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전환,
시작하다
고대부터 1940년대까지
001
우리의 시작은 ‘전환’이었다
퀴어의 역사를 찾아내고 모아서 재해석하는 책의 첫 글인 만큼 고조선부터 시작하자. 한국사는 단군 신화부터 퀴어하다. 일연 스님이 13세기에 쓴 《삼국유사》에 따르면 호랑이와 곰은 한 동굴에 살았다. 어찌하여 서로 다른 종인 호랑이와 곰이 한 동굴에 살았을까? 흔히 호랑이는 수컷으로 곰은 암컷으로 상상하지만 어떤 기록에도 호랑이와 곰의 성별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둘 다 암컷일 수도 있고 곰이 수컷일 수도 있다. 곰이 여자가 된 이야기라고 하니 암컷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곰이 사람으로 바뀌는 마당에 성별만 그대로 있을 이유는 없다. 게다가 사람이 된 곰이 간절하게 소망한 일이 임신과 출산이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수컷 곰으로 봐도 어색하지 않다.
《삼국유사》에서 환웅은 아이를 낳고 싶다는 웅녀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잠시 ‘사람’으로 모습을 바꿔 웅녀와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쓰인 《제왕운기》에 보면 곰은 나오지 않고 환웅이 손녀에게 약을 먹여 사람으로 변신하게 한 뒤 단군신과 혼인하게 해 단군을 낳는다는 설정이 등장한다. 18세기 초 설암 스님이 쓴 《묘향산지》에서는 곰이 아니라 호랑이가 여자로 변해 단군을 낳는다.
그러니 공통된 핵심은 이것이다. 어떤 상황이든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와 땅을 밟고 선 존재 사이에서 우리 민족의 시조가 태어나고, 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전환’을 한다. 신화에서 ‘전환’이란 순수한 근원이 변질되거나 주위를 속이는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근원이 되는 ‘탄생’과 기성 질서를 뛰어넘는 새로운 ‘시작’이다. 미래가 암울하게 느껴지는 이 시대,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전환을 향하는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002
화랑은 게이일까
7세기 통일 신라 시대에 김대문이 쓴 《화랑세기》라는 책이 있다. 원본은 남아 있지 않고 1930년대에 박창화가 옮겨 쓴 필사본만 일부 전해진다. 이 필사본도 진위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기는 하지만 완전한 허구는 아니라고 본다면 어느 정도 시대상을 살펴볼 수 있다.
《화랑세기》에 보종공은 이렇게 묘사된다. “호림이 사랑하여 부제로 삼았다. 정이 마치 부부와 같아 스스로 여자가 되어 섬기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했다.” 보종공은 여성에 관심이 없었다. “궁주미실는 이에 윤궁의 딸 현강에게 공을 모시도록 하였으나, 공은 접촉한 일이 없이 호림공을 불러 함께 살았다. 호림공은 이에 현강과 통하여 딸 계림을 낳았다. 공은 이에 현강을 호림공에게 넘겨주고, 스스로 아내를 맞지 않았다. 궁주가 근심하여 종실의 여자들을 모아 말하기를 ‘나의 아들과 친할 수 있는 상을 주겠다’ 하였다. …… 보명궁의 딸 양명공주가 꾀를 내어 공을 유혹하여 (정을) 통하였다. 공은 비로소 여색을 알게 되었다. 궁주가 크게 기뻐하여 양명에게 큰 상을 주었다. 보라와 보량 두 딸을 낳고는 가까이하지 않았다.” 보종공의 ‘아름다움을 좋아하여 자원하여 아우가 된’ 염장공과 보종공의 관계에 관해서는 이런 기록도 있다. “공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것이 없었고, 정은 마치 부부와 같았다.” 또 다른 화랑인 천광공에 관해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얼굴이 아름다운 꽃과 같고 교태는 마치 부인과 같았다.” 천광공과 양도공 사이를 보면 ‘정이 마치 부부와 같았다’는 구절도 있다. 화랑을 현대적 개념에서 ‘게이’라고 하면 무리일 수 있지만 통일 신라가 남성 간의 정서적 유대감과 육체적 친밀함이 자연스럽게 여겨진 시대라는 점은 확실하다.
《삼국유사》에 실린 〈모죽지랑가〉도 동성애에 관한 기록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향가는 화랑 득오가 선배 죽지랑을 그리워하는 내용인데, 해석에 따라 득오의 마음이 죽지랑을 존경하는 수준을 넘어 육체적 관계도 포함해 연모한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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