 다시 아지트를 만들자고. 아이들이 서운한 듯 허락을 했다. 그렇게 텐트 아지트를 철거했다. 놀이란 이렇게 짓고 부수는 것이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창조와 파괴라고 한다. 나는 아이들의 놀이가 어른들의 종교와 같은 급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아이들은 놀면서 없던 것을 만들어내고, 만들어낸 다음에는 가차 없이 파괴해버린다. 진정한 놀이터란 이런 아이들의 창조와 파괴가 가능하고 허용된 장소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지금의 놀이터는 아이들에게 적합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아이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제재소에서 참나무 한 단을 싣고 오면서 어디에 쓸까 특별히 생각하지 않고 어딘가에 쓰겠지 하며 너른 120*240짜리 합판 두 개를 같이 실어왔다. 참나무 두 단을 나란히 내려놓고는 합판도 내려서 철사로 묶인 참나무 단에 기대어 놓았다. 트럭이 나가고 돌아와 정리하려고 하다가 문득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대로 미끄럼틀을 만들면 좋겠구나 싶었다. 딸한테 물었더니 대환영이었다. 그래서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그냥 합판은 너무 낭창거리기 때문에 뒷면에 책꽂이 만들다 남은 나무를 덧대어 한쪽이 울거나 덜렁거리지 않게 지지 구조를 만들었다. 딸도 튀어나온 못을 망치질을 해서 눕혔다. 재료비는 2만 원 정도 들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렇게 좋아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좋아했고 잘 미끄러졌다. 모서리를 사포로 부드럽게 하는 것도 아이들이 따라 했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한양미술학원’ 간판을 옆쪽에 덧대 20개월 갓 넘은 우리 집 막내와 동네 유아들을 위한 미끄럼틀을 만들었다. 막내는 이 미끄럼틀을 기어 올라간 다음, 나무 단을 딛고 붙잡으며 정상으로 올라가 큰 미끄럼틀을 잘도 타고 내려온다. 아이들은 왜 이 미끄럼틀에 열광할까? 첫 번째, 무자격자가 만들어 몹시 어설프고, 그래서 만만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자신의 삶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친한 사람과 함께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걸 나는 ‘적정 놀이터’의 세 가지 덕목이라고 본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묶인 참나무 단을 풀어 아궁이에 넣기 좋은 크기로 나무를 잘라놓아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나무 단에 걸쳐놓은 미끄럼틀을 떼어 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처음엔 반대했지만, 결국 다른 곳에 설치하기로 합의를 했다. 그런데 막상 뜯어내고 보니 이 큰 미끄럼틀을 집안 어디에도 걸칠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몇 날 고민을 하다가 미끄럼틀을 하나 더 만들어 서로 기대어 놓으면 되지 않을까 싶어 탄생한 것이 바로 이 놀이기구이다. 이름 붙이자면 ‘적정 암벽 놀이기구’라고나 할까.
120*240짜리 합판 두 장을 흔들리지 않게 보강을 한 뒤 ∧ 형태로 서로 기대놓은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서로 버틸 수 있게 속은 기하학적인 형태로 가로질러 흔들림을 잡았다. 한쪽 경사면은 발을 디딜 수 있는 암벽을 만들고 다른 한쪽은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데 딸아이가 줄을 걸어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그걸 붙잡고 올라갔다. 두 합판이 만나는 지점에는 아이들이 걸터앉을 수 있게 평평한 의자 공간을 마련했다. 아이들의 반응은 정말 최고였다. 우리 동네 아이들이 모두 다 기어 올라가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놀이기구 또한 변화와 발전을 거듭했다. 처음의 단순한 ∧ 형태는 기어오르고 넘기에 알맞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꾸 옆으로 돌고 싶어 하는 몸짓이 보여 양옆에 가로대를 박아주었더니 아이들이 ∧ 형태의 구조물을 ○ 형태로 붙잡고 돌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 안쪽으로 통과하는 길을 찾아내더니 마치 ∞(무한대) 모양으로 동선을 그리며 노는 것으로까지 나아갔다. 구조가 아이들 몸의 상상력을 자극한 것이다. 이것이 놀이기구의 첫 번째 원리이다.
그렇지만 불평도 늘어놓았다. 기어코 미끄럼틀은 있어야 한다는 다수의 의견이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있다. 누워서 역기 들어 올리는 안 쓰던 운동기구 틀을 뒤에 바치고 미끄럼틀을 하나 더 만들어 고정했다. 적정 놀이터는 다른 이름으로 ‘재활용 놀이터’라고 해도 좋다. 남고 버려진 것을 적극 활용하면 된다. 미끄럼틀은 각도가 중요하다. 아이들에게 여러 번 타보라고 한 다음에 가장 좋은 각도에서 고정했다. 여기서 또 빠질 수 없는 ‘한양미술학원’ 간판을 뒤에 덧대 좁고 아슬아슬한 미끄럼틀을 추가로 만들어 아이들 모험심을 자극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 글에서 소개한 마당 놀이터 변천사는 ‘한양미술학원’ 간판의 이동사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이렇게 해서 드디어 한 마당에 놀이기구 두 개가 있는 새로운 복합놀이터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놀이기구가 둘로 늘어나니 아이들은 이 둘을 잇는 놀이를 만들어내고 서로의 기운에 맞는 놀이기구를 선택할 수 있어 다툼이 눈에 띄게 줄었다. 두 개의 놀이기구와 만화방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환경이 동네 아이들을 넉넉하게 만드는 것 같다.
1호 아지트를 시작으로 어느새 5호 복합놀이터까지 흘러온 집 앞 동네 놀이터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혹은 사그라질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5호 놀이기구도 언젠가는 부수어질 것이다. 어쩌랴. 그게 놀이인 것을. 그것은 온전히 동네 아이들의 놀이욕구에 달린 것이리라. 나는 그냥 그 아이들의 놀이욕구를 잘 보고 듣고 기록하는 일을 할 뿐이다. 하자고 하면 같이 하고, 만들자면 같이 만들 것이다. 아이들 욕구에 적합한 놀이터는 더디지만 이런 순서를 꼭 밟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한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이기구를 스스로 만들어 놀 수 있는 마음을 믿고 그걸 만들 수 있는 재료와 연장의 사용 방법과 환경을 가꾸어주는 일을 내 일로 삼으려고 한다.
아이들은 오르고 싶고 높은 곳에 올라서고 싶다. 매달리고 싶고 뛰어내리고 싶다. 기어오르고 싶고 미끄러져 내려오고 싶다. 흔들리고 싶고 어지럽고 싶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무언가 만들고 싶다. 그런데 그것이 놀이기구라면 더할 나위 없이 즐겁게 만들 수 있다. 아이들은 이렇듯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만만한 환경이 가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몸을 일깨울 수 있다. 그래야 자신의 몸이 살아있음을 알 수 있다. 나에게 누군가 놀이를 다시 정의하라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 몸이 살아있음을 깊이 스스로 느끼는 것, 그것이 놀이라고 말이다. 아! 살아있어 행복하구나 말이다.
몇 억을 들여서 만드는 놀이터와 10만 원도 들지 않는 집 앞 놀이터, 큰돈 들인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바빠 갈 수가 없고, 10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함께 만든 집 앞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버글거리는 이 두 세계를 오가며 놀이터를 만드는 나는 갈등한다. 그러다 결심을 한다. 10만 원이면 차고도 남는 적정 놀이터를 권하기로! 조그만 자투리땅과 아이들이 가까이 있다면 당장 적정 놀이터를 시작해보자. 그런 땅이 없다면 일시적 무단 점거도 한 방법이다. 곧 봄이다. 우리에겐 지금 싱그러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불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진정한 상상력이고 그것이 놀이이다. 적정 놀이터를 아이와 함께하는 벗들에게 권한다.
(계속)
· 어린이와 시민과 행정의 파트너십으로 만든 1호 기적의놀이터 ①② | 편해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