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회진
그가 오면 아침이 새뜻해진다
막연하게 자신감 생기는 것이다
능숙한 의사같이
쭈그러진 어깨를 펴주고
무릎을 칼날로 세워준다
굴종의 자세로 늘어지는 삼겹살
환멸의 증거로 널브러진 토사물
타협의 지분으로 뒤섞인 찌개 냄새들을
벤젠이라는 항생제로 치료한다
새물내 나는 옷을 곧바로 입는 것보다
어제 입었던 셔츠가 편한 까닭은
나만 편들어주는 체온이 남아서겠지
눈치가 태도로 남아서겠지
환절기에는 병원마다 감기 환자로 줄을 선다
세탁소가 벗어놓은 옷으로 그득한 것은
삶의 자세를 바꾸면 아프다는 뜻이다
품은 맞는데 기장이 짧은 미흡처럼
일상은 무언가의 트집을 무릅쓰는 일이다
물러서는 파도를 따라 잔걸음질치다가
되돌아서는 일이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다
보낼 때 확인했는데 배달되면 주머니마다 손 넣어본다
누구에게나 초인종 누르고 도망가는 악동이 있는 것처럼
실망에 실망하지 말아야지
세탁물 들고 회진중인 그가 돌아서는 순간
풍기는 벤젠 냄새에서
휘발揮發이라는 망각을 생각했다
한파주의보
지금 3월을 생각한다는 것은
미리 달려가 권태라는 벌을 받는 일
등마다 서릿발 무늬를 짊어진 겨울의 유민이 되어
봄 제국 앞에 입국심사를 기다려야 한다
동창의 불행을 소문내는 척
애틋하게 혹한을 설명하는 기상 캐스터의 짧은 원피스에서
이물감이 올라온다
불 꺼진 난로라도
보는 순간 손부터 꺼내는 습관을 잊을 때쯤
3월이 스민다
혼음하듯 외투에 매달린 악취들에서
번다함을 느낀다 한쪽으로 닳은 뒤축에서
생계의 편벽便辟을 동정한다
지난 달력의 기념일들을 옮기다가
꽃 따위에 대한 기대도 없이 3월에서 멈췄다
그날들을 더이상 표기하지 않을 때
소멸을 생각한다
버스에 탑승한 이상 언젠가는 하차해야만 한다
쌓아놓았던 나이를 다 뜯어먹은 노인마냥
폐허를 경유한 사람은 수긍의 기술을 안다
노숙인의 저체온증 사망과 빙판 사고처럼
겨울은 패배나 착각에 대한 관용이 없다
텀블러의 무표정을 오후 내내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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