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머리말
장편소설 <칼의 노래>는 정유년(1597년) 4월 1일부터 시작하여 무술년 (1598년) 11월 19일 이순신의 죽음으로 끝난다. 소설에서 우리는 그것보다 훨씬 이전의 여러 사건들과 만나게 되지만, 작가의 서술은 거의 이 시간대에 바쳐져 있다. 그것은 저승의 문턱까지 다녀와야 했던 이순신의 행장을 작가가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들여다봄으로써 집중과 압축을 얻고자 노력한 까닭일 터다.
일 년 반의 시간은 왜란으로 피폐된 조선의 서해와 남해바다와 거의 모든 산야와 만난다. 이순신이 왜적들과 맞섰던 전장 하나하나에 대하여 작가 김훈은 단아하게 써내려 간다. 임금이 버리고 떠난 도성의 을씨년스러운 풍경과 의주로 향하는 어가행렬에도 작가의 시선은 있다. 작가가 <칼의 노래>를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다리품을 팔았는지 우리는 안다.
그런 시간과 공간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작가는 무엇인가를 드러내려고 고심한다. 고심의 한가운데 인간들이 있고, 그 모든 인간들의 중심에 인간 이순신이 있다. 작가는 영웅이나 성웅이 아니라, 인간을 그려내고자 무진 애를 쓴다. 임진왜란 이후 언제나 오직 영웅으로서만 숭앙된 이순신이 아니라, 죽음의 자리를 찾아 헤맸던 인간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순신이 간구한 '죽음'의 배후에는 왜적과 선조가 함께 자리한다. 사자처럼 용감했던 의병장 김덕령을 때려죽인 것은 임금과 임금의 두려움이었다. "임금은 장수의 용맹을 원했으나, 그 용맹을 두려워하였다"고 작가는 쓴다. 인간 이순신의 바닥 모를 고뇌는 바로 여기에 근원을 대고 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죽음의 형식을 그는 희구하는 것이다.
"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다. 나는 나의 충을 임금의 칼이 닿지 않는 자리에 세우고 싶었다. 적의 적으로서 죽는 내 죽음의 자리에서 내 무와 충이 소멸해주기를 나는 바랐다." (제1권, 74쪽)
1. 인간묘사
작가는 여러 인물들의 면모를 약여하게 드러내며, 묘사를 통하여 전쟁의 본질과 원형에 다가서고자 한다. 하지만 그는 인물들을 평하되, 그 평으로 인물의 전체상을 그리려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단호하게 제시하고, 짤막하게 설명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작가의 인물평과 사건서술 사이의 촘촘한 인접성과 인과성을 믿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힘이다.
"나는 죽음을 죽음으로써 각오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각오되지 않는 죽음이 두려웠다... 나는 고쳐 쓴다. 나는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결국 두려웠다. 이러한 세상에서 죽어 없어져서, 캄캄한 바다 밑 뻘 에 묻혀 있을 내 백골의 허망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세상에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제2권, 55쪽)
초라하고 허접한 삶일망정 이순신은 오래도록 살고 싶었다. 전쟁으로 아수라판이 되어버린 이 버림받은 세상에서 세월의 마디를 헤아려가면서 이순신은 살고자 하였다. 그러나 바다에서 적들과 전투하면서 이순신은 언제나 한발을 죽음 깊은 곳에 묻어두어야 했고, 하여 언제나 죽음의 공포와 망령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
위대한 야전사령관 이순신의 사유 뒤켠에는 늘 선조가 있다. 임금은 여러 가지 모습을 띠고 그에게로 다가선다. 혹은 우유부단하고 의심 많은 인간으로, 더러는 이순신의 생살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절대군주로, 때로는 적과 구별되지 아니하는 사악한 존재로, 마침내는 화려한 수사로 가득 찬 언어와 잦은 울음으로 피폐한 조정과 종묘사직을 지켜나가는 무력하되 교활한 왕으로 그려진다.
"임금의 언어와 임금의 울음을 구별하기 어려웠다. 임금은 울음과 언어로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언어와 울음이 임금의 권력이었고, 언어와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칼은 보이지 않았다. 임금의 전쟁은 나의 전쟁과 크게 달랐다. 임진년에 임금은 자주 울었고, 장려한 교서를 바다로 내려 보냈으며, 울음과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칼날은 번뜩였다." (제2권, 47쪽)
작가는 우의정 정철, 도원수 권율, 의병장 김덕령, 명나라 수군제독 진린, 진린의 연락관 등자석, 경상 우수사 배설, 거제 현령 안위, 녹도 만호 송여종, 미로항 첨사 김응함, 종사관 김수철, 이순신의 셋째아들 이면과 그를 죽인 아베 준이치, 이순신의 어머니와 아내와 같은 인물들을 이순신의 관점을 통하여 묘사함으로써 그가 어떻게 7년여에 걸치는 전란의 조선에서 세상과 대면했는지 보여준다.
<칼의 노래> 첫머리 '일러두기'에서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 글은 오직 소설로 읽혀지기 바란다"고 썼다. '오직' 소설로만 독서되기를 원하는 작가의 흉중에는 어떤 저어함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거기에는 소설 이외의 어떤 것으로도 평가됨을 거부하는 소설가의 장인의식이 강렬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에 대한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원균은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고 아무도 말리지 못할 무서운 적의를 지닌 사내였다. 그 사내는 모든 전투가 자기 자신을 위한 전투이기를 바랐다... 그의 활화산 같은 적의와 분노가 날개를 펴고 달려드는 적의 방사진 앞에 장졸과 함대를 집중시켰던 것이다." (제1권, 25쪽)
"정철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민첩하고 부지런했다. 그는 농사를 짓는 농부처럼 근면히 살육했다. 살육의 틈틈이, 그는 도가풍의 은일과 고독을 수다스럽게 고백하는 글을 짓기를 좋아했다. 그의 글은 허무하고 요염했다." (제1권, 47쪽)
2. 자연묘사
<칼의 노래> 도입부에서 독자는 전쟁을 독서하지 못한다. 안으로 빼어난 서정성을 품고 있는 자연묘사는 바다와 섬으로 대표되는 남해의 풍광을 절경으로 그려낸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뭍으로 건너온 새들이 저무는 섬으로 돌아갈 때, 물 위에 깔린 노을은 수평선 쪽으로 몰려가서 소멸했다… 바다에서는 늘 먼 섬이 먼저 소멸하고 먼 섬이 먼저 떠올랐다." (제1권, 17쪽)
자연묘사는 봄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나는 봄날의 섬과 섬을, 거기 서식하는 새들의 이동경로와 귀소를, 섬의 아침과 저녁을 아치 있게 읊조리는 서사시와도 같다. 하지만 '버려진'과 '소멸'의 두 어휘가 우리를 단단히 붙든다. '죽음'을 찾아 헤매는 결연한 무장 이순신이 어떻게 버려지고 일어서서 마침내 소멸해 가는지 <칼의 노래>는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가 김훈의 자연묘사는 결코 단선적이지 않다. '명량해전'을 상세히 그려낸 작가는 목포 암태도 쪽으로 귀환하는 함대의 주린 사부들과 피로한 이순신을 붉은 노을과 새떼와 보름달과 병렬로 배치한다. 자연과 인간의 긴박한 상호연관을 포착함으로써 작가는 세상의 풍광이 홀로 존재하지 아니하며, 전장을 남나드는 인간 또한 자연의 하나임을 설파한다.
특히 왜적과 교전을 목전에 둔 팽팽한 긴장의 시간대에 작가가 들여다보는 염전과 시간의 치밀하고 견고한 상호성은 김훈의 필력에 담긴 내공의 정도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적의 포구로부터 동남풍이 불어오는 봄날 저녁에 염전바닥의 소금은 오지 않은 적의 기척처럼 북쪽으로 쏠려있었다... 바람이 잠든 가을날, 소금은 고운 눈이 쌓이듯 염전바닥에 내려앉았다. 소금은 먼데서 오는 시간의 가루처럼 염전바닥에 내려앉았다. 정유년 가을에 바람이 고와서 소금은 고요했다…소금은 먼데서 고요히 왔다." (제2권, 128-129쪽)
소금의 생성과정 일체를 적과 시간으로 선명하게 대비함으로써 김훈은 전장의 일상을 고요한 풍경으로 전화한다. 동남풍을 타고 들이닥치는 적들에 대한 핏발선 응시와 끝까지 당겨진 활시위와도 같은 내면의 떨림이 소리 없이 내려앉는 소금과 그것을 생성하는 들리지 않는 시간으로 모습을 바꾸는 것이다. 그에게 자연은 인간이고, 인간은 다시 자연이다.
3. 감각적인 문체
<칼의 노래>에서 작가는 시종일관 냄새와 소리에 유념한다. 그것들은 한결같이 인간 이순신의 격동하는 내면과 제휴함으로써 온전하게 제 역할을 해낸다.
"밤늦게, 함평 현감이 내 방으로 술상을 들여보냈다. 여진은 그 술상을 들고 온 관기였다... 손등이 터져 있었고 머리에서 쉰내가 났다. 그 여자의 몸은 더러웠고, 눈동자는 맑았다... 그날 밤 나는 여진을 품었다... 그 여자의 몸속은 따스하고 조붓했다. 오랫동안 뒷물하지 않은 여자의 날 비린내 속에서 내 몸은 나로부터 아득해져갔고, 또 돌아왔다." (제1권, 39-40쪽)
이순신은 <난중일기>에 여진에 대한 기록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병신년에 처음으로 여진을 품었던 이순신은 정유년에 다시 그녀와 재회하는데, 작가는 한사코 여진의 몸 냄새에 집착한다. 다리 사이의 지독한 젓국냄새와 달디단 입안의 향기와 평화로운 몸속 세상을 김훈은 집요하리만큼 끈덕지게 묘사한다.
냄새에 대한 작가의 집중은 셋째아들 면과 아내에 대한 묘사에서 고스란히 온존된다.
"그 아이는 돌이 지나도록 젖을 토했고 푸른 똥을 쌌다. 젖이 덜 삭았는지 똥에서도 젖 냄새가 났다. 아내는 변방에서 돌아온 남편을 첫날밤보다도 더 수줍어했다. 아내의 가슴에서는 젊은 어머니의 비린 몸 냄새가 났고 어린 면은 입 속이 맑아서 그랬는지 미음을 먹이면 쌀 냄새가 났고 보리차를 먹이면 보리 냄새가 났다." (제1권, 134쪽)
자신을 빼닮은 면이 왜적들과 싸우다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들은 이순신은 면의 푸른 똥과 냄새들을 떠올린다. 스물한 살 나이, 혼인하지 않은 채 저승으로 떠나간 아들을 그리며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소금창고 안 가마니 위에서 숨죽이며 홀로 오래도록 울음을 운다. 작가는 이런 냄새들을 반복하여 드러냄으로써 독자의 잠든 감각을 자꾸만 일깨운다.
임금의 울음소리 이외에도 <칼의 노래>는 수많은 소리를 동반한다. 특히 바람 소리에서 시간을 듣는 작가의 탁월한 청각은 독자를 전율케 한다.
"바람이 언덕을 밀고 올라갈 때마다 바람에 눕는 옥수수 숲에서 썰물 소리가 일었고, 바람의 끝에서 다시 일어서는 이파리들이 너울거렸다. 옥수수 숲을 스치는 바람소리는 시간이 어디론지 떼지어 몰려가고 몰려오는 소리처럼 들렸다." (제2권, 107쪽)
끝없는 살육을 벗하며 지속되는 전장에서도 시간은 꾸준히 앞으로 흘러간다. 죽음의 시간 속에서도 인간은 생존을 지속하며, 운명적인 대물림의 장구한 역사를 되풀이한다. 바람은 옥수수 이파리들을 눕히고, 그 이파리들은 시간을 물어온다. 전쟁은 인명을 앗아가되, 그 죽음은 다른 탄생과 연관되고, 그 사이 어느 모퉁이에서 시간은 소리 없이 흘러간다.
감각적이되 깊이 있는 묘사는 <칼의 노래> 마지막 장면에서 절창의 진수를 선보인다.
"바람결에 화약 연기냄새가 끼쳐왔다. 이길 수 없는 졸음 속에서, 어린 면의 젖 냄새와 내 젊은 날 함경도 백두산 밑의 새벽안개 냄새와 죽은 여진의 몸 냄새가 떠올랐다. 멀리서 임금의 해소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제2권, 196쪽)
퇴각하는 왜적들을 소탕하는 최후의 결전장 '노량해전'에서 적탄에 맞은 이순신은 죽음의 순간을 감지한다. 삶의 마지막 지점에서 이순신은 가까운 사람들과 먼 곳의 임금을 떠올리는데, 여기서 작가는 냄새와 소리를 가지고 그의 잦아드는 목숨을 그려낸다. 삶의 끄트머리까지 이순신을 따라왔던 감각들이 생생하게 우리를 장엄한 죽음으로 이끄는 것이다.
4.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가
김훈의 묘사와 서술은 담백하다. 짧고 견고한 그의 문체는 묘사대상인 이순신과 그의 <난중일기>를 닮았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벼랑 끝 무사처럼 작가는 강직하고 단호하다. 그러므로 작가 김훈을 '스타일리스트'라 칭함은 그를 알지 못한 채 욕보이는 짓이다.
<칼의 노래> '책머리에'서 작가는 말한다.
"나는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였다. 나는 내 당대의 어떠한 가치도 긍정할 수 없었다. 제군들은 희망의 힘으로 살아있는가. 그대들과 나누어 가질 희망이나 믿음이 나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그대들과 나는 영원한 남으로서 서로 복되다. 나는 나 자신의 절박한 오류들과 더불어 혼자서 살 것이다."
이것은 인간 이순신의 내면을 송두리째 관통하는 직선도로와 같다. 임진왜란 내내 이순신은 언제나 외로웠고, 여럿이 함께 있되 언제나 혼자였다. 그는 수시로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에 희망 없이 고통 받았으며, 임진년에 맞은 총탄의 고통을 죽음의 마지막 자리까지 동반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무장으로서 삶의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보았으며, 무인으로서 최후를 맞이하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이순신은 언제나 허무와 만났으며, 그 허무를 나무라거나 배척하지 않았다. 작가가 보기에 그것은 삶과 그것을 베어내는 칼의 숙명이기도 하다.
"세상은 칼로써 막아낼 수 없고, 칼로써 헤쳐나갈 수 없는 곳이었다. 칼이 닿지 않고 화살이 미치지 못하는 저쪽에서, 세상은 뒤채이며 무너져갔고, 죽어서 돌아서는 자들 앞에서 칼은 속수무책이었다. 목숨을 벨 수는 있지만 죽음을 벨 수는 없었다." (제1권, 114쪽)
죽음에 속수무책인 칼을 든 무인으로서 이순신은 망연한 사직과 죽어 가는 백성들에 대한 연민으로 끝없이 괴로워한다. 종팔품 수군만호로 남해안 발포진에 부임한 이순신의 눈에 비친 어촌의 풍경은 스산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갯가였지만 낡은 고기잡이배 두어 척이 뻘 밭에 처박혀 있을 뿐, 밭농사로 연명하는 백성들은 야위어서 눈이 커 보였다. 다만 물과 뻘과 하늘뿐이어서, 사직의 그림자는 자취도 없었다. 거기는 아무의 나라도 아닌 것처럼 차고 스산했다. 백성들은 가렴주구의 혈세를 소잔등의 짐처럼 짊어지고 낮게 엎드려 있었다." (제1권 144쪽)
종묘사직만을 생각하는 초라한 임금 선조와 백성들의 고통과 아픈 내면을 보듬고 있는 인간 이순신은 같은 하늘을 이고 살기 어려웠다. 선조가 명군제독 진린을 남루하게 환송하는 장면은 이순신이 진린과의 술자리 후 구토하는 장면과 또렷하게 겹친다. 그리하여 이순신은 임금의 칼을 받고 죽을 수 없었고, 그런 죽음을 끝까지 거부한다. 그는 무인으로서의 죽음, 즉 적의 손에 이끌리는 죽음을 간절하게 바란다.
<칼의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이순신이 죽음의 형식과 죽을 자리와 죽을 시기를 찾아 헤매는지를 끈질기게 보여준다. 노량해전을 앞두고 이순신은 생각한다.
"나는 결국 자연사 이외의 방식으로는 죽을 수 없었다. 적탄에 쓰러져 죽는 나의 죽음까지도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적이 물러가 버린 빈 바다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나는 갈 것이었다." (제2권, 106-107쪽)
그렇게 이순신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났다.
길지 않은 맺음말
작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칼과 거기에 내재된 천하포무天下布武의 의미와 그가 남긴 절명시를 서술하면서 이순신의 칼과 검명劍名을 대비한다.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 血染山河"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이제 그의 칼은 거기 새겨진 문자 장식 그대로 제 소명을 다하고 조용히 걸려있다. 김훈은 바로 거기서 오래도록 울려 퍼지는 장엄한 '칼의 노래'를 들은 것이다.
<칼의 노래>에서 작가는 자연을 인간과 나란히 세워 묘사하며, 양자 사이의 상호 연관성에 대한 중첩적인 사유 가능성을 제시한다. 간결하고 명쾌하며 묵직한 이순신과 장황하며 흐리되 부박한 임금을 대비하며, 화려하고 장려한 도요토미의 꿈과 임종 시를 이순신의 소박하되 견결한 검명을 마주 보이도록 견준다.
작가는 비슷한 표현을 고집스럽게 자주 반복하는데, 이것은 그의 문체 특징 가운데 하나를 형성한다. 그의 허다한 반복의 요체는 감각에 있으며, 그 감각은 존재의 가장 깊은 곳을 정확하게 찔러감으로써 삶의 내밀한 본령을 독서하도록 인도한다. <칼의 노래>에서 자주 등장하는 무장 이순신의 '식은땀'은 이런 감각의 결정체가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칼의 노래>에서 언뜻언뜻 드러나는 작가의 허무와 허적과 도피는 이순신과 그의 칼이 뿜어내는 쓸쓸함과 우울과 깊은 한숨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더러는 달관한 듯, 더러는 모든 것을 놓아버린 듯한 작가의 목소리는 허공을 떠도는 죽음의 망령처럼 스산하다. 그곳으로부터 살아 있는 이곳, 현세간으로 돌아오는 길은 온전히 우리 독자들의 몫일 터이다.
★ 본 기고글은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에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서, 필자의 동의 아래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