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데인 근교에 사바네타라고 불리던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 있었어. 내가 익히 잘 알던 곳이었지. 그곳과 가까운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거든. 엔비가도에서 오는 길 한쪽에 또 다른 마을이 있었는데, 사바네타와 그 마을 중간에 있는 산타 아니타 농장이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었어. 엔비가도에서 오는 길 왼쪽에 있는 농장이었지. 그러니 내가 그곳을 잘 아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야. 그곳은 그 길의 끝에, 그러니까 오지 중의 오지에 있었어. 그 너머로는 아무것도 없었어. 그곳에서 세상은 내려가기 시작했고, 둥글게 변해 빙빙 돌기 시작했어. 나는 우리가 안티오키아의 하늘에서 보았던 것 중에서 가장 큰 풍등을 띄웠던 그 날 오후에 확인했어. 그건 120개의 주름으로 이루어진 엄청나게 큰 마름모꼴이었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눈에 훤히 띄도록 빨간색으로, 정말로 빨갛고 빨갛게 칠해져 있었어. 당신들은 그것이 얼마나 큰지 믿을 수 없을 거야. 그런데 당신들이 그 풍등에 관해 무얼 알지? 그게 어떤 건지 알아? 그것들은 마름모꼴이거나 십자가 형태, 혹은 공 모양인데 얇고 무른 창호지로 만들어지고, 그 안에는 조그만 촛불이 하나 켜져 있어. 그 촛불이 풍등을 연기로 가득 채워 하늘로 올라가게 해. 사람들은 연기가 그들의 영혼이며, 조그만 촛불은 그들의 마음이라고 말해. 풍등이 연기로 가득해져서 줄을 세게 끌어당기기 시작하면, 풍등의 줄을 붙잡고 있던 사람들, 그러니까 우리는 줄을 놓아 풀어줘. 그러면 풍등은 마치 예수의 성심처럼 고동치면서 불타는 가슴으로 하늘로 날아올라. 당신들은 그가 누군지 알아? 우리는 보통 거실에 그를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 안티오키아주의 주도(州都) 메데인의 페루 거리에 있는 집 거실에도 한 개가 있었어. 그곳은 바로 내가 태어난 집인데, 그 거실에서 어느 날 나는 왕관을 쓰게 되었다. 당신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를 거야. 그래서 말해 주는데, 그 말은 성직자가 내게 축복을 베풀어 주었다는 말이야. 우리 조국 콜롬비아 역시 그를 받들고 있어. 그는 바로 예수이고, 손가락으로 가슴을 가리키고 있으며, 상처 입은 가슴에서는 심장이 피를 흘리고 있어. 새빨갛고 조그만 핏방울들은 마치 풍등 안에 환히 켜진 양초 같아. 하지만 그건 영원히 콜롬비아가 흘릴 피야.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그런데 내가 왜 당신들에게 풍등과 사바네타에 관해 말하고 있었을까? 아, 그래, 그 커다란 풍등은 바람에 실려 올라가고 또 올라갔고, 그렇게 독수리들을 저 뒤와 저 아래에 남겨 놓으면서 사바네타를 향해 갔어. 우리는 자동차를 쫓아 달려갔어. 그러다가 ‘부르릉!’ 시동을 걸고서 우리 할아버지의 허드슨 자동차를 타고 도로를 따라 풍등을 쫓아갔지. 아, 아니야. 그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허드슨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의 고물 자동차였어. 아 그래, 맞아, 허드슨을 타고 갔어. 이제는 모르겠어,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기억도 나지 않아……. 나는 우리가 이 구멍 저 구멍을 피해 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털썩! 쿵! 털썩! 쿵! 낡고 망가져 버린 도로를 달리면서 차 안은 완전히 엉망이 되었어. 나중에 콜롬비아가 우리를 엉망으로 만든 것처럼.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을’ 엉망으로 만들었어. 나를 그렇게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야. 나는 여기에 살지 않았고, 나중에, 수십 년이 지난 후에 늙은 몸으로 죽기 위해 돌아왔거든. 풍등은 사바네타에 도착하자 반대편으로 땅바닥을 한 바퀴 휙 돌더니 사라졌어. 그 커다란 풍등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아무도 몰라. 중국이나 화성으로 갔을 수도 있고, 아니면 타버렸는지도 몰라. 그 종이는 얇고 주름 잡혀 있어서 쉽게 불붙거든. 조그만 양초의 불꽃만으로도 충분해. 하나의 불꽃이 나중에 콜롬비아를 불태우고 ‘그들’을 불태우는 데 충분했던 것처럼. 그 불꽃, 이제는 아무도 그것이 어디서 튄 것인지 몰라. 그런데 콜롬비아는 이제 내 땅이 아니라 남의 땅인데, 왜 내가 콜롬비아를 걱정하는 거지?
콜롬비아로 돌아오자, 나는 알렉시스와 함께 사바네타로 갔어. 그와 함께 순례 중이었거든. 알렉시스, 아, 그래, 그게 그의 이름이야. 그 이름은 예쁘지만, 그건 내가 붙인 게 아니라 그의 어머니가 붙여준 이름이야. 가난한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자기 아이들에게 부자나 마구 펑펑 돈 쓰는 사람, 혹은 외국 스타일의 이름을 붙여 줘. 가령 타이슨 알렉산더, 혹은 페이버나 에더 또는 윌퍼나 롬멜, 그리고 예이손 등등의 이름을 들 수 있어. 나는 사람들이 어디서 그런 이름을 가져오는지, 혹은 어떻게 그런 이름들을 만들어 내는지 몰라. 이것들, 그러니까 쓸모도 없고 바보 같은 외국 이름이나 억지로 만들어 낸 우스꽝스러운 이름은 가난한 삶 속에서 자기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남보다 낫게 만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야. 그건 그렇고, 나는 그런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무척이나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여기지 않아. 그것들은 피로 얼룩진 청부 살인자들의 이름이거든. 그건 탄알과 거기에 장전된 증오보다 더 단호하고 분명해.
물론 당신들에게는 청부 살인자가 무엇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어. 아마도 우리 할아버지는 그런 설명을 요구할 테지만,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셨어. 불쌍한 우리 할아버지는 고가철도가 무엇인지, 청부 살인자들이 누구인지 알지도 못한 채, 빅토리아 담배를 피우며 세상을 떠났어. 틀림없이 당신은 그게 무슨 담배인지 전혀 들어보지 못했을 거야. 빅토리아는 노인네들의 ‘바수코’야. 바수코라는 건 정제되지 않은 코카인인데, 오늘날 젊은이들은 왜곡된 현실을 더 왜곡해서 보려고 그걸 피우지. 그렇지? 내가 틀리면 고쳐주도록 해. 할아버지, 혹시라도 영원의 또 다른 끝에서 내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나는 청부 살인자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어요. 그건 위탁받아 살인하는 아주 젊은 청년이에요. 심지어 어린아이일 때도 있어요. 그럼 다 큰 남자들은 아닐까? 그래. 청부 살인자들은 일반적으로 어른 남자들이 아니야. 여기서 청부 살인자들은 십 대 아이이거나 아주 젊은 청년이야. 열두 살, 열다섯 살, 아무리 많아도 열일곱 살을 넘지는 않아. 나의 유일한 사랑인 알렉시스처럼 말이야. 그는 순수하고 맑으며 헤아릴 수 없이 깊은 초록색 눈을 가지고 있었어. 우리나라 푸른 목초 지역의 모든 초록색 눈을 뒤져도 그처럼 아름다운 눈은 없었을 거야. 알렉시스의 눈에는 수수함이 서려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상처 입고 아팠어. 그리고 어느 날, 그러니까 그가 가장 원했을 때, 그리고 가장 예상하지 못했을 때, 그는 살해되었어. 우리는 모두 그렇게 죽고 말 거야. 그러면 우리의 재는 모두 같은 묘지로, 그러니까 같은 평화의 들판으로, 즉 낙원으로 가게 될 거야.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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