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일곱 살 때 나는 토네이도를 연구하고 싶었다. 1학년짜리에게 굳이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묻는 어른들에게 나는 늘 “폭풍 추적가요!”라고 대답했다. 영화 《트위스터》를 보고는 폭풍의 속도와 힘, 예측 불가능성에 마음을 온통 빼앗겼다. 《트위스터》 속 나의 영웅들은 토네이도를 온전히 이해하고 경고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폭풍의 한가운데로 들어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나는 폭풍을 추적하는 대신 극단주의자를 추적하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되었다. 여러 면에서 두 일은 그리 다르지 않다. 극단주의 운동도 폭풍처럼 속도가 빠르고 매우 파괴적인 힘을 지녔으며 언제든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나는 낮에는 런던에 위치한 전략대화연구소Institute for Strategic Dialogue에서 영국과 유럽, 미국의 극단주의 운동을 감시한다. 우리 팀은 첨단기술 파트너사와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같은 대학과 협업해 극단주의의 선전과 허위 정보를 비롯한 온라인상의 유해 콘텐츠를 추적하고 분석한다. 이러한 연구를 토대로 나는 정부와 보안군, 기술 기업, 활동가들에게 극단주의의 활동에 대응할 방법을 조언한다. 정해진 방법 같은 것은 없다. 순식간에 바뀌는 극단주의자들의 전술에 맞게 하루 단위로 전략을 수정해야 할 때도 있다. 게다가 문제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한 당사자에게만 집중할 수도 없다. 어떤 날에는 국가 정보 부처에서 네오나치의 암호 화폐 거래에 대해 브리핑할 수도 있고, 어떤 날에는 페이스북 측에 백인민족주의자의 콘텐츠를 내리는 방법을 조언할 수도 있다. 아침에는 유럽 정책입안자들과 회의를 하며 온라인 공간의 규제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저녁에는 색스니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급진화 예방을 위한 워크숍을 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차원에서 관여한다 해도 낮에는 현재의 상태를 공격하는 쪽이 아닌 현재의 상태를 보호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의 보호막 안에 안전하게 머무른다. 결국 극단주의에 맞서는 사람들의 공간에서는 민주주의를 방해하고 와해하려는 사람들과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펼쳐지는 고양이와 쥐 게임에서 고양이 쪽의 입장만 알 수 있다. 무엇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지 이해하려면 내부로 들어가 극단주의 운동의 엔진을 관찰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극단주의 집단은 어떻게 지지자를 동원하고 어떻게 취약한 개인을 본인들의 네트워크로 유인할까? 그들의 비전은 무엇이고 그런 미래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계획을 세울까? 그들을 집단 내에 붙잡아두는 사회적 역동은 무엇이며 그 역동은 어떻게 진화하고 있을까?
답을 구하기 위해 나는 2년간 서로 다른 다섯 개의 정체성을 택해서 최신 기술에 능한 10여 개의 극단주의 집단에 합류했다. 그들의 이념 스펙트럼은 지하디스트, 기독교 근본주의자, 백인민족주의자, 음모론자, 과격한 여성혐오주의자까지 다양했다. 나는 근무시간에는 고양이였지만 여가 시간에는 쥐가 되었다.
이 개인적 연구는 나를 기괴하고 때로는 위험한 온·오프라인 공간으로 이끌었다. 나는 극단주의 운동이 테러 공격을 조직하고 허위 정보를 퍼뜨릴 작전을 짜고 협박 캠페인을 모의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대안우파가 사망자가 발생한 샬러츠빌 집회를 계획하고 이슬람국가ISIS가 미국의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획책하고 독일의 트롤troll, 온라인에서 고의적으로 불쾌하거나 논쟁적인 내용을 퍼뜨려 부정적 반응을 부추기는 사람들 ― 옮긴이들이 정치인을 향한 온라인 공격을 조직하고 이탈리아의 네오파시스트들이 2018년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목적으로 정보 작전을 벌일 때, 그 채널에 나 또한 속해 있었다. 사우스런던의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열린 백인민족주의자들의 비밀 전략 회의에 참여하고,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에서 개최된 폭력적인 네오나치의 록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이슬람국가 지하디스트들에게 해킹 교육을 받는 등 극단주의 운동 내부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극단주의자들의 전략과 전술뿐만 아니라 그들의 인간적 면모와 나의 취약성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목격한 혐오 콘텐츠의 규모는 정신이 번쩍 들 만큼 거대했고 극단주의 운동에 참여한 젊은 사람들의 수는 낙담스러울 정도로 많았다. 바깥에서 볼 때 내가 합류한 운동들은 별로 공통점이 없었다. 하지만 내부에서 나는 모든 운동이 비슷하게 작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집단의 리더는 안전한 사회적 보호막을 만들어 더 넓은 세계에서의 반사회적 행동을 장려한다. 집단 구성원들은 반反현대적 비전을 실행에 옮긴다.
《한낮의 어둠》은 극단주의 운동이 가진 생명력의 숨은 근원을 드러낸다. 각 부는 급진화 과정의 각 단계를 다룬다. 1부 ‘모집’에서는 미국의 네오나치 집단과 유럽의 백인민족주의자 집단인 세대정체성Generation Identity의 심사 절차에 뛰어든다. 2부 ‘사회화’에서는 ‘전통적인 아내들’과 지하디 신부들을 키워내는 세뇌의 온상을 탐험한다. 3부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온라인 공격과 더불어 트롤 부대의 내부에서 극우 미디어의 전투 전략을 폭로한다. 4부 ‘네트워킹’에서는 극단주의자들이 어떻게 소셜 네트워크를 이용해 국제적인 중심지를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이들은 심지어 데이팅 앱을 활용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소셜네트워크는 점점 성장 중인 국제 네트워크의 토대가 된다. 5부 ‘동원’은 샬러츠빌 집회 주최자들의 채팅방에서 시작해 오스트리츠에서 열린 유럽 최대의 네오나치 록 페스티벌에서 끝나는 여정을 다룬다. 6부 ‘공격’에서는 이슬람국가와 네오나치의 일류 해커들에게 해킹 교육을 받고 2019년 3월 뉴질랜드에서 발생한 테러의 주범을 급진화한 하위문화를 파고든다. 마지막 7부 ‘미래는 어두운가’에서는 우리 모두가 직면한 극단주의의 규모와 특징을 살펴보고 향후 수십 년간 이 운동이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 예측한 뒤 전 세계에서 변화를 일으킬 새로운 세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열 가지 대담한 계획을 소개한다.
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은 오래전부터 급진적 변화의 핵심 열쇠였다. 1936년 독일의 유대인 철학자 발터 베냐민은 스크린프린트와 초기 복사 기술의 발명이 파시즘의 발흥에 일조했으며 이런 기술이 미디어와 예술, 정치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꾸었다고 주장했다. 20세기 유럽에서 힘의 역동은 이처럼 기술적으로는 진보적이나 사회적으로는 퇴행적인 운동의 탄생을 통해 형성되었다.
우리는 21세기 정치의 이동 방향을 결정할지도 모를, 이념적 향수와 기술적 미래주의의 치명적 결합을 또다시 목격하고 있다. 현재 극단주의자들이 형성하고 있는 급진화의 엔진은 고도로 발전되어 있다. 인공지능적이고 사람들의 감정을 조종하며 사회적 영향력도 강력하다. 이들은 첨단 기술과 초사회적 요소를 결합해 젊고 분노해 있고 기술에 능숙한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반反문화를 발전시켰다. 이 전략이 효과를 발휘한다면 위험한 변화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의 특징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보 생태계와 민주적 절차를 재정의해 인권 운동이 이룬 가장 큰 성취를 위협할 수도 있다.
이 책의 목표는 디지털 극단주의 운동의 사회적 차원을 드러내는 것이다. 극단주의자들은 매일같이 새로운 구성원을 길들이고 새로운 적을 위협한다. 그 결과가 우리의 일상에 때로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16년 3월 미국의 여러 대학 캠퍼스에 설치된 프린터에서 갑자기 네오나치 전단이 인쇄되기 시작했다. 2018년 7월 하마스가 수백 명의 이스라엘 방위군을 타깃으로 가짜 데이팅 앱을 만들었다. 이들이 훔쳐다 사용한 젊은 여성들의 프로필 뒤에는 악성 소프트에어가 숨어 있었다. 영국과 유럽연합의 완전한 결별을 주장한 브렉시트 캠페인은 2018년 내내 큐어넌AQnon이라는 국제적 음모론 네트워크의 지지를 받으며 힘을 키웠다. 2019년 1월 극우 해커들이 독일 정치인 수백 명의 개인 정보를 유출했다. 2019년 3월 뉴질랜드에서 발생한 가장 끔찍한 테러 공격의 생중계 영상이 온라인에 퍼졌다.
최근 극단주의에 대한 대응 정책은 극단주의자들의 느슨한 온라인 네트워크에서 작동하는 집단 역학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더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조직되는 집단이 아니지만 이들의 문화적·인류학적·심리학적 양상은 여전히 이들이 가진 매력과 영향력의 핵심 요소다. 나는 현재 등장하고 있는 사회·기술적 문제를 드러냄으로써 정책입안자들이 기술과 법에만 치우친 현재의 대응을 재고하게 만들고자 한다. 결국 언제까지나 정치인과 보안군 그리고 민간 부문이 우리 대신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랄 수는 없다. 오늘날의 극단주의 운동을 이토록 성공적으로 이끄는 집단 역학에는 총도 검열도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법과 규제는 퍼즐의 극히 일부를 해결해주겠지만 그 효과는 일시적일 것이며 역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더 인간 중심적인 접근법이란 인간을 혐오하는 반민주적 이념의 확산을 막는 데 모든 독자가 일조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극단주의 집단이 자신들의 전략을 실행하고 완벽하게 다듬는 모습을 수년간 지켜보면서 온·오프라인에서 극단주의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약점을 쥐고 흔드는지를 널리 알리는 것만큼 강력한 무기는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나 또한 극단주의자들의 수법을 알고 있었던 덕분에 취재 중에 급진화의 엔진에 말려 들어가지 않을 수 있었다. 독자들이 극단주의자에게 급진화되거나 이용당하거나 협박당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호하는 일에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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