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이 번역되어 2014년 12월 1일에 출간되었다. 이 말은 몇 가지 함축을 가진다. 먼저, “옮긴이의 말”처럼 《종의 기원》은 “이미 국내에 여러 훌륭한 학자들의 번역본이 나온” 바 있으므로, 또 다른 번역본 출간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뚜렷하게 알아야만 한다. 이번 번역본은 《종의 기원》 초판(1859년)을 번역했다. 옮긴이는 “초판이 다윈의 의견을 가장 잘 반영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기존의 번역본들은 다윈 생전에 출간된 6개의 판본들 중에서 몇 판을 번역대본으로 삼았는지는 모르겠다. 그것까지 밝혔으면 좋았을 것이다. 《종의 기원》은 몇 판을 번역대본으로 삼을 것인지를 따져보아야 할 책이다 ─ 이는 다윈이, 자신의 책이 불러일으킨 논란을 의식하고 자신의 주장을 당대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끊임없이 수정을 한, 좀 더 포괄적으로 말하면 수사학에 노고를 기울인 책이었음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종의 기원》은 오래전에 나온 과학책에 불과한가 아니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되풀이해서 읽어보아야 할 책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은 텍스트의 제목에 대한 상세한 주해, 텍스트 성립사와 구조, 다윈의 방법론, 과학사에서의 위치를 해명해 주어야 할 역자해설을 참조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우리는 여기서 과학(또는 과학사상)의 역사에 관한 표준도서를 참조하기로 하자. 그것은 찰스 길리스피의 《객관성의 칼날》이다.
“《종의 기원》은 과거로부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동물들이 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확립했다.” ─ 《종의 기원》이라는 책이 주장하는 바를 딱 한 문장으로 집약하고 있다. “그러나 에라스무스 다윈, 라마르크, 괴테, 디드로 등을 앞에 놓고 변이성이라는 사실을 다윈이 발견했다고 주장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참신한 것은 그 이론, 자연철학의 개념이었다.” ─다윈이 수행한 탐구가 가진 의의를 연구사적 맥락에서 짚어주는 설명이다. “다위니즘이 직면해야 할 반대가 두 종류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은 진화의 사실을 부정할 것이나 이 반응은 지적으로는 하찮은 것이다. 철학적인 공격이, 자연선택설 속에 암묵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세계관 ─ 더욱 깊게 인간적인 감수성을 손상시킨 ─ 에 대해서 가해졌던 것이다.” ─ 《종의 기원》으로 인해 생겨난 문제들 중에서 어떤 것이 심각한 것이고 어떤 것이 하찮은 것인지, 즉 일종의 영향사影響史를 정리하고 있다. 표준도서는 책을 읽을 때 각별히 유념해야 하는 지점도 알려준다: “다윈의 문장은 너무 평범해서 그 논지의 독창성과 위력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특별한 해석을 요한다.” 《종의 기원》을 읽는 방법은 따로 있으며, 그걸 모른다면 적어도 꼼꼼하게라도 읽어야 할 이유가 이것이다.
표준도서를 통해, 독서에서 결코 저질러서는 안 되는 것과 반드시 유념해야 하는 것을 찾았으면 조금은 상세한 안내도 필요할 텐데 이를 위해 양자오의 《종의 기원을 읽다》를 들여다본다. 《종의 기원》의 구조를 해명하고 있고, 전체를 세 덩어리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종의 기원》이 가진 독특한 수사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앨런 그로스의 《과학의 수사학》, 제10장(“《종의 기원》의 기원”)도 일독해두자.
나는 이번에 출간된 《종의 기원》을 이런 절차를 거쳐 읽었다. 예전에는 그저 고전이라 읽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읽었다. 인간의 정치적 삶과 그것이 영위되는 공동체에 대한 40주 강의를 준비하면서 그러한 것과 대비되는 자연적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고, 그러던 차에 새로운 번역본이 나왔던 것이다. 이처럼 고전은 특정 국면의 문제의식을 해명하기 위해 곧바로 참조할 수 있는 믿음직한 텍스트이다. 이번의 독서를 통해서 무엇을 깨달았는가? 인간의 정치적 삶은 생물학적 퓌시스와는 다른 차원과 영역에서 전개된다는 것, 그 삶은 노모스에 근거한 ‘의무’를 정초하는 과정 자체에서 의의를 얻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정평있는 표준도서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이다. 어쨌든 찰스 길리스피는 내가 어렴풋이 깨달은 것을 다음과 같이 집약한다: “만약 우리가 세계를 기술하는 과학의 본성을 잘 분별하여, 그것이 서술적일 뿐이지 규범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과학과 종교 사이의 양자택일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과학은 자연에 관한 것이지 의무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물에 관한 것이다. 기독교는 인격에 관한 것, 인간의 인격과 신의 인격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생물학은 인간이라는 동물이 진화의 소산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과학은 인간이 진화의 소산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 따위를 발견한 것은 아니다. 원리적으로 과학은 (전능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자연선택이란 이름 아래서 작동하는 무의미한 우연을 허용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인간이란 자연적 존재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던 사람들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