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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정동과 고백의 의미,
퀴어 청소년소설
타자의 귀환 이후
방탄소년단의 신곡 ‘Permission to dance’의 가사에서 ‘허락’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dance’는 종종 살아가는 모습에 관한 문학적 비유로 사용된다. 그렇다면 춤을 추는 데에, 각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데에 허락이 필요한가? 노래 가사, “‘Cause we don’t need permission to dance”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문장은 역설적으로 춤추는 데에 허락이 필요한 경우가 있음을 보여준다. 어떤 이의 삶은 여전히 타인의 허락이 필요하고 이제 그 허락의 실체를 응시할 필요가 있다.
소설은 등장인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오해, 갈등, 화해 등을 다룬다. 그것들을 요약하면 ‘관계의 문제’다. 특히 퀴어 서사에는 당사자 간의 내밀한 스토리부터 타인과의 갈등까지 다양한 관계의 문제가 집약되어 있다. 그럼에도 ‘퀴어 서사’는 지금까지 주로 인권 담론의 시각에서 다루어왔다. 비단 퀴어뿐 아니라 여성, 동물, 다양한 사회적 약자 등 지난 몇 년간 문학에서 타자의 귀환이 이어졌고 초기에는 정치적 올바름에 경도된 면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단지 타자의 등장 자체를 주목할 것이 아니라 주체와 타자를 가르는 이분법을 의심하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다수자성/소수자성이라는 대립적 이원론을 해체하고 모든 정체성을 불안정하게 변형하는 흐름에 대한 긍정적인 열정과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즉 “어떠한 특수한 성 정체성에 대한 주장도 불안정하게” 만드는, 퀴어한 질문으로 중심 서사를 관통할 때 의미 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
인권 담론을 넘어 이 주제에 좀 더 문학적으로 다가가기에 맞춤한 틀은 정동情動, affect 이론이다. 정동은 흔히 ‘느낌’과 혼동되지만 ‘느낌’을 포함한 몸이 가진 힘이다. 정동은 존재의 내부와 표면에서 일어나는 비-의식적인 ‘진동’ 또는 ‘이행’이며 존재의 내-외적 관계들로부터 발생하는 효과이다. 이는 사랑의 감정이 기초가 되는 퀴어 서사에서 존재와 관계의 문제를 묻기에 적절한 도구다. 또한 퀴어 서사의 경우 인물의 사연이 ‘감추어짐과 드러남’의 구도로 배치되면서 다양한 ‘고백’의 과정이 개입한다. “고백은 제도”라는, 가라타니 고진의 주장처럼 고백은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고 타자와 소통하는 문학의 핵심이기에 퀴어 서사에서 서로에게 감응을 촉발하는 다양한 고백도 함께 읽어가기로 한다.
인물, 관찰자에서 관계자로
퀴어 청소년소설들은 성소수자의 커밍아웃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재현해왔다. 『나는 즐겁다』김이연, 사계절, 2011는 그러한 경향이 잘 드러난 대표작이다. 성소수자 인물이 자존감을 갖기 위해서는 가족의 사랑과 신뢰가 필요하지만 도리어 저항을 받는 경우가 많기에 그들은 부모에 맞서 자신감 회복을 위해 인정 투쟁을 벌인다. 또한 학교 공간에서는 성소수자 청소년의 학습권과 등교권이 박탈되는 방식으로 나타나기에 자신의 학습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들의 커밍아웃은 주로 인권담론에 머물러 있었다.
인권 담론을 확장하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전략은 관찰자 시점이다. 젠더 문제에 큰 관심이 없던 인물이 가족이나 친구들의 문제로 인해 사건을 관찰하고, 갈등에 개입되며 퀴어 인물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이는 젠더 규범 내에서 살고 있다고 짐작되는 독자를 의식하여 서사를 풀어나가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찰자 역시 사건을 만나는 순간 관계자가 된다. 사건은 곧 관계의 형성이기 때문이다.
『조슈아 트리』장미, 서유재, 2020는 청소년 ‘나’의 입장에서 관찰되는 트랜스젠더 책방 이모의 상황을 그리면서, ‘책방일기’라는 글을 통해 책방 이모의 내면과 상황을 전달하기도 한다. 트랜스젠더인 연우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선 용기 있는 여성임에도 행복하기보다는 자신에게 탁친 역경을 조용히 감내하는, 다소 정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이 작품에서 ‘나’는 단순한 관찰자를 넘어 사건의 전환점에서 주요 역할을 맡는다. 이모를 좋아하던 ‘나’는 평소에 자신이 좋아하던 선생님이 책방 이모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경쟁심과 질투가 생기고, 결국 친구에게 이모의 정체성을 알리게 된다. 이때 ‘나’는 “게다가 이모는, 이모는 진짜 여자도 아니잖아!”(139쪽)라는 속내를 드러낸다.
그런데 이제 이모에 대한 일을, 그러니까 남자가 어쩌구 여자가 어쩌구 하는 얘기를 입 밖으로 꺼내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다. 내가 이 주제에 대해 누군가에게 떠벌리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그러지 않을 줄 알았다. 난 그렇게 저질이 아니라고, 그 정도 인격은 갖춘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차라리 엄마가 나보다 훨씬 교양 있고 품위 있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이모에 대해서 처음부터 모든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넘어갔다.
문제는 또 있었다. 이렇게 입으로, 목소리를 내어, 그걸 또 내 귀로 들으며 다른 사람과 얘기를 하고 있으니 이모의 존재가 갑자기 매우 객관적으로 보인다고 할까? 이모에 대해 ‘좀 이상한 어떤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 건 처음이다. 이런 내가 무섭다.(147~148쪽)
‘나’는 평소 스스로 열린 시각을 가졌다고 생각했으나 이 사건을 통해 분열된 자아를 발견한다.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솔직한 내면 고백은 이 작품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자신의 젠더 규범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자신의 숙제를 풀어나가기보다는 다시 관찰자의 자리로 돌아온다. 이모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가진 이웃의 생각을 전달하거나, 어느덧 이모의 입장을 대신하고, 동네 미용실 원장 역시 성소수자였다는 주변 서사가 결말을 채운다. 책방 이모와의 조용하고 다정한 우정이 다시 이어지지만 그것이 주인공의 젠더 이분법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책방 이모가 주인공에게 가까이 있어 주어 고마워하는 대목은 트랜스젠더로 살아가는 인물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이웃 노인의 전화 내용은 기존 사회의 문을 열어 소수자의 존재를 위로하고 포용하는 서술이지만 동시에 문을 여는 허가의 모양새로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허가의 관계’는 『보통의 노을』이희영, 자음과모음, 2021에서도 나타난다. 이 작품은 우리 사회에서 ‘보통’ 혹은 ‘정상’은 무엇인가를 반문하는 작품이다. 미혼모 가정의 풍경, 노을의 엄마와 친구 성하의 오빠인 성준이 사귀는 모습 그리고 퀴어 인물의 등장 등을 통해 사회가 가진 보수적 규범에 문제를 제기한다. 주인공 노을은 이러한 문제의 중심축에 놓여 있으며, 동성 친구인 동우에게 고백을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우에게 뜻밖의 속내를 들은 주인공의 대응은 젠더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을 이성애자로 규정한 주인공은 친구의 고백에 자신이 얼마나 진보적인 존재인지를 과시하는 자의식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또 다른 사랑이 잘못되었다 생각지 않는다”(192쪽)와 같은 발언은 퀴어에 관한 당위적 설명에 머물기에 이러한 노을의 태도로는 퀴어 친구의 고민과 접점이 발생하지 못한다. 이런 방식의 접근법은 이분법을 해체하기보다는 그 경계를 확인시켜줄 뿐이다. 브라이언 마수미Brian Massumi는 사회적으로 가치화되지 않은 범주에 속한 사람에게 동정심을 가지거나 그들을 대신해서 도덕적 분노감을 표현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동정이나 도덕적 분노의 범주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단지 그 가치 기호를 부정에서 긍정으로 전환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서사 속 관찰자들은 성소수자를 대변해주는 응원자로만 남을 것이 아니라 사건의 개입자로 자신의 발밑이 흔들리는 자기 서사를 겪어나가야 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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