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같은 거예요.
—무슨 벌레인데?
—벌레 같은 거요, 어디에나 다 있는.
내 귀에 대고 속삭이는 건 남자아이다. 질문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몸에 있는 벌레?
—네, 몸에 있는 벌레요.
—지렁이 말하는 거니?
—아뇨, 다른 종류의 벌레예요.
어두워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까슬까슬한 시트가 내 몸 아래에서 구겨진다. 나는 움직이진 못하지만 말은 한다.
—벌레 때문이에요.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돼요. 그리고 기다리면서, 벌레가 생기는 정확한 순간을 찾아내야 해요.
—왜 그래야 하는데?
—중요하거든요, 우리 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하려고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집 앞마당에서 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저도 마당에 있어요?
—아니, 너는 없어, 하지만 네 엄마 카를라는 있지. 너희 엄마랑은 며칠 전에 알게 됐어, 우리가 처음 별장에 도착했을 때 말이야.
—카를라는 뭘 하고 있어요?
—방금 커피를 다 마시고 선베드 옆의 잔디 위에 잔을 놓고 있어.
—그리고요?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고 있어. 깜빡하고 샌들을 놓고 갔지, 수영장 계단에서 저기 몇미터 떨어진 곳에.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안해.
—왜요?
—그냥 너희 엄마가 어쩌는지 두고 보고 싶어서.
—그래서 카를라는 뭘 하죠?
—핸드백을 어깨에 메고 금색 비키니 차림으로 자동차 있는 데까지 걸어가. 우리는 서로에게 끌리면서도 언뜻언뜻 거부감을 느낄 때도 있어. 매우 특정한 상황에서 그런 게 느껴져. 그런데 이런 것까지 자세히 말할 필요가 있어? 우리, 이럴 시간이 있는 거 맞니?
—보이는 걸 자세히 말하는 게 아주 중요해요. 두분은 왜 마당에 계시죠?
—방금 호수에서 돌아왔거든. 게다가 너희 엄마가 우리 집에 들어오고 싶어하지 않고.
—아주머니를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는 거예요.
—뭐가 번거롭지 않니? 내가 집 안을 여러번 들락날락해야 되잖아. 처음엔 레모네이드를 내오러, 그다음에는 자외선차단제를 가져오러. 이건 번거롭지 않게 하는 게 아닌 것 같은데.
—두분은 호수에 왜 가셨어요?
—너희 엄마가 내가 운전을 가르쳐주길 바라시더라, 늘 배우고 싶었다면서. 하지만 막상 호수에 도착하고 보니 우리 둘 다 그럴 만한 참을성이 없더라고.
—지금 카를라는 마당에서 뭘 하죠?
—내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라타서 잠시 자기 핸드백을 이리저리 뒤지고 있어. 나는 선베드에서 다리를 내리고 기다리는 중이고. 날씨가 너무 더워. 이내 카를라는 핸드백을 뒤지는 게 지겨워졌는지 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붙잡아. 잠시 그렇게 대문 쪽을 바라보고 있지. 대문 너머 저 멀리 있는 자기 집을 바라보는 걸 수도 있고.
—그리고요? 아주머니는 왜 아무 말도 없죠?
—이 이야기에 매여 있으니까. 나는 이야기를 완벽하게 볼 수 있지만 때로는 진전시키기가 어려워. 간호사들이 놓는 주사 때문일까?
—아니요.
—하지만 난 몇시간 뒤면 죽을 거야. 그렇게 되겠지, 안 그러니? 그런데도 마음이 이렇게 평온하다니 이상하지. 네가 말해주지 않아도 내가 이미 알고 있어서 그래. 그렇지만 스스로에게 그렇다고 말하기는 아주 어려운 일이지.
—이 중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어요.
—하지만 사실이잖아? 내가 죽을 거라는 건.
—마당에서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나죠?
—카를라는 운전대에 이마를 대고 있고, 어깨를 조금 들썩여. 울고 있거든. 네가 보기엔 벌레가 생기는 정확한 순간에 우리가 근접할 수 있을 것 같니?
—계속하세요, 세세한 점도 잊지 마시고요.
—카를라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지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걸어가게 만들지. 나는 처음부터 카를라가 좋았어. 그녀가 땡볕 아래에서 큰 플라스틱 양동이 두개를 들고 가는 걸 봤을 때부터. 빨간 머리를 틀어올리고 멜빵 청바지를 입고 있었지. 십대 이후로 그런 차림을 한 사람은 처음 봤어. 레모네이드 좀 마셔보라고 권한 사람도 나고, 다음 날 아침에, 그리고 또 다음 날과 그다음 날 아침에 마테를 마시러 오라고 초대한 것도 나야. 이런 세세한 점들이 중요하니?
—정확한 순간은 바로 세세한 점에 있어요. 그러니 자세히 살펴봐야 해요.
—나는 마당을 가로지르고 있어. 수영장 가장자리를 둘러가면서 큰 창문 너머로 식당 쪽을 바라보며 내 딸 니나가 커다란 두더지 인형을 안고 계속 자고 있는지 살피지. 그러고는 자동차 조수석에 타. 자리에 앉지만 차 문은 열어두고 차창을 내리지. 날씨가 무덥거든. 둥글게 말아올린 카를라의 머리가 약간 처졌더라고. 한쪽이 풀려서야. 카를라는 내가 거기에 있는 걸, 또다시 자기 곁에 있다는 걸 눈치채고 좌석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서 나를 바라봐.
“당신한테 이 얘길 하면,” 카를라가 말을 꺼내. “더이상 날 만나고 싶어하지 않을 거예요.”
나는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해. 가령 “에이, 카를라, 바보 같은 소리 말아요” 같은 말. 그러는 대신 나는 그녀의 발가락을, 페달 위에서 긴장한 발가락을, 긴 다리를, 가늘지만 탄탄한 팔을 바라봐. 나보다 열살이나 많은 여자가 훨씬 더 아름답다는 게 당황스러워.
“이 얘길 하면,” 카를라가 말을 이어. “그 아이가 니나랑 놀지 않길 바랄 거예요.”
“하지만 카를라, 내가 어떻게 그러겠어요.”
“그렇게 될 거예요, 아만다.”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아이 이름이 뭐예요?”
“다비드예요.”
“당신 아이예요? 당신 아들인가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여. 그 아들이 바로 너란다, 다비드.
—저도 알아요, 계속하세요.
—그녀는 손마디로 눈물을 닦아. 그러자 끼고 있는 금색 팔찌들이 짤랑짤랑 소리를 내지. 나는 널 본 적은 없었지만, 우리가 임대한 집을 관리하는 헤세르 씨에게 카를라와 친구가 되었다고 말했더니 그분이 바로 널 만나봤냐고 묻더라고. 카를라가 대답했어.
“내 아들이었죠. 지금은 아니지만.”
나는 영문을 통 모르겠어서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지.
“이제 그 아이는 내게 속해 있지 않아요.”
“카를라, 자식은 평생 가잖아요.”
“아니더라고요.” 그녀의 대답이야. 그러더니 길게 기른 손톱으로 나를 가리켜. 손가락을 내 눈높이로 들어올려서.
그때 문득 나는 남편의 담배가 있다는 게 생각나서 조수석의 글러브박스를 열고 담배와 라이터를 그녀에게 건네주지. 카를라가 그것을 내 손에서 낚아채다시피 가져가자, 그녀의 자외선차단제 향이 우리 사이에 퍼져.
“다비드가 태어났을 때 그애는 내 인생의 빛이었어요. 나에겐 태양 같았죠.”
“당연히 그랬을 거예요.” 나는 맞장구를 치지만 이제 잠자코 있어야 한다는 걸 눈치채지.
“나더러 아기를 안아보라고 처음 데려왔을 때 너무 무서웠어요. 아이 손가락이 하나 없다고 확신했거든요.” 그녀는 입술로 담배를 물고 옛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 짓더니 담배에 불을 붙였어. “간호사가 마취 때문에 이런 일이 가끔 생긴다고 하더군요, 사람이 약간 편집증적이 되기도 한다고요. 아기 손가락이 열개 다 있는 걸 두번이나 세어보고서야 모든 게 괜찮다는 사실이 믿기더라고요. 지금은 다비드가 단지 손가락 한개만 모자라게 할 수 있다면 내가 뭔들 못 내놓겠어요.”
“다비드에게 무슨 일이 있나요?”
“하지만 그 아이는 내 태양이었어요, 아만다, 내 달이고 별이었죠. 하루 종일 방긋방긋 웃는 아이였어요. 밖에 나와 있는 걸 가장 좋아했고요. 아주 어릴 때부터 광장이라면 좋아서 정신을 못 차렸어요. 여기선 유모차를 끌고 돌아다니지 못하잖아요? 읍내에서는 그럴 수 있어요. 여기서부터 광장까지는 도로를 따라 여러채의 별장과 오두막 사이를 지나가야 하는데다 길도 진창이지만, 아이가 거기 가는 걸 워낙 좋아해서 세살 때까지는 열두 블록을 안아서 데려가곤 했어요. 미끄럼틀이 보이면 아이가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죠. 이 차엔 재떨이가 어디 있나요?”
“계기판 아래 있어요.” 나는 재떨이를 꺼내서 카를라에게 건네줘.
“그러다 다비드가 병이 났어요, 그 나이에요. 대략 6년 전쯤 일이에요…….”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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