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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날 그들이 나와 이시봉을 찾아온 것은 전적으로 리다 때문이었다. 오, 나의 사랑, 나의 불행, 나의 한숨, 리다.
저녁 무렵 리다가 초인종을 눌러 나가보니 그녀 뒤에 웬 낯선 사람 세 명이 서 있었다. 한 명은 감색 재킷에 흰 와이셔츠, 검은색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고, 나머지 두 명은 똑같은 반팔 폴라티에 똑같은 검은색 야구 모자를 쓰고 있었다.
‘앙시앙 하우스’
모자엔 그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야구 모자를 쓴 사람 중 한 명은 흰 면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그래서 마치 무슨 상조회사에서 나온 직원처럼 보이기도 했다.
“자기야, 이분들이 이시봉을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데? 뭔지 모르겠는데 되게 중요한 일이래.”
리다가 현관 신발장 쪽으로 비켜서면서 말했다. 뭔지 모르겠는데 되게 중요한 일이라면…… 그러면 뭘 좀 알아보고 데려와야 하지 않을까? 나는 리다에게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차마 말하진 못했다. 이시봉도 궁금했는지 어느새 내 옆에 와 섰다. 우리는 잠깐 그렇게 대치하고 서 있었다. 이윽고 감색 재킷이 우리쪽을 향해 한 발 더 다가서더니 정중하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이시봉은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올해 만 네 살이 된 수컷 비숑프리제다. 시봉이라고 부르면 알은척을 안 하고, 꼭 이시봉이라고 성까지 불러야지만 뒤돌아보거나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리다는 종종 이시봉을 ‘노숙견’이라고 불렀다. 물론 이시봉이 없는 자리에서 그랬다. 이시봉이 일 년 넘게 미용실을 가지 않아서 그렇게 부르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나도 ‘노숙자’라고 불러야 마땅하다혹 모르지, 나 없는 곳에선 그렇게 부를지. 나 또한 일 년 반 넘게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 우리 둘 다 심한 곱슬머리라서 크게 불편한 것은 없다. 다만 둘 다 어깨에 비해서 얼굴이 좀 커 보인다는 것, 그래서 이시봉을 품에 안은 채 멀거니 거울을 바라보면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그런다 츄파춥스 두 개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때론 양을 안고 있는 예수님처럼 보이기도 하고.
이시봉과 나는 거의 매일 새벽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아파트 단지 뒤쪽에 있는 야산으로 산책을 나갔다. 목줄 없이 산책을 나가려면 꼭 그 시간이어야만 했다. 이시봉은 목줄 하는 것을 싫어했고, 나 역시 목줄 잡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강아지 목줄을 하지 않은 채 산책을 나가면, 그 모습을 보고 누군가 신고라도 한다면, 벌금을 내야 한다이시봉은 구청에 반려견 등록도 되어 있지 않았다. 등록되지 않은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도 벌금을 내야 한다. 이시봉은 특히 네댓 살쯤 되는 아이들을 보면 아주 환장을 했는데, 그러니까 자기 딴엔 반갑고 같이 놀고 싶고 통성명이라도 하자고 달려가는 것인데, 대부분의 아이는 그런 이시봉을 무서워했다. 아이들의 부모는 질색을 하며 발길질로 위협하기도 했다이해가 되기도 했다. 얼굴만 큰, 눈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무슨 말미잘처럼 생긴 생명체가 갑자기 달려오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의 산책은 언제나 야밤일 수밖에 없었다. 비가 오는 날은 쉬었지만, 눈이 오는 날엔 나갔다. 우리는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야산을 올랐다. 간격이 조금 벌어질까 싶으면 이시봉이 마치 뒤처진 어린 새끼를 바라보는 어미처럼 가만히 한자리에서 기다려주었다. 그러다가 내가 시야에 들어오면 다시 혼자서 앞으로 달려나갔다.
야산은 아파트 단지 입주민뿐만 아니라 인근 동네 주민들까지도 즐겨 찾는 산책로였다. 구청에서 정상 근처까지 나무 계단과 가로등을 설치해주었다. 그래서 심야여도 산책에 어려움은 없었다. 이시봉과 나는 단 한 번도 정상까지는 가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늘 야산 중턱에 있는 쉼터까지만 갔는데, 나는 그곳 벤치에 앉아 술을 마셨고, 이시봉은 벤치 옆 잡목 사이 땅을 파헤쳤다. 굴을 파려는 것일까? 이시봉은 집요하고 격렬하게 땅을 팠다. 거기 뭐가 있니? 나는 술을 마시면서 이시봉에게 묻기도 했다. 그때마다 이시봉은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쉼터엔 키 큰 소나무와 밤나무가 많았고, 나는 그 가지 너머 어두운 밤하늘을 자주 올려다보았다. 거기 뭐가 있나? 이시봉도 나를 보며 그렇게 묻는 것 같았다. 나는 주로 맥주에 소주를 타 마셨다. 때때로 막걸리나 편의점에서 산 값싼 와인을 마시기도 했다.
내 친구 정용은 내가 일 년 내내 등산을 하는데도 몸무게가 72킬로에서 81킬로로 변해버린 것은 다 술 때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친구 수아는 시습이 넌 이제 완벽한 알코올중독자가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이제 겨우 만 스무 살인데, 네 얼굴은 마흔두 살처럼 보인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다 맞는 말이다. 나 또한 가끔 샤워하고 나서 거울을 보다 어? 하고 놀라 뒷걸음질치곤 했다. 거기엔 눈꼬리가 처지고 턱과 목의 경계가 사라지고 머리칼은 어깨까지 닿은, 얼굴 큰 남자가 서 있었다. 키 173센티에 가슴은 아래로 처지고 배는 부풀어오른 몸매, 그래서 다리는 더 짧아 보이는 체형. 나는 한참 동안 거울 속 내 몸을 바라보다가 하아, 입김을 불었다. 그러곤 손가락으로 천천히 이시봉의 얼굴을 그렸다. 나 또한 내가 알코올중독자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젠 술 없인 잠들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만큼 내 상태를 잘 인식하고 있다. 술을 마시면 더 긴장하게 된다. 술을 마시면 생활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좀 취한 상태에서도 열심히 집안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이시봉의 배변 패드를 갈고 설거지를 해치우고 내 동생 시현의 아침 밥상을 차린다. 술이 그나마 나를 생활인으로 만든다는 것, 내 친구들을 그 사실을 알까? 내가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그러면 이 모든 것을 그냥 다 놓아버리고 한순간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는 것, 그 마음을 알까?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친구들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
바로 그제도 나는 좀 취한 상태로 야산을 내려왔다. 6월에 접어들자 오전 다섯시만 돼도 주위가 환해졌다. 초록은 더 초록으로, 갈색은 더 갈색으로, 각자 자기 색깔을 드러내면서 자꾸 풍경 밖으로 나를 밀어냈다. 서두르지 않으면 이른 산책을 나온 사람들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오전 네시 삼십분 이전엔 내려왔어야 했는데, 그날은 내가 좀 방심했다. 오랜만에 보드카를 마셨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토닉 워터를 섞어서 반병만 마시고 다음날 또 마실 생각이었는데, 그게 잘 안 됐다깜빡하고 토닉 워터를 안 갖고 올라갔다. 평소처럼 이시봉이 앞장서고 나는 빈 보드카 병이 든 검은색 비닐봉지를 손가락에 걸고 는적는적 걸어내려왔다. 아침엔 어묵탕을 끓여야지. 냉장고에 무랑 쑥갓이 있던가? 시현은 곧 기말고사인데, 비타민도 미리 주문해둬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외할머니는 종종 내게 외할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개가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니 술은 적당히 마셔야 한다고. 외할아버지는 왜 술만 마시면 개가 되었을까? 네 발로 걸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같은 말을 반복해서 그랬을까? 글쎄,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의 어떤 모습을 보고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순 없지만, 내 경우엔 이랬다. 술을 마시면 개의 목소리가 조금 느리고 선명하게 들려왔다. 이시봉의 표정도 더 분명하게 보였다. 그래서 나는 술을 마시고 이시봉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 평소 이시봉에게 서운했던 마음도, 예전 안 좋았던 기억도 서슴없이 말했다. 이시봉은 그런 내 말을 가만히 들어주었다. 그러니, 나 역시 술을 마시면 개가 되는 게 맞았다. 나는 그 점에 대해선 아무 불만 없었다.
한데, 그날은 좀 달랐다. 다른 날 같았으면 거의 나란히 야산을 내려와 보도블록이 깔린 인도로 접어들었을 텐데, 그날은 아파트 단지 후문이 눈에 들어올 때부터 이시봉이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왜 그래, 이시봉! 나는 뒤에서 이시봉을 불러보았다. 하지만 이시봉은 멈추지 않고 더 맹렬한 속도로 달려나갔다. 뭘 봤나? 나는 좀 서운한 마음이 들어 괜스레 비닐봉지를 허공에 휘휘 휘둘렀다. 봉지에선 붕붕, 벌 소리가 들렸다.
그날 이시봉이 무엇을 보았는지, 그건 리다가 찍은 영상에 자세히 나와 있다.
리다의 인스타그램엔 삼십 초 분량의 짧은 릴스만 올라왔지만, 후에 나는 육 분이 넘는 원본을 볼 수 있었다. 말하자면 ‘형집행인’이 놀이터에 등장했다가 황급히 퇴장하고 이어서 이시봉이 출현하는 전 과정, 그 새벽의 추격전을 모두 보게 된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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