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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대한민국
다문화 이주민에서 인종으로
이민자 없는 한국사회?
정부에서 이주민을 지칭하는 통일된 용어는 없다. 국내 이민정책의 공식명칭은 “외국인” 정책이며 소관부서도 법무부의 출입국·“외국인” 정책본부다. 출처에 따라 “체류외국인”, “외국인주민”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반면 이주민 대상 국가승인 통계 중 하나인 이민자체류실태 및 고용조사는 “이민자”로 지칭한다. 그리고 2023년 11월 대통령직속 국민통합위원회는 “이주민” 자치참여 제고 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출범식에서 김한길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은 이주민 용어의 혼란을 지적하며 “이주배경주민”으로 정의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학계도 통일된 용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연구에서 이주민migrants, 이민자immigrants, 외국인foreigners, 다문화 집단, 다문화 소수자, 외국인 주민 등의 용어가 혼재되어 사용된다. 최근에는 대학과 언론에서 ‘이주민’을 널리 사용하는 추세다. 하지만 이주민의 정의와 용어에 관한 진지한 토론은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부가 주로 사용하는 ‘외국인’과 학계와 언론이 사용ㅎ는 ‘이주민’이라는 단어는 사실 국내 이주민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국제기구에서 권고하는 용어는 “이민자”immigrants로, “1년12개월 이상의 기간 동안 평소 거주하던 국가가 아닌 다른 국가로 이주한 사람으로, 목적지 국가가 사실상 새로운 거주 국가가 되는 경우”로 정의된다. 이 말이 함의하는 바는, 이민자를 다른 집단과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국가 간 이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국이 아닌 나라에 정착한다는 것이다. ‘외국인’과 ‘이주민’에는 그런 의미가 없다. 정부와 학계는 이주민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
이민자의 가장 큰 특징은 새로운 거주국에서 선주민내국인에 수적으로, 법적으로, 그리고 지위상으로 종속된다는 점이다. 한국은 물론 많은 국가는 외국인의 이민 자격을 까다롭게 규정하고 제한된 권리만을 부여한다. 그 결과 이민자는 국가권력체류자격에 종속된다. 그리고 이민자는 내국인에 비해 수적으로 소수일 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법적 지위에서 뒤처져 있다. 사회에서 이민자는 내국인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국가와 사회는 내국인을 더 우대하고 이민자를 더 착취하는 경향을 띌 수밖에 없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들이민자과 우리가 여러 면에서 다르다는 인식이 발전된다.
집단다수의 내국인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구분 짓는 과정을 인종화racialization라고 하고 그 구분을 인종race, 구분 짓는 이념을 인종주의racism라고 한다. 따라서 인종은 우리가 생각하듯 피부색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종은 우리와 타인을 구분 짓는 표식이고 따라서 구분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이미 많은 연구와 역사적인 예들은 인종이 피부색뿐만 아니라 문화, 출신국, 종교, 억양 등 다양한 요인에서 기인할 수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그리고 그 대상 역시 원주민, 이민자, 노예, 난민 등 다양하다. 인종은 내국인과 이주민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지, 일부 국가나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다.
가해자 없는 차별?
이미 이주민 인구가 200만 명을 넘어선 한국사회에서 우리는 이주민과 관련된 여러 사회문제를 언론 등을 통해서 접하고 있다. 이주민을 향한 내국인의 거부감과 적대감, 차별과 혐오, 그리고 이주민의 사회 부적응이나 경제적 어려움 등이 그것이다. 지금껏 정부와 학계의 해답은 두 가지로 나뉜다. 이주민이 한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개인의 능력과 성격에 문제가 있어서. 혹은 단일민족으로 살아온 내국인이 근거 없는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두 가지 관점 모두 사회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간주한다. 개인 탓이라면 이주민의 능력, 성격, 문화가 비정상적이고 이주에 부적합한 것으로 보거나, 내국인 상당수의 믿음을 비합리적이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취급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추정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주민에 대한 차별적 믿음을 서구의 인종주의 이념과 사상이 유입된 영향으로 생각하는 관점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차별하는 다수의 개인을 무분별하게 서구 이념을 따르는 몰지각한 사람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 만약 이주민 문제가 개인 혹은 이념 탓이라면 정부의 이민정책이나 주류 사회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간주되어야 한다. 이 논리에 따라 정부와 학계는 이민법과 우리 사회는 문제가 아니라고 늘 강변해왔다.
그러나 인종과 인종주의는 정부나 내국인이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이주민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정부가 이민정책을 통해 이주민에게 충분한 기회와 시민권을 주지 않는 이유는 내국인의 일자리를 지키면서 이주민의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내국인 역시 기회와 권리의 차이를 이용해 나의 이익을 취하거나 적어도 빼앗기지 않도록 노력한다. 이주민으로부터 내국인의 이익과 기회를 높이거나 지키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이주민들이 우리와 다르고, 심지어 열등하다는 믿음, 즉 인종과 인종주의를 생산한다. 이렇게 정부나 내국인이 법, 제도, 언론 등을 통해 이주민을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인종으로 만드는 과정을 “인종기획”racial project이라고 한다. 인종의 형성이 일종의 ‘기획’인 이유는 인종이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것도, 몰지각한 개인들이 만들어낸 것도, 아니면 유입되거나 자생적인 이념 또는 사상이 만들어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나 내국인 등 사회적 집단이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주민 유입에 따른 사회문제는 정부와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것으로 인식할 때만 적절한 해결책도 모색할 수 있다.
남 탓만 하는 정부
그러나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이주민의 유입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개인과 이념의 문제로 취급해왔다. 지금까지 정부와 학계의 해결 방안이 이주민과 내국인 개인의 인식 개선에 머물렀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 대책은 전혀 효과를 나타내지 못했고, 이주민 인구의 확대로 문제는 악화되고 있다. 현재 사회문제를 적절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인을 넘어 정부의 이민 기조와 정책, 그리고 내국인과 이주민의 구조적 관계가 미치는 영향을 파악해야 한다. 인종주의의 문제는 서구에서 벌어지는 예외적인 사례까 아니라, 지금 한국의 상황이기도 한 이유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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