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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 비상사태
(중략)
이중 그 어떤 것도 불가피하지 않았다. 그 어떤 것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 푸에르토리코에서 벌어진 일은 파괴적인 시스템 안에서 수세기에 걸쳐 내려진 결정들의 결과다. 우리는 이미 수세기 전부터, 우리가 대체로 위험하거나 귀담아들을 가치가 없다고 여겨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이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인간이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생태계를 파괴함으로써 인류 문명의 미래를 위협한다고 확신한다. 이 책을 쓰면서 나의 목표는 지위, 계급, 젠더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각자 할 수 있는 역할을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또한 지금의 독자들이 모든 것을 바꾸는 데 일조할 수 있는 아주 좋은 타이밍에 태어났음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우리는 수십 년간 행동을 취하지 않았으므로, 기후변화는 이제 단순히 과학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기후변화는, 본질적으로, 정의의 문제다. 급격한 온난화 속에서도 우리가 온실가스 배출량 신기록을 매년 갈아치운다는 사실은, 우리의 사회 구조에 내재된 더 큰 문제를 보여주는 하나의 충격적인 증상에 불과하다. 정의의 문제인 기후변화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과 구성요소에 영향을 미치는 지속적 비상사태이기도 하다. 따라서 점점 더 극단적으로 바뀌는 날씨의 영향과 그것을 초래하는 부당한 시스템을 유의미한 방식으로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그 증거는 우리 주변에 산재해 있다. 우리는 서둘러 다른 길을 택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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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disaster’이라는 영단어의 라틴어 어원은 ‘불운한ill-starred’으로, 하늘에서 떨어진 불길한 운명의 징조를 의미한다. 하지만 기후변화와 관련된 재난은 이제 더 이상 불운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재앙이 발생할 수밖에 없게끔 행동했고, 특히 재앙의 원인이 발생하는 데 가장 적게 기여한 지역이 큰 피해를 입도록 방치했다. 기상학의 발달로 인해 언제, 어디에서 재난이 발생할지 예측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사회의 구조 탓에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역이 가장 극심한 재난 피해를 겪는다는 것이다. 이곳 주민들은, 푸에르토리코의 허리케인 마리아 생존자들처럼, 역사상 최악의 부당함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기후변화는 자연재해와 결합해 더욱 악화되고, 이전의 재해에서 완전히 회복하기도 전에 사람들을 새로운 재해에 빠뜨린다. 푸에르토리코처럼 작은 섬의 주민들은 벌써부터 깨끗한 식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8년 연구에 따르면, 카리브해 지역에서는―매년 허리케인이 강력해지고 폭우가 쏟아짐에도 불구하고―가뭄이 심각해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기후적 비상사태는 세계 전역에서 매년 펼쳐지고 있다.
마리아가 강타하기 한 해 전인 2016년, 사이클론 윈스턴이 남반구에서 측정된 것 중에 가장 거대한 폭풍으로 급격히 발전했다. 피지에 상륙하기 몇 시간 전이었다. 사이클론이 지나간 뒤의 연설에서 피지의 조지 콘로테Jioji Konrote 대통령은 “이 사태의 근본 원인과 관련해 글로벌 커뮤니티를 설득할 수 있도록 정부의 힘을 총동원하겠다”라고 공언했다. 그 근본 원인이란 기후변화였다. 그는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싸움”이며 “우리의 모든 삶의 방식이 달린 문제”라고 했다. 사이클론이 강타한 지 몇 년이 흐른 현재, 매년 찾아오는 우기로 재해복구가 지연되면서 사람들은 아직도 정부가 지급한 텐트에서의 삶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허리케인 마리아가 푸에르토리코에 상륙하기 며칠 전인 2017년의 어느 날, 또다른 허리케인이 카리브해를 휘저었다. 대서양 지역에 상륙한 허리케인 중 가장 강력했던 허리케인 이르마는 최대 시속 298km의 폭풍과 함께 바부다섬을 강타했다. 이에 따라 섬의 90%가 초토화되었다. 모든 주민이 대피하면서 수백 년 만에 처음으로 사람이 아예 살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법과 전통에 따르면, 이 섬의 땅은 주민들의 공동 소유물이지만, 허리케인 발생 이후 민간개발자들이 더 많은 관광객 유치를 위한 법률 개정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2018년, 태풍 유투가 서태평양 북마리아나제도에서 가장 큰 섬이자 미국령인 사이판을 강타했다. 풍속 290km의 유투는 마리아나제도 역사상 가장 강력한 폭풍이었다. 유투가 발생하기 전, 사이판은 세계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관광지 중 하나였지만, 유투 이후 주요 관광명소인 카지노가 수익 창출에 고전을 겪으면서 정부는 회복을 위한 노력을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는 학교 재건을 위한 노력도 포함된다.
사이클론 이다이와 사이클론 케니스는 2019년 6주의 시차를 두고 모잠비크에 상륙했다. 이 나라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허리케인의 잇따른 공격을 받았다. 이다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했을 것이다. 유엔UN에서는 이다이를 “남반구에서 벌어진 (…) 끔찍한 기후 관련 참사 중 하나”라고 했다. 하지만 뒤이어 발생한 케니스는 아프리카 대륙에 상륙한 이전의 그 어떤 폭풍보다 강력한 사이클론으로 판명났다. 케니스가 지나간 직후에 걷힌 국제사회의 구호금은 필요한 자금의 25%밖에 되지 않았다. 모잠비크는 그 간격을 메우고 회복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차관을 받아야 했다.
이러한 재난은 여성, 장애인, 저소득층, 흑인, 원주민 지역사회에 엄청난 위해를 가했다. 이들 계층은 하나같이 역사적인 이유와 동시대적인 이유로 소외받아왔다. 2018년, 플로리다주와 조지아주를 강타한 허리케인 마이클은 역사상 미국에 상륙한 네 번째 5등급 허리케인이었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미국에서 제일 가난한 지역인 조지아주 남부와 플로리다주 팬핸들〔프라이팬 손잡이 모양으로 생긴 플로리다주 북서부의 땅―옮긴이〕이었다. 이곳은 수백 년의 인종차별과 노예제도로 인한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지역이기도 했다. 대다수 언론은 마이클이 지나간 뒤 이러한 지역사회를 조명하기보다는, 플로리다주 틴들 공군기지의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전투기 피해를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주정부가 석유·가스업계로부터 여전히 92%의 세수를 확보하고 있는 알래스카주에서 이제 여름은 비정상적인 뇌우, 끊임없는 화재, 유례없는 폭염을 의미한다. 2018년, 알래스카주에 불길한 사건이 발생했다. 평균기온이 사상 최초로 섭씨 0도를 넘어선 것이다. 2019년 7월 4일, 자욱한 화재 연기가 하늘을 가리면서 알래스카주 남쪽 도시인 앵커리지의 기온은 32도까지 치솟았고 알래스카주 인근의 해빙 면적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영구동토층―수십억 톤의 탄소를 저장하고 있는 북극 주변의 언 땅―은 과학자들의 예상 시기보다 수십 년 빨리 녹으면서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중시키고, 가정, 기업, 도로, 원주민 지역사회 전체를 위태롭게 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2019년 말 연구에 따르면, 북극은 수만 년 만에 처음으로 온실가스 배출 지역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2019년 7월은 역사가 기록된 이래 지구가 가장 뜨거웠던 한 달이다.
2019년 9월 초, 또다른 5등급 허리케인인 도리안이 바하마의 아바코제도에 거의 하루 온종일 머물렀다. 미국 언론은 그 파괴력에도 불구하고 허리케인 도리안의 피해를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이 검은색 샤피〔미국의 유명 유성펜 브랜드―옮긴이〕를 이용해 국립허리케인센터NHC가 공식 발표한 허리케인 영향권을 수정함으로써 이 폭풍이 앨라배마를 위협한다는 자신의 잘못된 트위터 메시지를 그럴듯해 보이도록 만든 사건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이처럼 최악의 기후 재난을 겪는 사람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구는 것은 언론이 자주 보여주는 행태이다. 그 재난이 미국 영토에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도리안이 바하마에 하루 동안 입힌 피해는 서반구 기록 역사상 모든 면에서 최악이었다. 시속 298km의 지속적인 강풍, 7m의 해수면 상승, 콘크리트로 만든 폭풍 대피소를 산산조각 낼 만큼의 파괴력까지. 대다수가 트레저 케이의 고급 리조트에서 근무했던 아이티 이주민들 수천 명은 모든 것을 잃었다.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 문을 열면 잔해가 눈에 보이고 그 장면에 상처를 받습니다.” 도리안이 상륙한 지역에서 자란 바하마 목사 에디 플로이드 보디Eddie Floyd Bodie는 〈마이애미 헤럴드Miami Herald〉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생각하게 되죠. 예전에 봤던 것들을 더는 못 본다는 걸 깨달으면 기분이 좋지 않아요.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상황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어려워요. 그 스트레스가 사람을 괴롭히기 시작하죠.”
그해가 저물어갈 무렵, 새해 전날 밤에 호주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휴양도시 말라쿠타에서 수천 명이 해변으로 대피했고, 빠르게 번지는 불길이 그들 주변을 에워쌌다. 산불은 호주 대륙 역사상 최대 규모였고 피해 면적은 뉴욕시 면적의 80배였다. 생태계가 전멸했다.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만 4억 8000만 마리의 포유류, 조류, 파충류가 죽었다. 스콧 모리슨Scott Morrison 호주 총리는 조국이 화염에 휩싸인 와중에 시드니 하버에서 신년 불꽃놀이를 관람했다.
기후변화는 늘 이렇게 극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은밀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더 많다. 벌레들이 예전에는 살 수 없던 지역, 심지어 알래스카주와 그린란드처럼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서식지를 확대하면서 열대 전염병의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 수목, 조류, 포유류를 비롯한 종들은 서늘한 기후를 찾아 더 고도가 높은 곳을 향해, 그리고 극지방을 향해 이동한다. 매년 봄, 신록이 돌아오는 시기가 앞당겨지면서 수천 종의 생물들이 상호작용하는 타이밍과 서식지가 급격히 뒤바뀌고 있다. 이것은 생태계 전체의 균형을 아찔할 정도로 위태롭게 한다. 폭염은 장기화되고 강력해진다. 산불 연기는 산불 발생지에서 수백km 떨어진 지역의 만성질환까지 악화시킨다. 화석연료 연소로 악화된 대기오염은 거의 모든 국가에서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로, 대기오염 사망자는 하루 평균 1만 9000명 이상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예전에는 드물었던 여러 정신적 문제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들에게 살아볼 만한 미래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그 원인 중 하나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갈 수는 없다. 어떻게든,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다시 서로를 보살피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기후변화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관한 이야기에서 기자들은 종종 우리의 일상과는 동떨어진 사람과 장소로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북극곰은 위풍당당하고 매혹적인 존재이긴 하지만, 우리 중에 북극곰을 직접 만나보게 도리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북극에 살고 있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는 다른 동물들의 대량 기아가 점점 일상이 되어가고 그들의 삶에 훨씬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러시아에 사는 순록의 약 4분의 1이 죽었다. 지나치게 따뜻한 겨울 날씨가 부드러운 눈을 빙판으로 바꿔놓았고 이로 인해 순록이 그 아래의 풀을 뜯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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