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20세기 마지막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은 벨기에 영화 〈로제타〉에 돌아갔다. 영화는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젊은 여성 로제타의 고단한 삶을 그린다. 공장에서 수습을 마치자마자 해고가 된 뒤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한 그는 자격 요건이 되지 않아 실업급여도 받지 못한다. 집은 마을 바깥에 버려진 캠핑카. 알코올 중독의 어머니는 밤낮없이 술병만 뒤진다. 일자리가 유일한 구원인데, 그 구원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밤마다 자장가 삼아서 “내 이름은 로제타, 나는 일자리를 찾았어”라고 되뇌지만, 아침이 오면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현실이 버티고 있다.
다급한 마음에 로제타는 유일한 친구를 배신하고 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술에 취해 뒹굴다가 의식을 잃은 것을 발견하고는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한다. 가스 밸브를 열고 최후의 순간을 기다린다. 그런데 가스가 없다. 할 수 없이 가스를 사러 나가지만, 그 가스통은 또 너무 무거워 들지를 못한다. 그때 갑자기 나타나 가스통을 들어준 사람이 바로 그가 배신했던 친구다. 그제야 로제타는 무너지며 서럽게 운다. 가스통도 들지 못해 죽지 못하는 삶의 무게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끝나버린다. 희망과 의지의 말 하나도 남가지 않는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몰랐다는 듯이 화들짝 놀랐다. 로제타가 그 ‘아무것도 아닌 일자리’를 구원의 길로 삼았다는 것이 새삼 충격이라고 했다. 게다가 희망의 21세기를 코앞에 둔 해에 칸 영화제의 최고상이 이 우울하기 짝이 없는 영화에 돌아갔으니, 난리법석이 났다. 새로운 법이 만들어졌다. 학교를 졸업한 젊은이 모두에게 원하는 경우 무조건 일자리 기회를 보장하는 법이었다. 기업은 25세 이하 젊은이들을 의무적으로 고용하고, 정부는 실업보험금 면제와 보조금 지급을 통해 기업을 돕기로 했다. 법의 정식 명칭은 ‘청년고용계획’인데, 사람들은 ‘로제타 법’이라 불렀다. 로제타가 더는 “내 이름은 로제타, 나는 일자리를 찾았어”라고 홀로 속삭일 필요는 없게 하는 법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은 여전히 현실과 멀다. 지금도 벨기에의 청년실업률은 15%가 넘는다. 평균 실업률의 2~3배가 넘는 수준이다.
유럽의 작은 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로제타는 어디에나 있다. 유럽의 어느 나라에도, 미국에도, 여기 한국에도 있다. 그리고 젊은 로제타도 있고, 나이 든 로제타도 있다. 로제타는 영화처럼 여성의 모습으로도, 남성의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공장에도, 가게에도, 사무실에도, 공사장에도, 도로 위에도, 논과 밭에도 그리고 집 안에도 있다. 로제타는 일자리에서 밀려난 모든 사람을 부르는 보통 명사다.
무엇이 문제인가?
왜 일자리는 부족할까. 어렵고, 무엇보다도 아픈 질문이다. 세계 각국의 정부들이 너도나도 앞서서 ‘완전고용’을 외친 지 50년이 지났다. 대한민국 헌법 제32조에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실상은 이런 목표와 선언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더 아프다. 명색이 고용 문제로 밥벌이하는 사람인데, 이 질문 앞에서는 여전히 우물쭈물한다. 답을 해도 장황하고 모호하다. 내게도 아주 어려운 질문이기 때문이다. 나는 변명 같은 대답이라도 해보겠다는 심산으로 이 책을 썼다.
경제학자인 나로서는 교과서적인 경제학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에서 이야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일자리 문제가 시장을 통해 대부분 해소된다는 믿음은 ‘노동시장labour market’이라는 말 자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노동자가 인간적 본질을 부정하며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내놓아야 하는 것처럼, 노동시장은 태생적으로 긴장과 불안, 마찰과 불확실성을 품고 있다. 거래되는 것은 포장된 물건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를 사소한 디테일이라고 무시하는 순간 고용, 실업, 임금, 노동시간, 기술 변화 등 모든 중요한 주제에서 잘못된 해석이나 비현실적인 주장을 내세우게 된다.
일자리에 관한 한, ‘시장’의 시간은 없었고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당분간은, 시장을 온전히 부정하는 혁명의 시간도 오지 않을 듯하다. 상품이 아닌 노동을 ‘상품’으로 취급하지 않으면서 경제를 조직할 대안적 방안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시장을 인정하면서 시장을 넘어서는, 아슬아슬한 곡예 같은 일이 우리가 당분간 감내해야 하는 과제이다. 정책과 제도 그리고 힘의 균형에 집중한다는 뜻이 된다.
그러려면 문제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일자리는 왜 부족한가”라고 묻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마을에 가면 모든 사람이 일한다. 숫자로 보면, 이곳은 ‘완전고용’ 상태다.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가 없으니 길거리에 나가 밤새 만든 목공품이라도 내다 팔아야 한다. 실업이 ‘사치’인 곳에서는 모두가 일해야 하고, 그래서 숫자상으로는 일자리가 부족하지 않은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생긴다.
부족한 것은 ‘좋은’ 일자리다. 부자 나라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최저임금에 겨우 미치는 돈을 받으면서 고통과 위험을 감내해야 하는 일은 넘친다. 특히 청년층, 여성층, 노년층에게는 흔한 일상이다. 따라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왜 ‘좋은’ 일자리는 부족한가”이다.
여기에 덧붙여, 그러한 상황이 왜 계속되는지, 그 구조적 이유는 무엇인지도 물어야 한다. 로제타가 잠들면서 자장가 삼아 외워대는 일자리의 주문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하다. 20세기에도 그랬고, 21세기에도 변함없다. 또 다른 로제타가 나타나서 주문을 외우고 묻는다. 일의 세계는 쉬지 않고 변하는데, 우리는 같은 질문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이 책의 질문은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이다.
일하는 삶의 경제학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고용, 실업, 노동 개념은 일하는 삶의 핵심적인 측면을 담기에 너무 협소하다. 이는 보통 보수를 받는 ‘임금노동’을 대상으로 사용되는데, 고용과 노동의 형태와 내용이 이미 너무 다양화게 분화되어 기존 개념이 이런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 또한 시장에서 거래되는 노동뿐만 아니라, 보수가 지급되지 않거나 과소평가되는 사회적 활동예컨대 가사노동도 일자리 정책의 중심으로 가져와야 한다. 최근 여성층과 청년층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고용과 노동 형태의 분화는 이런 사회적으로 유용한 활동과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일자리의 가치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 일자리는 시장에서 지급되는 임금 이상의 사회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일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가족, 이웃, 공동체 나아가 사회에 다층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필요한지를 따질 때 이런 사회적 영향도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기에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하다. 따라서 노동과 고용이라는 좁은 개념을 벗어나 ‘일’이라는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즉 우리가 살펴야 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일 그리고 사람과 삶의 문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책이 ‘노동경제학’보다는 ‘일하는 삶의 경제학’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정돈된 균형의 세계에서 출발하는 노동경제학과 달리, 이 책은 노동‘시장’에 필연적인 긴장과 충돌에서 출발한다. 여기에서 갈등은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항상적 조건이 된다. 일자리는 시장에 의해 조직되지만, 시장은 종종 실패하며 그 해법을 시장 바깥에서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갈등을 해결하는 정책적‧제도적 접근이 중요하다.
일자리는 이미 정치적인 문제다. 일자리가 귀해지면 사람들은 내셔널리스트nationalist가 되기 쉽고, 이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는 시도도 커진다. 일자리를 정치적 구원의 메시지로 이용하는 사람은 트럼프만이 아니다. 세계 도처에 있다. 로제타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정치 세력이 “로제타를 위하여”를 외치는 역사적 아이러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일자리 정치경제학이 필요하다. 그런 고민을 이 책에서 같이 해보고자 한다.
이 책은 비전문가를 대상으로 썼지만, 일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당장 따를 수 있는 실용적 지침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당신의 일하는 삶에 곧장 숨통을 트이게 할 만한 요술방망이는 여기에 없다. 일하는 삶의 일상을 결정하는 구조적 요인과 변화를 설명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고, 이를 통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뿐이다. 일터에서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 이 책이 몇 가지 논리와 관점을 제공한다면, 그것으로 제 몫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쉽게 쓰려고 노력했으나, 아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오로지 내 능력 탓이다. 그저 따분한 교실 수업처럼 느껴지지만 않기를 바란다.
책의 구성
책은 이렇게 구성해보았다. 시작은 다소 딱딱하다. 1장 “실업: 하나의 현실, 갈라지는 생각들”은 경제학에서 일자리의 상실, 즉 ‘실업’을 어떻게 다루는지 살펴본다. 노동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실업의 원인과 대책이 달라진다. 실업이라는 하나의 현실에 생각은 여러 갈래다. 이는 단순히 이론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겪는 일상이기도 하다. 실업률이 발표되는 날, 신문들은 똑같은 숫자를 두고 전혀 다른 분석과 정책을 내놓는다. 이렇게 된 연유를 역사적 맥락에서 훑어보려 한다. 얼핏 보면, 논쟁의 역사는 불가사의하다. 한쪽에서는 시장이 실업의 해법이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실업의 원인이라고 본다. 논쟁은 또 아이러니하다. 임금이 너무 높아 실업이 발생한다는 시장주의적 접근의 정신적 지주인 애덤 스미스는 정작 자본과 노동 간 힘의 불균형으로 발생하는 저임금을 더 걱정했다. 다소 복잡한 논의인지라, 당신의 인내심이 한 큰술 필요하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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