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과거가 앞에, 미래가 뒤에 있다고?
과거, 현재, 미래. 이 세 가지 시간 영역은 (적어도 우리가 어른이 된 뒤에는) 삶의 본질적 요소처럼 보인다. 손에 잡힐 듯할 정도다. 영어 구사자는 시간 진행의 이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언어에 반영되어 있으며 행위가 언제 일어나는가에 따라 동사의 형태가 달라진다는 것을 어릴 적부터 배우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행위가 과거에 일어났을 때는 “I jumped나는 뛰었다”라는 식으로 말한다. 즉, 무언가가 이미 일어났음을 청자에게 알릴 때는 많은 동사에 접미사 ‘-ed’를 붙인다. 미래에 뛰는 사건을 가리킬 때는 “I will jump나는 뛸 것이다”, 더 흔하게는 “I’ll jump”나 “Ima jump”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도 배운다.
이 약속은 아이든 어른이든 영어를 배울 때 애먹는 이유 중 하나다. 사건의 과거, 현재, 미래 상태를 규칙적으로 전달하는 법을 배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영어 학습자는 동사의 시제 표지 중에서 불규칙하게 바뀌는 것들도 배워야 한다. 이를테면 아까 점심을 먹은 사건에 대해서는 ‘ate’를 쓰지만 나중에 저녁을 먹을 사건에 대해서는 ‘will eat’를 쓴다는 것을 암기해야 한다. 언어를 배워 본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때로는 이런 불규칙성이 도를 넘기도 한다.
이런 낱말 수준 특이성에 가려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시제에 대해 배우는 것 중에는 더 기본적인 것도 있다.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배운다. 어릴 때 언어를 습득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이 특정 시간 범주가 존재한다는 사실, 거의 손에 잡힐 듯 현실적이라는 사실, 그것이 시간의 작동 원리이기에 우리가 기본값으로 언급해야 하는 기본 범주라는 사실을 배운다는 뜻이기도 한다. 언어는 이 추상적 시간 범주가 구체화되는 데 한몫한다.
어쨌거나 과거, 현재, 미래는 막연한 개념이다. 몸을 둘러싼 물리적 공간을 지각하는 구체적 방식으로는 시간을 지각할 수 없다. 물리적 주변에 있는 물체는 손을 뻗어 만질 수 있지만 과거는 그런 식으로 다시 방문하거나 그 존재를 입증할 수 없다. 또한 우리는 결코 미래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현재는 포착되지 않는다.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찰나는 인식하는 그 순간 이미 지나가버렸기 때문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범주가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언어 덕분이다. 이 장에서는 영어 구사자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이는 시간의 측면들 중 일부가 많은 여타 언어 구사자에게는 부자연스러워 보일 수도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말은 영어 구사자가 시간을 실제로 독특하게 경험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럼에도 언어적 증거로 보건대 영어 구사자가 시간을 개념적으로 분절하는 방식이 특수한 이유는 그들이 쓰는 언어 때문이며, 다른 언어 구사자들은 자신의 언어에 유창해지려면 설령 시간 진행을 영어 구사자와 비슷하게 경험하더라도 영어와는 다른 시간 범주반드시 과거, 현재, 미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를 기본 범주로 익혀야 한다. 이 장에서는 사람들이 시간에 대해 생각하는 다양한 방식이 어떻게 언어에 반영되고 잠재적 영향을 받는지를 다양한 갈래의 연구를 통해 논의할 것이다.
모든 언어에 시간 표현이 있다는 착각
출발점은 시제다. 왜 영어에 시제가 세 개냐고 물으면 내 학부생들 중 몇몇은 얼떨떨해한다. 엉뚱한 질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어 시제가 세 개인 이유는 당연히 시간 범주가 세 개이기 때문이며 영어 문법이 과거, 현재, 미래를 다르게 나타내는 이유는 당연히 우주가 그렇게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을 문법적으로 표시하는 방법은 이것만이 아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우리 삶의 자연스러운 영역인 이유는 시간을 바로 이 매개변수에 따라 표시하는 언어를 우리가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짜 인과관계는 통념과 정반대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시간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 시간의 본질적 성질에 의해 제약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을 가리키고 심지어 개념화하는 방식의 기본값이 언어에 의해 제약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 세계 사람들이 시간을 물리적으로 다르게 경험한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하는 주장은, 또한 나 이전에 많은 사람이 했던 주장은 그보다 덜 급진적이지만 그럼에도 직관에 어긋날 수 있다. 우리가 시간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 시간의 작동 원리에 대한 심적 표현의 기본값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말이다. 이 주장이 참이라면, 즉 영어의 문법적 특징이 우리가 시간 진행을 개념화하는 데 영향을 미치거나 적어도 시간을 가리키는 방법을 결정한다면 우리는 모든 언어가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하지는 않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전 세계 언어의 상당수는 시간을 이 범주로 나타내지 않는다. 뒤에서 내가 현장 연구를 실시한 언어들을 소개하겠지만, 실제로 전 세계 언어의 많은 문법에서는 시간 범주가 과거, 현재, 미래가 아니다.
우리가 지난 수십 년간 언어에 대해 배운 많은 것은 전 세계 토착 집단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한다. 현대의 언어학 현장 연구는 다양한 과제로 이루어지는데, 기본적 실험을 실시하고 정량적 패턴을 찾기 위해 음향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도 여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이런 현장 연구의 방법에는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복잡한 고전적 접근법이 여전히 포함되는데, 이를테면 밀림 오지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전 세계 언어에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해 교실과 도서관에서 다년간 선행 연구를 진행하여 질문에 살을 붙일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러고 나면 현장 연구에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머나먼 오지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녹음하는 일뿐이다.
내 현장 연구는 대부분 ‘카리티아나어Karitiâna’라는 언어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것은 아마존 남부의 한 부족이 쓰는 언어다. 내 연구 이전과 이후에도 이 매혹적인 언어를 연구한 사람들이 있다. 박사 학위를 준비하던 2000년대 중반의 약 2년간 나의 하루 일과는 카리티아나어 구사자의 도움을 받아 그 언어의 미묘한 성격을 탐구하는 것이었다. 이 현장 연구는 아마존 토박이 화자와 마주 앉아 질문을 던지는 것이 전부일 때도 있었다.
이 과제가 간단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정신적으로는 고달픈 면도 있었다. 언어학 현장 연구자들은 이런 연구가 보람이 있긴 해도 기력을 고갈시킨다는 데 동의한다. 성인이 되어 외국어를 배우려고 시도해본 사람이라면 책, 유튜브 동영상, 챗GPT 예문, 그 밖에 어떤 오만가지 요긴한 도구가 있어도 외국어 학습이 쉽지 않은 일을 알 것이다. 심지어 영어 구사자가 독일어를 배울 때처럼 자신의 모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언어를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다. 위와 같은 도구 없이 낯선 언어를 기술하고 말하는 것은 고역일 수 있다. 내 경우는 앞선 언어학자들의 연구로부터, 특히 카리티아나어의 특징을 기록한 선교사들에게 막대한 도움을 받았다. 그럼에도 막막할 때가 많았다. 벌레가 들끓고 어수선한 열대의 더위 속에서 암호를 해독하는 심정이었다.
이런 현장 연구가 신나는 순간으로 이어질 때도 있다. 암호를 풀어 일반적 언어 이해에 이바지할 통찰을 얻은 듯한 기분이 드는 때였다. 카리티아나어가 시간을 가리키는 방식을 더 깊이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가 그랬다. 카리티아나어는 어떤 면에서 ‘특이 유형’이어서 전 세계 어느 언어와도 공통점이 없다. 카리티아나어가 시간을 기술할 때 특이한 점 중 하나는 시제, 즉 우리가 ‘과거, 현재, 미래’라고 생각하는 것을 처리하는 방식에서 잘 볼 수 있다. 카리티아나어 작별 인사를 살펴보자직역하면 “나는 갈 것이다”라는 뜻이다.
(1) ytakatat-i yn
“갈게.”
여기서 용언 ytakatat는 “나는 간다”라는 뜻이다. 용언에 붙은 접미사 '-i'는 해당 작용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아래 예문은 “나는 갔다”라고 말하는 문장이다.
(2) ytakatat yn
“나는 갔다.”
앞으로 보겠지만 이 경우에는 용언에 접미사 ‘-i’가 붙지 않는다.
그렇다면 카리티아나어는 접미사를 붙여 과거 시제를 나타내는 게 아니라 과거 시제가 기본값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간다”를 뜻하는 카리티아나어 문장에서는 이 설명이 성립하지 않는다.
(3) ytakatat yn
“나는 간다.”
보다시피 위 카리티아나어 문장은 “나는 갔다”의 경우와 같다. 용언이 불규칙 변화를 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예를 수도 없이 들 수 있다. 용언 ‘가다’는 카리티아나어 기본 시제 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준다. 이 체계는 미래에 일어난 사건을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나 현재에 일어나는 사건과 구분한다. 카리티아나어 시제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구별되지 않는다. 물론 카리티아나어 구사자는 현재 일어나는 사건과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구별한다.
하지만 일부 언어와 마찬가지로 카리티아나어는 ‘미래 대 비미래’라는 이분법적 시제 체계를 채택했다. 영어나 포르투갈어 문장을 카리티아나어로 번역하려면 세 가지 시제를 두 가지 시제에 욱여넣어야 한다. 반대로 대부분의 카리티아나어 구사자는 포르투갈어를 배워야 하는데 그들은 비미래라는 한 가지 시제가 포르투갈어에서는 현재와 과거라는 두 가지 시제로 나뉜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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