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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과 젠더, 환대의 성별정치
― 1988년 서울올림픽 피켓걸에서 버닝썬 게이트까지
/ 김주희
발전 시대 대중의 기억 속,
여성들의 위치
얼마 전 유튜브 영상을 통해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여성 모델의 피트니스 쇼가 군대 위문공연 무대에 등장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온몸에 오일을 바른 채 홀로 무대에 등장하여 잘빠진 몸매를 부위별로 뽐내는 여성 피트니스 모델과 환호하는 군인 무리의 모습을 접한 많은 이들은 불편함을 내비쳤다. 그리고 이내 “‘성상품화’로 가득 찬 군대 위문공연을 폐지해주세요”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장했다. 청원자는 “군인을 위한 여성의 헐벗은 위문공연이 왜 필요한 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청원에 동의했다.
수많은 장병들이 여자 아이돌의 군대 위문공연에 광적으로 환호하는 모습은 그리 낯설지 않다. 1990년대 인기리에 방영된 텔레비전 프로그램 「우정의 무대」를 통해, 이런 모습이야말로 혈기 왕성한 장병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환호하는 군인들이 무대 위의 여자 아이돌을 실제로 좋아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남성 장병들에게는 그저 상큼하고 발랄한 여자 아이돌의 무대 등장에 열정적인 환호로 응답하는 역할이 주어졌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이런 장면은 낯설게 보이기 시작했으며, 위문공연을 폐지해달라는 청원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아마도 2015년 이래 급속도로 대중화된 페미니즘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페미니즘의 대중화 이후 사람들은 그간 자연스럽다고 여겨진 성별화된 장면들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여자라면 웃는 얼굴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야 한다는 규범을 거부하며 웃음 보이콧을 선언했고, 여자라면 여자답게 자신을 꾸밀 줄 알아야 한다는 규범을 거부하며 ‘탈코르셋’을 선언했다. 하지만 여성들의 이런 선언과 실천은 동시에 공적 공간에서 여성들을 배제하겠다는 각종 엄포를 통해 기각이 요청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조지 부시 정부 당시 부통령이었던 마이크 펜스라는, 우리에게 이름도 생소한 정치인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펜스룰’이라는 방침이 그러하다. ‘펜스룰’은 성적 구설수를 방지하기 위해 남성들이 여성들과 사적인 교류 자체를 갖지 않는 것으로, 펜스룰의 공공연하고 반복적인 언급은 권력을 가진 남성들의 여성 배제 선언과 다름없다. 페미니즘이 대중화되면 될수록 여성들을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려놓으려는 ‘백래시’도 강해질 것이다. 이에 국민적, 대중적 기억 속 여성들에게 주어진 위치, 그 강렬한 기억을 더듬고자 서울올림픽대회가 열린 해인 1988년으로 돌아가보고자 한다. 이 시기는 한국인의 불굴의 민족성, 한국인이 달성한 물질적 성취를 세계 무대에 처음으로 과시하고자 했던 때다. 그리고 이처럼 기획된 과시의 장은 철저하게 성별 분업을 통해 만들어지고 성별 분업적으로 전시되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
세계 무대에 등장한 덕선
2015년 한 해를 강타했다고 말해도 손색이 없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1988년 서울 쌍문동 봉황당 골목길에 사는 다섯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그중 1971년생인 쌍문여고 2학년 성덕선혜리 분은 공부 잘하는 언니에게 치이고, 귀한 아들인 동생에게 치이는, 공부 못하는 씩씩한 둘째 딸로 등장한다.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찬밥 신세인 둘째 딸 덕선은 어느 날 가족과 동네 사람들에게 주목받게 된다. 건국 이래 최대의 행사라는 서울올림픽대회 개막식에 피켓을 들고 마다가스카르 선수단과 함께 입장하는 ‘피켓걸’로 선발된 것이다. 피켓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내기 위해 덕선은 반년 동안 연습에 매진한다.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방에서, 집 앞 마당에서 한복을 입고 개막식 입장을 위한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난생 처음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덕선은 한껏 들떠 보였다.
연습은 올림픽 경기장에서도 이어졌다. 피켓걸 입장을 지도하는 여성은 “표정! 온화하게! 팔! 팔! 표정! 온화하게!”를 외치며 덕선의 표정, 시선, 걸음걸이, 자세를 가르친다. 덕선은 한복을 입은 다른 피켓걸들과 함께 올림픽 경기장 한쪽에 주저앉아, 개막식의 다른 행사에 등장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태권도 도복을 입은 남자 꼬마 무리들이 일으키는 먼지바람 속에서도 단팥빵과 바나나 우유를 먹으며 불평 없이 대기한다. 이때 덕선의 뒤에는 “88올림픽 완벽한 준비”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다. 덕선이 이 행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어떤 대가를 받았을 리 만무하다. 아마 그녀는 행사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피켓걸 덕선을 인터뷰하던 한 방송사 리포터는 덕선에게 “그래도 가장 힘든 점이 있었다면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녀는 국어 교과서를 읽듯 “국민적인 행사에 동참하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든 순간이 있었더라도 투철한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금세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라는 ‘모범 답변’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인터뷰 도중 덕선은 마다가스카르가 서울올림픽대회에 대한 보이콧으로 불참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덕선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크게 실망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한복을 입고 환한 미소를 띤 우간다 피켓걸로 개막식에 등장하게 되었다.
덕선이 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던 쌍문동 봉황당 골목길의 이웃들은 모두 환호한다. 텔레비전을 보던 덕선의 아버지는 개막식 화면에서 둘째 딸을 발견하자 “나왔다! 나왔다!”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덕선의 어머니는 축하 전화를 받으면서 “덕선이 맞다, 맞다.”라고 답한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는 시집이나 갈까 했는데 갈수록 얼굴이 핀다. 지 언니보다 낫다.”며, 전화기 너머 누군가에게 신이 나서 자랑을 늘어놓는다. 공부 못하는 만년 천덕꾸러기 둘째 딸 덕선은 이날만큼은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운 내 딸이 되었다.
덕선이 서울올림픽대회 개막식에 등장한 것이 이렇게나 자랑스러운 일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리’도 이제 국제적인 행사를 치르는 발전된 나라의 대열에 동참한다는 ‘국민적 자부심’이 놓여 있다. 사실 한국은 1970년 제6회 아시안게임을 서울로 유치하고도 숙박시설, 경기장 등 제반 시설을 갖추지 못해 대회를 반납한 경험이 있다. 제5회 대회를 치른 태국 방콕에서 제6회 대회가 다시 열렸고, 이때 한국은 태국에 일종의 벌칙금적 부담금 25만 달러를 지불했다. 국가경제의 저개발로 인해 한국은 국제 사회에서 굴욕을 겪은 것이다. 이후 전두환 정권에서 우민화 정책으로서의 3S 정책 등 여러 이유로 다시 올림픽 유치 신청서를 제출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결국 대표단의 필사적인 유치 활동 결과 1988년 올림픽대회 개최지가 서울로 결정되었다. 1981년 9월 30일이 일이다. 독일 바덴바덴에서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세울! 코리아!”가 울려 퍼진 이 시점부터 대한민국의 발전을 전 세계에 자랑스럽게 내보이기 위한 온 국민의 준비가 시작되었다. 여기에는 서울올림픽을 통해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이라는 국민적 기대도 한몫했다. 그해 실시된 올림픽에 대한 국민 의식 조사를 살펴보자. 《경향신문》의 1984년 9월 26일 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88서울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잘 치러질 수 있다78.2%는 자신감에 차 있으며 90퍼센트 이상이 국력신장과 국민의식향상에 88올림픽이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믿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88올림픽의 서울유치를 거국적 경사로 평가96.9%하고” 있었다고 한다. KDI한국개발연구원가 내놓은 『88올림픽의 경제성 평가와 효과분석』이라는 보고서에서는 88서울올림픽은 경제성이 높은 흑자 대회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생산, 소득, 고용 부문 등에 미치는 국민 경제적 효과가 클 뿐만 아니라 국제수지면에서도 5억 달러 이상의 수지 개선 효과를 가져다줄 것으로 분석되었다. 발전에 대한 기대감 속에서 국민들은 자신의 일상과 역할을 재정비하며 ‘세계인’과 만날 채비를 하게 되었다. 덕선네 가족, 나아가 쌍문동 봉황당 골목 사람들은 덕선이 ‘온화한 표정’으로 세계 시민들을 맞이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에 동참하는 그 순간을 맞았다.
유흥업소 지원 정책과
국민 동원의 성별 정치
올림픽 경기장에 걸려 있던 “88올림픽 완벽한 준비”라는 구호는 덕선뿐만 아니라 전 국민의 올림픽 준비와 동참을 호소하는 문구였다. 개막식 무대에 등장하지 않은 사람도 자신의 자리에서 선진화된 국민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 요구되었다. 이런 사실은 범민족올림픽추진중앙협의회가 발간한 『국민참여운동백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버지 가장들은 내 집 앞을 쓸면서 자발적이고 근면하고 선진화된 의식을 가진 국민으로서 전 세계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요청되었다. 물론 이는 극 중 동룡 아버지처럼 내 집을 가진 아버지들에게만 부여된 역할이었다. 반지하 셋방에 살던 덕선의 아버지는 텔레비전에 등장한 덕선을 보고 환호할 수 있을 뿐이었다. 유사한 맥락에서, 대한민국이 굴욕을 딛고 88서울올림픽을 통해 전 세계에 자랑하고자 한 모습에 부합하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숨겨지고 축출되거나 갱생되어야 했다. 이 과시적 잔치를 앞두고 이루어진, 양동 재개발로 대표되는 대대적인 서울 도심부 재개발이 그 예다. 그 결과 윤락여성, 빈민, 장애인 등 수많은 도시 빈민들은 각종 재활시설에 수용되었다.
당시 윤락여성들이 갱생 시설로 보내진 것은 단순히 빈민들을 추방하기 위한 조치였을 뿐 상품화된 성의 범람을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전두환 정권은 1986년 1월 기생관광으로 이미 명성이 자자하던 11개 대형 요정업체에 총 20억 원이나 되는 돈을 특별융자 형식으로 지원해주었고, 국제관광공사에서 발행하는 외래 관광객용 지도에도 기생관광 장소인 요정의 위치를 각국 언어로 친절하고 상세하게 밝혀놓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에 질세라 서울시는 룸살롱과 카바레 등 103곳을 ‘모범업소’로 지정해 여러 특혜를 주기도 했다. 외국인들에게 보이는 미관을 고려해 네덜란드의 ‘홍등가’처럼 커다란 유리창을 갖춘 성매매 업소 ‘유리방’이 본격 등장한 것도 올림픽을 앞두고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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