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 │ 국민일보 종교부 기자smshin@kmib.co.kr
최근 기독교계 원로인 A목사를 만났다. 진보적 성향의 그는 평소 천주교 신부나 불교 스님과도 자주 만나 교류한다. 그는 최근 신부님과 스님에게 들었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해주었다. 우선 서울 인근의 한 대형 사찰 스님이 했다는 말이다.
“목사님, 요즘 우리 사찰 큰일 났습니다. 신도 수가 엄청 떨어졌어요. 6만 명이던 신도가 4만5000명이 됐어요.”
이번엔 성당 신부다. “목사님, 요즘 가톨릭 신도 수는 줄지 않았어요. 그런데 헌금이 확 줄었어요. 아주 많이요. 어찌 된 일일까요.”
개신교는 어떨까. A목사는 두말하면 잔소리인 듯 이렇게 말했다. “교회도 이젠 숫자 가지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는 정화가 필요합니다. 지금 종교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어요. 앞으로 더 심화될 듯합니다.”
현 시국, 종교 외면하게 만드나
바야흐로 ‘탈종교’ 시대를 살고 있다. 소금과 빛, 사회의 목탁 등으로 대변되던 종교가 이제 그 맛과 빛, 소리를 상실하면서 종교인 스스로 이탈하기 시작한 것이다. 교회나 사찰, 성당 할 것 없이 겪고 있는 신도 수와 헌금 감소는 본격적 ‘무종교’ 시대를 향한 신호탄일지 모른다.
지금 상황에선 어쩌면 더 강력한 반종교적 무신론의 쓰나미가 밀려올 수 있겠다. 그 진앙은 ‘당연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전모에서 밝혀진 박근혜 대통령과 영세교靈世敎 교주 최태민과의 관계이다. 일국의 대통령이 한낱 사이비 교주이자 무속의 샤먼, 그리고 목사 행세를 하던 사람에게 현혹돼 40여 년을 그와 그의 2세에게 철저하게 종속돼 있었다는 충격적 전말을 목도하면서 종교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마저 무너진 것이다.
종교인을 포함해 모든 국민들은 사이비 종교에 의해 자행될 수 있는 온갖 비리적 행태들의 중심에 대통령이 있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또 이른바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가 한 개인과 가정을 몰락하게 할 뿐 아니라, 사회를 혼란시키고 나아가 국가의 기강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역사적 실체를 눈앞에서 목도했다.
물론 사이비종교나 샤머니즘이 ‘메이저’ 종교가 아니더라도 국민들은 어쩌면 ‘박근혜-최태민’의 관계 속에서 종교 전반에 대해 몸서리를 쳤을지도 모른다. 종교 고유의 초월적 측면이 있으며 그것이 극단적으로 흐를 때 어떤 양상이 빚어졌는지 익히 알고 있어서일 것이다. 종교가 사회에 걱정을 끼친 사례는 이번만이 아니었다. 2년 전 발생한 세월호 참사에서도 국민들은 같은 경험을 해야 했다.
일부 언론들이 집중 보도했지만 세월호 역시 어두운 종교적 실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소위 개신교에서 이단으로 지목받은 단체였고 국민들은 그 종교에 대한 온갖 소문과 의혹에 대해 그대로 지켜봐야 했다.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사태는 세월호 사태의 (이단종교 지도자) 건과 비슷하다”고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최태민의 데자뷔
발 빠른 사람들은 비슷한 사례를 역사 속에서 찾아내기도 했다. ‘신돈’이나 ‘라스푸틴’이란 이름이 갑자기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린 이유이기도 하다. 신돈?~1371은 고려 말 승려이자 혁명가였다. 처음엔 공민왕에게 신임을 얻어 국정을 펼쳐나갔다. 하지만 집권 말기가 되자 사치와 향락, 부정 축재로 권문세족들로부터 미움을 샀다. 공민왕은 그가 세력을 넓히자 견제했고 역모죄 혐의를 씌워 참사시켰다.
라스푸틴1872~1916은 러시아의 수도사였다. 최면술을 수단으로 하는 신흥종교인 편신교鞭身敎를 신봉했다. 그는 제정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부부의 총애를 얻었는데 특히 황후 알렉산드라가 그를 신처럼 떠받들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라스푸틴이 니콜라이 2세의 아들 알렉세이의 병을 최면으로 낫게 하면서다. 이후 라스푸틴은 황후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었고 막강한 권세를 휘둘렀다. 그러나 대중은 황후와 라스푸틴의 관계를 조롱했고 귀족들도 비난 여론이 비등했다. 결국, 라스푸틴은 1916년 살해당했다. 로마노프 왕조 역시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지금 대한민국 대중들은 신돈과 라스푸틴의 데자뷔를 최태민과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사교와 관련된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그 말을 믿는 국민은 대통령 지지율만큼 될지 모르겠다.
사이비종교 전문가 대전신학대 허호익 교수는 “교주와 절대적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주변에서 비판을 하더라도 믿지 못한다. 오히려 그렇게 비판하는 사람들을 절대적으로 불신하면서 교주의 말만 절대 순종하게 된다”고 했다.
종교개혁 500주년, 희망 종교로 탈바꿈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다종교 사회인 한국은 향후 ‘탈종교’ 또는 ‘무종교’ 사회로 급선회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디를 가나 종교적 기호와 사인을 마주하고, 길을 걷거나 지하철을 이용해도 전도자의 메시지를 접하게 된다. 안 그대로 종교 과잉을 느끼던 차에 맹목적 종교의 폐해를 온 국민이 생생히 목격한 이 상황에서 새로운 종교를 갖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미 한국 사회에 종교적 신뢰도는 매년 하락 중이다.
‘2015년 한국의 사회·정치 및 종교에 관한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신뢰도는 겨우 11.8%에 머물렀다. 이는 2014년에 비해 무려 13.2%나 떨어진 수준이다. 종교별, 성직자별 신뢰도는 천주교(39.8%)가 가장 높았고, 불교(32.8%), 개신교(10.2%) 순이었다. 성직자에 대한 신뢰도는 종교계에 대한 호감도와 비슷했다. 신부가 51.3%로 가장 높았고, 스님 38.7%, 목사 17% 순이었다. 앞에 언급했던 신부님, 스님, 목사님의 한숨 소리가 더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탈종교 현상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판치는 중동에서는 이미 시작됐다. ‘이슬람 국가IS’의 잔학성과 그 맹목적 신앙 탓에 오히려 이슬람 신앙을 포기하는 온건한 무슬림들이 늘고 있고, 젊은이들 사이엔 무신론도 확산된다는 뉴스가 앞다퉈 나왔던 터다.
시리아는 정치적 분열과 종교 갈등, 내전으로 고국을 등지는 현상이 그칠 줄 모른다. 현재 6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국경을 넘었다. 난민들은 그들이 탈출하기 위해 허겁지겁 탔던 작은 배가 흔들리며 정처 없이 바다를 헤맸듯, 지금 그들은 온 세계를 떠돌며 방황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해 독일 베를린의 난민 지원국을 방문했을 때 만났던 시리아 남자를 잊지 못한다. 그는 난민 인정을 받기 위해 새벽부터 나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함마드라는 이름의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평생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로 알고 믿어왔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내 조국 시리아에서는 평화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 독일엔 평화가 있다. 나를 받아준 독일이 고맙다.”
대부분 언론사가 연말이 되면 ‘10대 뉴스’를 발표한다. 올 연말 10대 뉴스는 언론사가 아니어도 누구나 선정할 수 있을 것이다. 최태민, 사이비, 이단, 영세교, 무당, 오방색 등이 순위에 오를지도 모르겠다.
개신교는 내년에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다. 말 그대로 개혁하지 않으면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평상시 교회가 하던 대로 기념행사만 연다면 안으로 더 큰 역풍을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이란 이 기회를 살려야 할 것이다. 진실한 종교로서 거듭나야 한다. 관심 있는 이들이 읽어볼 만 한 도서 목록을 첨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