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빌라 사보아
1931년: 건축은 기계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다
1931년은 산업혁명으로 인해 사람들의 삶이 바뀐 세상이었다. 일자리를 찾아 많은 사람이 시골을 떠나 도시로 모여들면서 어느 때보다 많은 건축물이 필요해졌다. 19세기부터는 전염병을 예방하는 백신 기술로 인구가 더 늘었다. 산업 혁명이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증기 기관차를 이용해 출퇴근하기 시작했고, 20세기에 들어서는 증기선을 이용해 대서양을 며칠 만에 건널 수 있게 되었다. 자동차와 비행기라는 새로운 교통수단도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높은 곳도 쉽게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밭일이 끝나면 집에 가서 잠을 자던 사람들이 도시에 살게 되면서 퇴근 후 가스등으로 밝혀진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기계가 만든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맞이했다. 사람을 감싸는 공간과 그 공간의 의미가 기계로 인해 바뀌고 있었다. 기계는 사람을 더 나은 삶으로 인도하는 도구였다. 이 시기에 스위스 태생의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라는 건축가는 ‘건축이 기계가 될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건축이 기계라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건축은 야외 현장에서 제작되는 반면 기계는 공장에서 제작된다. 건축이 기계가 되려면 우선 공장에서 만들어진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 기존의 건축 재료는 나무와 돌 같은 자연에서 구하는 재료였다. 벽돌이 그나마 조금 더 인공적인 가공이 들어간 재료였다. 나무나 돌 같은 전통적인 건축 재료들은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현장에서 깎고 쌓고 조립해야 하는 재료였다. 반면 철근은 공장의 뜨거운 용광로에서 나오는 인공 재료다. 시멘트 역시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재료다.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기계 같은 건축을 하려면 공장에서 생산되는 철근이나 시멘트를 사용해야 했다. 시멘트가 물과 만나서 완성되는 콘크리트는 화학적인 변화를 통해 완성되는 재료다. 이 재료들은 이전과는 다른 과학적 건축 재료였다.
철근과 콘크리트는 열에 의한 팽창 계수가 동일하다. 이 말은 수축과 팽창을 할 때 같은 비율로 늘어나거나 줄어든다는 것이다. 만약에 철근과 콘크리트의 열팽창 계수가 달랐다면 함께 사용할 경우 온도 변화에 따라 다르게 수축과 팽창을 하면서 부서졌을 것이다. 하지만 두 재료는 다행히 같은 열팽창 계수를 가지고 있어서 함께 사용해도 시멘트에 균열이 가지 않는다. 이는 놀라운 발견이다. 덕분에 인류는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해서 높은 건축물을 빠르게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철근 콘크리트는 과거 어느 재료보다도 과학적 기술에 기반을 둔 건축 재료다. 르 코르뷔지에는 그런 철근 콘크리트를 이용해 건축을 진행했다. 새로운 재료를 사용해 새로운 건축을 시작한 것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전혀 새로운 건축을 하는 것과 같은 혁신적인 시도였다.
철근 콘크리트가 만든 5원칙
이러한 재료의 변화는 디자인의 변화를 가져온다. 철근 콘크리트로 벽을 만들 수도 있지만 르 코르뷔지에는 그보다 더 효율적인 콘크리트 기둥을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기둥식으로 건물을 만들면 철근 콘크리트의 양을 줄여 건축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서양은 전통적으로 돌이나 벽돌을 이용해서 벽을 구조체로 하는 건축이었는데,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하면서 기둥 중심의 건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비로소 서양 건축은 벽이 주는 한계와 구속으로부터 탈출하게 된 것이다. 기둥으로 건축해서 건물의 1층을 땅에서 띄운 것을 건축 용어로 ‘필로티pilotis’ 구조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빌라 같은 다세대 주택의 1층에 있는 주차장이 대부분 이런 식이다.
기둥식 구조로 건물을 만들면 나타나는 두 번째 특징은 자유로운 평면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기둥만 남겨 두고 나머지 벽체는 구조와 상관없이 평면상에서 직선과 곡선 어떤 모양으로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세 번째 특징은 자유롭게 건축 입면을 디자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콘크리트 기둥이 구조를 책임지면서 건축물의 입면 벽체는 지붕을 받쳐야 하는 구조의 부담이 없어졌다. 이제 입면 벽에 어떤 모양으로 구멍을 뚫어도 되었다. 건축 입면의 디자인이 자유로워진 것이다.
네 번째 특징은 자유로운 입면 설계가 가능해지니 가로로 긴 창을 뚫을 수 있다는 점이다. 벽이 지붕을 받치는 기존의 서양 건축은 벽에 창문을 가로로 길게 뚫으면 무너진다. 따라서 큰 창문을 내고 싶으면 세로로 길게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철근 콘크리트 기둥이 지붕을 받쳐 둔 덕분에 이제 벽에 창문을 가로로 길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바깥 경치를 파노라마 뷰로 즐길 수 있었다. 가로로 긴 창문은 실내에 빛을 더 많이 유입해서 더 밝은 방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
마지막 다섯 번째 특징은 옥상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비가 오면 지붕에서 빗물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 물을 빠르게 흘려서 땅으로 내려보내야 했다. 그렇다 보니 비가 오는 지역의 지붕은 모두 기울어진 형태였다. 지붕이 기울어져 있으니 사람이 서 있을 수 없었고, 그렇다 보니 옥상은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런데 콘크리트는 기울이지 않고 평평하게 만들어도 균열이 없거나 표면에 방수 처리를 하면 비가 새지 않는 재료다. 철근 콘크리트로 집을 짓자 지붕을 평평하게 만들고 그곳을 사람이 사용하는 정원으로 꾸밀 수 있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땅에 건축물을 앉히면 건물이 들어선 만큼 녹지가 줄어든다. 그런데 옥상 정원을 만들면 건물 때문에 녹지가 줄어들지 않아서 지구 표면에서 녹지 면적의 총량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철근 콘크리트 기둥이 만드는 다섯 가지 특징인 필로티, 자유로운 평면, 자유로운 입면, 가로로 긴 창, 옥상 정원을 ‘근대 건축의 5원칙’이라 부르고 이것을 르 코르뷔지에가 제창했다. 근대 건축의 5원칙은 한마디로 철근 콘크리트라는 새로운 재료가 만든 건축의 특징이다. 이는 건축을 기계로 보았고, 건축이 기계가 되도록 공장에서 생산되는 재료인 시멘트와 철근을 사용하면서 만들어진 특징이다. 이러한 근대 건축의 5원칙이 총결집된 결정체가 ‘빌라 사보아Villa Savoye’다.
아인슈타인 흉내 내기
르 코르뷔지에가 활동하던 20세기 전반은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상대성 이론이 전 세계를 강타한 시대다. 아인슈타인 이전에는 뉴턴Isaac Newton의 만유인력 법칙이 전 우주의 움직임을 설명하던 법칙이었는데, 상대성 이론은 만유인력 법칙을 오래된 중고차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1915년에 발표한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아인슈타인은 역사상 가장 똑똑한 지성으로 추앙받게 된다. 그가 만든 상대성 이론은 태양계에서도 적용되고 우주 끝에서도 적용되는 법칙이다. 상대성 이론으로 이제 시간과 공간은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개념으로 파악될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서 전 우주의 법칙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통일장 이론’을 찾으려고 했다. 당시는 하나의 법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다.
건축계의 대표 지성인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계의 아인슈타인’이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는 전 세계 모든 건축을 해결할 수 있는 이론을 추구했다. 그것이 ‘근대 건축의 5원칙’이다. 훗날 이러한 생각은 전 세계에 모두 비슷비슷한 건축물이 만들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뉴욕, 도쿄, 상하이, 런던, 방콕, 카이로, 바그다드, 나이로비에 지어지는 현대식 건축물은 모두 비슷한 모양과 형식을 가진다. 이렇게 국제적으로 모두 비슷한 디자인으로 건축되는 스타일을 ‘국제주의 양식’이라고 부른다. 하나의 이론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건축의 다양성을 파괴하여 획일화라는 새로운 문제를 가져온다. 사실 우주도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우주 어디서나 통하는 중력의 법칙으로 인해 우주 전체의 행성은 모두 둥그런 형태를 띤다. 행성 디자인의 획일화인 것이다. 이것이 하나의 원리로 만들어지는 세상의 한계다. 물론 그 안에서 대기의 상태, 온도, 질량의 차이, 그에 따른 중력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쨌든 다양성에는 한계가 생긴다. 르 코르뷔지에가 만든 근대 건축의 5원칙도 다양성을 억누를 수 있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 사보아’는 근대 건축의 5원칙이 적용된 것 외에도 많은 장점을 가진 훌륭한 디자인이다.
‘빌라 사보아’는 파리 외곽에 위치한다. 주변에 보이는 것은 거의 다 자연이어서 공원 한가운데 위치한 주택이라고 보면 된다. ‘빌라 사보아’의 디자인에는 근대 건축의 5원칙이 모두 적용되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주택은 지극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디자인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주택의 형태는 건축에서 가장 기본적인 직육면체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건물의 색상은 모든 색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백색이다. 마치 아무런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흰색 캔버스처럼 자연 속에 가로로 긴 직사각형의 입면이 필로티 기둥 위에 떠 있다. 이 건물이 단순하게 근대 건축의 5원칙만 적용된 디자인이었다면 이렇게 역사상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 하나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건축물에는 5원칙이 모여서 만든 또 다른 가치가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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