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
“운을 쌓지 못했다. 그래서 패배했다.”
2월 22일, 이제 봄인가 싶더니 다시 추워진 날이었다.
노인은 쓰러져 있지 않았다.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최초 발견자인 오십대 후반의 환경미화원은 처음에는 노인이 죽은 줄 몰랐다고 했다. 혹시 몰라서 노인의 어깨를 흔들었더니 스르르 쓰러졌다고 미화원은 진술했다.
폭설까지는 아니어도 꽤 많은 눈이 내려서 공원이나 소로小路의 눈을 치우려면 사람의 손이 많이 가는 날이었다. 노인의 머리에 눈이 쌓여 있지도 않고, 겨울 외투라기에는 너무 얇은 옷을 입고 있어서 더 몰랐다고 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집 앞으로 산책을 나왔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자신의 행동에 부적절한 면이 있었을까봐 미화원은 말을 한 자 한 자 고르는 데 시간을 들였다. 또 이렇게도 말했다. “저렇게 죽어 있는 사람은 처음 봐서……”
벤치에 앉아 죽었다. 그랬다. 길에 쓰러진 채로 죽은 게 아니었다. 칠십대의 여자 노인이 벤치에 앉아 죽었다는 뉴스를 전해들은 사람들은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기분을 느꼈다.
그런 죽음은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무감한 편인 사람에게조차 여러 가지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누군가는 놀라워했고, 누군가는 당혹감을 느꼈고, 또 누군가에게는 궁금증이 남았다는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추운 겨울에 혼자서…… 벤치에서…… 그런데 앉아서? …… 어떻게 그럴 수가?
세상 사람들에게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고서야 앉아서 맞는 죽음이란, 그것도 겨울의 눈 쌓인 벤치에서 맞는 죽음이란 아주 낯선 것이었다.
그래서 경이로웠다. 노인의 죽음에 대해 들은 이들 중 죽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말이다. 죽지 않은 이들은 죽음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산책을 하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맞이한 것처럼 보이는 장면에 놀라워했다. 잘은 몰라도 죽음에 동반된다고 들어왔던 증상들, 그러니까 경련, 광증, 공포, 환시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듯 그렇게 꼿꼿하게 앉아 죽을 수 있다니. 그건 그야말로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
유품이라고 할 만한 것은 벤치에서, 그러니까 노인이 쓰러진 바로 그 자리에서 발견되었다. 노인이 가방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쇼핑백 두 개로, 크기가 비슷한 종이 백을 겹쳐 넣어 세 겹으로 만든 것이었다. 한 쇼핑백 안에는 주간지와 경제 신문, 코리아 헤럴드 같은 영자 신문과 성경, 그리고 열 권가량의 수첩이 들어 있었다.
수첩에는 사람의 이름이나 전화번호 같은 메모와 뭔가에 대한 단상이나 약간의 일기가 있었고, 돈을 쓴 기록도 있었다. 사이사이에 영수증이나 신문에서 오려낸 기사가 끼워져 있기도 했다. 수첩을 쓴 순서를 번호로 매기지도 않은데다 꼬박꼬박 날짜를 쓴 것도 아니어서 얼마 동안의 기록인지 알기는 힘들었다.
또 하나의 쇼핑백에는 그녀가 매일 사용했을 물건들이 있었다. 반듯이 접은 흰색 수건 하나가 비닐봉지 안에, 손바닥만한 주머니 안에는 실과 바늘, 가위와 칼, 풀과 스카치테이프가 있었고, ‘Gallup’이라는 영단어가 고딕체로 새겨진 비닐 파우치 안에 샴푸와 보디로션, 치약과 칫솔, 실핀과 빗이 들어 있었다. 거의 백팔십 도에 가깝게 모가 눕고 빠지기도 한, 누렇게 변색된 칫솔이었다. 또 치실이 있었다. 이렇게나 오래된 칫솔과 함께 있는 치실이라니. 노인의 유품을 기록하던 경찰은 기묘한 조합이라고 생각하면서 목록의 마지막에 ‘치실’이라고 적어넣었다.
노인의 신상이 밝혀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김윤자. 1940년생. 주소지 불명. 인터넷에서 ‘맥도날드 할머니’로 유명한 노인이었다.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었다는 게 유력한 단서가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노인이 누군지 추측할 수 있을 만큼 그 옷차림은 세간의 화제였고, 곧 그 추측은 합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몇 년 사이 노인은 ‘맥도날드 할머니’로 텔레비전에 몇 번 출연했는데, 그때마다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래서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으면 ‘맥도날드 할머니 스타일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노인과 노인의 스타일은 특정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그러니까 패션에 관심이 있으면서 동시에 노인에 대해 아는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에 한해서.
김윤자가 죽은 시각은 새벽 네시부터 여섯시 사이라고 의사가 확인해주었다. ‘타살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여러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심장에 이상이 있었고, 뇌출혈 상태였다. 그리고 뇌에 몇 년 전에 생겼을 병변들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뇌질환을 앓았을 거라고 했다. 주민등록도 말소된 지 오래고, 건강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 고인이 자신의 병을 모르고 지나갔을 가능성이 크다고도 말했다. 또 의사가 낸 추가 소견에 따르면, 영양실조에 치매 상태였다. 이렇게 오래 거리에서 지낸 게 기적이라고도 했다.
대단한 의지가 있어야 할 수 있었을 일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의사는 그런 말을, 그러니까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을 말할 권리를 부여받은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김윤자를 검시한 의사는 김윤자가 거리에서 살았다는 것과 김윤자라는 이름 모두를 알고 있었다. 의사도 그녀가 나오는 방송을 봤고, 한때 트렌치코트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만큼 패션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확신하지 못하다가 거의 발목까지 늘어진 김윤자의 긴 머리를 보고서 화들짝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섰고, “아, 김윤자씨”라고 말했다.
우연이었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김윤자를 보게 된 그녀는 김윤자가 출연한 모든 방송을 찾아보았었다. 김윤자의 남다른 의연함과 독립적인 태도를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대입해보기도 했다. 만약 내가 저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어땠을지라고 말이다. 그녀는 병원을 개업했다가 파산한 적이 있었고, 동업자이기도 했던 남편을 잃었고, 그래서 한동안 신용불량자로 살며 페이 닥터로 일했었기 때문에 김윤자의 삶에 깊이 감정이입했다.
“운을 쌓지 못했다. 그래서 패배했다”라는 김윤자의 글씨를 의사가 보았다면 더 김윤자의 삶에 공감했을지도 모른다. 김윤자가 가장 최근, 그러니까 죽기 전 마지막으로 쓴 문장을 봤다면 말이다. 일기라고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일기가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그 문장을 말이다.
김윤자는 저 문장을 적고 나서 두 달이 못 돼 쓰러졌다. ‘패배했다’며 마지막 일기를 적을 때 김윤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삶에 대해 기적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나타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말을 들었다면 김윤자는 웃었을까, 아니면 화를 냈을까?
1940년 출생. 2017년 사망. 사체 발견 당시 김윤자는 149cm에 33kg이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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