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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한강 이야기
─ 서해 백령도에서 강화, 김포, 고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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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걷다
경계를 걷는 일은 해묵은 분단의 상처를 응시하고 어루만지는 일이다. 시작은 서해 최북단 섬 백령도 두무진이었다. 바다 건너 옹진반도가 낮게 웅크린 커다란 짐승처럼 보였다. 넓게 펼쳐진 산들은 위압적이지는 않았으나 사나운 파도에 해자처럼 에워싸인 채 범접할 수 없는 냉기를 뿜어냈다. 이곳은 언제 충돌이 재연될지 모를 냉전의 바다.
몸을 가누기 어려울 만큼 거센 바람이 두무진에 몰아치자 최북단 해변에 세워진 태극기가 울부짖기 시작한다. 칼이 지나간 듯 한복판이 예리하게 갈라진 태극기의 모습은 동강 난 한반도를 소름 끼치게 닮았다. 비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새 우산이 강풍을 버텨내지 못하고 부러졌다. 안개까지 더해 뿌연 경관이 신비감을 더해 실성한 사람처럼 두무진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훑었다.
바위가 다리에 살짝 스친 것 같았는데 왼쪽 정강이에서 피가 흘러 바지와 양말을 붉게 물들였다. 부둣가 식당에서 처음 본 해병대 선임하사가 붕대로 감싸준 뒤 백령병원으로 가보라며 택시를 불러줬다. 백령병원의 젊은 공중보건의는 상처를 살펴보고는 꿰매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상처투성이의 섬에서 나는 일곱 바늘이나 꿰맨 상처를 얻게 되었다. 그 흉터는 훈장처럼 아직 내 몸에 남아 있다.
'늙은 신의 마지막 선물'이라 불리는 백령도 두무진. |
서해 최북단 섬 백령도와 북한 장산곶 사이를 흐르는 서해 NLL. 아래 위로 찢겨 나부끼는 태극기가 분단을 상징하는 듯하다. |
백령도로 떠나는 생태여행
서해 외딴 섬 백령도는 북한 장산곶에서 14킬로미터, 인천에서는 191킬로미터 떨어진 옹진반도에 딸린 섬이다. 원래 황해도 장연군에 속했으나 해방 이후 장연이 38선 이북에 속하게 되면서 38선 이남의 옹진반도와 함께 경기도 옹진군으로 편입되었다. 한국전쟁으로 북이 옹진반도를 차지하고 백령도와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등 옹진의 4개 섬은 강화도 우도와 함께 ‘서해 5도’라는 이름으로 묶여 남한 영토로 남게 되었다. (서해의 공식 명칭은 ‘황해’이고 국제적으로도 ‘Yellow Sea’로 등재되어 있지만, 이 책에서는 고유한 의미를 가진 황해보다는 ‘서해대교’ ‘서해대전’처럼 관용적으로 두루 통하는 이름을 쓰기로 한다.)
남한에서 8번째로 큰 섬인 백령도에는 약 1만 명이 거주하는데 주민과 군인의 숫자가 비슷하다. 선사시대부터 농경과 어로를 하며 사람이 살았던 이 섬의 옛 이름은 곡도鵠島 즉 따오기 섬이다. 고려 태조 때 ‘백령진’이 설치되면서 백령이란 이름을 얻었는데, 백령白翎이라는 따오기가 하얀 날개를 펼치고 나는 모습에서 유래한다.
백령도는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540여 종의 새 가운데 60퍼센트가 넘는 370여 종이 관찰되는 생태계의 보고다. 섬 해변을 따라 갯벌과 자연습지, 모래사장, 바위·절벽 해안과 섬 내륙의 둠벙, 저수지, 수로, 논 습지 등 인공습지까지 두루 갖춰 다양한 물새들이 서식하고 있다. 군사시설이 없는 곳의 산림은 보전상태가 좋고 사람들의 접근이 적어 산새들에게 좋은 서식처다. 백령도는 중국 산둥반도와 한반도를 최단거리로 잇는 위치에 있어 해마다 봄, 가을이면 수십만 개체의 새들의 이동을 관찰할 수 있다.
2019년 11월 12일 오후, 텅 빈 백령도 들판에 푸른 눈의 외국인이 망원경을 들고 홀로 서 있었다. 장산곶이 건너다보이는 백령도의 야트막한 산과 구릉, 해안 곳곳에는 중무장한 군인과 삼엄한 군사시설이 적의 침투에 대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군 헬리콥터가 굉음을 울리며 낮게 접근하자, 들판 옆 저수지에서 쉬고 있던 기러기 수백 마리가 깜짝 놀라 일제히 날아올랐다. 들판의 외국인은 근심어린 표정으로 들녘을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20여 년간 남북한을 오가며 새와 서식지 보전활동을 해온 영국 출신의 조류학자 나일 무어스 박사였다. 무어스 박사는 2004년 창립되어 한반도 서해 생태권역의 조류와 서식지 보전활동을 주로 하는 NGO인 ‘새와생명의터’ 대표다. 그는 2013년부터 해마다 이맘때면 백령도에서 2~3주씩 머물며 새와 습지를 조사해온 터라 백령도의 웬만한 택시기사나 식당·여관 주인들에게 친숙한 얼굴이었다.
“2013년만 해도 화동습지는 황새 17마리를 포함해 흑고니, 개리, 기러기 2천여 마리가 찾아와 감동을 주었는데, 지금은 아무 가치가 없는 데드 스페이스죽은 땅가 됐어요.” 그는 흰뺨검둥오리 몇 마리만 떠 있는 화동습지를 보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화동습지가 새가 오지 않는 죽은 땅이 된 것은 습지를 가로지르는 도로 개설과 섬 전체를 도배하다시피 한 콘크리트 제방 등 무분별한 개발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콘크리트 공장이 3개나 있는 이 섬은 도로와 수로, 다리, 아파트 단지 등 섬 전체가 콘크리트로 덮여가고 있었다.
“백령도는 새만금, 금강, 아산만 등과 견주면 북한과 인접해 아직은 환경이 좋고 생물다양성도 많은 편이지만 새의 종류와 개체 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어요.” 그가 서툰 한국말로 백령도가 동아시아 철새의 이동경로로 매우 중요한 지점이며 보전 대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동안, 댕기물떼새와 말똥가리 무리들이 북쪽을 향해 쉴 새 없이 날아갔다. 백령도에서 그해 처음 관찰된 검은어깨매검은죽지솔개와 검은목두루미도 이날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수첩을 꺼내 관찰된 장소와 시간을 적었다. 수첩에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한 새의 종류와 마릿수, 관찰 시간과 장소가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무어스 박사는 2013부터 7년간 176일 동안 백령도에서 총 344종의 월동조류 및 번식조류를 관찰했다. 그는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백령도로 떠나는 생태여행」이라는 제안서를 냈다. 제안서에는 더 나은 조류 서식지 및 생태관광지를 위한 지역별 복원방식과 관리방안 등이 담겼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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