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인간은 언제나 이야기꾼이었다
1930년대 초 어린 소년이 자전거 사고를 당했다. 아니, 사고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소년이 혼자 자전거에서 떨어졌을 수도 있고 다른 자전거와 부딪쳤을 수도 있다. 소년은 의식을 잃었던 것 같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기록은 명확하지 않다. 소년의 나이도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6세나 7세였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그 사고가 그의 고향인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퍼드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부분적으로만 기록되어 있고 사건에 관한 기억도 시간이 흐르면서 희미해졌다.
소년의 의료 기록도 똑같이 모호한 데다 당시의 엑스레이 사진에는 뇌 손상이 드러나 있지 않았다. 그런데 소년이 열 살 되던 해에 뇌전증 발작이 시작되었다. 의사들은 발작이 자전거 사고와 관련 있는지 알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불분명했기 때문에 확실한 진단을 내릴 수 없었다. 처음에 발작은 가끔씩 경미하게 나타나다가 점차 빈도와 강도가 증가했다.
당시에는 ‘해마’를 제거함으로써 특정 유형의 뇌전증을 완화하거나 없앨 수 있다는 약간의 의학적 증거가 있었다. 해마는 가운뎃손가락보다 약간 큰 뇌 조직으로서 두개골로부터 약 3센티미터 떨어진 지점에 대략 귀 끝에서 관자놀이에 걸쳐 돌출해 있다. 당시 사람들은 해마가 후각과 관련되어 있고 감정에도 어떤 역할을 하리라고 생각했다. 그 몇 가지 기능만을 고려하면 해마는 진짜 중요한 부위는 아닌 것 같았다.
소년은 자라 27세 남성이 되었을 때 “실험적”외과의의 표현이었다 수술을 받았다외과의는 그 수술로 뇌전증 발작을 완화할 수 있을지 없을지 전혀 몰랐다. 뇌의 좌우에서 해마를 절제하면서 일부 조직편도체도 추가로 제거했다. 전두엽의 한 부분도 손상되었다. “실험적” 수술의 결과는 놀라웠다. 남자의 뇌전증 발작은 거의 즉시 좋아졌고 약물 복용량도 크게 줄었다. 게다가 그의 지능 지수는 여전히 정상이었고 수술 몇 달 후에는 오히려 약간 높아지기도 했다. 뇌전증 발작을 조절하기 위해 먹던 강한 진정제를 더는 복용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인지 기능 전반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즉 생각하는 능력, 오래된 기억을 불러내는 능력, 뭔가에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 등은 정상으로 보였다. 단기 기억력도 정상인 것 같았다. 예컨대 그는 방금 들은 전화번호를 똑같이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전화번호를 머릿속에 새겼다가 나중에 생각해내지는 못했다.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이제 남자는 일상에서 새로 접한 것들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뇌에서 해마를 제거했기 때문이다. 이 ‘실패한’ 수술은 어떤 뇌 영역이 일상적인 학습과 기억에 긴밀하게 관여하는지를 보여준다. 남자는 역사상 가장 많은 검사를 받으며 수많은 과학자를 만났다. 하지만 장기간 그 과학자들을 만났음에도 그들을 알아보지는 못했다. 그는 학술 문헌에 기록된 가장 심각한 기억상실증을 앓는 것처럼 보였다. 이후 반세기를 사는 동안에도 그가 잃어버린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심각한 기억상실 때문에 그는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간병인이 딸린 보호시설에 들어가야 했다. 일상생활에서 기억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학술 문헌에 그는 HM이라는 머리글자로만 표기되었다. 2007년 그가 사망한 후에야 헨리 몰레이슨Henry Molaison이라는 본명이 알려졌다.
흥미롭게도 몰레이슨은 심각한 기억 장애를 겪으면서도 자신의 상태에 관해서는 제대로 통찰하고 있었다. 자신의 곤경에 관해 생각하는 능력을 포함한 인식의 여러 측면은 비교적 온전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어떤 기쁨을 느꼈든, 어떤 슬픔을 겪었든 간에 그날 하루면 끝입니다. 지금도 나는 이런 생각을 해요. 내가 무슨 실수를 저질렀나? 뭘 잘못 말했나? 보시다시피 지금 이 순간 나는 모든 걸 또렷하게 파악하고 있어요. 하지만 방금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죠? 그게 내 걱정입니다. 매 순간 꿈에서 깨어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꿈이 기억 안 나는 거죠.” 이 말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 말은 몰레이슨의 의식이 깜박이는 전구처럼 단편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꿈꿀 때의 느낌이 어떤지는 우리 모두 안다. 우리는 꿈속 세계를 보고 느끼고 알아가다가 잠에서 깬다. 그러면 꿈속 세계는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미끄러져 사라지고 우리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기나긴 성인기 내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상상해보라. 상상조차 거의 불가능하지 않은가? 하지만 몰레이슨은 평생 그렇게 살았고 그런 삶이 ‘뉴노멀new normal’로 자리 잡았다. 몰레이슨은 자신이 과학계에서 유명해졌다는 사실도, 뇌 연구에 자신이 독보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도 끝내 알지 못했다. 그는 과학의 한 분야, 즉 심리학과 신경과학의 기억 연구를 완전히 바꿔놓았음에도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몰레이슨처럼 심각한 기억 장애에 시달리는 삶은 타인의 보살핌을 받는 삶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보살핌을 받지 않고 살아갈 길은 없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억의 발판을 간병인이 제공해야 한다. 복잡한 사회적 삶에 온전히 참여하려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기억 체계에 의존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통찰을 하나 얻게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 뭔가를 기억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기억하는 능력이 없다면 함께 뭔가를 기억하려는 노력은 일순간에 멈추거나 아예 불가능해진다. 몰레이슨과 같은 기억 장애 환자로 구성된 스포츠팀을 만든다고 해보자. 아마도 팀 스포츠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몰레이슨을 비롯한 팀원들은 경기 규칙도 전략도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몰레이슨은 협동심이 매우 강했음에도 복잡한 팀 스포츠에 참여하는 것은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경기 도중에 규칙들이 유연하게 적용되어 복잡성이 더해질 경우에는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한마디로 ‘쉽고 지속적이고 정교하게 기억을 동원해서 공통의 현실을 함께 창조할 수 없다면 복잡한 사회적 구조들을 함께 만들어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몰레이슨은 의학 문헌에 최초로 등장한 기억 장애의 사례가 아니다. 이전에도 별로 주목받지 못한 사례가 몇 가지 있었지만 그 원인에 관한 명확한 설명은 없었다. 몰레이슨보다 수십 년 앞선 1878년 영국의 신경과 전문의 로버트 로슨Robert Lawson은 알코올 남용으로 기억 장애가 생긴 몇몇 환자의 사례를 기록했다. 그 환자들 역시 인지의 다른 측면들은 정상으로 보였다는 점에서 몰레이슨의 사례와 굉장히 유사했다. 로슨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런 사례들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최근 기억이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환자들은 쾌활하고, 주의력과 이해력이 있으며, 단순한 추론 과정에서는 치매 증상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로슨의 사례 중에는 남편의 죽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도 있었다그녀의 기억 장애는 알코올 중독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비통한 사건이 언급될 때마다 그녀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것처럼 받아들였고 그런 놀라운 망각에 어울리는 슬픔을 표현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그녀는 이성적인 편이었다.” 이 환자도 몰레이슨과 흡사하다.
몇 년 뒤에 러시아의 유명한 신경학자였던 세르게이 코르사코프Sergei Korsakoff는 기억 장애에 시달리는 알코올 중독자를 연구하고는 “가장 큰 특징은 관념들의 연결과 기억이 흐트러진다는 점”이라고 썼다. 오늘날 ‘코르사코프 증후군’이라는 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뇌 깊숙이에 위치한 전방 시상이 손상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전방 시상은 해마의 일부와 긴밀하게 연결되며, 몰레이슨의 기억 장애도 이 부분이 손상된 것이 원인이었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