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남성과 페미니즘
2017년, 네덜란드 여성은 굉장히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사건을 기념했다. 여성이 최초로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된 지 100년이 흘렀고, 2019년은 여성이 선거권을 쟁취한 지 100주년이다. 흔히 그 시절 여성만이 더 많은 권리를 받았다고 여기지만, 사실 네덜란드 남성이 보통 선거권을 가지게 된 것도 1917년부터이다. 그전에는 인구조사 기반 참정권 제도에 따라, 최소한의 정해진 세금을 내는 상류 계급 남성에게만 선거권이 국한되었다. 이러한 자격을 갖춘 사람은 극소수였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해가 되어서야, 네덜란드 정부는 혁명으로 다른 나라에서 온갖 사회 혼란이 일어나는 가운데, 노동 계급 남성의 정치 진입을 허용했다. 곧이어 여성이 뒤따랐다.
이와 같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은 여성 운동의 노고 덕분이라 할 수 있는데, 여성 운동은 지난 세기 동안 어마어마한 성과를 거두었다. 여성은 남성의 요새였던 기존의 공적 영역에 점차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 정치적 의사 결정, 고등 교육, 노동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이리하여 경제적 자립과 자기 결정권이 커지면서 사회 정책 수립의 장으로, 곧 사회적 지위와 권력이 합쳐지는 장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여성은 자기 몸에 관해 자율성을 더욱 많이 행사하고‘우리 몸, 우리 자신’, 훨씬 더 자유롭게 자기 삶과 미래를 설계한다.
오랫동안 여성은 대개 남성과 남성성이라고 일컬어지는 자질을 주로 활용함으로써 인생에서 앞서 나갈 수 있었다. 지도력, 투지, 결단력 같은 것 말이다. 1980년대 후반, 해방을 염두에 두고 네덜란드 사회고용부는 ‘똑똑한 여자아이는 미래를 대비한다’는 캠페인을 시작했는데, 이 캠페인의 목표는 더 많은 여성을 유급 노동으로 끌어들이기였다. ‘정답을 선택하라, 정밀과학을 배우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 캠페인은 여성에게도 기술적 재능이 있음을 강조했다. (이와 짝을 이루는 ‘남성을 참여하게 하라’ 캠페인 역시 성공을 거두었다. 사회 변화에 힘을 쏟는 재단이 주최한 이 캠페인의 전설적인 구호는, ‘일요일만 되면 바비큐 고깃덩어리를 자르러 오는 저 남자는 도대체 누구야?’이다.)
2019년, 네덜란드 상황은 복잡하다. 사회에서는 평등한 대우를 바람직하다고 간주하고 법률로도 규정하고 있지만, 막상 달성하기는 어렵다. 진정한 평등은 여러 면에서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임금격차나 의료, 혹은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을 생각해보면 분명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는 사이, 여성 해방 그리고 평등에 대한 저항이 전 세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많은 남성이 위협을 느끼거나 남성성의 위기를 이야기한다. 그들은 자기 미래나 자기 정체성을 걱정하고, 살면서 부닥칠지도 모르는 변화를 우려한다.
2017년, 여성의 지위를 옹호한 흑인 남성의 뒤를 이어 대놓고 성차별하는 백인 남성이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와 같은 전환을 따로 떼어놓고 볼 수는 없다. 전 세계적으로 강한 남성에 대한 요구가 다시금 늘고 있고, 여성의 권리는 위협받고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기존의 권력과 특권을 독점해온 집단들은 여성, LGBTQIA+ 그리고 유색인의 평등을 위한 투쟁에 맹렬하게 반발하는 조짐을 보였다. 백인, 남성 그리고 이성애자가―특히 유리하게도 세 범주에 모두 해당하는 이가―지배적이며 특권적인 자기 지위를 비판받을 때 강경하게 반발하는 일은 허다하다.
동시에 여성 권리와 남성 해방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남성도 갈수록 늘고 있다. 세계 동맹인 멘인게이지MenEngage, ‘남성을 참여하게 하자’는 국제 여성 운동과 협력해 젠더 평등과 젠더 정의를 촉진하고 있다. 유엔여성기구가 주관하고 배우 엠마 왓슨Emma Watson이 처음으로 소개한 ‘히포시He For She’ 캠페인은, 남성의 책임뿐 아니라 남성 개개인이 무엇을 누릴 수 있는지도 이야기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여성과 남성이 힘을 합치는 운동의 출현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둘 다 서로가 필요하고 또 각자 해방되어야 한다고 확신한 채, 여성 남성 할 것 없이 평등한 기회, 평등한 권리를 위한 운동에 힘을 모으고 있다. 남성이 반드시 힘을 보태야 한다는 사실, 남성이 해방됨과 동시에 서로 다른 젠더가 평등하게 관계를 맺음으로써 남성 자신이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분명해지고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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