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아니, 수현아, 개미들은 네 말처럼 절대로 그렇게 많이 벌 수 없다니까?”
2017년 봄, 신자유주의를 주제로 공부하던 정치인류학 세미나 시간이었다. 주식과 해외선물투자로 100억 벌어 편하게 공부하며 사는 게 꿈이라는 나의 말에 교수님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해외선물투자를 갓 시작한 초보 개인 투자자였고, 그 어느 때보다 부자가 되겠다는 열망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런 나에게 개인투자로는 절대로 돈을 벌 수 없다는 교수님의 단언은 충격적이고 거북했다. 도대체 왜 교수님은 주식을 해 보지도 않았다면서, 개인투자자는 벌지 못한다고 말하는 걸까?
나는 금융이란 그야말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기본 소양이라 여기는 집안 분위기에서 자랐다. 나의 아버지는 30년 경력의 직장인 개인투자자다. 어릴 때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위한 수단으로 금융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자식에게 직접 주식과 파생상품투자도 가르치셨다. 그 영향으로 오빠는 대학생연합투자동아리 회장을 거쳐 펀드매니저가 되어 금융계에 입성했다 하지만 나는 캐나다 교환학생 시절 접한 인류학의 매력에 푹 빠져, 인류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난생처음 사회과학을 공부하며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구조적 체계적 비판을 접했다. 혼란스러웠다. 학과를 통틀어 금융이라는, 자본주의사회가 허용한 ‘경제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옹호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인 듯 느껴졌다. 교수님은 내가 사회과학대학이 아닌 경영대학에 가야 했다고 말씀하셨다. 학과 내 유일한 ‘신자유주의 추종자’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세미나 시간마다 교수님과 나머지 학생들을 상대로 열띤 토론을 펼쳤지만 초짜 신입생이었던 나는 지식, 논리, 말발 등 모든 면에서 뒤떨어졌다.
개미는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교수님의 콧방귀와 수업시간마다 반복되는 패배감에 아버지가 심어 준 미래에 대한 희망은 부정당했고, 믿었던 사다리가 걷어차인 것 같은 불안감마저 엄습했다. 그래서 다짐했다. 개인투자자로서의 성공과 경제적 자유를 향한 꿈이 정말 불가능한 것인지 직접 연구를 통해 확인해 보기로. 학과 사무실에 제출해야 하는 연구 계획서에는 이렇게 적었다. “(인류학의 방법론인) 현지조사를 통해 개인투자자를 참여관찰하고 면담하여, 금융에 대한 나의 가치관을 확립하는 기회로 삼겠다.” 그러나 속마음은 달랐다. 우리는 21세기 첨단 금융시장 경제사회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아직도 부자자본가를 혐오하고, 금융을 사회악이라 여기며, 개미투자자를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멍청이’로 여기는 참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사회과학대학에 기필코 증명하리라! 개인투자자가 얼마나 열심이고, 똑똑하며, 합리적인 경제 인간인지를! 하여 이들이 어떻게 ‘경제적 자유’를 얻게 되는지 보여 주겠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2018년 여름, 사전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분연했던 내 마음에 찬물을 끼얹었다. 개인전업투자자 사무실인 로알매매방의 운영자가 교수님과 똑같은 말을 하는 게 아닌가? 그는 비록 자신의 투자는 실패했을지라도 누구든 마음 깊은 곳에 ‘금융투자란 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새겨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은 승리한 것이기도 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한 지난 10여 년 동안 로알매매방에 입실한 200여 명 중 절대다수가 돈을 잃고 퇴실하는 것을 지켜봤으며 현재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단 두 명에 불과하다고도 했다. ‘어, 이상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개인전업투자자를 10년 넘게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관찰한 분이 이런 말을 하다니 혼란스러웠다. 투자 성공에 대한 나의 믿음과 자신감에 제동이 걸린 순간이었다.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로알매매방에 자릿세를 내고 한 자리를 얻었다. 그곳에서 인류학 논문을 위한 현지조사를 하며 어느 곳에서도 알려 주지 않았던 개인전업투자자의 안타까운 민낯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었다. 투자자들이 추구하는 ‘투자성공’은 마치, 멀리서 보면 선명하지만 그 실체를 손에 쥘 순 없는 무지개 같았다. 사회과학대학을 향한 통쾌한 반격을 위한 나의 연구 가설은 냉정한 현실 앞에 맥없이 무너졌다.
논문을 접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한 가지 질문이 머리를 스쳤다. 그렇다면 이들은 반복된 손실을 경험하면서도 왜 돈이 바닥날 때까지 투자를 그만두지 않을까? 입실자들의 평균 입실 기간은 2~3년 정도로, 가져온 씨드머니를 야금야금 잃은 뒤에야 퇴실한다고 했다. 하지만 손실을 반복적으로 경험하여 씨드머니가 줄어드는 과정에서도 자신은 돈을 ‘벌고 있다’고 인식하거나 ‘(앞으로는) 벌 것이다’라는 의지와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들 중 대다수가 투자로 돈 벌기란 매우 어려우며 투자 성공은 ‘아주 드물다’고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참 모순적인 태도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니 나 자신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100억이란 액수로 표상된 ‘경제적 자유’를 향한 나의 집착적인 믿음과 희망은 어떻게 생겨난 것이었을까? 하물며 매일 투자 공부하고, 하루 종일 HTS홈 트레이딩 시스템 차트만 보고, 투자 생각만 하는 매매방 사람들도 투자해서 돈 벌기란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내 두 눈으로 확인했는데, 나는 여전히 속으로 ‘그래도 내 투자는 다를 거야.’라고 우기고 있었다. 당시 내 계좌의 수익률은 마이너스였음에도 말이다. 나 자신의 이중 잣대를 알아차리게 된 후,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연구해 보기로 결심했다. 개인투자자들은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를 할까? 그러자 단독의 개인투자자가 아닌, 이들이 처한 사회경제적 구조와 문화적 맥락이 눈에 들어왔다.
서두부터 구구절절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나도 누구보다 욕심 있는 개인투자자임을 밝히기 위함이다. 이 책은 작게는 로알매매방 개인전업투자자의 이야기이지만, 넓게는 2021년 대한민국 동학개미인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 동시에 나 자신의 이야다. 때문에 개인투자자의 성패에 관해 회의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독자들이 얼마나 거부감이 들지 그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논문이 인터넷상에 알려진 뒤, “글쓴이 입맛에만 맞는 사례를 모아 편향적으로 썼다.”라는 댓글을 읽었는데 사실 내 입맛은 그와는 정반대 맛이다. 나 역시 ‘생각보다 많은 수의 개인투자자가 돈을 잃는다.’라는 쓴 진실을 삼키고 소화하기까지 참 힘이 들었다.
그러나 개인투자자들이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쓰디쓴 투자의 이면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급격히 확대되는 개인투자 흐름 속에서 우리 사회에는 ‘누구나 공부하고 노력하면 주식투자로 성공할 수 있다.’라는 명제가 아무 검증 없이 공리로 통용되고 있다. 책, 신문, 방송, 유튜브, SNS 등 미디어는 앞다투어 주식과 재테크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발굴하여 보도한다. 그러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구)독자는 그것을 익히고 체화하는 데 열심이다. 매매방에서 현지조사를 할 때만 하더라도 5060 중장년 계층이 그 중심에 있었다면, 불과 1~2년 새 2030 청년층에게까지 그 흐름이 확장됐다. 투자는 더는 재테크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현대인의 낙樂이자 필수적인 자기 계발과 수련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주식투자가 이유 불문 ‘열심히 해야만 하는 무언가’가 되어 버린 마당에 그 위험은 ‘당연히 감수해야만 하는 것’으로 탈바꿈한다는 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위험은 위험 그 자체로 이해되지 않고 더 큰 이익을 불러올 수 있는 ‘기회’의 또 다른 이름으로 변주된다. 돈을 잃을 가능성은 물론 이론상 존재하긴 하지만 ‘내 일이 되진 않을 것이다.’ 오늘날 주식을 비롯한 재테크 담론엔 더 많은 투자자를 모으고, 더 많은 돈을 유입하기 위한, 프로모션뿐이라는 사실이 아찔하다. 이는 주식시장을 과도하게 양성화하며 투자자에게 장밋빛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담론의 균형은 깨져 버렸다.
특히나 2020년 코로나19 이후 많은 개인투자자가 단기간에 큰돈을 벌게 되자 그간 우리 사회에 남아 있던 금융투자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은 거대한 전환을 맞이했다. 주식 안 하면 바보이거나 기회를 잡지 않는 게으름뱅이로 치부된다. 투자의 위험성과 중독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소수설에 그칠 뿐이다. 그러나 주식가 격언이 시사하듯 이 시장엔 영원한 상승장도 하락장도 없으며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 지금 종합지수가 그러하듯 산의 정상이 높을수록 골짜기는 더 깊은 법이다. ‘해야 한다’ 그리고 ‘벌 수 있다’는 목소리로만 이뤄진 주식 권하는 사회의 달콤하고도 위험한 언설의 품에서 깨어나야 한다. 투자의 위험에 대해 당연한 것으로만 여기는 사회 분위기 전반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도 있다. 손실과 실패의 책임은 결국 권하는 이’가 아닌, 열심히 투자를 공부하고 배운 것을 실천한 개인투자자 자신의 몫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에 내 부끄러운 석사 논문을 책으로 만들게 되었다. 석사 졸업논문은 대개 첫 논문인 만큼 부족하고 어설픈 부분이 많다. 그래서 대학원생들 사이에선 우스갯소리로 ‘제발 아무도 읽지 않길 간절히 기도하는 글’로 통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주식 열풍에 힘입어 내 논문이 온라인상에서 제법 공감을 얻게 되자 신문, 방송, 유튜브 등 다양한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내 논문에 담긴 주장이 실은 개인전업투자자가 처한 사회 문화적 구조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매체는 본문 첫 장에 언급한 ‘개미의 실패 3단계’에 기반해 ‘그럼 실패를 줄이기 위해 어떻게 투자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기를 원했다. 실패 3단계에서 지적한 심리적 편향의 ‘반대로만 투자하면 된다.’는 어느 블로거의 리뷰도 전해 들었다. 독자들은 개인 수준에서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방법론적 제언에 여전히 관심이 많구나 싶었다. 아쉽게도 이 책엔 ‘이렇게 하면 투자에 성공할 수 있다.’라는 답은 들어 있지 않다. 나는 금융 전공자도, 투자 전문가도 아니기에 그 답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저 주식 하는 사람들을 부지런히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1인일 뿐이다. 이 책은 주식에 관한 책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주식하는 ‘사람들’ 나아가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우리 사회를 탐구하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재테크 인사이트’를 구하기 보단 ‘재테크 인사이트’를 계속해서 구하도록 하는,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공기를 알아차리는 기회가 될 수 있길 바란다. 경주마로 하여금 오로지 결승선만을 바라보며 숨 가쁘게 달리게 하는 눈가리개를 본 적이 있는가? 이 사회의 분위기가 지금 그렇다. 투자 인류로서 당신이 ‘경제적 자유’라는 목표만을 바라보게 하고, 더 높은 수익률을 향해, 더 나은 투자방법론을 찾아 끊임없이 질주하게 하는 눈가리개를 잠시 벗어 던지자. 그리고 당신이 발 딛고 있는 이 커다란 경기장을 바라보자. 이 책에서 소개하는 로알매매방의 전업투자자들을 바라봄으로써 지금까지 오로지 나의 선택, 나의 책임으로만 여겼던 주식투자가 사회구조와 문화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점을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수익과 욕망에 온 신경이 매몰되어 투자에 몰입했던 내가 매매방에서 전업투자자들을 참여관찰하며 나의 소망과 생각, 계획과 실천이 이 사회에 깃든 것임을 발견하게 되었듯이 말이다. 하여 ‘당신은 왜 투자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개인 차원의 수익적 관점에서 더 나아가 사회 문화적 관점에서도 그 답을 고민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중략)
등장인물 소개
─ 개인전업투자자
김성호 | 남, 50대, 전업 13년 차
로알매매방의 가장 오래된 입실자이자 터줏대감. 2008년도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때 ‘기회’를 찾아 전업투자를 시작했다. 잘못된 펀딩 전략으로 당시 투자는 실패했지만, 덕분에 이제는 그 어떤 위기가 찾아와도 별로 두렵지 않다. 오른손잡이임에도 키보드 맨 오른편 숫자 패드로 빠르게 주문을 넣기 위해 왼손으로 마우스 사용을 연마한 투자 고수. 박학다식하며, 또다시 찾아올 ‘위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조민식 | 남, 50대, 전업 13년 차
김성호 씨의 매매방 룸메이트자 절친. 몹시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매매할 땐 누구보다 냉철한, 시스템 매매의 달인. 성호 씨 이외 입실자들과 거의 말을 섞지 않는다.
이용철 | 남, 50대, 전업 4년 차
28년간 재직한 국내 모 대기업 임원으로 은퇴. 공인중개사로 잠시 일하다 적성에 안 맞아 곧 그만두고 로알매매방에 입실했다. 대학 때 배운 가치투자를 굳게 신봉하지만, 올해 들어 매매가 마음처럼 되지 않아 속상하다. 매매방에서의 일과가 끝나면 친구들과 가끔 당구도 치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며 인문 교양서를 즐겨 읽는다.
박동일 | 남, 50대, 전업 13년 차, 로알매매방 운영자 겸 개인투자자
철강회사 대리 시절, 회사의 기술 특허 취득이 발표되기 전 자사주를 대량 사 두는 불법 내부자거래로 금감원에 불려 간 경험이 있다. 설상가상으로 대출받아 산 자사주는 제때 못 팔아 빚만 남겼다. 빚을 갚기 위해 시작한 사업도 뜻대로 풀리지 않아, 직원 내보낸 자리를 전업투자자에게 임대해 주다 로알매매방 운영자가 되었다. 요즘 자꾸만 입실자가 줄어들어 매매방 운영에 고민이 깊어진다.
민종학 | 남, 50대, 전업 4년 차
대한민국에서 조물주보다 높은 건물주이자, 소위 ‘대박’이 난 제약주를 몇 만 주 들고 있어 다른 입실자에 비해 생계 걱정은 덜하다. 다만, 유료 전문가 방송도 듣고 매일 공부하고 있음에도 ELW2 투자가 잘 되지 않아 조금 걱정이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자기가 봐도 전업투자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전업투자를 한다는 말에 싸늘했던 교회 지인들의 반응 이후 전업투자자라는 신분을 대외적으로 숨기고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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