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처음엔 내게 도움을 청하는 여느 목장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말을 훈련하고 마주를 교육하는 건 지난 이십 년간 내 업이었다. 문제 있는 말에 얽힌 일화는 지겹도록 들었다. 잘 들어보면 이야기에 쏙 빼놓은 부분들이 있고, 말하는 이 스스로 깨닫지 못한 부분도 십중팔구 있다. 하지만 나는 아주 미세한 움직임―한쪽 귀를 쫑긋거린다든가 숨이 가빠진다든가 하는―도 말이 소통하는 신호임을 안다. 마주들이 이런 미묘한 언어를 일찍이 알아챘더라면 안 좋은 경험들을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번 요청은 달랐다. 말이 이런 행동을 보인다는 얘기는 생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쓰레기를 뒤지는 말, 약탈하는 말, 피에 굶주린 말이라니. 진짜일 리 없다고 생각했고, 진짜라면 내 두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목장은 실제로는 교도소다. 여기서 지내는 주민들은 대부분 다중의 전과가 있는 중범죄자이다. 이들은 스스로 교도소에서 목장으로 옮겨오겠다고 신청했고 판사 앞에 나아가 남은 형기를 목장에서 마쳐도 좋다고 허락받은 이들이다. 목장 운영은 하나부터 열까지 재소자들이 맡는다. CEO를 고용하지도 않고, 변호사나 고문도 없으며, 외부 배관공이나 의사도 드나들지 않는다. 심지어 간수도 없다. 연방 판사와 지방판사, 보호감찰관과 가석방 담당관, 국선변호사―이들 모두가 목장의 선임 재소자들과 교류하면서, 각 재소자의 남은 형기 복역을 그들에게 전적으로 맡긴다.
이 목장은 거의 오십 년째 이렇게 운영되고 있다. 가장 오래된 재소자들이 솔선해 신입 재소자들에게 목장 유지에 필수적인 기술을 가르친다. 헤로인이나 메스암페타민, 또는 알코올에 절어 길에서 막 살던 재소자 중에 자진해서 들어온 이는 드물다. 다들 인생의 바닥을 치고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이 목장은 그들의 생명줄인 셈이다.
말들은 줄곧 목장의 일부였다. 목장의 말들은 뉴멕시코주 북부 리오그란데강 제방을 따라 펼쳐진 이 7만 제곱미터 부지에서 재소자들과 함께 생활한다. 방목용 목초지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풀을 뜯는다. 비나 눈이 오면 자동차 정비 작업장에 모여들고, 파리가 심하게 꼬일 때는 목공소를 차지한다. 말들은 목장 덤프스터를 뒤져 쿠키나 먹다 버린 머핀, 식빵을 주워먹는다. 해가 지면 건장한 남자 여섯 내지 여덟 명에게 쫓겨 지붕과 물, 알팔파 건초가 제공되는, 공간 넉넉한 축사로 들어간다. 낮에는 모든 것을 관장하는 거대한 신처럼 부지를 마음껏 활보한다.
목장에는 말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식빵과 컵케이크가 수천 년간 풀과 꽃, 나무껍질을 뜯으며 살아온 동물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목장측에서 내게 연락하기 전 말들은 개처럼 떼 지어 다니면서 재소자들이 매 끼니 식사 후 식당에서 쓰레기봉투를 내올 때마다 그들에게 달려들어 무섭게 추격하는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재소자들은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덤프스터대형 쓰레기 수거함. 옆에 단단히 뭉쳐 서 있어야 했다. 목공소에서 깎아 만든 나무장대를 들고 다니면서 말들이 달려들 때마다 그걸 휘둘러 쫓아버렸다. 재소자들은 말들에게 물리고, 넘어져 짓밟혔다. 발목이나 팔, 손목에 부상을 입은 이들도 있었다. 교도소와 길바닥에서 단련될 만큼 단련된 남녀 재소자들도 일단 말들이 달려들 기미가 보이면 있는 힘껏 달려 피신했다.
내가 처음 목장에 방문한 날은 일요일이었다. 일요일은 재소자들이 단 하루 고된 일정에서 놓여나는 날이다. 목장에는 가축전담반이 있다. 가축전담반 일원들은 목장에 사는 말과 오리, 개, 고양이 들을 먹이고 돌볼 의무가 있다. 반장 두 명이 이끌며 대략 여섯 명의 팀원이 가축 돌봄 노동을 분담한다.
그 첫날 나는 가축전담반을 플로르와 새라라는 두 여성이 이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삼십대의 플로르는 십오 년간 헤로인에 절어 산 장기 중독자다. 여러 건의 범죄로 실형을 살고 있었고, 마지막 형은 자기 모친의 집을 턴 강도죄로 받은 것이었다. 어머니가 딸에게 가장 안전한 곳은 교도소라고 믿고 직접 신고했다고 한다. 플로르는 몸집은 작지만 존재감이 큰 사람이다. 처음 만났을 때 양발을 넓게 딛고 가슴을 한껏 내밀고 어깨도 쭉 펴고서 팔은 옆에 늘어뜨린 채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사십대에 자녀도 있는 새라는 메스암페타민과 헤로인 중독자인데다 열세 살부터 매춘을 해왔다. 나와 대화하는 내내 새라의 몸이 춤꾼처럼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입가의 주름 때문에 양 입꼬리는 아래로 축 처져 있었다.
목장의 모든 것, 시설이 제대로 유지되고 재소자들이 잘 먹고 보살핌 받는 데 필요한 모든 노하우와 기술은 여기 들어온 지 가장 오래된 재소자들이 총괄한다. 가장 나이든 재소자들이 최고관리자 역할을 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한 사람에게서 다음 사람에게로 전해 내려온 노하우이며, 목장의 견고한 전통과 기준이 계속 유지되게 하기 위한 장치다. 한때는 말 돌보는 노하우도 대를 이어 전수되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그 고리가 끊겼다. 플로르와 새라는 둘 다 말을 다뤄본 경험이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음은 인지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목장 원로들 앞에 나아가 지역사회에 도움을 청하게 해달라고 허락을 구했다. 목장에서는 외부에 도움을 청하거나 외부로부터 도움을 받을 일이 거의 없다. 재소자 대다수는 약물 중독과 빈곤, 조직범죄로 점철된 긴 내력이 있는 가족을 두었다. 평생 일다운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이들도 있다. 각자 한 가지씩 가르친다―이것이 목장의 운영 기조다. 재소자들은 사 개월마다 전담 부서를 바꿔가며 배관, 요리, 자동차 정비 등 새 기술을 익힌다. 나이든 재소자들은 삶의 노하우를 전수한다. 목장 재소자는 항시 백여 명에 이른다. 일반적인 교도소를 벗어난 삶에 적응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가로세로 3.5미터 감방에 갇힌 약물중독자와 중범죄자 들이다.
내가 연락을 받은 것이 바로 그 무렵이었다. 나는 뼈대가 가늘고 몸무게는 54킬로그램 나갈까 말까 하는 여자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보통 조용하고 내향적으로 비치고, 극적인 첫인상을 주는 일은 드물다. 차분하고 절제된 내 태도에 상대방이 시큰둥할 때가 많지만, 말들은 내게 쉽게 곁을 내준다. 지난 이십 년 동안 이 일을 해오면서 말과 인간의 상호작용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치 다양한 행동 양상을 목격했다. 그런데 목장을 처음 방문한 그 일요일에 나는 말과 관련해 여태껏 경험해본 가장 위험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감정 위장
2013년 3월
가축전담반은 작은 마구실 그늘막 아래 테이블과 벤치에 앉아 있다. 마구실은 야간용 축사에서 몇 미터 떨어져 있다. 마침 오후 네 시, 여물 줄 시간이다. 최근 여물을 줄 때 안 좋은 일이 몇 번 있었다고 들었다. 누구 잘못인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얼굴들이다. 내가 모두에게 내 소개를 하고, 그러자 가축반 일원들도 한 사람씩 일어나 나와 악수하고 자기 이름을 말한다. 그런 다음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폴이 먹이 줄 때 일어난 사건이 재차 언급된다. 이틀 전 폴이 호크에게 밟혔단다. 폴은 왼쪽 손목을 압박붕대로 감고 있고, 걸을 때 오른다리를 끌면서 절뚝거린다.
“녀석들이 우리를 깔아뭉개지 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우리 말을 영 안 듣잖아요.” 폴이 설명한다. 폴은 키가 큰데다 목이 굵다랗고 어깨도 떡 벌어졌다. “우리가 거기 서 있지 않은 것처럼 곧장 달려든다니까요.” 폴의 양 귓불 끝에는 구멍이 휑하니 뚫려 있다. 작은 창문으로 들여다보듯 그 너머가 보일 정도다.
“저녁밥 줄 때만 그런가요, 아니면 다른 때도 그런가요?” 내가 묻는다.
“저녁밥 줄 때도 매번 그러고, 하여간 먹을 것 줄 때는 늘 그래요.”
키 크고 마른 남자가 벤치에서 일어나 나와 악수한다. 렉스라는 재소자다. 그는 씩 웃으면서 깃 달린 셔츠의 단추를 풀어 가슴팍에 정확히 말굽 모양으로 든 멍을 보여준다.
“어제 아침밥 줄 때 스카우트가 나를 아주 제대로 찼어요.”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방목장에 무리와 떨어져 서 있는 갈색과 흰색 얼룩빼기를 가리킨다. “내가 저 녀석 구유에 건초를 담는데 갑자기 돌아서더니 덮쳤죠.” 키가 폴보다도 큰 렉스는 최소 187센티미터는 돼 보인다. 여위고 호리호리한 그가 셔츠 깃을 풀어헤친 채 내 머리보다 한참 위에서 녹갈색 눈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연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 싶어요.” 그리고 가축전담반에게 이렇게 말한다. “말들을 데리고 와 여물을 줘봅시다.”
마커스라는 청년이 벤치에서 일어선다. 몸이 헬스장에서 하루종일 지내는 사람 같다. 딱 붙는 티셔츠 안에 근육이 울끈불끈하고, 상체는 움직이는 거대한 바위 같다. 약간 화가 나 보이지만, 말씨는 조심스럽다. 혹시 내가 와 있어서 긴장한 건가 궁금해진다. 가축전담반 전원이 내 도움을 달가워하지는 않는 눈치다.
“가서 데려옵시다.”
마커스의 지시에 나머지 가축반 일원들도 벤치에서 일어선다. 마커스는 성큼성큼 걸어가 건초 보관용 헛간 문의 걸쇠를 젖히고 문을 활짝 열더니, 기다리고 있는 남자들의 팔에 작은 알팔파 건초 덩이를 던지기 시작한다. 말들은 방목장 저 끝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조용히 풀을 씹고 있다. 그런데 걸쇠가 풀리고 헛간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처박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고 이쪽으로 달려들 태세를 한다. 남자들은 각자 알팔파 두 덩이씩을 들어 옆구리에 꽉 붙이고 야간용 축사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그 건초를 구유에 던져넣고 다시 그늘막을 향해 죽을힘을 다해,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도록 달린다. 몇 명은 한 번 더 축사로 달려가 말들이 밤새 굶주리지 않도록 건초를 더 던져주고 온다. 플로르와 새라, 그리고 나머지 일원들도 헛간 문간에 나와 대단한 운동 경기라도 응원하듯 소리친다.
“빨리. 쟤들 오잖아. 이리 들어와!”
재소자들의 외침에 나는 얼어붙는다. 다음 순간, 올 것이 온다― 말들이 귀를 바짝 젖히고 흙먼지를 차올리며 우리를 향해 두두두 전력으로 질주해온다. 나는 헛간과 야간용 축사에 그늘을 드리운 커다란 미루나무 옆에 서 있다. 한 무리의 말들이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는 광경에는 눈길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 나는 거의 연중 내내 인간세계에 편히 섞여 지내는 법을 말들에게 가르친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속내는, 내가 말들의 세계를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말들은 제 몸뚱이만 있으면 된다. 녀석들이 우리를 향해 돌진할 때 넓은 가슴팍 아래로 마구 휘젓는 다리가 보인다.
고성과 비명이 점점 커지고, 남자들 몇이 후다닥 달려나와 나를 붙잡더니 건초 헛간으로 끌고 들어간다. 마커스가 우리 등뒤로 헛간 문을 굳게 닫는다. 우리는 건초 더미 앞 너비 2.5미터의 공간에 모여 있다. 말들이 꿈틀대는 몽뚱이를 한껏 비틀고 흙을 차올리면서 전속력으로 나무문까지 돌진해온다. 그러더니 머리와 목을 어깨높이로 낮춘다. 언제든 박으려고 몸을 일자로 납작하게 만드는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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