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초상
누군가 우리 부모에게 이차세계대전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라면, 그들은 서슴없이 자신들이 겪었던 가장 어두운 시기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둘로 단절된 프랑스, 드랑시나 아우슈비츠 수용소, 육백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 학살, 혹은 아직도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그 모든 반인도적 범죄 때문이 아니라, 끝날 것 같지 않던 그 칠 년의 세월 동안 그들로서는 가장 중요한 것, 그러니까 프랑스 여행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전직 공무원, 어머니는 현직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꼬박꼬박 아이들과 함께 본국으로 가서 휴가를 누릴 수 있었다. 그들에게 프랑스는 식민지 권력의 본산이 전혀 아니었다. 그곳은 정말로 모국이었고, 파리는 유일하게 그들의 삶에 광채를 부여하는 빛의 도시Ville Lumière, 19세기 파리를 가리키던 명칭이기도 하다.였다. 어머니가 우리 머리에 넣어줬던 건 무엇보다도 생트샤펠성당과 베르사유, 그리고 탕플시장과 생피에르시장의 옷가게와 천가게에 진열된 근사한 물건들에 대한 묘사였다. 아버지는 루브르박물관, 그리고 총각 시절 굳은 다리 좀 풀어보려고 갔던 라시갈댄스홀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1946년도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두 사람은 희열을 느끼며 자신들을 르아브르항구로 데려다줄 여객선에 다시 올랐다. 르아브르항구는 제2의 조국으로 돌아가는 길 위의 첫 번째 기항지였다.
난 막내였다. 집안 신화 중 하나가 나의 탄생과 관련되어 있다. 아버지는 무려 예순세 살이었다. 어머니는 막 마흔세번째 생일을 축하한 참이었다. 어머니는 생리혈이 더 이상 보이지 않자 폐경이 시작된 징후라는 생각에, 아이 일곱을 받아준 산부인과 전문의 멜라스를 보러 뛰어갔다. 의사는 어머니를 진찰하고 나서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렸단다.
“정말 어찌나 창피하던지.” 어머니가 친구들을 상대로 얘기했다. “임신 초기 몇 달 동안, 미혼모라도 된 것 같더라고. 나오는 배를 가리려고 애를 썼지.”
어머니가 내게 입맞춤을 퍼부으며 우리 늦둥이가 노년의 작은 지팡이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지만, 그래봤자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늘 똑같은 슬픔을 느꼈다. 난, 원하던 아이가 아니었던 거니까.
오늘날, 전후의 우중충한 파리에서 라탱 지구의 테라스에 앉아 있던 우리가 당시 사람들 눈에 얼마나 흔치 않은 광경이었을지 떠올려본다. 한창때 유혹적이었으며 돋보이는 몸가짐이 여전한 아버지, 크레올풍의 화려한 장신구로 온몸을 휘감은 어머니, 그들의 자식 여덟, 성골함을 장식하듯 여봐란 듯 치장한 채 눈을 내리뜬 언니들과 청소년인 오빠들, 그중 한 명은 이미 의대 1학년이며, 그리고 나이에 비해 조숙하나 지나치게 응석둥이인 나. 카페 종업원들은 쟁반을 허리에 걸쳐 안정적으로 받쳐든 채 연신 감탄을 흘리며, 파리가 꿀 주위를 맴돌 듯 분주하게 우리 주위에서 파닥거렸다. 그들이 디아볼로 망트초록색의 박하향 청량음료.를 서빙하면서 한결같이 부지불식간에 흘린 말.
“어쩜 그렇게 프랑스어를 잘하세요!”
나의 부모는 발끈하거나 그렇다고 미소를 짓거나 하는 법 없이 칭찬을 받아들이고는, 그저 고개만 까닥여주고 말았다. 일단 종업원들이 몸을 돌려 가고 나면, 두 사람은 우리에게 편들라고 은근히 압박했다.
“그런데, 우리도 저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인들인데.” 아버지가 한숨을 쉬었다.
“프랑스인 이상이죠.” 어머니가 격렬한 어조로 한술 더 떴다. 어머니는 설명 대신으로 이런 말을 덧붙였다. 우리가 훨씬 더 교양이 있다. 우리가 예의범절도 더 뛰어나다. 우리가 책도 훨씬 더 많이 읽는다. 저들 중 몇몇은 파리 바깥으로 나가본 적도 없지만, 우리는 몽생미셸, 코트다쥐르, 그리고 바스크해협도 가봤다.
이런 대화에는 뭔가 비장미가 감돌아서 어린아이였지만 속이 상했다. 그들의 항의 거리는 심각한 부당함이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역할이 바뀌어 있었다. 하얀색 앞치마를 두르고 너그러운 고객들보다 더 위에 두었던 것이다. 내 부모는 신수가 훤한데도 프랑스인이라는 정체성을 부인하고 거부당했는데, 그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러한 정체성을 지녔다. 그리고 난, 자부심이 가득하고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있으며 자신들 나라에서는 유명인사인 이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자기네 시중을 드는 저 종업원들과 경쟁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 날 궁금증을 말끔하게 해소하기로 마음먹었다. 곤혹스러울 때마다 그랬듯이 알렉상드르 오빠에게 쫓아갔는데, 오빠는 “좀더 미국인처럼 보이려고” 이미 스스로 상드리노라고 개명하고 난 뒤였다. 반에서 일등이고 주머니엔 여자 친구들이 보낸 연애편지가 가득한 상드리노는 내겐 하늘에 뜬 태양과 같았다. 좋은 오빠였던 그는 내게 보호자다운 애정을 베풀었다. 하지만 그저 그의 어린 여동생인 것만으로는 내 성에 안 찼다. 허리가 잘록한 여자애가 주변을 지나가거나 축구 시합이라도 시작되면 난 즉각 잊혔으니까. 오빠는 우리 부모의 행동에서 뭔가 이해하고 있을까? 왜 그들은 그들 스스로 털어놨듯이 자신들 발치에도 못 미치는 그런 사람들을 그다지도 부러워하는 걸까?
우리는 파리에서 7구의 조용한 거리 일층에 있는 아파트에 묵었다. 라푸앵트에서 우리는 갇혀 있고 묶여 있다시피 했는데, 여기서는 달랐다. 우리 부모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 외출하고 심지어 다른 아이들 집을 방문해도 된다고 허락해줬다. 그 당시 난 그러한 자유에 놀랐다. 나중에서야, 프랑스에서는 우리가 크레올어로 말한다든가 라푸앵트의 가난뱅이들처럼 그오카gwoka. 과들루프섬의 전통 음악으로, 카 드럼 연주와 노래, 춤이 어우러진다.에 취미를 붙일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돼서라는 걸 알았다. 그날 우리는 이층에 사는 금발머리 백인 애들과 술래잡기를 하며 놀았고, 당시 파리는 여전히 물자 부족이어서 말린 과일을 간식으로 나눠 먹었던 게 기억난다. 밤이 되어 군데군데 별빛이 새어나오는 밤하늘로 바뀌기 시작한 시각이었다. 우리는 집에 돌아갈 준비를 했는데, 언니 한 명이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이렇게 소리를 지를 참이었다.
“얘들아! 엄마 아빠가 집으로 들어오래.”
질문에 답해주려고 상드리노가 대문에 등을 기댔다. 유년기의 볼살이 아직 남아 있는 쾌활한 그의 얼굴이 음울한 가면으로 덮였다. 목소리는 무거워졌다.
“신경쓰지 마.” 그의 입에서 마침내 말이 떨어졌다. “엄마 아빠 둘 다 소외된 사람들이야.”
소외된 사람들? 그게 무슨 소리일까? 질문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상드리노가 부모를 조롱하는 소리를 들은 게 그게 처음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에보니Ebony』1945년 존슨 H. 존슨이 아프리카 출신 미국인들을 겨냥하여 시카고에서 창간한 잡지.에서 오려낸 사진 한 장을 침대 머리맡 벽에 붙여뒀더랬다. 거기에 보이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식이 여덟인 미국의 어떤 흑인 가정의 모습이 감탄을 자아냈다. 모두 의사, 변호사, 엔지니어, 건축가 들이다. 한마디로 부모의 영예. 그 사진은 상드리노에게서 최악의 조롱을 자아내어, 삶을 제대로 시작해보기도 전에 자신이 죽게 되리라는 걸 알지 못하고, 자신은 유명 작가가 되겠노라고 맹세했다. 그는 쓰기 시작한 소설들은 숨기고 보여주지 않는 대신, 자신이 쓴 시들은 낭송을 해주곤 했다. 난 그 시들을 들으면 당혹스러웠는데, 오빠 말로는 시는 이해되는 것이 아니어서 그렇단다. 난 위쪽 침대에서 잠든 테레즈 언니를 자칫하다간 깨울지 모르는데도, 내내 침대에서 뒤척이며 그날 밤을 보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몹시 사랑했기에 그랬다. 두 사람의 잿빛 머리카락과 이마의 주름을 보면 정말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두 사람이 젊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 내 친구 이블리즈의 어머니가 교리 교육에 이블리즈를 데려다준 날 이블리즈가 그랬듯이, 사람들이 어머니를 보고 내 큰언니인 줄 안다면! 사실, 아버지와 말하다가 아버지가 수시로 라틴어 표현을 끼워넣으면 괴로워서 죽고 싶긴 했다. 그런 표현들이 삽화가 수록된 『프티 라루스 일뤼스트레Petit Larousse illustré』 사전에나 나온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됐다. 베르바 볼렌트. 스크립타 마넨트. 카르페 디엠. 파테르 파밀리아스. 데우스 엑스 마키나. 특히 내가 못 봐주겠는 건 어머니가 그 더위에도 본인의 짙은 색 피부에 비해 너무 밝은 두 가지 색상이 섞인 스타킹을 고수한다는 거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애정이 있음을 알고 있었고, 두 사람이 자신들 생각에 가장 근사한 삶이라고 믿고 있는 것을 우리가 예비하도록 애쓴다는 건 이해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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