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 맨
처음 종이를 먹었던 날을 기억한다. 중학교에서 치르는 첫 시험이었을 것이다. 평소 무관심하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돌연 나에게 관심을 쏟았다. 그날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머리가 상당히 나쁜 부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것대로 아버지에게 충격이었을 것이다. 유능한 회계사였던 그에게 공부 못하는 아들이라니. 아버지는 같은 내용을 세 번 이상 일러줘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들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버지는 요령 없는 교도관처럼 내 주위를 맴돌았다. 나는 나대로 스스로의 머리 나쁨을 한탄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외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보고 싶었고, 이내 나를 혼자 두고 가버렸다는 생각에 원망스러웠다.
당시 내가 외우고 있던 과목은 역사였는데, 아무리 외워도 시대와 사건이 하나로 이어지지 않았다. 씨줄과 날줄로 엮어져야 할 내용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나를 괴롭혔다. 새벽에 동이 틀 무렵까지 나는 고작 한 단원도 외우지 못했다. 아버지는 인내심이 바닥났다. 그는 얼굴이 벌게져서 내게 종이를 찢어 먹으라고 소리쳤다.
“먹어라! 그러면 기억이 날 게다!”
아버지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기 위해 서재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정작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진 것은 나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내가 이토록 머리가 나쁜 인간인 줄 몰랐던 것이다.
나는 활자가 새겨진 종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치 활자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면 물러섰고, 잡으려고 애쓰면 달아났다. 나는 부딪치고, 구르고, 나자빠졌지만 소용없었다. 활자들은 정신을 헤집어놓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나는 아버지가 던진 말을 곱씹었다. 그러고는 활자 하나하나를 다시금 눈에 새기고 종이 한 장을 뜯어냈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입안에 구겨 넣었다. 종이가 입천장을 따갑게 찌르자 다량의 침이 분비됐다. 종이는 점점 딱딱해졌다. 나는 마치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 종이를 침으로 충분히 적신 다음 여러 번 되씹어 목구멍으로 넘겼다. 한 장의 종이를 다 삼키고 나니 왠지 모를 성취감이 느껴졌다. 놀랍게도 종이를 씹어 먹은 후 거기에 새겨져 있던 내용이 기억났다.
“하나의 의식 같은 거였어. 기도하기 위해 성수를 떠다 놓듯이, 기억하기 위해 종이를 씹어 삼키는 식이었지.”
후에 나는 유신에게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내 이런 행위를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때는 이미 책 한 권을 배 속에 삼킨 뒤였다. 어느 날, 아버지는 내가 책상에 앉아 공부하면서 턱관절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도대체 뭘 씹고 있는 거냐?”
아버지가 물었다.
“종이요.” 아버지는 놀라 입이 벌어졌다. 나는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말했다. “정말 신기하게 다 기억이 나던걸요.”
아버지는 자선이 홧김에 던진 한마디가 아들의 인생을 바꿔 놓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그런 짓은 그만둬라. 그렇게까지 해서 기억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미 종이를 먹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고, 빠져서는 안 되는 기도처럼 성스러운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오히려 아버지의 충고는 내게 들키지 않고 종이를 먹는 방법을 터득하게 했다. 얼마 뒤, 나는 정신과를 찾아갔지만 유명한 대학을 졸업하고 관련 논문을 썼다는 의사는 그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비정상적이라고 단언할 수 없어요. 인류는 문명이 시작된 이래 수많은 것을 먹어 치웠답니다. 종이는 그중에서도 가장 단순하면서 무해한 거라고 할 수 있죠. 잔인하지도, 폭력적이지도 않으면서 욕구를 충족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염려하실 필요는 전혀 없답니다. 그저 남들과 식성이 다른 정도로만 여기시면 됩니다.”
나는 그가 너무 많은 정신병자를 상대하다 정신이 이상해진 의사라는 결론을 내렸다.
*
아버지는 어머니의 무덤에 난 잡초를 뽑기도 전에 재혼했다. 대대로 부를 거머쥐었던 집안은 아니었으나 대단한 재력가임에는 틀림없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녀가 새로운 안주인이 되자 집안 곳곳에는 빠짐없이 십자가가 걸렸다. 거실과 부엌, 심지어 화장실에도 인간을 위해 희생한 위대한 구원자가 눈앞에 있었다. 어머니 사진이 끼워져 있던 내 탁상용 액자에도 십자가에 못 박혀 신음하는 구원자가 자리를 대신했다. 그는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사지를 내맡긴 채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의구심이 일었다. 그는 충분히 다른 형태로, 다른 방법으로 무지한 인간들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 끔찍한 고통을 택했던 것일까. 어째서 그는 자선을 그런 식으로밖에 증명해내지 못했을까. 나는 그가 우리에게 죄의 굴레를 덮어씌우기 위해 일부러 그러한 희생을 자처했다고 여기고 있다. 한쪽 벽면을 당당하게 차지하기 위해, 죄의 속박으로 우리를 몰아붙이기 위해.
나는 그의 시선 아래 종이를 먹었다. 나의 식지食紙 행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취향을 갖게 되었다. 그즈음 내 배 속에는 다양한 종이가 뒤섞였는데, 흔한 중질지부터 시작하여 크라프트지까지 먹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보통은 문제집이나 책에서 찢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에서 내가 선호했던 것은 두꺼운 사전에 자주 쓰이는 박엽지였다. 바이블 페이퍼bible paper나 인디언 페이퍼indian paper라 불리는, 많은 양의 정보를 담기 위해 사용되는 종이였다. 얇았기 때문에 여타 종이에 비해 목 넘김이 수월했다. 가장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다는 것과 무색, 무취, 무미도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나는 특별히 박엽지를 사와 그곳에 외워야 하는 정보를 옮긴 후 씹어 삼키곤 했다.
(본문 중 일부)
#문학나눔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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