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대학 입시,
벼랑 끝에 선 통과의례
인간은 태어나서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자란다. 성장은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통해 스스로 정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이며, 여기에는 사회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승인받는 과정도 포함된다. 부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며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나도 이제 학교에 간다며,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라며, 혹은 이제 중학생 동생과는 유치해서 못 놀겠다며 새로운 정체성으로 옮겨 가는 것에 우쭐대는 아이를 바라보는 일은 부모의 보람이고 행복일 것이다.
그러나 일정한 나이에 이르렀다고 해서 새로운 정체성을 거저 얻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의무와 책임이 뒤따른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그냥 얻어지는 권리도 없다. 재미 삼아 하는 RPG 게임에서조차 캐릭터의 레벨 업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들이거나 ‘현질현금으로 아이템 등을 구매하는 일’을 해야 한다. 특히 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서, 더 많은 권리가 허용되는 성인으로서 정체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비용과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하여 세계 각 문화권의 성인식 통과의례는 대체로 상당한 고통이나 사회적 비용을 요구한다.
그중에서도 남태평양의 작은 나라 바누아투 북동부 지역 펜테코스트섬의 성인식은 번지점프의 기원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의식은 매년 고구마 수확이 끝나는 시기인 4월 말에서 5월 초에 거행되는데, 마을 남자들은 다이빙대가 될 30미터 높이의 대나무 탑을 세우고 낙하에 참가하는 청소년들은 자신이 사용할 줄의 재료가 될 나무줄기를 직접 구하기 위해 숲을 헤맨다. 다이빙대에서 떨어지는 순간 이들은 추수 행위를 상징하는 동작을 취한다. 특이한 것은 몸이 전혀 닿지 않으면 흉작이 든다고 여기는 믿음이다. 때문에 이들은 몸의 일부, 주로 어깨가 땅에 닿도록 하면서도 다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멋진 포즈로 낙하하기 위해 즐거운(?) 도전을 계속한다. 낙하 지점에 푹신한 흙을 깔아둔다지만, 땅에 닿아야만 성공한 것으로 인정하다 보니 머리에 심각한 상처를 입는 등 크고 작은 사고가 그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서부 믄타와이 제도에 사는 믄타와이족은 열두 살부터 성인이 되는 열여덟 살까지 얼굴, 가슴, 손, 허벅지, 발, 배, 허리 등의 순서로 전신에 문신을 새긴다. 날카로운 화살과 자연 염료를 이용한 문신은 상당한 고통을 수반하지만, 고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뜨거운 바나나를 치아로 물어 얼얼해진 상태에서 앞니를 뾰족하게 연마하는 고통을 견뎌내야만 성인으로 인정받는다. 이 외에도 맹독을 이용해 사냥하는 브라질 아마존의 마티스족은 성인이 되는 소년들에게 재규어 문양을 문신한 뒤 검은 염료를 온몸에 바르게 하고, 눈에는 독성 식물의 즙을 떨어뜨린 후 회초리로 사정없이 내리치는 성인식을 거친다. 에티오피아 하마르족도 채찍 의식과 소의 등 타기와 같은 위험한 이벤트를 통과해야만 성인이 될 수 있다.
현대 문명사회의 인권 개념에서 보자면 이는 고통을 강요하는 반인권적인 행위이지만, 각각의 문화마다 이러한 관습이 자리 잡은 나름의 이유와 환경 및 역사적 배경이 있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성인이 되는 비용으로 고통을 요구하는 문화권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것이다. 종교나 주술의 영역이 줄어들고 합리화와 세속화가 진행된 현대 문명사회에서는 이처럼 노골적으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요구하는 통과의례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아에로크’라는 나라의 성인식
유라시아 대륙 극동부의 작은 반도에 위치한 국가 ‘아에로크Aerok’에서는 21세기인 오늘에도 만 18세가 된 청소년들이 대학 입시라는 극단적인 고통의 성인식을 강요받고 있다. 많은 문명사회에서 중산층 이상의 계층은 대학 입학을 성인이 되는 통과의례처럼 인식하는 게 사실이지만, 이 나라의 대학 입시는 좀 심각하다.
아에로크의 학생들은 사생결단의 ‘suneung’ 시험을 치른다. 이들은 자신의 남은 인생을 결정할지도 모를 시험을 잘 치르라는 기원의 의미를 담아, 서로 ‘tteok’이나 ‘yeot’ 등 쌀로 만든 끈끈한 음식물을 선물하는데 이는 끈적끈적한 속성을 따와 시험에 ‘붙기’를 기원하거나 잘 ‘찍기’를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를 담고 있다. 수험생의 어머니들은 깊은 산속의 불교사원이나 기독교의 회당에서 합격을 위한 기도 모임을 갖는다. 시험일에는 거대한 침묵이 아에로크에 내려앉는다. 놀랍게도 아에로크 정부는 수험생의 교통 편의를 위해 직장인의 출근 시간은 1시간가량 늦추는 행정 명령을 시행한다. 상점들은 문을 닫고, 은행과 주식시장의 개장 시간도 늦춰진다. 듣기 시험이 있는 특정 시간에는 대부분의 건설 현장에서 작업이 중단되고, 비행기의 이착륙이 전면 통제된다. 시험장 입구에서는 금속 탐지기로 디지털시계, 휴대전화 등 공정한 시험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물건을 압수한다. 감독관은 소음을 만들지 않도록 운동화를 신는다. 시험의 출제 과정도 미스터리로 가득하다. 아에로크 전역에서 온 500여 명의 교사들이 산악 지역의 비밀 장소에서 한 달간 외부 세계와의 접촉은 물론 가족과의 연락도 금지된 채 시험 문제를 출제한다.
지난 20년간 매년 고등학교 졸업자의 70퍼센트 이상이 대학에 진학해온 이 나라에서 대학 진학에 실패한 사람은 대체로 낙오자로 간주된다. OECD 가입국의 평균 대학 진학률이 44퍼센트에 그치는 현실에 비추어볼 때 아에로크의 대학 진학률은 기록적이다. 그러나 대학 진학이 안정된 삶을 보장하진 않는다. 실제로 아에로크 실업자의 3분의 1은 대학 학위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아에로크 사람들은 이른바 일류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성공의 첩경으로 믿고 있으며,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좋은 직업을, ‘좋지 않은 대학’에 들어가면 좋지 않은 직업을 갖게 된다고 확신한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의 청소년이 명문 대학 진학을 바라고,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SKY’를 목표로 삼는다. 아에로크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로 여겨지는 세 대학의 이니셜을 딴 ‘SKY’는 모든 청소년이 선망하는 곳이지만, 대학 진학자 중에서 단 2퍼센트만이 진학할 수 있다. ‘SKY’에 진학하는 것은 ‘chaebol’로 알려진 영향력 있는 가문이 운영하는 대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매년 모든 신문에서는 변호사, 판사, 대기업 임원 및 최고 경영자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SKY’를 졸업했는지를 보도한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 나라의 청소년은 대부분 아침 7시 30분경에 등교하여 저녁 10시에 하교하는 학교 제도 속에서 생활했다. 정규 수업 이외에도 보충 수업과 야간 자율학습이라는 이름의 학습이 강요되었으며, 이에 대한 자율적 선택권은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 교사의 지시나 권유에 불응하는 학생에게는 체벌이 이루어지는 등 심각한 인권 침해가 자행되었다. 뿐만 아니라 학습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학생들은 외모를 가꿀 수 없었다. 모두가 교복을 입어야 했고 머리카락은 일정한 길이 이상으로 기를 수 없는 등 학생의 기본적 인권조차 보장되지 않았다. 다행히 2000년대 중반 이후 민주 정부의 노력으로 두발 단속, 체벌, 강제적 자율(?)학습 등 반인권적 교육 문화는 상당 부분 개선되거나 완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대학 입시는 학생들의 삶을 심각하게 억압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제 7시 30분에 등교해 저녁 5시경에 하교하지만, 방과 후에는 저녁을 먹고 ‘hakwon’이나 ‘doksusil’로 향했다가 자정 무렵 집으로 돌아온다.
‘doksusil’은 사설 도서관을 연상케 하는 이름이지만, 이곳에는 책이 가득 꽂힌 책장이나 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없다. 암막 커튼으로 가려진 어두운 공간에는 칸막이 책상들이 다닥다닥 이어져 있고, 형광등 스탠드 불빛만이 머무는 고립된 책상에서 학생들은 각자 가져온 수험서를 붙들고 공부에 열중한다. 더 집중된 환경에서 공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이 감옥 같은 공간에 스스로를 감금한다.
아에로크에는 10만 개가 넘는 사교육 업체인 ‘hakwon’이 존재한다. 8세부터 18세까지의 아동·청소년 중 80퍼센트 이상이 이용하는 ‘hakwon’ 산업은 200억 달러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아에로크의 대학 입시는 한때 가난한 학생들의 사회적 계층 이동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겨졌지만, ‘hakwon’ 산업이 발전하면서 가난한 부모 아래에서 성장한 학생이 대학 입시에서 성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대학 입시에서 경험하는 이러한 불평등과 어려움은 아에로크의 출생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아진 원인이며, 동시에 자살이 아에로크의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OECD에 따르면 세계의 다른 선진국에 비해 아에로크의 11세에서 15세 청소년은 가장 높은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으며, 이는 심각한 고립감과 우울증, 자살 충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1년 이후 단 한 해의 예외도 없이 아에로크의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고의적 자해자살였다.
아에로크의 정부는 대학 입시라는 통과의례가 초래하는 이러한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해 멘토링이나 자원봉사, 과외 활동과 자기 주도적 학습 성과 등으로 ‘suneung’을 보완하거나 대체하는 방안을 마련하려 하지만, 청소년들은 이를 더 큰 스트레스로 여기고 있다. ‘SKY’ 진학을 향한 과도한 경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아에로크 청소년들의 고통은 줄어들기 어려울 것이다. 매년 6만 명에 달하는 학생이 이러한 교육 시스템과 대학 입시에 적응하지 못해 학교 교육을 포기하며, 교육 문제로 인한 이민도 증가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사람이라면, 이 가상의 민속지적 서술에 등장하는 ‘아에로크Aerok’라는 나라의 이름이 ‘코리아Korea’의 철자를 거꾸로 쓴 것임을 눈치채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대학 입시라는 통과의례
독일 태생으로 네덜란드 혈통이었지만 프랑스에서 공부했고, 주로 스위스와 미국에서 활동했던 민속학자 아르놀드 방주네프Arnold Van Gennep는 1909년 『통과의례The Rites of Passage』라는 책을 발표했다. 그는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특정한 시기에 요구되는 신분이나 정체성을 획득하기 위해 거치는 문화적, 종교적 의식을 통틀어 ‘통과의례’라고 불렀다. 성장 과정에서 신분이나 정체성을 인정받는 일은 정착민에게는 당연한 일생의 경과이기에 특별한 분석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유랑민과 같이 평생을 한곳에 머물지 못했던 방주네프에게는 한 인간이 문화적 정체성을 획득하고 승인받는 일이 결코 간단치 않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는 특유의 디아스포라적 통찰력으로 통과의례의 일반적인 과정을 상세하게 분석했다.
방주네프는 인간 사회가 다양한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고 보았는데, 세속적인 의미에서든 성스러운 의미에서든 새로운 그룹으로 이행하여 그곳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 받기 위해서는 일정한 의식, 의례를 요구받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의식을 기존 집단으로부터의 분리separation, 새로운 집단으로 이행하기 이전의 경계적 상태transition,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고 새로운 그룹에 편입되는 통합incorporation의 단계로 나누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대학 입시를 치르는 수험생의 시간으 정확히 통과의례의 단계에 대응한다.
수험생의 시간을 맞이한 이들은 이전의 정체성으로부터 분리될 것을 요구받는다. 가족을 비롯한 사회 구성원들은 그에게 어떤 결심과 결단을 요구한다. 휴대전화, PC 게임, TV 시청, 몸치장 혹은 축구와의 단절을 선언하지 않는다면 어른들의 잔소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단절과 분리를 선언하는 것만으로도 주위 사람들은 수험생이 되더니 철이 들었따며, 마음잡고 공부하겠다는 의지가 기특하다며 칭찬을 쏟아낼 것이다. 사회적 상벌 체계의 압박 속에서 그는 더 이상 이전의 그 아이가 아니다.
그러나 이전의 정체성이 한 번의 선언으로 갑자기 자취를 감출 리 없다. 이제 그는 청소년과 성인, 고등학생과 대학생 사이 어딘가에서 애매하기 그지없는 정체성의 이행을 경험한다. 그는 문지방threshold, 라틴어로 리멘limen 위에 있다. 이 세계에도 저 세계에도 속해 있지 않으며, 이 집단에서는 곧 떠나야 할 존재이고 저 집단에서는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은 존재다. 그는 경계liminality 위에 서 있다. 이 경계의 시간에 놓은 모든 인간은 불안하다. 수험생도 그렇다. 아직 어른이 아니지만 어른 같은 절제와 책임감을 요구받는다.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모습을 보인다면 부모와 주위 사람들이 실망할 것이다. 그래서 두렵고 힘겹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학습 의무를 수행하고자 노력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이 고통의 의례와 의무를 잘 견뎌낸다면 성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와 자유를 보장받을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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