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진보란 무엇인가
날마다 우리는 경영자, 기자, 정치인들로부터, 때로는 MIT의 몇몇 동료 교수들로부터도, 전례 없이 발달하는 테크놀로지 덕분에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멈출 수 없는 추세로 전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여기 당신의 새 휴대폰이 있다. 저기 최신 전기차가 지나간다. 차세대 소셜미디어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아마 머지않아 과학의 진보로 암, 지구온난화, 어쩌면 무려 빈곤까지도 해결될 것이다.
불평등, 환경 오염, 극단주의 등등 문제도 많겠지만, 다 더 나은 세상을 낳기 위한 산통이라고 한다. 그리고 어쨌거나 테크놀로지를 추동하는 힘은 멈춰지는 게 아니라고 한다. 멈추고 싶다 한들 불가능하며, 멈추려는 시도는 몹시 현명하지 못한 일일 것이다. 그보다는 미래에 가치가 있을 만한 역량에 투자하는 식으로 우리 자신을 바꾸는 편이 더 낫다.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가 있다면 뛰어난 기업가와 과학자들이 해법을 발명해 낼 것이다. 더 많은 기능을 가진 로봇, 사람 수준의 인공지능, 또 그 밖에 필요한 어떤 혁신이든지 말이다.
빌 게이츠Bill Gates, 일론 머스크Elon Musk, 혹은 심지어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약속한 모든 것이 다 이뤄지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사람들이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 세계는 그들의 테크노-낙관주의에 흠뻑 빠져 있다.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힘껏 혁신을 하고 효과가 있는 것들을 알아내야 하며 거친 모서리들은 나중에 다듬어 나가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전에도 여기에 와본 적이 있다. 사실 매우 많다. 두드러진 사례 하나는 1791년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이 파놉티콘이라는 감옥 설계 아이디어를 제시했을 때 시작되었다. 벤담은 원형 건물 안에 중앙 감시탑을 두고 적절한 조명을 갖추면, 간수 본인은 노출되지 않으면서 모든 죄수가 간수가 자신을 언제나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것이 좋은 행실을 유도하기에 매우 효율적인 (즉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이 아이디어는 영국 정부에서 어느 정도 호응을 얻었지만 충분한 자금 지원으로는 이어지지 않았고, 원래 설계안대로의 파놉티콘 감옥은 지어진 적이 없다. 그렇지만 파놉티콘은 현대인의 상상을 사로잡았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에게 파놉티콘은 산업 사회의 핵심인 억압적 감시의 상징이었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1984』에서 파놉티콘은 도처에 편재한 사회 통제 수단으로 그려진다. 마블Marvel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Guardians of the Galaxy」에서 파놉티콘은 기발한 탈옥이 가능한 결함 있는 설계로 등장한다.
감옥으로서 제안되기 전에 파놉티콘은 공장이었다. 이 아이디어의 주인공은 제러미 벤담의 동생이자 당시 러시아에서 그리고리 포템킨Grigory Potemkin 공을 위해 일하던 해군 엔지니어 새뮤얼 벤담Samuel Bentham이었다. 새뮤얼 벤담은 소수의 감독관이 최대한 많은 노동자를 지켜볼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 파놉티콘을 고안했다. 제러미 벤담이 기여한 바는 이 원칙을 다양한 조직으로 확대한 것이다. 그는 지인에게 파놉티콘 아이디어를 설명하면서 “이 간단하고 일견 뻔해 보이는 고안이 학교, 공장, 감옥, 심지어 병원에서도 얼마나 큰 효과를 약속해 주는지를 보면 놀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놉티콘이 왜 그렇게 강한 호소력이 있었는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까, 당신이 관리자 입장이라면 말이다. 그리고 당대 사람들은 파놉티콘의 매력을 놓치지 않았다. 더 나은 감시 방법이 있으면 더 순응적인 행동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이 사회에 득이 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제러미 벤담은 박애주의자였고 사회의 효율성을 개선해 모든 이가, 적어도 그의 생각으로는 모든 이가 더 큰 행복을 얻을 수 있게 돕고자 했다. 벤담은 오늘날 공리주의功利主義, utilitarianism의 창시자로 여겨지는데, 이것은 사회구성원 전체의 후생을 총합 수준에서 극대화하려는 원칙을 의미한다. 일부 사람들이 약간 쥐어짜이는 대신 다른 일부 사람들이 훨씬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 이것은 충분히 고려해 볼 가치가 있는 개선이었다.
하지만 파놉티콘은 단지 효율성이나 공공의 이익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공장에 감시를 도입한다는 말은 높은 임금으로 동기를 부여하지 않고도 노동자들이 일을 더 열심히 하게 만들 수 있음을 의미했다.
공장 시스템은 18세기 후반에 영국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파놉티콘식 건물 자체를 지으려는 움직임이 일지는 않았지만 많은 고용주가 벤담이 제시한 일반적인 접근법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노동을 조직했다. 직물 공장은 전에 숙련 직조공이 하던 일을 잘게 쪼갠 뒤 핵심 부분은 새로 도입한 기계가 담당하게 했다. 그리고 핸들 당기기 같은 단순 반복 업무는 여성과 아동을 포함해 저숙련 노동자를 고용해 많게는 하루 열네 시간씩 일하게 했다. 또한 아무도 생산 속도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노동자들을 면밀히 감독했고, 낮은 임금을 지급했다.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 여건과 허리가 휘어지는 고된 업무에 고충을 쏟아냈다. 많은 이들이 가장 끔찍하다고 여긴 것은 공장에서 따라야 하는 규율이었다. 1834년에 한 직물 노동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아무도 역직기 작업을 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소음이 너무 심해서 미칠 지경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게다가 수직기로 작업하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따르지 않을 규율에 맞추어야 합니다.”
새로운 기계는 노동자들을 단순한 부품으로 전락시켰다. 1835년 4월에 의회의 위원회에 출석한 또 다른 직물 노동자는 이렇게 진술했다. “저는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들이 수작업을 하는 노동자를 대체하는 기계를 발명한다면 기계를 다룰 사람으로 틀림없이 아이들을 구하려 할 것입니다.”
기술 진보가 학교, 공장, 감옥, 병원이 더 잘 돌아가게 해줄 것이고 이것이 모두에게 득이 되리라는 것이 제러미 벤담에게는 너무나 자명했다. 과하게 격식을 갖춘 옷차림에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고 휘황한 어휘를 구사하는 그를 오늘날의 실리콘밸리에 데려다 놓으면 생뚱맞아 보이겠지만, 그의 사고는 오늘날 유행하는 견해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이 견해에 따르면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인간의 역량을 확장해 주고 그것이 경제 전반에 적용되면 효율성과 생산성을 크게 증가시킨다. 그다음에 사회는 조금 늦게든 빠르게든 그 이득을 분배할 방법을 알아낼 것이고, 이는 모두라고 말해도 될 만큼 많은 사람에게 이득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 논리에 따르면 아무튼 그렇다.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18세기 스코틀랜드 학자 애덤 스미스Adam Smith 또한 현대의 벤처캐피탈 이사회에 합류하거나 「포브스Forbes」에 글을 쓴대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스미스의 견해에서, 더 나은 기계의 도입은 거의 자동적으로 노동자들의 더 높은 임금으로 이어진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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