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의 커다란 두 축, 자본주의와 과학”
“과학자에게는 사회참여라는 실천의 문제가 항상 따른다”
과학 발전으로 나타나는 영향은 인문사회적 가치 개념이나 시각에 변화를 요구할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과학의 발전과 그 연구 방향에 대하여 과학자에게만 맡겨 둘 것인가라는 문제 제기는 타당하다. 또한 미래의 과학을 어떻게 받아들이건 이를 관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위험하다. 미래의 과학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이 시대의 과학연구가 연장되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 진행 중인 과학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수반되어야 한다.
한편, 서양 근대과학이 우리에게 많은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주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편리함과 풍요로움의 추구가 과학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는 것은 인간사회가 과학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진전되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킴으로써 잉여 가치를 만들어 내면서 생산성과 효율을 추구해온 자본주의적 입장과 과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속성을 서로 의존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과학시대라 불리는 현대사회의 커다란 두 축은 자본주의와 과학이다.
존 벡위드의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는 우리 사회의 두 축으로 나타나는 현 시대적 상황과 환원론에 바탕을 둔 과학이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에 대해 과학자로서 평생 고민한 삶의 자취를 담고 있다. 자연과학을 하는 서평자로서, 같은 고민을 하며 살아온 교수로서, 자신의 선택에 대한 유사한 주위반응을 접하며 지내온 인간으로서 이 책을 통해 그의 삶을 알아간다는 것은 무척 흥미 있는 동시에 마음 아픈 면도 있다.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즐거운 일이지만 동시에 기득권의 주류에서 벗어나 경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자의 삶을 기록한 이 책의 내용이 비단 자연 과학자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는 학문을 하고자 하는 이들이나 이미 학문 현장에 있는 이들, 과학 시대에 살고 있는 일반 시민, 그리고 삶에 깨어 있고자 하는 이들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현대는 자연과학, 인문과학, 사회과학 등 학문 대부분에서 과학이란 말이 붙을 만큼 과학이 일상화되어 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분과학문은 아무리 그 숫자가 많고 서로 다른 모습을 지녔어도 결국 우리들의 삶을 위해 있다. 즉, 학문이 우리의 삶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학문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 삶의 현장이 사회이고, 과학자나 과학자 집단도 그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자각은 중요하다. 지금의 과학자는 국가나 기업의 연구비 지원 없이 연구 활동이 불가능하다. 과학자는 이미 자신이 속한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학문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의 발견이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항상 성찰해야 한다. 자신의 발견 내용이나 함의를 누구보다도 제일 잘 알 수 있는 입장일 뿐만 아니라, 관련 사안이 사회 속에서 왜곡되거나 잘못 적용될 때 그 내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전문가로서 과학자의 사회참여라는 형태로 그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한 연구로서 과학사회학 내지 과학기술학(STS,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이 있지만 많은 경우 전문적 학문 분야로서 일반인이 접하기에는 거리가 있고 더욱이 현장에서 실제적인 과학행위에 참여하고 있는 자연 과학자와 연계되어 현실적으로 전개되지는 못하고 있다. 저자가 유전자 조작 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한 지 약 30년이 지났음에도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자는 일반인의 생활에 다양한 의미를 지닌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애국심마저 활용하면서 아름답게 포장해 난치병을 앓고 있던 이들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 주었다. 나중에 그런 발표 내용마저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지만 당시 상황에서 그런 기술이 지닌 사회적 함의를 검토하기는커녕 국익의 이름으로 열렬히 환호한 한국 사회는 우리가 지닌 과학주의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30여 년의 시간 차가 매우 무색해진 시점이고 또한 과학 문화를 자생시킨 서구 사회에 비해서 외래 수입 문화로서 이식된 식민지적 과학문화를 지닌 한국 사회의 한계였다.
한편, 이 책은 과학집단의 문제점과 더불어 학자의 무관심한 태도가 정치·경제적 맥락에서 파악될 때 얼마나 사회적으로 왜곡되는지 우생학과 유전학의 사례를 들어 잘 설명해 준다. 물론 과학자의 의견이 정치가들이나 이해집단에 의해 악용될 가능성은 어느 사회에서나 상존한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은 자신의 정당한 견해가 정치적으로 왜곡될 것을 염려하여 침묵하기도 한다. 그러나 학자가 그런 것을 고려해서 침묵한다는 것 자체는 과학자로서의 객관적 입장이 아니라 이미 학문 외적 요소를 고려한 지극히 정치적인 관점이다. 더욱이 누구보다도 잘 아는 전문가 자신이 침묵할 때 그 사회의 잘못된 견해나 의견은 더욱 강화된다. 침묵은 동조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사례로 2008년 국내에서 미국 쇠고기 수입과 관련되어 일어난 촛불 사태를 들 수 있다. 정치·경제적 이유로 한국 정부에 의한 의도적인 과학 왜곡이 있었고, 이에 가담한 일부 과학자들, 그리고 침묵했던 관련 연구자들이 있다. 배아줄기세포 사태에서도 그러했듯이 이 경우에서도 국가 권력과 정치·경제적 요소가 유입되어 일반인은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자신들의 실책을 변명하기 위해 정부는 광우병 관련 연구를 국제학술지나 국제학회에서 단 한 번도 발표해 보지 못한 타 분야 과학자를 광우병전문가로 등장시켰고, 일부 주류 언론을 통한 여론몰이를 함으로써 국가가 정치·경제적 이유로 과학적 사실을 얼마든지 왜곡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과학적 사실이 외부로부터의 개입에 의해서 얼마나 쉽게 영향받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고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의 건전한 과학문화 형성에 치명적인 사례를 남기게 되었다.
본질적으로 과학이나 학문은 기존의 관점에 도전하면서 그 영역을 넓혀 가기 때문에 과학자는 닫히거나 머무르려고 하는 사회에 대하여 항상 전복(顚覆)을 꾀하는 속성을 지닌다. 과학자는 과학 행위를 통해 과학이 지닌 열린 체제를 수행하는 자이고 이는 그가 속한 사회를 통해 나타난다. 또한 그러한 행위는 총체적인 우리의 삶을 말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과학자에게는 사회참여를 통해 자신의 과학적 행위를 실현시켜야 하는 실천의 문제가 항상 따른다. 모든 학문의 목적은 사회참여를 통한 삶의 완성일지도 모르며, 이 같은 삶의 예로서 이 책의 저자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노엄 촘스키를 들 수 있다. 학자로서 자신의 위치에서 실천하지 않는 자는 이미 학자의 자격이 없는 자이며 그의 학문이란 생명 없는 자의 잠꼬대에 불과하다. 이처럼 과학자로서 학문하는 자세는 자신 삶의 자세이며 동시에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세가 된다. 요즘처럼 성과만을 요구하는 사회의 한 구성원이면서 동시에 학문의 수행자로서 학문의 주체성을 고민하고, 또한 겸손한 자세로 자신의 삶과 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전복을 시도해야 하는 경계인,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사회 속의 과학자의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과학자 자신이 연구의 사회적 의미를 스스로 밝히는 것은 바람직하며, 과학 교육에 있어서도 과학과 사회와의 관계는 반드시 강조되어야 한다.
책의 저자는 이 모든 것을 위해서 과학 문화운동이 시민 사회에 자리 잡도록 평생 노력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국내에 있는 ‘시민과학센터’와 같은 기구도 만들어 실제 과학 교육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물론 작년 광우병 사태에서 보듯이 지극히 전문화된 주제에 대한 일반인의 참여 내지 타 분야 과학자의 참여는 정부나 언론의 적극적 개입과 숨겨진 의도가 구조적으로 작용할 때 과학적 진실을 호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부분이야말로 비전문가들이 전문가들과 같이 논의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 중요하고, 제대로 된 비판적 시각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해당 주제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을 학습한 후 도출된 의견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특히 현 시점에 있어서 전문가와 시민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나 문화가 중요한 것은 발달하는 인터넷 시대에는 대중의 의견을 통제하기가 생각보다 쉽기 때문이다. 광우병 사태 때에도 정부가 전문적 댓글 팀을 운영하여 일반인뿐만 아니라 과학자 모임의 인터넷 공간마저 개입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앞으로 10-20년 후에는 이러한 인터넷 통제에 대한 기술적 발전도 현저할 것이다. 그러므로 빠른 시일 내에 특정의도를 지닌 집단이나 국가 권력의 인터넷 통제에 대한 방어를 제도적으로 법제화하는 것은 매우 시급한 문제이다. 이는 집단 이기주의적인 특정 세력이 폐쇄적으로 의사결정을 한 후 일반 시민을 호도함으로써 자신들의 지지 세력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에 언급된 두 과학전공자가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 저자 벡위드처럼 과학 현장에서 실제적인 과학 행위를 하면서 시민운동에 관여하는 방식과 그의 오랜 친구 로버트 윌리엄스처럼 과학연구를 포기하고 시골에서 나름대로 생태적이면서 현실적인 삶을 실천하는 방식이 있지만, 서평자가 취한 또 다른 유형도 언급해 두고 싶다. 대부분의 과학자나 일반인들은 과학과 자본주의의 결합이나 사회적 개입에 대한 과학연구의 취약성에 대한 교육을 전혀 받고 있지 않다. 그래서 더욱 외부가 아닌 과학 교육 현장에서 그와 같은 이야기를 전하는 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말한 바와 같이 소위 이류과학자가 되더라도 대학이라는 교육 현장에서 바람직한 과학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역할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위 일류과학자를 거부하는 견해에서 볼 때, 먹을거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조작 작물(GMO)은 물론 생명과학의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유전자를 마음대로 조작한 동물들이 계속해서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점이 우려된다. 이들이 일반 생태계에 노출되어 끼칠 환경오염에 대한 엄밀한 분석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유전자조작동물’은 의학 발전의 이름으로 실험용으로 또 애완용으로 판매되고 있다. 지구에서 살 권리는 인간만이 지닌 것이 아니며, 다른 생명체들도 이 지구의 주인이다. 지금과 같이 다른 생명체에 대한 유전자 조작이 횡행하는 것은 누가 누구에게 허용한 권리인가. 다른 생명체에 대한 유전자 조작과 더불어 인간 자신에게 행하는 유전자 조작도 과연 타당한 것일까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현재 한국 사회의 평균 연령은 80세에 육박한다. 그동안 수많은 동물의 희생과 유전자조작이 바탕이 되어 온 생명과학의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첨단을 표방하며 지속되는 생명공학의 발전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반문하게 된다. 인간은 몇 살까지 더 살고 싶어서 막대한 연구비와 동물의 희생, 더 나아가 지구상에 기아로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마저 외면하며 연구를 계속하는 것일까. 지금 이 순간에 지구 저편에는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 많은 생명이 있어도 기아와는 상관없는 이종장기 개발 등에 막대한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는 부유한 나라의 기업들. 이들은 오래 살고 싶어 하고 구매력 있는 부유한 사람들이 있는 한 그 막대한 연구비 투자를 결코 기아와 같은 현실 속의 생생한 삶의 문제에 쓰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무의미한 노년의 연장을 계속하는가. 지금까지 연장된 수명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과학의 목적이 무조건 오래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본주의에 물든 과학 기술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기보다는 그에 대한 전반적 재검토를 시민합의로 이끌어 내는 과정이 필요함을 강조한 이 책을 진지하게 읽어 보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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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보기 본문
과학 교육이 과학의 사회적 영향을 둘러싼 논쟁을 다루지 않기 때문에, 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그들의 역사의 일부를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 그리고, 내 견해로, 그들이 잃고 있는 것은 그들의 인간성의 한 부분이다. (89쪽)
과학자들, 우생학 운동에 관여했던 다른 사람들, 그리고 미디어가 그들 뒤에 있는 과학의 권위를 빌어 유전이론과 유전과학에 대한 왜곡된 내용을 대중에게 전달하였다. […] 어느 누구도 이러한 잘못된 개념들을 정정하고자 발언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러한 과학이 초래하는 사회적인 결과들과 맞서지 않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162~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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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우희종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면역학교실 교수.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민교협) 상임공동의장. 조계종 불교생명윤리위원회 연구위원. 현재 ‘비환원론적 시각에서 본 면역현상’에 대한 책을 구상하고 있으며, 주로 광우병 관련 연구와 더불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통합 연구 과제를 학제간으로 수행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과학기술학(STS,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과 더불어 분과학문의 통합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종교와 과학 간의 소통도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