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100대 명곡 리뷰
새 시대의 문을 연 변화의 기수
난 알아요
서태지와 아이들
1992.03.23.
〈난 알아요〉 이후 모든 게 바뀌었다. 가요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등장과 함께 변화를 갈망하던 이들의 영웅이 됐다.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가듯, 10대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좇았다. 음악을 넘어 사회와 문화 전반의 흐름을 바꿔버린 이들의 영향력은 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살아 있다. 오늘날 케이팝 중심의 음악 시장은 사실상 이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전까지 가요는 누구나 즐기는 것이었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들었고, 부모와 자식이 같이 무대를 봤다. 〈난 알아요〉는 달랐다. 기성세대는 이들의 첨단 사운드, 빠르게 내뱉는 랩, 현란한 댄스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난생처음 보는 스타일엘 어른들이 당황하는 사이, 그들만의 문화가 필요했던 10대들은 빠르게 그룹을 받아들였다. 일반 대중이 랩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던 시절에 젊은이들은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을 따라 했고, 신발 밑창이 닳도록 ‘회오리 춤’을 연마했다. 상표를 떼지 않고 옷을 헐겁게 입는 일명 ‘서태지 패션’은 곧장 신세대의 유니폼이 됐다. 〈난 알아요〉를 기점으로 가요 팬의 세대 분리가 이루어졌다.
이들의 음악과 춤에서는 가요 팬들이 그토록 선망하던 본고장의 느낌이 났다. 이것이 서태지와 아이들에 앞서 춤을 추고 랩을 하기도 했던 김완선, 박남정, 소방차, 현진영 등과의 결정적 차이였다. 서태지는 멜로디가 아닌 랩을 중심으로 곡을 구성해 우리말로 하는 랩도 그럴듯하다는 걸 몸소 증명했다. 록과 댄스를 절묘하게 결합한 사운드 또한 새로웠다. 양현석과 이주노의 맹렬한 브레이크댄스는 어떤가. 그야말로 새로움의 결정체였던 이들은 순식간에 거대 팬덤을 형성했다. 모든 면에서 부모 세대와 다름을 추구한 X세대에게 서태지와 아이들은 운명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오면서 우리는 해외의 틴 팝 가수들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뒤를 이을 영미의 보이그룹을 굳이 찾아 나설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때부터 가요계에 젊고 감각적이면서도 우리말로 이루어진, 우리 정서에 맞는 팝이 늘어났다. 훗날 세계인을 들었다 놨다 하게 될 케이팝은 그렇게 태어났다. 비록 독일 듀오 밀리 바닐리의 〈Girl You Know It’s True〉를 재구성한 곡이라는 의심을 거두긴 어렵지만, 〈난 알아요〉의 역사적 가치는 흔들리지 않는다. 케이팝의 신화는 이 노래에서 시작되었다.
[정민재]
한국 힙합의 물꼬를 튼 새 혁신
나를 돌아봐
듀스
1993.04.23.
“이젠 우리가 시작하겠어/ 바로 여기서 D, E, U, X DEUX!/ 여기서 우린 보여주고 싶어/ D, E, U, X DEUX!”
〈나를 돌아봐〉의 당찬 인트로는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이현도, 김성재의 듀스는 그들의 포부만큼 등장부터 특별했다. 이는 무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전주부터 그토록 역동적인 브레이크댄스로 시선을 사로잡다니. 어설프게나마 흉내를 낼 수 있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회오리 춤’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를 돌아봐〉의 움직임은 전문 댄서가 아니라면 엄두도 내기 어려웠다. 펄쩍 뛰어 사뿐히 바닥에 엎드리고, 금세 한 바퀴를 돌며 일어나고, 부드럽게 공중제비를 도는 그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
춤만 잘 춘 것이 아니다. 듀스는 음악적으로도 남달랐다. 이들보다 1년 빨랐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가 랩과 록, 댄스를 한데 모은 곡이었다면, 듀스의 〈나를 돌아봐〉는 오직 힙합에 집중한 노래였다. 가요로는 사실상 처음이었다. 이들은 단순히 우리말로 랩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정교하게 랩의 완급을 조절했고, 운율을 살려 웰메이드를 꾀했다. 비트박스, 디제잉 같은 힙합의 요소도 자연스럽게 곡에 녹여냈다. 이러한 디테일을 구상하고 노래를 만든 인물이 바로 이현도다. 그는 힙합, 나아가 흑인음악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고, 이를 우리 감수성에 맞춰 탁월하게 풀어냈다. 〈나를 돌아봐〉를 장르 음악이 아닌 그저 댄스 음악으로만 취급하면 곤란한 이유다.
듀스의 음악은 혁신이었다. 앞선 서태지와 아이들의 혁신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그렇다. 겨우 3년 남짓한 활동만으로 이들은 한국 힙합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중에서도 이들의 첫 활동 곡이었던 〈나를 돌아봐〉의 가치는 상당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여파로 댄스 음악이 하나둘 생겨나던 시점에 듀스는 분명한 개성과 장르에 대한 높은 이해로 이들만의 출발선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듀오의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던 〈나를 돌아봐〉의 도입부는 어쩌면 근거 있는 자신감으로 무장한 두 청년의 이유 있는 출사표였는지도 모르겠다.
[정민재]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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