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평등을 향한 여정: 첫째 지표들
핵심부터 말하자. 인류의 진보는 기정사실이며, 평등을 향한 여정은 승산 있는 싸움이다. 하지만 이는 결과가 불확실한 투쟁이자 끊임없는 도전 속에 계속되는 아슬아슬한 사회적·정치적 과정이다. 나는 사회-경제적 지표의 선택이 야기하는 고도의 정치적인 문제들을 살펴보기에 앞서 교육과 의료 분야에서 나타난 역사적 발전을 상기시키는 것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그러고 나서 다음 장에서 권력과 소유, 소득에서 천천히 나타난 탈집중화의 기본적 내용과 그 변화의 규모를 다룰 것이다.
인류의 진보: 모두를 위한 교육과 의료
인류의 진보는 기정사실이다. 1820년부터 의료와 교육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변화그래프 1 참조를 살펴보기만 해도 그런 확신이 든다. 비록 가용 데이터가 불완전하긴 하지만, 변화의 추세는 확실하다. 1820년 26세였던 전 세계 평균 출생 시 기대 수명은 2020년에 72세로 늘어났다. 19세기 초에는 영아 사망률신생아가 태어난 첫해에 사망할 확률이 전 세계적으로 20% 내외에 달했지만, 오늘날에는 1% 이하로 떨어졌다. 만 1세에 도달한 영아로 한정하면, 출생 시 기대 수명은 1820년 대략 32세에서 2020년에는 73세로 늘어났다. 두 세기 전만 해도 50~60세까지 살기를 기대할 수 있는 인구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때는 특권이었던 것이 오늘날에는 표준이 되었다.
오늘날 인류는 그 어느 시대보다 건강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전에는 없었던 교육과 문화의 혜택을 누린다. 여러 설문과 조사를 통해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15세 이상 세계 인구의 문해율은 19세기 초에 겨우 10%였던 것이 현재는 85% 이상으로 증가했다. 좀 더 상세한 지표들이 이 결과를 또 한 번 확인시켜준다. 두 세기 전에는 고작 1년에 불과했던 평균 취학 기간이 오늘날에는 전 세계 평균 8년 이상으로 늘어났고, 선진국에서는 12년 이상으로 증가했다. 1820년만 해도 전 세계인구의 10% 미만이 초등학교에 진학했었다면, 2020년에는 부유한 나라들에서 젊은 세대의 절반 이상이 대학에 진학한다. 오랫동안 계급적 특권이었던 일이 점차 다수에게 개방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비약적 발전이 결과적으로 다른 차원에서의 불평등을 보다 심화시켰을 뿐임을 지적해야 한다. 교육과 의료 접근에서의 차이는 선진국과 개도국 간에 여전히 크게 나타난다. 특히 교육과 의료 체계의 상위, 가령 대학 교육에서는 이 간극이 어마어마하다. 미래에는 이것이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일단 다음과 같이 간단히 말해두겠다. 평등을 향한 여정은 계단식 과정을 밟는다. 일련의 기본적 권리와 재예를 들어 문해력과 기초 의료에 대한 접근이 인구 전체로 서서히 확대되는 동안 좀 더 높은 차원에서 새로운 불평등이 나타나게 마련이고, 이런 불평등은 새로운 방식의 해답을 요구한다. 이상적인 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위한 정치적 평등의 여정이 그렇듯이, 사회·경제·교육·문화적 평등의 여정 또한 결코 끝나지 않고 항상 계속되는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대 수명과 문해율에서 핵심적인 진보가 20세기 동안 일어났음을 미리 말해둘 필요가 있다. 20세기는 사회적 국가가 급속히 확대되고 격렬한 정치 투쟁 끝에 사회 보장 제도와 누진 세제가 도입된 세기였는데, 이 부분은 앞으로 좀 더 자세히 다루게 될 것이다. 이런 20세기에 반해 복지 예산이 미미하고 조세 제도가 역진적逆進的이었던 19세기에는 기대 수명과 문해율이라는 두 지표의 변화가 무척 느렸다. 아니, 거의 변화가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다. 인류의 진보는 결코 ‘자연적’ 진화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과정과 특정한 사회적 투쟁들의 결과물이다.
세계 인구와 평균 소득: 성장의 한계
이 역사적 변화들의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세계 인구와 평균 소득 모두 18세기 이후 10배 이상 증가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세계 인구는 1700년 대략 6억 명에서 2020년 75억 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평균 소득은 임금과 생산, 물가에 대한 불완전한 역사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2020년 유로로 표현한 평균 구매력을 비교했을 때, 18세기에는 전 세계 평균 1인 당 월 100유로 미만이었던 것이 20세기 초반인 현재는 약 1,000유로에 달한다그래프 2 참조. 평균 소득의 역사적 추이를 살펴보면 19세기 후반부터 30년, 그리고 특히 20세기 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가용 자료에 따르면, 18~19세기 대부분의 시기에 구매력 상승은 미미하게 나타났으며, (프랑스 혁명 발발 전 프랑스의 농촌 임금을 분석한 라브루스의 연구가 보여주듯이) 때로는 역성장을 보이기도 했다. 이와 반대로 세계인구는 지난 3세기 동안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으며,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가속도가 붙었다.
이렇게 인구와 소득이 10배 상승한 것이 인류의 진보를 의미할까? 이 두 가지 지표의 변화를 해석하는 문제는 사실 교육과 의료의 변화를 해석하는 문제보다 훨씬 복잡하다. 물론 세계 인구의 급속한 증가는 개개인의 삶의 조건이 실질적으로 향상된 현실을 반영한다. 이것은 무엇보다 농업 발전과 식량 생산의 증가 덕분에 인류가 인구 과잉과 식량난이라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여기에 더해 영아 사망률의 획기적 감소 또한 인구 증가의 원인이다. 더 많은 부모가 자식과 함께 살 수 있게 됐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집단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런 폭발적 인구 성장은 장기적으로 지구에 막대한 부담을 준다. 지난 3세기 동안 나타난 증가세가 앞으로 계속 이어진다고 가정할 경우, 세계 인구는 2300년에 700억 명, 3000년에는 7조 명에 달할 것이다. 그럴 법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은 숫자다. 여기서 우리는 1700년에서 2020년 사이 세계 인구가 10배 증가한 것은 연평균 단 0.8%의 성장이 300년 이상 누적된 결과임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 수치는 한 지표의 영구 성장이 수천 년, 수백만 년간 무한 계속된다는 가정 자체가 얼마나 끔찍한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인류의 진보를 위한 합리적인 목표가 될 수 없음을 환기해준다. 실제로는 출생률 감소가 관찰되고 있기 때문에 21세기에 인구 성장 폭은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 단계에서는 불확실성이 크지만, UN이 예측한 중심 시나리오에 따르면 세계 인구는 이런 세기말에 110억 명 선에서 안정화될 것으로 보인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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