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결별訣別
어젯밤 좀 티각거린 일도 있고 해서 그랬던지 아무튼 일부러 달게 자는 새벽잠을 깨울 멋도 없어 남편은 그냥 새벽차로 일찌감치 간평농작물을 수확하기 전에 미리 작황을 조사하여 소작료율을 결정하던 일.을 나가기로 했던 것이다.
형예가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어젯밤 다툰 일이다. 하긴 어젯밤만 해도 칠원 간평은 몸소 가봐야 하겠다는 둥 무슨 이사회가 어떠니 협의회가 어떠니 하고 길게 늘어놓는 남편의 이야기가 그저 좀 지리했을 뿐 별것 없었다면 그도 모르겠는데 어쩐지 그게 꼭 ‘이러니 내가 얼마나 훌륭하냐’는 것처럼 대뜸 비위에 와서 걸리고 보니 형예로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자연 주고받는 말이란 것이 기껏
“남의 일에 분주한 건 모욕이래요.”
“남의 일이라니 왜, 결국 내 일이지.”
이렇게 나오지 않을 수 없었고 이렇게 되고 보니 딴 집으로만 났을 뿐 아직 한집안일 뿐 아니라 큰댁에서 둘째 아들을 더 힘 믿는 판이고 보니 하긴 남편의 말대로 짜장 그렇기도 한 것이 형예로선 더 뇌꼴스럽게보기에 아니꼽고 얄미우며 못마땅한 데가 있게. 된 판에다가,
“여자가 아무리 영리해도 바깥일을 이해 못 함 그건 좀 곤란해.”
하고 짐짓 딴대리에서 거드름을 부리는 것은 더 견디어낼 수가 없어서 이래서 결국 형예편이
“관둡시다, 관둬요.”
하고 덮어버리게 된 이것이 어젯밤 사건의 전부고 그 내용이지만 사실은 이런 따위의 하잘것없는 말을 주고받은 것뿐으로 그저 그만이어도 좋고 또 남편이 이따금 이런 데서 그 소위 거드름을 부려봐도 그리 죄 될 것 없는 이를테면 아내의 단순한 트집이어서도 좋을 경우에 형예는 곧잘 정말 화를 내는 것이 병이라면 병이다. 더구나 형예로선 암만 생각해봐야 조금도 다정한 소치에서가 아닌데도 노상 정부더리는 제가 도맡아놓고 하게 되는 결과가 노여울 뿐 아니라 항상 사태를 그렇게만 이끄는 남편의 소행이 더할 수 없이 능청맞고 괘씸할 정도다.
간밤에도 물론 이래서 잠이 든 것이지만 막상 아침에 깨고 보니 결국 또 손해 본 사람은 저뿐이다. 지금쯤 분주히 간평을 하고 있을 남편에 비해서 이렇게 오두마니 누워 천장 갈비만 헤고 어젯밤 일을 되풀이하는 제가 너무 호젓해서인지는 모르나 아무튼 일찍 일어났댔자 별로 할 일도 없고 또 일찍 일어나기도 싫어서 그냥 멍청히 누워 있으려니 어디서 난 거미줄 한 나불이 천장 복판에서 그네질을 한다. 형예는 어쩐지 그곳에 몹시 마음이 쓰이려고 해서 일어나 그걸 떼버릴까 생각하는 참인데
‘여잔 왜 간평을 하러 다니지 않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 때문에 문득 실소하려던 마음 한 귀퉁이에서 별안간 야단이 난다.
‘그깟 일.’
하고 발칵하는 것이다. 다음 순간 형에는
‘웬일인가? 내가 이렇게 비위를 잘 상우게상하게. 되는 것은 그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제법 맹랑한 생각이다. 하지만 그로서는 또 뭘 그렇게 치우쳐 다잡아볼 것 없이 그저 남편을 사랑한다고밖엔 도리가 없는 것이, 이러지 않고는 사실 일이 너무 거창해서인지도 모른다. 정말 이래서 그는 그저 인망이 높다는 남편의 좋디 좋아 봬는 그 눈자위가 가끔 비위를 상해줄 뿐이라고 생각해버리는지도 모른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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