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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의 굴착기가 어둑한 현장 식당 앞에 멈춰 섰다. 색색깔의 노래방 조명이 창문에 비치고 최신 트로트가 새어 나오는 식당 안에서는 소장과 인부들이 회식을 하고 있었다. 죽은 선길의 건이 마무리된 것을 자축이라도 하듯, 선길이 데리고 왔던 개를 잡아서. 현경은 무정한 얼굴로 엔진 회전수를 끌어올렸다. 굴착기가 배기가스를 울컥이며 육중하게 진동했다. 바퀴 앞의 삽날이 올라갔고 랍스터 손 같은 철거용 집게가 안으로 접혔다. 현경은 클랙슨을 깊숙이 누르며 액셀을 지르밟았다. 코뿔소처럼 팔을 치켜세운 굴착기가 식당으로 폭주했다.
목 씨에게서 선길이 앞으로 새벽마다 멧돼지 보초를 서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현경은 심드렁했다. 아무리 외딴 현장이라지만 한 달 넘게 형편없던 식당밥이 난데없는 멧돼지 때문이라는 것도, 그 멧돼지를 막겠다고 선길을 보초로 세운다는 것도 뭔 소린가 싶었다.
“빌어먹을, 괜히 깽판을 쳤어. 하도 밥이 밥 같잖아서. 이건 무조건 식당 여자가 해먹는 거다 싶어서 내 딴에는 엄포나 놓는다고 그랬던 건데.” 목 씨가 입술을 질근거렸다. 배식을 받다 말고 식판을 내동댕이쳤던 어제 아침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며 목 씨는 식당 여자에게 호통을 쳤고 여자는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행패냐고, 그게 다 멧돼지 때문이라고 핏대를 세웠다. 현경은 아침을 걸렀기 때문에 다른 인부에게 전해 들어서만 알고 있었다.
“정말 멧돼지가 그런 거긴 해요?”
“부식 비닐하우스가 걸레짝이 돼 있더라고. 안에도 아주 난장지랄판이 벌어져 있고. 그 여편네 아주 보란듯 뻔뻔하게 구는 꼴이 더 수상하긴 했는데, 어쩌겠어. 그렇게 보여 주는데.” 목 씨는 못마땅한 얼굴로 빈 땅을 찼다. “그냥 나 하나 창피 보면 끝나는 일인데 되먹잖은 윤 가 놈이 반장한테 괜히 속닥속닥, 소장도 골치 아플 테니까 이 기회에 도와주면서 한 다리 척 걸쳐 보자느니 되지도 않는 소릴 해 가지고. 반장은 왜 또 거기에 홀랑 넘어가서는. 거, 얼마 전에 황 반장네가 뽑혀 나갔잖아, 소장 눈 밖에 나서.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 겨울에 멀쩡한 사람한테 밤새기 시킬 생각을 하냐고, 그것도 애까지 저런 사람을!”
“근데 선길 씨, 별로 안 좋게 생각한 거 아니셨어요?”
현경은 넌지시 물었다. 멧돼지도 멧돼지지만 목 씨의 태도에도 의아한 데가 있었다. 선길은 온 지 얼마 안 된 데다 작업 중에도 걸핏하면 전화기를 들고 사라지기 일쑤였다. 위험한 작업을 할 때는 어떻게든 빠지려 들었다. 괜히 얼굴 붉히기들 싫어 모두 은근히 따돌리기나 하던 중에 선길을 일일이 지적하고 혼냈던 사람이 목 씨였다.
“좋고 싫고 할 게 어딨어, 생초짠데. 사람이 왔으면 제대로 가르쳐 놓기부터 해야지. 조져도 가르쳐 놓을 건 다 가르쳐 놓고 해야 하는 거야. 쪼잔하게 뭐 하나 가르쳐 주지도 않으면서 뒤로들 욕이나 하고.” 목 씨는 한심하다는 듯 저편에서 둘러앉아 낄낄대고 있는 인부들을 눈짓했다. “싹수 없진 않았어. 한번 가르쳐 주면 같은 잘못은 안 했으니까. 자꾸 없어지고 험한 일은 어떻게든 안 하려 들어서 그렇지.”
“그러니까 다들 그러는 거잖아요.” 딱히 인부들을 편들어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현경 역시 선길이 마뜩찮던 터였다.
목 씨는 입술을 질근거렸다.
“사정이 있더라고. 애가 일곱 살인데.” 목 씨는 옆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여기에 수술을 벌써 두 번이나 했대. 이제 좀 있으면 세 번째로 해야 되고. 핸드폰 대문사진이 애 수술한 자리 사진이더라고. 빡빡 밀어 놓은 옆머리에 갈고리처럼 커다랗게 꼬매 놔서는, 어휴, 기가 차지. 그 조막만한 머리에 그럴 데가 어딨다고. 집에서 전화 오면 다짜고짜 받으러 나가는 것도. 험해 보이는 일은 한사코 안 하려고 하는 것도 다 그거더라고. 애가 저러고 있는데 자기까지 어떻게 되면 아주 파탄이 나버리는 거니까.”
현경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썩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미혼이었고 자식도 없었다. 다만 납득이 가는 것은 하나 있었다. 현장이 아니라 숙소에서의 일이었다.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어차피 소장이 됐다고 할 거예요.”
“그럴까?”
“쓸데없이 반장한테 신세 질 이유가 없잖아요. 현장도 아니고 식당일에.”
“그건 그런데…….”
현경은 영 안심이 안 돼 보이는 목 씨의 얼굴을 봤다. “제가 가서 작업 좀 할까요?”
목 씨는 현경을 쳐다봤다. “어떻게?”
“비닐하우스 빙 둘러서 장비로 한 바퀴 파 주면 되잖아요. 별로 깊게 팔 것도 없을 거 같은데.”
목 씨는 금세 알아들었다. “그러네! 옛날 성에 해자 두르듯이 그렇게 해 놓으면 멧돼지가 옆에서 비비고 들어가려고 해도 발이 빠져서 힘을 못 받으니까.”
현경은 그렇잖냐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됐다. 내가 반장한테 말할게. 이상한 데다 사람 쓸 거 없다고.”
목 씨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지만 현경은 애매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장한테는 아무 말 마세요. 소장한테 지금 사바사바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어차피 안 들을 거예요. 원래 하자고 하면 더 안 하는 사람이잖아요. 저한테까지 와서 뭐라고 할 수도 있고.”
“네가 하자 했다고 안 할게. 내 생각인 것처럼 말하면 되잖아.”
“그러지 마시고, 제가 이따 한 대리한테 말해 볼게요. 한 대리가 소장한테 얘기해서 결정하는 게 빠르고 쉬워요.” 고마워하는 목 씨에게 현경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덧붙였다. “뭘요, 별것도 아닌데.”
현경은 정말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종종하는 일이었다. 공사장에 와서 시끄럽다거나 먼지가 날린다고, 또 사유지니 다니지 말라며 민원을 넣거나 심술 부리는 사람이 있었다. 현경은 일일이 맞서는 대신 눈치껏 텃밭이나 경계석 따위를 정리해 줬다. 그러면 두말없을 뿐 아니라 오가며 인사도 하고 음료수나 간식거리를 챙겨다들 줬다. 물론 그러고도 입 싹 닦거나 더 해내 놓으라는 양아치들도 있었지만 아무튼 멧돼지가 난장판을 만들었다는 것도, 현장 사무소에서 밤샘을 하며 보초를 선다는 것도 썩 와닿지는 않았다. 직접 본 것도 아니었고 그 비슷한 일을 해 본 적도 없었다. 목 씨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있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차라리 윤 씨와 반장 뜻대로 돌아가는 꼴에 어깃장을 놓아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윤 씨는 핑계만 있으면 어떻게든 장비한테 일을 미루려 들었고 반장은 뻔히 빠르고 쉬운 일머리가 있어도 현경이 그러자고 하면 괜한 고집을 부리며 권위를 세우려 들었다. 선길의 사정이 마음에 걸린 것도 있긴 있었다. 목 씨의 말이 아니라 그 말로 납득하게 된 숙소에서의 일 때문이었다.
현경은 숙소로 쓰는 모텔 2층의 가장 좁고 싼 방들 중 하나에 묵었다. 비용보다는 안전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고층방은 외통수였지만 2층에서는 직접 도움을 청하기도 쉽고 여차하면 창문으로 도망칠 수도 있었다. 몇번 안 좋은 일을 겪은 뒤로 항상 그렇게 했다. 나름대로 장점도 있었다. 인부들이 선호하지 않아 혼자 조용하게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그 옆방에 선길이 들어와 묵기 시작했다.
현장에서도 걸핏하면 전화기를 들고 사라지던 선길은 퇴근하고 들어와서도 매일 한두 시간씩 아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다정하고 부드러운 말투였고 목소리는 성가대원처럼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방에서 나는 소리가 넘어온다는 것이, 또 내 방 소리도 그렇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일 수는 없었다.
현경은 몇번이나 망설였다. 벽을 두드려 주의를 줄까, 가서 이야기를 할까. 하지만 그 통화만 끝나면 벽 너머는 죽은 듯 조용했고 텔레비전 소리조차 넘어오지 않았다. 선길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 분명히 느껴졌다. 현경의 입장에서는 뭐라고 하기도 애매한 그래서 더 불편하고 성가시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통화가 그렇게나 아픈 아들과 하는 통화였다고 하니 현경은 미안하고 민망했다. 어떻게든 도와줘야겠다는 마음까지는 아니었지만.
오후 작업을 하며 현경은 한 대리를 기다렸다. 한 대리는 그닥 믿음직한 사람이 아니었다. 일단 일을 잘 못했다. 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항상 현경에게는 사람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는데 일 못하고 착한 사람만큼 현장에서 골치 아픈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목 씨에게 마음이 쓰이는 것도 일을 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고 선길이 안타깝지만 마음이 미적지근한 것도 일을 못해서였다. 게다가 말할 때마다 웃기부터 하는 한 대리의 얼굴은 억지스럽고 비굴한 데가 있었다. 현장에서 실수도 잦았고 사무소에서도 막내라 이리저리 치이는 눈치였다.
그렇더라도 소장에게 말을 전하는 것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을 터였다. 그것이 기본 절차이기도 했다. 평소라면 오후 일찍 한번 들러야 했는데 그날은 늦었다. 또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다 싶어 현경은 차라리 소장에게 직접 말을 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만뒀다. 소장은 별로 말을 섞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다.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이, 느낌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는 중에 마침내 한 대리가 왔다.
자재를 부리고 돌아 나가려는 한 대리의 트럭을 현경은 손짓해 세웠다.
“어쩐 일이세요, 서 기사님!” 한 대리는 둥글넙적한 얼굴로 특유의 억지스러운 웃음부터 지었다. 현경은 가볍게 인사하고 본론을 꺼냈다. 간단한 이야기였다. 멧돼지 때문에 난감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서 잠깐 작업하면 될 일 같다. 소장님께 말씀을 전해 주시고 허락하시면 어차피 정비도 할 겸 저녁에 장비 몰고 가서 작업하겠다. 하지만 한 대리는 그 간단한 이야기를 질질 끌었다. 어떻게 할 거냐, 왜 할 거냐, 함바집에도 물어봐야 하지 않겠냐 하면 서. 시선도 자꾸 피했다
이상하고 불쾌했지만 일단 꺼낸 말이고 어쨌거나 회사 사람이라 현경은 꾹 눌러 참았다. 최대한 공손하고 간결하게 소장님께 여쭤 보기만 해 달라고 말했다. 한 대리는 그러고도 뚱한 표정을 짓다가 일단 말씀은 드려 보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다른 현장에 가 봐야 한다면서 또 특유의 억지스러운 웃음을 짓고는 트럭 창문을 올렸다.
멀어지는 한 대리의 트럭을 보며 현경은 짜증이 났다. 뭔가 석연치 않고 찜찜했다. 당연히 하겠다거나 고마워할 일 아닌가? 차라리 소장에게 직접 말할걸 그랬다 싶었다. 하지만 역시 내 일도 아닌 걸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든 소장도 바보가 아니니 이야기를 들으면 그러라고 할 터였다. 아무리 선길이라도 그런 하찮은 일이나 시키며 놀릴 것은 없었고 목 씨에게도 말했듯 현장도 아닌 현장 식당 일에 괜히 반장의 신세를 질 이유 역시 없었다. 하지만 선길은 다음 날 아침 출근하지 않았고 반장은 선길이 현장에서 열외됐음을 알렸다. 그날 밤부터 멧돼지 보초를 서게 됐다고 공지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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