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보이스 피싱 검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첨단범죄수사팀 검사 김민수입니다.”
김동현가명 씨는 ‘검사 김민수’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검사 김민수라는 사람은 김동현 씨 계좌가 금융 사기에 연루되어 있으니 긴급히 돈을 찾아야 한다고 하며 그 돈을 지시한 주민센터 택배함에 넣고 자신에게 알려준 후 연락을 기다리라고 합니다. 김동현 씨는 그의 전 재산이 다름없는 420만 원을 인출한 후 주민센터 택배함에 넣고 검사 김민수에게 알려준 후, 다시 찾아가라는 연락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검사 김민수는 나타나지도, 연락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다시 찾아가본 택배함은 이미 비어 있었습니다. 심한 자책에 시달리던 김동현 씨는 결국 목숨을 끊게 됩니다.
김동현 씨의 아버지는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내 아들을 죽인 얼굴 없는 검사 김민수를 잡을 수 있을까요?”라고 청원을 올렸습니다. 사기 조직은 잡혔지만 죽은 청년은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한 청년을 죽음으로 내몬 보이스 피싱범이 사칭한 신분은 ‘검사’였습니다. 왜 검사였을까요? 평범한 시민에게 검사는 막대한 권한을 가진 사람, 범죄를 처단하고 정치와 사회까지 움직이는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검사가 직접 전화해 당신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되었다고 한다면, 이를 무시하거나 의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2024년 8월 경찰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보이스 피싱으로 검거된 2만 1832건 중 검사나 경찰, 금감원 직원 등 기관을 사칭한 경우가 40퍼센트에 달한다고 합니다. 왜 보이스 피싱범은 검사를 사칭할까요? 검사와 검찰이 한국 사회 권력의 핵심 중 하나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검찰공화국’, ‘검찰국가’, ‘검찰 독재’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검찰이 한국 사회에 중요한, 결정적 역할을 할 때가 많고, 검사들이 높은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있다는 방증이겠지요. 지금부터 77가지 질문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검찰의 의미와 역할을 짚어보려 합니다. 검찰은 생각보다 우리 사회의 곳곳에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검찰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면 법치라는 시스템이 크게 흔들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검찰은 원래부터
힘이 셌을까?
― ‘검찰공화국’의 시작을 찾아서
우리는 ‘검찰공화국’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검찰이 거대한 힘을 가진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검찰이 원래부터 이렇게 힘이 셌던 건 아닙니다. 검찰이 힘을 불리게 된 상황을 살펴보려면 ‘검찰공화국’, ‘검찰국가’, ‘검찰 독재’ 같은 말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노태우 정부 때 검사 출신 인사들이 정부 요직에 진출하면서 검찰공화국이라는 비아냥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말에 들어서는 이 말이 비대해진 검찰 권력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죠. 1999년 8월 국회에서 한 야당 국회의원이 대검찰청 공안부장 진형구가 조폐공사의 파업을 유도한 사건을 두고 국회 청문회에서 “구조조정 과정의 ‘효율성’이 우리나라 전체의 혼란과 노동자의 피눈물을 가져왔고 오만방자한 검찰공화국을 만들었다”라고 발언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요컨대, ‘검찰공화국’은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가 검찰을 이용해 통치 기반을 구축해온 정치 관행을 비판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처음 등장한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 이는 김대중 정부에서도 계속됩니다. 의약분업을 둘러싸고 의료계가 파업을 반복하자 당시 보건복지부가 의사들의 폐업 관련 자료를 검찰에 넘겼습니다. 정책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검찰의 힘을 빌어 위압적으로 처리하고자 한 것입니다(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요. ‘한 번은 희극으로 또 한 번은 비극으로’ 말입니다. 윤석열 정부에서의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하여 동일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사태에서도 검찰공화국이냐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한마디로 ‘검찰공화국’, ‘검찰국가’라는 말은 정치에 끼어들어 과도한 영향을 미치는 검찰의 문제, 검찰의 정치적 활용을 지적하는 말이었습니다. 이후에도 검찰의 힘은 결코 작아지지 않았기에 종종 이런 표현이 사용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검사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그 사용 빈도가 크게 증가하게 됩니다.
‘검찰공화국’ ‘검찰공화국’ 하는데
정확히 무슨 뜻일까?
― ‘검찰이 과잉 권한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검찰공화국은 법적 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사전적 정의는 없습니다. 쓰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조금씩 다르기도 하지요. 하지만 사용례를 모아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① 법으로 검찰에 너무도 많은 권한을 부여하여 국민 위에 검찰이 군림하게 됨(과잉 권한)
② 필요에 따라 반대 세력은 가혹하게 수사하고 우호 세력은 수사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 수사를 하는 등 권한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경우가 많음(권한 행사의 자의성)
③ 검사 출신이 정부 요직에 과도하게 진출하여 통치의 기반을 이루고 있음(과잉 대표)
④ 검찰의 논리가 국정 운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사회적 갈등이나 정치 분쟁이 발생할 때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검찰권에 의존하게 됨(과잉 의존)
⑤ 결국 민주공화국의 정신을 훼손할 우려가 커짐(민주주의와 갈등)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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