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서너 쪽만 읽는다. 철저히 여러 차례 읽는 책도 있다. 책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독서는 책 선정이 팔 할이 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서가를 보여준다면, 그 분의 마음의 풍경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내안의 물고기’의 독후감은 읽은 만한 책으로 시작했다가 다 읽고 나면 좋은 책 이란 느낌이 있어 다시 한 번 더 읽게 되었다. 뒷맛이 약간 아련하고 서 너 곳에서 뭉클해진다.
3억년 5천만 년 전쯤 앞 지느러미가 앞 다리로 변화하여 땅으로 올라온 최초의 사지동물의 화석 이야기다. 표면상으로 그렇다. 책 전반적인 흐름은 고생물을 다루는 약간 구식 같은 과학 분야가 발생학과 분자생물학과 연계되면서 새로운 분위기로 상승된다.
<이미지 출처 haysvillelibrary.wordpress.com>
이 책이 던진 몇 가지 질문들은 동물 진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몸의 탄생, 지구 대기에 산소가 모여지자 드디어 몸이 탄생한다. 저자의 표현대로 여기저기서 몸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 후의 생명 양상은 예전과 같이 않았다. 건강과 노화 현상은 몸이라는 전제 조건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 얼마나 당연한 말인가. 그러나 저자는 지구 생명현상에서 몸의 출현이 진화적으로 박테리아에서부터 기원하는 기나긴 여정이 있었음을 강조한다.
겉으로 드러난 생물 형태에 너무 익숙해져 몸이 없었던 상태가 상상되지 않는다. 좋은 책은 전혀 다른 시선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그런 책은 생각의 프레임을 바꾸어 준다. 척추동물 전 단계에서는 머리도 없었다. 우리의 먼 선조는 대양 바닥의 유기물을 진공청소기처럼 흡입했던 칠성장어 비슷한 그런 동물이었다. 척추가 생겨 앞부분에 머리가 형성되고 육지로 진출하면서 사지와 폐가 출현한다. ‘내안의 물고기’는 제목대로 우리 몸속에 지금도 물고기 형질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척추동물의 진화의 전 과정을 추적하여 증명해 보인다.
인간이란 동물을 가능하게 해준 물고기에서 땅위로 두 발로 달리게 된 우리 자신의 생물학적 이력을 살펴보게 해준다. 척추동물의 기본인 물고기가 우리 몸속에 스며들어 우리의 얼굴표정이나 술 취한 몸동작에서 아직도 실제 물고기의 운동 생리가 동작하고 있다.
물고기의 측선기관에서 유래한 유모세포가 인간 속귀 달팽이 관속에서 소리의 포착, 물고기 아가미에서 인간 얼굴 표정의 진화, 파충류의 턱 뼈에서 가운데 귀로 소리 진동을 전달하는 뼈로 변화한 내용들을 이 책은 명료하게 설명해준다. 고생물학 책으로보다 발생 진화생물학의 입문서로서 더 적합하다. 알콜이 달팽이관과 세반고리관의 액체와 뒤섞이면서 발생되는 현상인 술 취한 자세와 술 깰 때 울렁거리는 현상의 설명은 단편적인 과학지식이 아닌 생명진화 관점에서 긴 맥락을 갖는 중요한 내용이다.
북극에서 외로운 화석발굴과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어린 아들과 함께 시카고의 과학산업박물관에 갔던 이야기는 이 책 저자의 가슴에 품고 살았던 느낌의 일단을 보여 준다. “나는 겉에 상처가 잔뜩 난 우주 캡슐을 보고 있었다. 나는 안내문을 거듭 읽은 끝에 갑자기 그 내용이 얼마나 놀라운지 깨달았다. 그것은 아폴로 8호 우주선의 진짜 사령선이었다. 인류 최초로 달 근처를 비행하고 돌아온 그 우주선이었다. 나는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는 아이를 붙잡고 그 물건을 설명해주려 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감정이 벅차올라 목이 메어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몇 분이 지나자 나는 평정을 되찾았고, 아들에게 인류의 달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주탐사나 분자생물학, 그리고 저자의 분야인 고생물학 에서 오랜 세월 많은 연구자들의 치열한 노력으로 처음에는 너무 멀어서 아득하게 보였던 분야들이 어느새 이해하게 되어 모든 인간의 삶에 바람직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런 수 십 년 간 치열한 노력이 이 책에 간결하고 단아한 문체로 잘 표현되었다. 저자 본인이 촬영한 사진 몇 장이 인상적이다. 찬바람 몰아치는 북극 평원을 배경으로 웅크린 탐사 야영 텐트의 모습에서 고독한 연구자의 내면을 읽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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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보기 본문
식물의 몸, 균류의 몸, 모든 곳에서 몸들이 솟아났다. 말 그대로 몸이 대유행이었다. 하지만 니콜의 연구를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신체 형성의 잠재력은 몸이 세상에 나타나기 전부터 널리 존재했다. 생물은 그토록 오랜 세월에 몸 없이 지내와 놓고 왜 갑자기 우후죽순처럼 몸을 만들어 냈을까? (209쪽)
혹스 유전자의 개수는 종마다 다르다. 파리 같은 곤충은 여덟 개, 쥐나 다른 포유류는 서른 아홉 개가 있다. 그렇지만 쥐의 서른 아홉가지 혹스 유전자들은 죄다 파리 유전자들의 변형판이다. 이러한 유사성을 볼 때, 파리의 유전자들이 중복됨으로써 포유류에 와서 개수가 더 많아진 듯하다. (173쪽)
다양한 기관을 만들어내는 생물학적 과정은 사실 한 가지 과정의 변주이다. 다양한 기관과 모들 사이에 깊은 유사성이 존재하는 이상, 세상의 여러 생물들은 하나의 주제를 갖는 갖가지 변주에 불과하다. (132쪽)
팔의 상완골이나 허벅지의 대퇴골처럼 먼저 한 개의 뼈가 있고, 거기에 두 개의 뼈가 관절로 연결되며, 거기에 또 작고 둥근 뼈들이 여러 개 붙어 있고, 마지막으로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연결된다. 모든 팔 다리의 구조에 이 패턴이 깔려 있다. (58쪽)
몸이 클수록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콜라겐을 포함하는 몸은 특히 그렇다. 콜라겐을 합성하는 데 상당히 많은 양의 산소가 필요하므로 우리 선조는 이 중요한 대사 원소를 예전보다 훨씬 많이 흡수해야 했을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고대 지구의 산소 농도는 극히 낮았다.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10억 년 전쯤에 산소의 양이 극적으로 늘어났고, 이후 현재까지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윽고 산소가 많아지자, 여기저기서 몸들이 등장했다. 생명은 더는 예전과 같지 않았다. (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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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박문호
한국전자통신 연구원(ETRI) 책임연구원. 불교TV 기획특강 "뇌와 생각의 출현"을 28회에 걸쳐 강의했다. 2008년 이 강의들을 정리해 『뇌, 생각의 출현』을 펴냈다. 소문난 독서가로 알려진 그는 백북스 학습독서모임(www.100books.kr) 공동운영위원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