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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삶
너무나 소박한 너무나 섬세한
철학은 ‘건강하려는 사람의 본능’
한 철학자의 사유에 들어가는 가장 좋은 길이 있다. 그가 ‘철학’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를 짚으면 된다.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에 그 철학자의 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니체는 철학을 어떻게 정의했을까.
근본적으로 철학은 개인이 건강해지는 법에 대한 본능이 아닐까? 나의 대기, 나의 높이, 나의 기후, 나름대로의 건강을 두뇌라는 우회로를 통해 추구하려는 본능이 아닐까? 다른 많은, 그리고 분명히 더욱 높은 숭고한 철학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나의 철학보다 더 음울하고 까다로운 철학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그것들도 모두 그러한 개인적인 충동들의 지성적인 우회로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철학이 근본적으로 ‘건강하려는 본능’이라는 정의는 철학사를 톺아보아도 파격일 만큼 새롭다. 그 정의에는 철학이 직업으로서 철학 교수의 전유물일 수 없다는 사실, 모든 사람이 이미 철학자라는 진실을 담고 있다.
니체의 저서에서 ‘건강’은 ‘병’과 더불어 자주 나오는 말이다. 그의 철학에서 병과 건강의 가름대는 몸의 특정한 질병이 아니다. ‘삶’이다. 삶의 관점에서 병과 건강을 짚은 니체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두루 앓고 있는 병을 진단하며 치료에 나섰다. 서양 철학사에서 철학자들은 종종 ‘시대의 의사’를 자임했거니와 니체 또한 자신을 ‘철학 하는 의사’로 여겼다.
그렇다면 니체가 진단한 삶의 병은 무엇인가. 무릇 모든 철학이 그렇듯이 철학자의 사유는 그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삶을, 더구나 시대의 병과 건강을 사유한 니체에겐 더욱 그렇다. 그는 몸을 경멸하고 이성을 중시해온 서양철학의 전통을 병리적으로 보았다. ‘정신’이라 부르든 ‘이성’이란 부르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기반이자 생산하는 기능 자체가 몸의 일부임을 니체는 통찰했다. 그가 서양철학이 사람의 본질처럼 여겨온 이성을 ‘작은 이성’, 몸을 ‘큰 이성’이라 규정한 이유다. 같은 맥락에서 니체는 ‘자아das Ich’와 이성을 넘어선 ‘자기das Selbst’를 구분한다. 현대과학과 의학은 사람이 이성적 동물이라 자부하는 그 이성이 기실 몸의 산물, 몸에서 비롯되었음을 입증하고 있지만, 니체는 19세기에 그 간명한 진실을 꿰뚫어 보았고 그의 철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결코 놓치지 않았다. 니체 철학을 유물론의 하나로 보는 연구가 나오는 까닭이다.
니체 철학을 논의하기에 앞서 그가 몸을 얻고 그 몸을 잃을 때까지 걸어간 삶의 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니체 스스로 “지금까지의 모든 위대한 철학의 정체”는 그 철학자가 말하는 “자기 고백이며, 원하지 않은 채 자기도 모르게 씌어진 일종의 수기手記”라고 단언했다. 철학적 사유를 전개한 니체가 지상에 존재했던 나날, 곧 삶이 그의 철학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렇다면 먼저 몸을 지니고 있던 니체부터 만나보자. 니체가 사랑해 청혼까지 했던 여성 살로메lou Andreas-Salomé가 쓴 첫인상이 사뭇 생생하다.
감추어져 있던 것, 침묵하는 고독의 예감이 니체라는 현상을 사로잡은 최초의 강한 인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 너무나도 소박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세심한 의상을 입고, 조용한 상태로, 아주 단순하게 뒤로 빗어 내린 갈색 머리를 가진 이 보통 체격의 남자는 쉽게 지나칠 수가 없다.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섬세한 입술 선은 빗질해 다듬은 큰 수염에 거의 완전히 덮여 있다. 니체는 요란하지 않게 이야기하고 조용하게 웃었으며, 신중하고 사색적인 걸음걸이였는데, 걸을 때 어깨를 약간 구부렸다. (…)
시선은 변화하는 외적 인상을 다시 비추는 대신에 그 내면을 통해 이끌어낸 것만을 표현함으로써 그의 인상에 아주 특별한 방식의 매력을 가져다주었다. 이 눈은 내면적인 것을 응시했고 동시에―다음 대상을 넘어서서―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혹은 더 잘 표현하자면, 내면적인 것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응시했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그의 사상가로서의 연구 전체는 발굴되지 않은 세계에 대한, 그가 끊임없이 만들고 변형했던 “아직 고갈되지 않은 가능성”에 대한 인간 영혼의 철저한 연구였기 때문이다.
살로메는 니체의 일상생활은 기품 있는 은둔자와 어금버금하다면서 “아주 겸손하고 거의 여성적인 부드러움으로, 언제나 호의적인 침착함으로 일관했다”고 적었다. 니체가 너무나 소박했으며 섬세한 입술 선과 ‘여성적 부드러움’을 지녔다는 증언은 그가 철학을 힘차게 전개한 문체와 자못 대조적이다.
생전의 니체가 그려졌다면, 이제 ‘인간 영혼의 철저한 연구자’가 몸으로 걸어간 삶을 간략히 살펴보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는 1844년 10월 15일 프로이센독일 통일을 주도한 왕국의 라이프치히 근교에 있는 작은 마을 뢰켄에서 태어났다. 채 다섯 살이 안 되었을 때 목사인 아버지를 뇌연화증으로 잃었다. 뇌동맥에 피가 제대로 흐르지 못해 뇌 조직이 괴사하는 병이다. 아들 니체도 커가면서 두통에 시달렸고 자신도 아버지처럼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을까 불안에 젖은 글을 남겼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니체는 어머니와 누이에 고모들이 더해 여성들로만 둘러싸인 가정 환경에서 자랐다. 집안의 관심을 독차지했지만 병치레가 잦았다. 일곱 살이 된 니체는 기독교, 라틴어, 그리스어를 가르치는 사설 교육기관에 들어갔고 이어 열네 살1858년에 인문계 중등학교에 입학했다. 10대 시절의 니체는 고전어에 재능을 보이며 문학적 소질을 드러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어떻게 해서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나’를 주제로 자전적인 짧은 글을 아홉 편 썼다. 자의식이 강한 청소년이었음을 알 수 있다.
1864년 스무 살이 된 니체는 본Bonn 대학에 들어가 목사 집안의 어머니와 고모들의 뜻에 따라 신학을 공부했다. 기독교 신학과 더불어 고전문헌학과 예술사에 관심을 보였다. 한 학기 지나면서 당시 명성 높던 문헌학자 리츨Friedrich Wilhelm Ritschl의 강의에 끌린 청년 니체는 신학을 접었다. 문헌학philology, 文獻學은 문헌을 통해 한 민족 또는 시대의 문화를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삶의 물증인 문헌을 체계적으로 인식하는 작업이기에 문헌학을 ‘인식된 것에 대한 인식 작업’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문헌학 연구방법론이 인식의 관점을 중시한 니체의 철학 전개에 영향을 주었을 법하다. 대학 2학년이던 1865년 겨울 학기에 리츨 교수가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기자 니체도 그를 따라 전학했다. 리츨은 그런 니체를 아끼며 적극 지도했다.
그런데 대학생 니체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찾아왔다. 리츨 아래서 문헌학 공부에 열중하던 어느 늦가을, 고서점을 찾았을 때다. 책장에서 우연히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가 들어왔다. 책을 뒤적이던 니체는 충격을 받았고 곧장 구입해서 집에 돌아온 뒤 밤새워 정독했다. 삶을 바라보는 눈에서 ‘낙관주의의 안대’가 벗겨지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더 예리해진 니체의 눈에 삶은 “더 추악해지긴 했어도 훨씬 흥미롭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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