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대한민국은 왜
소멸을 선택했나
희망 소멸 사회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최근 한 토론회에서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걱정하시는 분들을 만났습니다. 독도를 일본에 내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시는 분도 있더군요. 그분들께 ‘걱정 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어차피 독도는 조만간 일본 땅이 될 테니 말입니다.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대한민국은 ‘수축 사회’를 넘어 ‘소멸 국가’로 착실하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출생률이 명확하게 보여 줍니다. 2012년 1.3 수준이던 합계출산율은 10년 만인 2022년에 0.78로 떨어졌습니다. 놀라운 것은 속도입니다. 합계출산율 1.0이 붕괴한 때가 2018년입니다. 그해 0.98이던 것이 불과 4년 만에 0.78까지 하락했습니다. 1.0에서 0.78까지 4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0.78에서 0.5까지는 얼마나 걸릴까요?
인구학자인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2022년 8월 29일 자에서 ‘출산율이 0.5까지 떨어질 것이고, 마지막 골든 타임은 앞으로 5년’이라고 했습니다. 벌써 2년이 지났네요. 전 교수는 출생률 하락의 원인으로 청년의 불확실한 미래와 여성에게 전가되는 ‘독박 육아’를 꼽았습니다. 대한민국의 ‘정해진 미래’는 229개 지방 자치 단체 중 절반이 직면한 ‘지방 소멸’이 잘 보여 준다고도 했습니다. 지방이 소멸해도 수도권에 다 같이 모여 살면 되는데, 그게 출생률과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의 2022년 합계출산율은 0.59로 전국 최저였습니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이 인구 절벽과 관계가 없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국가의 합계출산율이 0.5까지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한 번도 없던 일이니까요. 일상의 풍경을 생각해 본다면 아마도 시내의 폐교된 초등학교들이 요양 병원으로 바뀌는 게 가장 두드러지지 않을까요? 병설 유치원은 방문형 노인 돌봄 시설로 탈바꿈하고, 노란색 버스들은 이제 아이들이 아니라 노인들을 실어 나르게 되겠지요. 그 외에도 의료, 복지, 연금에서 심각한 재정적 부담이 생길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상황은 아직 미지수입니다. 전대미문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1.0이 안 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한데, 0.5의 상황은 어떤 나라도 겪어 보지 못했기에 예측 자체가 어렵습니다. 다만 현재 소멸 위험 지역의 상황을 미뤄 볼 때 한 가지 정도는 예상할 수 있을 겁니다. 합계출산율이 0.5 수준이 되면 ‘회복 탄력성’이 없어지리라는 것입니다. 고무줄을 잡아당기면 늘어났다가 다시 줄어듭니다. 이걸 회복 탄력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너무 많이 잡아당기면 그냥 끊어져 버리거나 다시 줄어들지 않습니다. 회복 탄력성이 사라진 것이죠. 합계출산율이 0.5 밑으로 떨어지면 지금 지방에서 산부인과와 소아과, 초등학교가 사라지듯이 출산, 육아, 교육의 기반이 무너지고, 아이를 낳아 기르기가 극도로 어려워집니다. 즉, 다시 출생률이 높아질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출생률을 회복할 수 없는 대한민국은 조용히 그대로 소멸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윤석열 정부에서 일본이 독도를 점령하든지 말든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올해 2024년에 대한민국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65살 이상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리라고 예상됩니다. 혹시 한반도를 노리는 외세가 있다면 그들은 ‘기다림’이라는 확실하고도 합리적인 선택을 할 것입니다. 한두 세대 안에 이 나라는 분명히 소멸에 들어서게 되어 있으니까요.
갑자기 종식된 냉전 뒤 과속
한두 세대라면 충분히 상황을 반전시킬 기회가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리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한국은 저출생·고령화 말고도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주요한 요인은 국제 환경 변화와 에너지 전환입니다.
한국은 전통적인 수출 산업 국가입니다. 수출 경제로 세계 최빈국에서 10대 강국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세계 역사를 봐도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약 70여 개에 달하는 신생 독립국 중에서 한국처럼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에 모두 성공한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사실 인구 5000만 이상의 나라로서는 유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 수출로 이런 도약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우리의 앞선 세대들이 부단한 노력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반도를 둘러싼 독특한 국제 환경이라는 변수도 있었습니다. 이른바 공산 진영과 자유 진영 간의 갈등은 우리 역사에서 한국전쟁이라는 엄청난 비극을 낳았습니다. 이후 한반도에 세워진 ‘냉전 장벽’은 한국이 수출 기반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구조적 조건이 되었습니다. 이는 결코 축복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한국은 이 조건을 활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냉전의 높은 장벽 아래에서 한국은 비용이 많이 드는 ‘안보’를 미국에 상당 부분 의존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군사비에 들어갈 재정을 아낀다는 수준이 아니라, 경제적 자생에 필요한 원조 자금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는 안정적인 수출 판로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고 배상하지 않은 일본과 한일 협정을 체결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소련과 중국이 버티고 있는 동북아시아 자유 진영의 배후 기지인 일본과 더불어 최전선의 보루로서 한국의 안정과 성장은 미국이 바라는 바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국이 수출 주도형 산업 국가로의 기반을 다지고 민주화까지 쟁취한 상황에서 갑자기 냉전이 종식됐습니다. 그리고 ‘탈냉전 세계화’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냉전의 벽이 무너진 상황에서 한국은 수출 경제의 내실을 정비해야 옳았지만 오히려 분위기에 편승해 과속 페달을 밟았습니다. 김영삼 정부는 정권의 치적이라도 되는 양 OECD 가입을 서둘렀고, 국내 금융 시장은 국제 투기 자본에 무방비로 노출되었습니다. 세계화 시대를 맞은 국내 기업들은 오히려 문어발식 확장을 통해서 덩치만 키우기에 바빴습니다. 우리는 세계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밖으로 수출의 저변이 더 확대되었다고만 생각하고, 안으로 곳간이 부실하고 관치 경제의 틀 속에서 재벌의 경쟁력이 허술하다는 점을 무시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맞이한 세계화의 속도는 너무 빨랐고 작동해야 할 브레이크는 아직 장착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결국 사고가 났습니다. 국가가 부도가 난 것입니다. 초유의 일이었습니다. 많은 재벌이 공적 자금 투입과 금 모으기로 생명을 부지하는 사이 애꿎은 국민들은 막대한 피해를 보았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양극화의 시작은 바로 외환 위기였습니다. 그나마 김대중 정부는 부도난 국가를 최대한 빠르게 수습했습니다. 수출 주력 산업을 보존했고, 미래 성장 동력 기반도 새로 마련했습니다. 김대중 정부 이후 지난 20여 년간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 휴대전화 등 핵심 제조업 분야에서 전 세계로 수출망을 넓혔습니다. 문화 분야에서 한류 붐도 지역과 나라를 가리지 않고 일어났습니다. 이런 수출 한국의 재도약은 국민들의 희생과 노력, 그리고 국제 환경의 절묘한 변화가 없었다면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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