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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읽기
당신은 하나의 책, 미완성 문학 작품, 기술적 역사의 보관소다. 당신의 몸과 유전체는 오래전에 사라진 연속된 다채로운 세계들, 오래전 살았던 조상들을 에워싸고 있던 세계들에 관한 종합 기록물로서 읽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일종의 ‘사자의 유전서genetic book of the dead’다. 이 진리는 모든 동물, 식물, 균류, 세균, 고세균에 적용되지만, 지루한 반복을 피하고자 나는 모든 생물을 명예 동물로 다루곤 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스미소니언 과학자들이 일하는 파나마의 한 정글을 함께 둘러볼 때 존 메이너드 스미스John Maynard Smith가 했던 말을 잘 기억하고 있다. “자신의 동물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직접 들으니 정말로 기쁘군.” 그가 말한 ‘동물’은 야자수였다.
그 동물의 관점에서 보자면, 사자의 유전서는 미래 예측기라고도 볼 수 있다. 미래가 과거와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가정을 따를 때다. 이를 표현하는 세 번째 방식이 있는데, 유전체를 포함한 동물이 과거 환경을 체화한 모델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미래를 예측하는 데 쓰이고 다윈주의 게임, 즉 생존과 번식의 게임,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유전자의 생존 게임에서 계속 이겨 온 모델이다. 동물의 유전체는 미래가 자신의 조상들이 성공적으로 대처했던 과거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쪽에 판돈을 건다.
나는 동물을 과거 세계, 조상들의 세계에 관한 책으로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왜 현재 시제를 쓰지 않았을까? 동물을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을 기술한 책으로 읽으면 안 될까? 사실 그런 식으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뒤에서 말할 단서들을 붙일 때) 한 동물이 지닌 생존기구의 모든 측면은 조상들의 자연선택을 거쳐 유전자를 통해 물려 받은 것이다. 따라서 동물을 읽을 때, 우리는 사실상 과거 환경을 읽고 있다. 내가 ‘사자死者’라는 말을 쓴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고대 세계를 재구성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 현생 동물을 빚어내는 유전자들을 대대로 대물림한,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우리 조상들이 살던 세계들이다. 지금은 어렵겠지만, 미래의 과학자는 미지의 동물을 보았을 때 그 몸과 유전자를 그들 조상들이 살았던 환경을 상세히 기술한 책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나는 여태껏 알려지지 않은 동물의 몸을 접하고서 그것을 읽어 내는 일을 맡은 내 가상의 미래 과학자Scientist Of the Future를 종종 언급할 것이다. 자주 말할 것이므로 머리글자만 따서 소프SOF라고 짧게 줄이기로 하자. 이렇게 적으니 왠지 그리스어 소포스sophos와 좀 비슷하게 들린다. ‘현명한’, ‘영리한’이라는 뜻을 지니고, ‘철학philosophy’, ‘정교한sophisticated’ 같은 영어 단어들의 어원이 된 단어 말이다. 어색한 대명사 구성을 피하고 예의를 차리는 차원에서, 나는 소프를 임의로 여성이라고 가정하련다. 내가 여성 저자였다면, 반대로 했을 것이다.
이 사자의 유전서, 동물과 그 유전자로부터 읽어 낸 ‘판독물’이자 조상이 살던 환경들을 암호로 기술한 이 풍부한 문서는 팰림프세스트palimpsest, 즉 겹쳐 쓴 양피지일 수밖에 없다. 고대 문서들은 나중에 누군가가 다시 그 위에 다른 내용을 적곤 함으로써, 어느 정도는 겹쳐 쓴 형태가 되곤 한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팰림프세스트를 ‘이전의 (지워진) 글에 나중에 다른 글을 겹쳐 쓴 원고’라고 정의한다. 친애하는 동료인 빌 해밀턴Bill Hamilton은 엽서를 팰림프세스트로 쓰는 습관이 있었다. 혼동을 줄이고자 색깔이 다른 잉크로 겹쳐 썼다. 누이인 메리 블리스Mary Bliss가 고맙게도 내게 빌려준 이 엽서를 보라.
멋진 색깔의 팰림프세스트일 뿐 아니라, 해밀턴은 그 세대에서 가장 특출난 다윈주의자라고 널리 여겨지므로 이 엽서는 아주 좋은 사례다. 로버트 트리버스Robert Trivers는 그의 사망을 애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내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미묘한 다층적인 정신의 소유자였다. 그가 하는 말은 이중, 때로는 삼중의 의미를 지닐 때가 많았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단음으로 말하고 생각하는 반면 그는 화음으로 생각했다.” 아니, 그가 팰림프세스트였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간에 나는 그가 진화적 팰림프세스트라는 개념을 꽤 재밌다고 여겼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사자의 유전서’라는 개념도.
빌의 우편엽서와 내 진화 팰림프세스트는 엄밀한 사전적 정의에는 딱 들어맞지 않는다. 더 이전의 글들이 복구 불가능하게 지워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자의 유전서에서는 어느 정도 겹침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읽을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흐릿한 유리를 통해’, 즉 나중에 적힌 글들의 덤불을 뚫고 들여다봐야 한다. 사자의 유전서에는 고대 선캄브리아 바다로부터 기나긴 세월의 모든 중간 단계를 거쳐서 아주 최근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간의 환경들이 기술되어 있다. 아마 현재의 원고와 고대의 원고 사이에 어느 정도의 무게 균형이 이루어질 것이다. 나는 그것이 내부 모순을 처리하는 코란의 규칙 같은 단순한 공식을 따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즉, 새로운 것이 언제나 이기는 식은 아닐 것이다. 이 문제는 3장에서 다시 살펴볼 예정이다.
당신이 예측해야 하는 세계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또는 예측하는 양 행동한다면,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모든 분별 있는 예측은 과거에 토대를 두어야 하며, 많은 분별 있는 예측은 절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통계적인 것이다. 때로 예측은 인지적이다. “나는 그 절벽에서 떨어진다면차르르 꼬리를 흔드는 뱀에게 물리거나, 유혹하는 벨라도나 열매를 먹는다면, 그 결과로 앓거나 죽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한다.” 우리 인간은 그런 인지적 유형의 예측에 익숙하지만,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예측은 그쪽이 아니다. 나는 동물이 생존해서 자신의 유전자 사본을 대물림할 기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무의식적이면서 통계적인 ‘만일 ~라면’ 예측에 더 초점을 맞출 것이다.
피부의 색깔과 무늬가 모래와 돌을 닮은 모하비사막의 사막뿔도마뱀은 자신이 사막에서 태어난다는음, 부화한다는 예측을 유전자를 통해 구현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 도마뱀을 보는 동물학자는 그 피부를 도마뱀의 조상들이 살았던 사막 환경의 모래와 돌을 생생하게 기술한 문서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내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한 겹 피부만이 아니라 유전체를 포함하여 한 동물의 모든 세세한 부분들까지, 몸 구석구석, 몸의 씨실과 날실 자체, 모든 기관, 모든 세포와 생화학적 과정까지 조상 세계들을 기술한 문서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막’은 동물의 모든 세세한 부위에까지 적힐 것이고, 더 나아가 현재의 과학이 알아낼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서 훨씬 더 많은 정보가, 조상들이 살던 시대에 관한 훨씬 더 많은 정보가 적혀 있을 것이다.
알에서 깨어날 때 이 도마뱀은 태양에 바짝 달궈진 모래와 돌의 세계에 있을 것이라는 유전적 예측을 하고 있었다. 그 유전적 예측이 어긋난다면, 예를 들어 길을 잃어서 사막에서 골프장으로 들어간다면, 지나가던 맹금류가 곧바로 낚아챌 것이다. 또는 세계 자체가 바뀌어서 그 유전적 예측이 틀렸음이 드러날 때에도 같은 운명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모든 유용한 예측은 적어도 통계적인 의미에서 미래가 과거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끊임없이 미친 듯이 변덕을 부리는 세계, 의지할 수 없이 무작위로 변하는 아수라장 같은 환경은 예측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생존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다행히 세계는 보수적이며, 유전자는 환경이 전과 거의 동일할 것이라는 쪽에 안전하게 판돈을 걸 수 있다. 그렇지 않을 때 ― 재앙 수준의 홍수나 화산 분출이 일어난 뒤나 소행성 충돌로 세계가 파괴되면서 공룡이 비극적으로 종말을 맞이한 사례처럼 ─ 모든 예측은 어긋나고, 걸었던 내기는 모조리 지고, 동물 집단 전체가 전멸한다. 물론 우리가 그런 대규모 재앙을 접하는 일은 드물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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