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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며칠이에요?
독서교실에서 나의 하루는 칠판에 날짜를 적는 것으로 시작한다. 혼자 일하다 보면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감각이 둔해져서 날짜를 확인하려면 달력을 봐야 한다. 일정에 대한 감마저 떨어지는 것 같다. 어린이들도 무얼 쓰다가 “선생님, 오늘이 며칠이에요?” 하고 물어볼 때가 많다. 급할 때는 스마트폰을 보고 날짜를 알려주는데 어린이들한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싫다. 이런 간단한 것까지 스마트폰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내키지 않는다. 하루를 잘 보내자는 마음도 다질 겸, 첫 일과로 날짜를 적는다. 스마트폰을 보고.
날짜 아래는 그날그날 손에 잡히는 대로 마스킹 테이프를 골라 밑줄 긋듯 붙인다. 화이트보드가 한결 화사해 보인다. 그 아래 이제 올 어린이들의 이름을 적는다. 수업이 끝나면 이름을 지우고 다음 시간에 올 어린이들 이름을 적는 식이다. 처음엔 가나다순으로 적다가 그 반대로도 적다가, 그럼 중간에 있는 어린이들이 재미없어할까 봐 그냥 내 마음대로 적기로 했다. 어떤 날은 교실에 도착하는 순서대로 써주고, 어떤 날은 그걸 거꾸로 한다. 어린이들은 칠판에 자기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좋아한다. 한번은 “요즘 제 이름이 자꾸 꼴찌로 쓰이는 것 같아요” 하고 불평하는 어린이가 있었는데 다음 2주 연속 맨 앞에 써주는 것으로 잘 합의되었다. 이름 옆에 꽃이나 하트, 별 같은 걸 그려주면 또 좋아한다. 어린이는 정말 별별 작은 것을 다 좋아한다.
하루는 날짜 적는 걸 깜짝했는데, 먼저 온 어린이가 “오늘은 제가 써보면 안 돼요?” 하고 제안했다. 나는 그러라고 하면서 칠판 중간을 가리켰다.
“나는 키가 커서 저 위에 적지만, 너는 이쯤에 쓰면 될 것 같아.”
그랬는데도 기어이 까치발을 하고 평소 내가 날짜 쓰는 자리부터 쓰기 시작하더니 다음 글자부터 앞 글자보다 조금 아래, 또 조금 아래 쓰게 되어서 결국 오른쪽으로 40도 정도 기운 한 줄이 완성되었다. 그날은 마스킹 테이프도 그 각도에 맞추어 붙이고, 어린이들 이름도 비스듬히 썼다. 오는 아이마다 깔깔 웃었다.
어느 날은 어린이들이 각자 자기 이름을 써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라” 했더니 다들 조르르 나와 정성껏 제 이름을 적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기분이 안 좋아 보이던 은호가 관심 없다는 듯 “제 이름은 그냥 선생님이 써주세요” 하는 것이다. 나는 다른 어린이들 글씨보다 세 배 크게 은호 이름을 적었다. 그러자 아이들이 또 깔깔 웃으며 “황성찬, 박동건, 윤지혜”라고 이름들을 읽은 다음 “김은호!”라고 외쳤다. 은호도 덩달아 웃었다. 그날은 모두 은호 이름만 “은호야!” 하고 크게 부르기도 했다. 나는 일부러 은호 이름을 여러 번 불렀다. 나도 참 별별 것을 다 좋아한다.
자기들 이름 옆에 “선생님”이라고 써준 어린이가 있었다. 내가 “아니, 그럼 나는 이름이 생님이야? 내 친구들은 나를 생님아 하고 부르는 거야?” 하고 웃으며 따졌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선생님 이름을 몰라서…….”
어린이들은 웃었지만 나는 미안했다. 그렇지, 내가 이름을 알려주긴 했어도 외울 필요는 없었겠지. 옛날에 어떤 어린이는 나랑 미술학원 선생님을 헛갈려 한 적도 있다. 나는 메모지에 내 이름을 써서 어린이한테 주었다. 잊어버리면 또 물어보라고도 했다. 날짜와 이름 쓰기만으로 별별 일이 다 생긴다.
한번은 내가 착각해서 날짜를 전날 것으로 잘못 썼다. 그걸 본 세영이가 말했다.
“어? 선생님, 지우지 마세요! 저 어제 생일이었거든요. 오늘도 하면 안 돼요?”
다른 어린이들도 좋다고 해서 우리는 ‘어제인 것처럼’ 수업을 했다.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기분이나마 하루 시간여행을 다녀오는 게 재미있었다.
한 30년 뒤로 가보자고 칠판에 2054년이라고 쓴 날이었다. 느낌을 살리려고 어린이들 이름 뒤에 괄호를 치고 나이도 적었다. 황성찬(40세), 박동건(40세)…… 그리고 김소영(78세).
“하하, 내가 40살이래!”
“내가 우리 엄마보다 나이 많다!”
“아니지, 그때는 엄마들도 나이가 많지.”
어린이들은 떠들썩한데, 왠지 나는 조금 마음이 복잡해졌다. 78세 김소영이라니. 이 어린이들은 40세인데. 당연하잖아, 지금 내가 48세니까. 그런데 내가 78세가 되는구나. 물론 그때까지 산다면 말이지만……. 나도 옛날에는 38세고 막 그랬는데.
갑자기 은호가 큰 발견을 한 것처럼 외쳤다.
“선생님, 그때는 저희가 선생님 이겨요!”
여기에는 설명이, 아니 해명이 필요하다. 얼마 전 이 어린이들이 왠지 너무너무 신나 있어서 내 말을 잘 듣지도 않고, 들은 다음에도 퐁당퐁당 말을 붙여대서 어쩔 수 없이 ‘나이주의’로 주도권을 되찾은 적이 있다. 너희 나이는 다 합쳐도 40살이 안 되니까그때는 한 명이 생일이 안 지난 상태였다, 48살인 내가 이기는 거라고. 그러니까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이 일등이라고……. 쓰고 보니 변명인 것 같다.
“그래, 그땐 내가 지네. 여러분은 160살이고 나는 78살이니까. 뭐야, 나 아기잖아?”
어린이들이 와그르르 웃었다. 그런데 내 마음은 와그르르 무너졌다. 어린이들이 자라듯이 나도 자라는구나. 78세로.
집에 와서 이런 걸 적어보았다.
김소영(8세) : 초등학교(국민학교) 입학 #사회생활시작
김소영(18세) : 고등학교 2학년 #교복 #매점 #내신
김소영(28세) : 출판사 근무 #어린이책 #월급 #맥주
김소영(38세) : 독서교실 #광고포스터 #어린이
김소영(48세) : 독서교실 선생님 겸 작가가 됨 #오늘
김소영( )
그렇다. 다음 칸은 ‘김소영(58세)’다. 시간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속도로 흘러간다. 나는 똑같은 속도로 나이를 먹어간다. 특별히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나름대로 발전적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냥 계속 자라는 것으로 쳐도 되지 않나? 앞 문장에 부사를 너무 많이 썼다. 이렇게까지 부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진술은 믿을 수 없다. 책임을 다해야 할 어른이 나도 아직 자라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뻔뻔하다.
그럼 몇 살부터 ‘자란다’가 아니라 ‘늙는다’가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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