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소설가/개벽사상가 로런스
1. 서양전통과 개벽
‘개벽開闢’은 영어를 포함한 서양 언어에 없는 단어다. 당연히 로런스도 자신을 개벽사상가라 일컫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낱말을 로런스 논의에 끌어들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며, 굳이 그래야 할 이유는 어디 있을까?
서양 전통에도 물론 개벽에 견줄 만한 개념들이 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경전에 나오는 ‘천지창조’는 일종의 ‘천지개벽’이다. 그러나 초월적 존재인 하느님이 없던 천지를 만들어낸 것이 「창세기」가 전하는 천지창조인 데 비해, 동아시아 전통 속의 천지개벽은 비록 하늘이 열리고 땅이 트인〔開天地劇〕 초유의 사건이라 해도 무언가 이미 있던 것이 열리고 트인 것이지 ‘무에서의 창조’creatio ex nihilo는 아니다. 더구나 우주의 성·주·괴·공成住壞空이라는 불교 개념에 따르면 천지개벽조차 한번에 끝나는 사건이 아니며 딱히 언제가 ‘최초’였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다른 한편 현대 물리학에서 말하는 ‘빅뱅’Big Bang 혹은 태초의 ‘대폭발’은 천지개벽에 방불한 이미지를 제공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인상이 방불할 뿐 구체적인 내용이 판이하고 (오늘의 과학도 그 내용을 완전히 규명한 것은 아니지만) 생명체를 포함한 천지의 열림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사실, 이런 설명은 로런스를 개벽사상가라고 부르는 일과는 꽤나 거리가 있다. 로런스의 개벽사상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천지개벽이 된 이후의 세상이 다시 개벽하는, ‘선천개벽’과 구별되는 ‘후천개벽’의 사건에 해당할 것이다. 이는 19세기 중엽 이래 한반도에서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룬 사상이자 운동이다. 동학의 창시자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가 ‘다시 개벽’을 말한 이래로 천도교, 증산도, 원불교 등이 모두 ‘후천개벽’을 내걸게 되었다.
그런 의미로는 서양 전통에서 예수의 복음 선포가 일종의 후천개벽 선언이었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인간의 역사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시어 율법의 시대를 주도하게 했지만, 그것과 차원이 다른 새 시대를 열고 ‘새 하늘 새 땅’을 선포한 것이 예수인 것이다. 로런스 자신도 잉글란드의 비국교도 가정 - 구체적으로는 영국의 청교도혁명을 이끌었던 올리버 크롬웰과 같은 종파인 회중파會菜底, Congregationalists - 출신으로 『성경』에 익숙했고 그 흔적을 그의 작품 도처에서 만날 수 있다. 일찍이 이사야가 예언했던 ‘새 하늘과 새 땅’은 로런스가 즐겨 쓰는 표현이기도 했다. 이는 신약성서 마지막의 「요한계시록」에서 특히 도드라지는 표현인데, 로런스는 소설 『무지개』The Rainbow, 1915가 판매금지와 압수 처분을 당하고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암담한 세월에도 새 세상의 도래에 대한 신념을 거듭 피력했다.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이제 실현될 것을 압니다. 우리가 승리한 겁니다. 나는 마치 아메리카가 어슴푸레 눈앞에 보이는 콜럼버스 같은 기분입니다. 다만 이것은 단순한 영토가 아니고 영혼의 새로운 대륙이지요. 우리는 모두 누가 뭐래도 행복해질 것이고, 새롭고 건설적인 일을 하며 새로운 시대로 진입할 것입니다.
이것은 사신私信의 한 토막일 뿐이므로 로런스의 ‘사상’을 말하려면 더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나라’와 ‘새 하늘 새 땅’의 비전에 비할 때 ― 이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 물론 다양하지만 - 로런스가 생각하는 새 세상은 세상 자체의 종말과 심판, 또는 영혼의 구원, 그리스도의 재림再臨과 그가 다스리는 천년왕국보다는 ‘후천개벽’으로 일컬어지는 문명의 대전환에 가깝다.
로런스와 그리스도교의 관계는 뒤에 더 상세하게 논할 문제인데, 그는 청년기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떠났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적 세계관 자체와의 결별 및 청산을 필생의 과제로 삼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도 현실에서의 이상사회 건설을 겨냥한 각종 천년왕국 운동이라든가 여타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는 신앙적·신학적 사례들이 있지만, 대다수 그리스도 교단들로 말하면 ‘선천시대先天時代’ 종교로서 개벽작업의 대상이 된 느낌이 짙다. 아무튼 로런스의 사상과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그리스도교적 변혁사상이 한정된 의미 이상을 갖기는 어렵다.
서양의 세속적인 사상가 중에 후천개벽에 방불한 대전환을 꿈꾼 예로 맑스Karl Marx, 1818~83와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매우 대조적인 사상과 정치노선을 지닌 인물들이다. 니체는 자신의 사상을 계기로 근대, 나아가 2천년 기독교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전혀 새로운 시대, 말하자면 일종의 개벽세상이 열린다고 주장한 반면, 맑스는 근대 자본주의사회의 근본적 전환을 주장하면서도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로 불릴 만큼 과학적 분석과 사회주의 운동을 중시한 혁명가였다. 아무튼 이들과 로런스의 관계는 본서의 중요 관심사이며 뒤에 다시 논할 터인데, 그들 각자가 후천개벽의 과제에 어느 선까지 다가갔고 로런스가 도달한 경지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밝힐 수 있다면 로런스뿐 아니라 맑스나 니체 사상의 생산적 수용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영문학의 전통에서 의미있는 선구자를 만날 수 있을지도 점검해볼 일이다. 예컨대 18세기 말, 19세기 초의 시인이자 화가요 도판작가인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는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대혁명 및 산업 혁명의 격변기를 살면서 인류의 정신적·사회적 갱생을꿈꾸었다는 점에서 후천개벽에 친화성을 보인다. 다만 로런스와 비교할 때 블레이크는 다재다능한 예술가지만 장편소설을 쓰지 않았고, 로런스는 흔히 ‘예언자적 예술가’로 평가또는 폄하를 받지만 운문으로건 산문으로건 ‘예언서’Prophetic Books로 불리는 블레이크의 장편시 같은 작품을 저술한 바가 없다. 그런데 이 특징들이 결코 서로 무관하지 않다. 로런스는 “장편소설이야말로 이제까지 성취된 인간의 표현형식 중 최상의 것”The novel is the highest form of human expression so far attained이라고 주장했는데, 블레이크는 그런 최고의 표현수단을 이용함으로써 장편소설 특유의 검증을 받음이 없이 ‘개벽의 꿈’을 일방적으로 제시하려다가 ‘개벽사상가’로 서의 한계를 드러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의 ‘예언서’들이 시로서도 성공적이라 보는 열성적 지지자들도 많다. 하지만 나 자신은 그 작품들의 의도와 블레이크의 통찰을 높이 사면서도 결과는 실패작이라고 비판하는 리비스F. R. Leavis, 1895~1978의 판단에 동조하는데, 비판의 과정에서 리비스가 로런스 둥의 장편소설을 언급하는 대목이 특히 홍미롭다. “디킨즈, 조지 엘리엇, 똘스또이, 콘래드 그리고 로런스의 이름이 대표하는 소설 개념에 해당하는 장편소설만이 블레이크의 그러한 반데까르뜨적 통찰과 탁월한 심리학적 투시력을 성공적인 예술로 구현할 수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로런스 자신의 주장을 따르더라도, 만약 그에게 ‘개벽사상’이랄 만한 것이 있다면 그의 장편소설을 빼고는 논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사변적인 산문 등을 부차적인 저술로 격하하는 관행을 추종할 필요는 없으나, 본서가 장편 몇편의 집중 검토에 제1부를 할애하는 것은 로런스 자신의 소설가적 자기인식에도 부합할 터이다.
로런스가 ‘개벽사상가’로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는 그의 작가적 위상을 확인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20세기 영국, 나아가 유럽과 미국의 여러 뛰어난 소설가 중에서 유독 로런스가 전혀 다른 전통에 속하는 ‘개벽사상’을 공유하는 경지에 이르렀다면 이는 그의 작가적 탁월성, 아니 독보성을 보여주는 징표가 아닐 수 없다. 동시에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후천개벽’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문명대전환 움직임의 관점에서도 이질적 전통의 소산인 로런스의 사상을 활용할 수 있다면 자기점검과 발전을 위해 더없이 소중한 자산을 얻는 셈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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