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 적힌 종이 상자
“사탕, 월병, 과자 등 식품은 1번이라고 적은 상자에 넣고 건전지, 집게, 고무줄, 머리핀, 빈침[핀], 호꾸[걸단추], 이런 잡동사니는 2번 상자에 넣어라.”
5층 삼촌의 지시에 따라 두 남성이 구들에 널브러진 물건을 상자에 넣고 있었다.
“칫솔, 치약, 소화제, 소염제, 이런 것은 3번 상자, 손수건, 양말, 스카프 등의 재질은 4번 상자에 넣고.”
“아지노모도특정 브랜드가 아니라 조미료 전체를 부르는 말, 사카린은 어디예요?” 그중 한 명이 물었다.
“그건 마선[재봉틀] 밑에 넣을까 한다. 잠깐 기다려 봐.”
5층 삼촌은 방 한구석에 세워져 있던 재봉틀을 해체했다. 의자에 앉아 작업할 수 있는 높이의 재봉틀은 세 부분으로 해체할 수 있었다. 재봉기, 재봉기를 넣는 몸통, 그리고 재봉틀 다리다. 5층 삼촌은 아지노모도와 사카린 봉지의 한 면에 테이프를 말아 붙여 양면테이프처럼 만든 후 재봉틀 몸통의 안쪽 상단에 붙이고 테이프를 덧붙였다. 위에서 들여다봐도 바로 보이지 않았다. 재봉기 몸통을 위아래로 두어 번 휙휙 흔들어 보더니, 5층 삼촌은 “뭐 이 정도면 될 것 같아.”라고 했다.
“캬~, 완전 고숩니다! 하하~.”
물어 본 남자가 엄지척을 날렸다.
“내가 지금 이거로 먹고 산 게 몇 년이야, 니들도 그렇지 않니?”
“그럼요. 형님 덕분에 우리도 하하.”
세 사람은 분업이 잘 되었고 포장 과정의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두 시간도 안 되어 물건들은 모두 상자에 들어갔다. 상자 아랫부분과 옆구리 쪽만 테이프를 붙이고 풀기 쉽게 끈으로 묶었다.
“해관[세관]에서 또 검사받아야 해서 이 정도만 해 두면 돼. 저녁이나 먹자. 나가서 소탕[소고기국밥]이나 먹을까? 내일 아침 일찍 떠나야 하니까, 저녁을 든든하게 먹어야지.”
5층 삼촌은 손을 툭툭 털면서 말했다.
“민철아, 너도 가서 먹자. 그리고 내일 아침 같이 갈래? 어차피 돌아오는 차에 오면 되니.”
“예, 좋아요. 어머니께 말씀드려 볼게요.”
민철이도 5층 삼촌 일행을 따라 저녁 먹으러 갔다. 뜨끈한 소고기국밥을 배부르게 먹고 집으로 돌아오면서부터 민철이는 내일 아침이 기대되었다.
*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5층 삼촌네 집 문을 두드렸다.
“어, 들어와.”
이미 출발 준비를 마친 삼촌 일행은 트럭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7시가 되자 아래에서 “빵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야, 왔다. 내려가자. 짐은 천천히 들고 내려가면 된다. 안 급하다.”
상자는 총 7개였다. 한 사람이 두 번씩 건물을 오르내렸고 남은 하나는 민철이가 들고 내려갔다. 민철의 부모님은 4층에서 위아래를 보며 구경하다가, 차가 출발할 때 “삼촌 말씀 잘 듣고, 구경 잘 하고 와라.”고 말했다.
차가 귀했던 1989년, 상자 7개를 뒤에 싣고 북-중 국경으로 나가는 일은 동네 구경거리였다. 5층 삼촌이 북한 무역하러 간다는 소문은 벌써 퍼졌다. 아침잠이 적은 동네 어르신들은 차 옆으로 빙 둘러 모였다. 차를 구경하러 온 것인지, 북한에 잠깐 다니러 가는 일행을 구경하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5층 삼촌은 보조운전석에, 두 남성과 민철은 뒤에 탔다.
용정[룽징] 시내 한가운데서 출발한 트럭은 용두레 우물과 시정부청사로 사용 중인 옛날 간도 일본 총영사관 건물을 지나 금방 근교까지 갈 수 있었다. 도시가 크지 않은 데다가 아침 시간이어서 기사는 브레이크를 거의 밟지 않았다. 남쪽으로 향한 트럭은 시골 도로를 따라 육도하해란강의 지천를 거슬러 달렸다. 안중근 의사가 사격 연습을 했다는 선바위, 윤동주 시인의 생가 마을인 명동촌을 선후로 지나 인적이 점차 드물어지는 국경 지역에 진입했다.
8월 초 두만강 이북의 아침은 시원했다. 기사를 제외한 일행은 아침밥으로 봉지에 담아 온 뽀즈[만두의 현지 표현]를 먹었다. 한참을 더 달린 트럭이 꽤 넓은 평야에 진입하자 전방에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예전에 와 봤지? 저 앞의 산이 회령이다. 산 바로 아래는 두만강이고. 있다가 가까이 가면 잘 보인다.”
민철이도 전에 여러 번 다녀 본 곳이었지만 올 때마다 느낌은 새로웠다. 같은 말과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나라의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점, 게다가 저 강을 건너 남쪽으로 계속 가면 또 하나의 장벽이 가로막고 있으니 말이다.
일행은 삼합에 도착했다. 중국 측 국경 마을인 삼합[싼허]은 북한의 회령과 마주 보고 있는, 북-중 간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한 오래된 통상구다. 트럭은 마을 한가운데로 들어가 군인이 보초 선 대문 앞에 멈췄다. 차에서 내린 5층 삼촌이 호주머니에서 서류 같은 것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러자 군인은 서류를 들고 트럭 쪽으로 와서 일행을 확인했다. 손짓을 보니 들어가라는 사인이었다. 트럭은 대문 안으로 들어가, 다른 차들을 피해 건물과 가까운 곳에 주차했다. 이 건물은 중국 측 출입구 사무소 건물이다.
일행은 차에서 내려서 큰 밀차에 상자와 마선을 싣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한산한 밖에 비해 안에는 제법 사람들이 있었다. 건물 반대편으로 연결된 문 두 곳에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두 줄을 서 있었다. 한 줄은 북한으로 나가려는 사람들, 다른 한 줄은 북한에서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얘는 학생이요. 그냥 저기 앞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갈 애요.”
5층 삼촌이 통행증 없는 민철을 가리키면서 출입국 직원한테 한 말이다. 그 직원도 알았다는 듯이 지나가라고 했다. 일행은 출국장을 나와 국경 다리와 연결된 작은 공터에 모였다.
“야, 거 봐라. 사카린, 아지노모도 다 일없지? 내가 뭐랬니?”
5층 삼촌은 우쭐하면서도 나지막하게 말했다. 민철은 너무 티 나게 반응하면 주목받을 것 같아 예의상 머리만 끄덕였다.
“건너만 가면 다 된 거야. 저쪽에서는 굳이 신경 쓸 일이 없으니.”
5층 삼촌은 자신만만했다.
“9시에 건너갈 사람들 여기 다 모이세요!”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큰 소리로 말하자 공터에 삼삼오오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모였다. 민철이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이것저것 주의 사항을 안내받고, 9시 정각이 되자 사람들은 다리 쪽을 향했다. 다리의 중간쯤에 국경이라고 표기한 선이 있고, 이 선을 가운데 두고 양측에 완충 지역이라고 표기한 선이 또 있었다. 5층 삼촌은 민철에게 3주 뒤에 보자고 말한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국경선을 건넜다. 두 남성도 뒤따랐다. 민철이처럼 완충 지역에 남아 건너지 않는 사람은 전체의 1/3 정도였다. 배웅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사람들 중에는 자기들끼리 “너를 확 건너편으로 밀어 버릴까? 저쪽에서 따발총으로 드르륵하게.”, “뭐라고? 너는 그러면 내가 다리 밑으로 확 밀어 버릴까? 둥둥 동해에 떠내려가서 간이 사라지게 말이야!”라는 험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이 사람들 속에 섞여 민철이 타고 온 트럭으로 돌아가자,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던 기사는 시동을 걸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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