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서재에서
오롯이 마주해요
‘오롯이서재’는 책을 아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싫어하지도 않는, 책보다는 스마트폰과 수다를 훨씬 좋아하는 부부가 운영하는 동네책방입니다. 책을 아주 많이 좋아하고 또 많이 읽는 사람이 책방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면 저희 부부는 책방을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랬던 저희 부부가 언제부터인가 책방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고 또 정신을 차려보니 돈 안 되는 책방 문을 아침저녁으로 여닫고 있습니다.
독서량이 많거나 책에 대한 애정이 심히 깊은 것은 아니지만 책을 좋아하긴 했습니다. 어쩌다 한번 책을 읽다가 새로운 세계와 생각들을 만나면 그 얘기를 하느라 밤이 깊어가는 것을 잊었습니다. 또 시내에 일정이 생기면 책방을 약속 장소로 잡거나 일부러 들러서 세상 굴러가는 소리를 듣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책을 읽고 듣고 나누면서 자기 자신과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또 그만큼의 오해도 자랐습니다. 이해와 오해는 서로 뒤섞여 얽히면서 빈틈을 만듭니다. 이해와 오해 사이의 틈은 불편하고 낯설기도 했지만 때로는 새로운 것을 채우거나 발견할 수 있는 설렘의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희 부부는 이 공간을 ‘고요하게 그리고 모자람 없이 온전하게’, 오롯이 마주하기로 했습니다.
오롯이서재는 ‘고요하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모자람이 없이 이웃과 소통하며 온전하게 세상을 사랑하는 책과 공간’이 있는 동네책방입니다. 책보다 훨씬 가볍고 빠른 콘텐츠가 손전화기에 펼쳐진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책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자신을 성찰하고 서로 소통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비록 좁고 조금 거칠긴 해도 책을 쓴 사람과 만든 사람들의 시간이 녹아 있고 책방의 공간도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책장들 사이에 켜켜이 쌓여 있던 시간과 공간은 서가에서 책을 꺼내 펼치는 순간 함께 열립니다. 우주보다 넓고 깊은 길이 우리 앞에 펴쳐집니다. 책이 있어서, 동네에 책방이 있어서 그런 길을 더불어 꿈꾸며 걸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이 우주보다 넓고 깊은 시간과 공간을 오롯이서재에서 오롯이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통해 자기를 들여다보고 이웃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가진 것을 내놓고 나누며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또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고 때로 까칠해질 때도 있겠지만 그저 그런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도 함께 만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책방을 하지 않았다며, 우리 동네에 오롯이서재가 없었다면,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정말 책방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6학년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든, 그러나 오롯이서재의 엄연한 단골 소녀가 있습니다. 독서의 양과 깊이 그리고 범위에 있어 독보적입니다. 이 소녀가 동네에 있는 1~2학년 동생들을 두셋씩 모아 역사책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약속한 분량을 미리 읽는 것은 어른에게도 쉽지 않은데 어린 친구들이 웬만해선 다 읽고 옵니다. 커뮤니티 룸에서 모임이 시작되면 책을 읽으며 궁금했던 것,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을 마구마구 던지고 받는 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옵니다. 책방지기로서 손님들이 책을 읽고 나누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지만 손님들끼리 언니이자 누나가 되고 동생이 되어서 더 좋습니다. 친구를 데려와서 나란히 앉아 책도 읽고 수다도 떨며 놀다 가는 친구 같은 손님들이 생겨서 좋습니다. 오롯이서재에는 소외된 이웃과 난민들을 도우며 사는 자유로운 영혼의 활동가 부부도 찾아옵니다. 사람다운 삶을 찾아 낯선 뭍에 오른 이들을, 디딜 곳 없고 기댈 곳 없는 이들을 기꺼이 이웃으로 환대하고 자기 삶을 더불어 나누는 사람 냄새 나는 분들입니다. 또 잡초와 꿀벌을 좋아해서 주말이면 산과 들로 다니며 농사지으며 눌러앉을 땅을 찾아다니는 흙냄새 나는 분들이기도 합니다. 오롯이서재의 서가에는 이런 분들이 추천하는 책, 직접 쓴 책 들이 함께 꽂혀 있습니다. 언니, 오빠, 누나, 동생 같은 친구와 친구의 친구들이 함께 읽는 책, 사람 냄새, 흙냄새 나는 책들이 오롯이서재에 생겨서 참 좋습니다.
동네책방을 준비하면서 나름의 기대와 생각이 참 많았습니다. 내로라하는 전국의 동네책방들을 두루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살폈습니다. 밤을 새워 우리 책방에서 하고 싶은 일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해보니 기대하고 생각했던 것들이 그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던 책방이 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으면서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이 겪고 있습니다. 우선 시대했던 것보다 책을 읽는 사람이 훨씬 적었습니다. 동네책방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돈이 안 되는 장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방지기로서의 삶은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만족스럽습니다. 돈 없이는 살 수 없지만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그 무엇을 오롯이서재에서 누리고 나누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독립한 동네책방을 일구겠다는 생각은 사실상 접었습니다. 지속가능한 책방을 만들기 위해 당장 필요한 것은 책방의 경제적 독립보다는 책방지기의 삶을 담보하는 다양하고 총체적인 경제활동입니다. 좋아하는 책방을 계속하기 위해 책방에 모든 것을 걸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책방을 사무실 겸 연구실로 삼아 다양한 외부 활동, 부업을 기획하고 수익을 냅니다. 돈 안 되는 본업인 책방과 돈 되는 부업의 경계를 스리슬쩍 넘나들면서 책방지기의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책방을 운영하는 일도 항상 좋지만은 않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은 당연하거니와 책을 읽고 고르고 정리하고 소개하는 것이 마냥 즐거운 일도 아닙니다. 나름의 애정과 거금을 들여 사 온 책들이 하릴없이 재로고 쌓여가는 것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합니다. 작가나 출판사와 기껏 조율해서 북 콘서트, 작가와의 만남 같은 행사를 열어도 참가자가 없어서 불안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책에 관한 관심과 수요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만 그럼에도 책방의 가능성을 새롭게 보았습니다. 책방에는 책만 있지 않습니다. 책방에는 시간과 공간도 있습니다. 책에 담겨 있던 시공간이 동네책방을 통해 골목에 펼쳐질 때 동네는 이전의 그곳과 전혀 다른 공간이 됩니다. 매일매일 오가며 마주하던 일들은 이제 새로운 가능성이 됩니다. 슬프거나 기쁜 일, 재미있고 시나는 일, 때로는 속상하고 답답한 일들이 동네책방에서 새롭게 읽히고 쓰입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똑같은 삶을 살며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오롯이서재가 새로운 하루하루를 열어주기를 소망합니다.
저희는 약 3년의 고민과 준비 기간을 거쳐 오롯이서재를 시작했습니다. 이미 큰돈이 들어갔고 그 돈을 언제 회수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망할 것 같은 불안에 떠는 것도 아닙니다. 힘들긴 하지만 찾아주시는 손님들, 책방을 하지 않았다면 만나기 힘들었을 이웃들과의 새로운 만남 덕분에 보람 있고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동네책방, 오롯이서재에서 계속 뵙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이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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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목회자로, 아내 안현미와 함께 책방을 운영하며 프리랜서 장례 지도사로도 활동 중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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