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시작하면서
현대 자본주의 탐사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전 세계로 전파되어 자리 잡은 하나의 경제 질서 속에 우리는 이미 수 세기 전부터 들어와 있다. 자본주의를 연구하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논리가 있다. 이 논리들은 자유주의 이념 혹은 서구의 오랜 역사에 젖어 있거나 아니면 생산이나 사회생활이나 영장류의 유전형질에 근거하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자본주의의 기원은 노아의 방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모든 것은 모든 것 안에 있고 모든 것은 모든 것으로부터 유래하고 서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한 사회가 어디서 유래했다고 단언할 수 있는 보편 법칙은 없다. 특히 자본주의나 후기 산업 자본주의, 자유주의나 신자유주의, 기술혁명 등과 같은 일반적인 개념으로 오늘날의 경제와 사회를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그런 개념들은 실제 사건들을 분류하는 데에는 도움을 줄 수 있다. 어떤 순간의 정치적, 경제적 선택의 중요성을 측정하고 연관시키고 일관성을 찾게 해 주는 것이다. 요컨대 이런 일반적 개념들은 필요하다.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지금 이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세상을 만들어 낸 그동안에 행해진 조정과 동기화를 살펴봐야 한다. 일련의 사건들은 지금까지의 경로와 분기점과 어떤 계산의 조건을 형성했고 또 다를 수도 있었을 선택들을 낳았다. 그 결과가 특정한 시스템으로 고착된 것이 바로 지금의 자본주의다.
따라서 이 경제, 사회, 문화, 정치 시스템의 실질적인 역사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 그러나 만사는 항상 모든 상호작용의 결과인데 이 탐사의 출발점을 어떻게 택해야 할까?
엄밀히 말해 이것은 일반적인 변화에서 특정 시점을 선택하는 관점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 시점은 기원에서부터 결정적인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시점이어야 할 것이다. 그다음에는 경제 및 사회 질서가 형성될 때까지 다소 혼란스러운 방식으로 전개된 결과의 실타래를 풀어내야 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시스템의 결정적인 전복이 일어났던 1970년대 중반을 출발점으로 삼기로 하자. 전복은 너무 극적인 표현이긴 한데 갑작스러운 파열이나 대격변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당시의 위기는 모든 위기가 그렇듯이 더 깊고 미세한,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의 거품일 뿐이었다. 결정적인 것은 종종 숨겨져 있다.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사건은 눈에 띄지 않는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때로는 가장 결정적인 것이 된다.
그런 중에 뭔가가 일어났다. 1970년대, 세계가 사회적 해방과 성적 해방, 석유파동과 높은 실업률로 술렁이고, ‘밝은 미래’이자 ‘넘을 수 없는 지평’인 공산주의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으며, 사회주의 혁명의 실현 가능성이 아니라 그 시기를 궁금해하던 때였다. 사소해 보이는 하나의 정치적 결정이 이후 우리의 생산 시스템과 사회적 기대에 지속적인 변화를 일으켰다.이 결정에 대해서는 아직도 교과서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뉴욕 폭발
1974년 9월 2일 미국의 포드 대통령은 종업원퇴직소득보장법Employee Retirement Income Security Act: ERISA을 공포한다. 겉으로는 단순히 기술적인 텍스트로 보이는 이 법은 대중적인 항의 표현도 지적 논쟁의 대상도 아니었고 포드 행정부가 발의한 일반 조직법의 하나였다. 천재는 아니었지만 선의를 지닌 것으로 유명했던 공화당의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지미 카터에게 패배한 1976년에 역사에서 사라졌다가 2006년 대중의 무관심 속에서 죽는다.
종업원퇴직소득보장법은 ① 기업의 연기금이 자율적인 금융기관이 되었다는 것과, ②투자를 다각화해야 한다는 두 가지를 규정했다. 그 이전까지 미국 노동자의 납부금 대부분은 그 직원을 고용한 회사의 자본에 투자되었다. 1930년대에 개발된 이 사회적 재분배 시스템은 기업이 자금을 잘 운용하여 나이가 차서 퇴직하는 직원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효과 좋은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1930년대의 위기를 겪으면서 만들어진 이 연금의 약속은 은퇴 연령이 낮아지고 기대 수명이 늘어나 수급자 수가 증가해도 장기적으로 지켜져야 했다. 직원의 예금을 고용 회사의 자본에 두는 것은 이중의 위험이 있었다. 한편으로 회사가 파산하면 직원들은 일자리와 미래의 연금을 모두 잃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회사의 성장이 납부된 예금을 늘리기에 충분하지 않으면 적절한 연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
두 번째 위험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어 보자. 이 연금 개혁이 낳은 뜻밖의 결과를 이해하는 것이 우리 탐사에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수백만 명의 퇴직자에게 더 늘어난 연금 약속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직원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연금 수급자에게도 충분한 소득을 생산 경제가 창출해야 했다. 그러므로 부의 생산은 끊임없이 계속 늘어나야 한다. 직원이 납부금을 저축한 기업이 자본을 투자하고 관리하는 한, 연금 약속은 그 회사가 창출한 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리하여 실물경제와 금융경제가 겹치면서 서로를 제한하게 된다.
종업원퇴직소득보장법은 앞서 언급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이 연관성을 끊으려 했다. 기업이 파산하면 직원은 모든 것을 잃고 기업의 성과가 좋지 않아도 많은 수입을 얻지 못하게 되는 위험 말이다. 바로 여기에서 아주 상식적인 생각이 나온다. 기업에서 연기금을 분리해 자율적인 금융기관으로 만든다는 생각이다. 모든 계란을 한 바구니에 넣지 말라는 아주 간단한 원칙에 따라 투자를 다양화하도록 요구한다. 따라서 자율성을 얻게 된 기금을 처리할 방법이 필요했는데, 연기금을 상장 기업의 자본금 속에 넣는 것으로 해결했다. 증권거래소에서는 필요할 때나 위기 혹은 의심 시에 주식을 쉽게 사고팔 수 있는데 경제학자들은 이를 시장의 유동성이라고 부른다.
그 결과 1970년대 중반부터 미국 가계 저축의 상당 부분이 주식시장에 투자되었다. 자신들이 연금이 바로 상장 기업의 자본 수익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 연금 수급자와 미래의 연금 수급자들은, 물론 개미투자이지만, 엄청난 수의 ‘자본가’가 되었다. 그 뒤로 수백만의 사람들이 더 나은 은퇴 생활을 보장해 줄 자료를 찾으려고 매일같이 경제 신문의 주가 지표를 면밀히 조사하게 되었다.
나는 종업원퇴직소득보장법이 우리 경제와 사회를 결정적으로 변화시켰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법안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다른 사건들과 연결되어 은밀하게 땅속에서 지진을 유도한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우리가 살펴볼 다른 사건과 정치적 주장, 사회적 약속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이 사건을 탐사의 출발점으로 삼는 이유다.
주식시장의 동기화
1975년부터 우리는 증권거래의 폭발적 성장과 증권거래의 자유화, 즉 뉴욕의 빅뱅을 보게 된다. 포드의 연금 개혁은 아주 특이한 자본화를 통한 연금의 금융제도화만을 고려했음에 틀림없다. 당시 연구자들은 종업원퇴직소득보장법이 특별하게 미국적인 문제에 대한 미국 정부의 기술적 대응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재분배를 통해 퇴직금이 지원되는 국가는 퇴직연금이 현역 노동자의 기여금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이 개혁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미국 금융 시스템의 개혁은 1970년대의 순진한 흥분 속에서 눈에 띄지 않고 지나갔다.
그러나 이것은 지하의 작은 움직임이 특정 조건에서 우주적인 효과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이 움직임은 고립되어 보이는 행성들의 공조를 강화하고 같은 시스템에 충분히 통합시킬 수 있다.
연금의 자본화 시스템은 영국, 스칸디나비아 국가, 스위스 같은 여러 유럽 국가와 일본 같은 아시아 국가에도 있었다. 같은 문제에 똑같은 답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가계 저축을 주식시장으로 전달하자 런던과 스톡홀름과 도쿄에서 차례로 빅뱅이 일어났다. 미국의 물결이 퍼진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기업들은 도처에서 경쟁에 직면했고 특히 무역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금융 자원이 절실했다. 1970년대 경제 위기 속에서 자국 기업의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자유무역을 전면적으로 장려했을 때 더욱더 그러했다. 그 결과 외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자국 기업을 보호하던 규범도 해체되었다.
‘자유화’와 ‘시장 개방’ 환경에서는 주식시장에서 더 많은 금융 자원을 확보한 경쟁 업체가 더 많이 투자하고 기술혁신도 더 많이 하게 된다. 그런 업체들은 다른 업체보다 경쟁 우위를 얻는다. 제품 경쟁은 금융 자원 확보 경쟁과 만난다. 자국 기업이 금융 자금 확보를 지원하도록 허용하지 않는 국가는 기업들을 어려움에 빠뜨렸다. 시장자유화, 뮤추얼 펀드 같은 새로운 금융 상품의 창출, 국내 기업에 새로운 금융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주식시장의 국민 저축 문호 개방과 같이 연금의 금융화와 무관한 일련의 새로운 빅뱅이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집권하에서 펼쳐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리하여 1970년 프랑스 국내총생산GDP의 15퍼센트를 차지했던 파리 증권거래소의 시가총액은 2018년 프랑스 GDP의 110퍼센트에 달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이 끝나 갈 무렵, 국민의 가계 저축은 엄청난 양에 이르렀다. 너무 위험하지 않은 투자처를 보장하기 위해 각국 증권거래소에서 충분히 안전한 증권을 찾는 게 어려울 지경이었다. 자본의 투자 기회도 소수의 상장 회사로 한정되었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다른 투자처를 찾아야 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빅뱅이 자본 투자의 규칙을 획일화하고, 그 결과로 금융의 글로벌 통합이 일어난다. 각 국가에 모인 가계 저축은 글로벌화된 금융 시스템으로 쏟아져 들어간다. 그래서 프랑스 주요 기업 자본의 45퍼센트는 외국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다.
전 지구상에서 무차별적이고 막강한 현금이 이곳저곳 흘러 다니기 시작한다. 매일 수천억 달러가 거래되는 카지노에서 도박사들은 자기 소유가 아닌 돈을 베팅하고 이를 보는 일반 예금자들과 투자자들에게 기적의 잭팟을 꿈꾸게 한다. 남은 일은 이 게임이 허상이 아니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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